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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 평화손잡기 철원을 가다

남과 북의 정상이 판문점에서 만난 4월 27일. 도보다릿길을 산책하며 두 정상이 마주앉아 얘기를 나누는 동안 들리는 건 사람의 말소리가 아닌 새소리, 꿩소리였다. 평화의 소리였다. 마침내 ‘사실상의 종전선언’인 판문점선언이 거기서 나왔다.

그로부터 1년, 한반도엔 아직 봄이 오지 않았지만 이제 한겨울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 머지않아 봄이 올 것이고, 아니 이미 봄은 시작되었고, 우리의 삶과 생각이 그 봄에 맞게 바뀌어야 한다는 걸 아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

4월 27일 1주년, 오늘은 DMZ에서 평화의 손을 맞잡는 날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비가 오고 쌀쌀했는데 오늘 아침은 거짓말처럼 하늘이 파랗고 공기는 신선하다. 통일로를 따라 철원으로 가는 길. 산과 들판은 온통 연둣빛이다. 그 연둣빛 중간중간 연분홍 산벚꽃이 터지고 있다. 우리 산하가 이렇게 아름다웠던가. 1년 전 4월 27일, 남북 정상이 만나던 판문점은 얼마나 더 아름다웠을까.

파주에 접어드니 여기저기 DMZ 평화손잡기를 알리는 현수막들이 내걸려 있다. 도로가엔 평화손잡기 현수막을 내건 대형 관광버스가 서 있고, 몇몇 사람들은 즐겁게 담소를 나눈다. 평화를 만나러, 평화를 만들러 가는 길, 안 즐거울 수가 없는 일이다.

백마고지 전적지 입구. 1~2㎞는 더 들어가야 하는데 사람들의 행렬로 도로가 막혔다. 비상 깜빡이를 켜고 천천히 전적지 쪽으로 진입했다. 어른들, 아이들 모두가 신나고 즐거운 모습들이다. 그야말로 소풍 가는 기분들이다.

백마고지를 오르는 인파 행렬 ⓒ유코리아뉴스

입구에 겨우 차를 대고 후딱 전적지로 올라갔다. 수많은 인파가 전적지를 오른다. 백마고지전적비 앞에는 약 200여 명이 모여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개신교가 주관하는 한반도 평화를 위한 6.25 한국전사자 추모예배다. 한국전쟁 때 죽은 이들의 억울한 넋을 위로하는 자리다. DMZ 평화인간띠운동본부 주최로 개신교는 백마고지에서, 원불교는 파주 율곡습지공원, 불교는 양구 펀치볼고지, 천주교는 철원 월정리역에서 각각 한국전쟁 희생자 추모행사를 드린다.

평화나 통일은 분단 희생자들의 억울함, 아픔을 위로하는 데서 시작된다. 분단의 죄악을 회개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렇지 않은 평화나 통일은 허구다. 공허한 구호일 뿐이다.

목사님의 설교가 그 어느 정치인의 연설보다 감동이다. “하나님은 우릴 원수로 만들지 않았다. 우릴 지배하는 사상, 이념, 철학이 서로를 원수로 만들고 있다. 하루빨리 종전선언을 하고, 남북이 하나인 걸 깨달아 1차로 남북이 대사를 파견하고 서로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사상, 이념을 뛰어넘은 한민족이 되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자.”

백마고지전적비 앞에서 열린 개신교 주관 한반도 평화를 위한 6.25 한국전사자 추모예배 ⓒ유코리아뉴스

예배를 드리는 중간에도 끊임없이 사람들의 물결이 백마고지로 밀려온다. 깃발이나 목수건을 보니 정당의 지역위원회, 안양 여성의전화, 옥천 등등 지역과 단체에서들 온 것 같다. ‘권사님’이란 호칭도 여러 번 들리는 걸로 봐서 교회에서도 상당수가 온 것 같다.

예배가 채 끝나지 않았지만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차로 6분 거리의 철원 노동당사에서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주관의 한반도 평화예배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곳 분위기는 완전히 딴판이다. 백마고지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추모예배여서인지 차분한 분위기였는데 노동당사 앞은 완전히 잔치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주최측 젊은이들의 흥겨운 풍물패 공연에다가 매주 토요일마다 선다는 DMZ 마켓에서 온갖 먹거리, 농산물을 팔고 있었다.

철원 노동당사 앞에서 열린 풍물패 공연 ⓒ유코리아뉴스

풍물은 언제 들어도 신난다. 청중들은 박수를 치고 환호성을 지르며 호응했다. 아리랑 연주 땐 힘차게 따라하기도 했다. 거기서 지인들도 몇 명 만났다. 다들 임진각으로 많이 갔는데 왠지 이곳에 오고 싶었다는 것이다.

1시가 약간 넘은 시각, 음악이 울리며 예배가 시작됐다. 그런데 찬송가가 아니다. ‘고향의 봄’이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잔잔한 합창이 고향, 어린 시절을 떠올리고, 마침내는 평화와 통일로까지 젖어들게 만든다.

이어서 목사들이 한 명씩 나와 ‘평화와 부활의 메시지’를 선포했다. 하나같이 목소리가 쩌렁쩌렁하다. 이 땅 민주화와 통일운동을 주도했던 기장 교단의 정신이자 기백 같은 것이리라.

“민족의 부활은 평화와 통일입니다!” “평화통일 만세! 조국통일 만세! 대한민국 만세! 조국은 하나다!” “갈등과 분단의 십자가여, 평화와 통일로 부활하라”

한국기독교장로회 주최 한반도 평화 예배 모습 ⓒ유코리아뉴스

몇 년 전 방북했다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됐던 한상렬 목사는 축도를 했다. 축도에 앞서 한 목사는 이렇게 선창을 했다. “내가 문익환이다!” “내가 함석헌이다!” 사람들은 그대로 따라했다. 영락없는 문익환 목사다. 부활이라는 건 어쩌면 이런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먼저 간 이들을 그저 존경하고 추모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정신, 그 삶을 고스란히 이어받아 그렇게 살아가는 것 말이다. 그러고 보니 한 목사는 영락없는 문 목사다. 끝으로 그는 “통일평화 만세!”를 굵고 짧고 외치더니 고요하게 단상에서 내려왔다. 예배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합창하며 마쳤다.

어느 새 사람들은 수천 명으로 불어나 있었다. 서쪽 끝 강화도에서부터 동쪽 끝 고성까지 500㎞ DMZ를 손맞잡는 시간 오후 2시 27분이 20~30분밖에 남지 않았다. 사람들은 교회별로, 단체별로 도로를 따라 이동했다. 길게 늘어서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차를 타고 지나치기만 했던 월정리 민통선 앞 도로를 걸어서 걷는다. 도로 양쪽은 숲이다. 그 앞엔 철책과 함께 ‘지뢰’라는 빨간 표식들이 무수히 붙어 있다. 거기를 지금 사람들이 손에 손을 잡고 걷고 있다. 평화의 승리다. 오래되어 이제는 무뎌진 전쟁을 평화가 이긴 것이다.

사람들이 평화손잡기를 하기 위해 DMZ 앞을 걸어서 지나고 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평화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유코리아뉴스
노동당사 앞, 월정리 입구 도롯가에 붙은 무수한 '지뢰' 표식 중 하나. ⓒ유코리아뉴스
'지뢰밭' 사이를 걸어서 지나고 있는 평화손잡기 행렬 ⓒ유코리아뉴스
'지뢰밭' 사이를 걸어서 지나고 있는 평화손잡기 행렬 ⓒ유코리아뉴스

 

무수한 현수막 속에 일본어도 눈에 띈다. 외국인들도 있다. 바야흐로 한반도는 평화가 대세다.

DMZ 평화손잡기에 참여한 일본인들 ⓒ유코리아뉴스

손 맞잡은 모습들 저 너머로 북녘 산이 보인다. 산하는 70년 묵은 이 바보 같은 분단을 얼마나 비웃고 있을 것인가. 산하는 멀쩡하게 하나인데, 사람들은 서로 금을 가르고 철책을 치고 총부리를 겨누고, 거기다 서로를 못미더워하며 두려워하기까지 하고 있으니 말이다. 북녘의 동포들과도 평화 손잡기를 할 날이 꼭 올 것이다. 그때는 분단의 철책도 싹 거둬지고 없을 것이다.

DMZ 평화손잡기에 참여한 청소년들 ⓒ유코리아뉴스
DMZ 평화손잡기에 참여한 수녀님들 ⓒ유코리아뉴스
노동당사 입구에서부터 끝없이 이어진 DMZ 평화손잡기 행렬 ⓒ유코리아뉴스

돌아오는 길, 논에서는 벌써 모내기를 한다. 냇가에서는 낚시를 하다 말고 사람들이 둘러앉아 술을 마시며 담소를 나눈다. 이게 평화다.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왜 평화에, 통일에 무관심하냐고 나무라는 것이 아니라, 지금처럼 일상을 평화롭게 누리도록 공고한 평화체제를 만드는 것, 그것이 평화란 이름으로 통일이란 이름으로 밥 벌어먹고 사는 이들의 할 일인 것이다.

김성원 기자  ukorea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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