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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레이와 시대 개막과 새로운 한일관계 구축을 위한 방법론평화재단 평화연구원 ‘현안 진단’
  • 평화재단 평화연구원
  • 승인 2019.05.09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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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와 열기의 이면

일본에서 아키히토(明仁) 일왕의 퇴위와 나루히토(徳仁) 일왕의 즉위로 레이와(令和) 시대가 개막했다. 일본에서는 퇴위식과 즉위식을 포함해 10일 동안 연휴가 이어지며, 5월 4일에 실시된 일반인의 왕궁 참배에 14만 명이 넘는 인파가 나서는 등 야단법석이다. 이를 바라보는 외국의 시선은 복잡할 수밖에 없다. 이를 의식한 듯 일본에서도 지나친 호들갑이라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특히 일본 국민의 80퍼센트가 호감을 표시했다는 레이와의 명명에 대해 왈가왈부 말이 많다.

먼저 연호 그 자체가 왕실의 시간을 국민에게 강요하는 것으로, 헌법에 규정된 민주주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근본적인 비판이 있다. 연호 결정과정에 아베 총리가 깊숙이 개입했고, 연호 결정을 새 일왕에게 보고하는 과정에서는 일본회의 등 우익 정치집단의 의향에 따라 일정을 조정하는 등 아베 총리의 행동이 일왕의 정치행위를 금지한 헌법에 위배되었다는 문제제기도 있다.

들뜬 모습의 아베 총리에 대해 일본 국민 가운데 경계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한 것은, 새 일왕이 즉위하자마자 5월 3일의 헌법기념일에 즈음해서 낸 아베 총리의 메시지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해마다 5월 3일에 일본의 주요 언론들은 개헌과 관련한 여론조사를 내놓는다. 올해도 어김없이 주요 신문들이 개헌 여론을 발표한 가운데, 요미우리신문이 개헌 찬성 50%, 반대 46%라는 결과를 내보냈다. 아사히신문은 보다 더 구체적으로 헌법 9조 개정 여부를 물었는데 개정에 반대하는 여론이 64%로, 찬성 여론 28%를 압도했다. 아사히신문의 경우 개헌 기운이 고조되지 않았다는 여론이 72%나 된다는 사실도 강조했다. 두 여론조사 모두 작년에 비해 개헌에 조금 더 차가워진 국민의 시선을 반영하고 있었다.

 

레이와의 평화주의

헌법과 관련해서 새 일왕 나루히토의 의지도 표명되었다. 그가 즉위식에서 “헌법에 따라 일본 및 일본 국민 통합의 상징으로서 책무를 다할 것을 다짐한다”고 표명한 데 대해, 상왕 아키히토에 비해 헌법 수호 의지가 약했다는 평가가 있다. 그러나 아키히토 전 일왕의 헌법 수호 의지는 30년 전 일본이 본격적인 보통국가화를 시작하기 전에 나온 것이다. 자위대의 헌법 명기를 주장하는 내각이 들어서 있는 지금 상황에서 나루히토 일왕이 ‘헌법에 따른 책무 이행’을 강조하고, 나아가 상왕이 보여준 상징적인 모습에 진심으로 경의를 표한다고 언급한 부분은 현행 평화헌법 수호 의지를 완곡하게 피력한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일본 국민 사이에서 헌법 개정 열기가 식어가고 있고 새 일왕이 상왕에 이어 헌법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는 중에, 현행 평화헌법 기념일인 5월 3일, 아베 총리는 개헌세력의 집회에 개헌 의지를 다지는 비디오 메시지를 보냈다.

이런 아베 총리의 태도에 대해 의구심을 제기한 것은 다름 아닌 레이와의 고안자로 알려진 나카니시 스스무(中西進)였다. 연호가 결정되는 과정에 아베 총리가 개입하여, 연호 역사상 처음으로 중국 고전이 아닌 일본 고전 『만엽집(万葉集)』의 한 구절을 따서 레이와로 결정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그 때문에 레이와에는 국수주의 냄새가 스멀스멀 풍기고 있다. 그런데 바로 그 고안자인 일본 고전문학자 나카니시가 레이와에서 평화주의를 강조하는 모습이 알려졌다. 이후 일본의 새 연호 레이와는 아베 총리의 의도와는 다른 방향에서 일본 국민의 마음에 자리 잡고 있는 듯하다.

나카니시는 아사히신문과의 기자회견에서 아베 총리의 개헌 행보에 대한 평가를 묻는 기자에게 ‘국가와 국가 사이가 조화로운 상태를 평화’라고 부른다면서 새 연호에 평화의 기원을 담았다고 했다. 이는 아베 총리가 레이와의 뜻을 ‘아름다운 조화’라고 풀면서 아베 자신의 책 『아름다운 나라로』를 그 위에 겹치려는 데 대한 은근한 비판이었다. 나아가 나카니시는 ‘조화’의 대척점에 있는 것이 타국에 대한 폭력 행사라면서, 레이와에 어울리는 일본이 되기 위해 과거 한반도에 무력으로 밀고 들어간 역사를 반성해야 한다는 생각까지 피력했다.

그런 의미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레이와의 개막에 즈음해서 “퇴위한 아키히토 천황과 마찬가지로 전쟁의 아픔을 기억하면서 평화를 위한 굳건한 행보를 이어나가기를 희망한다”고 전한 것이나, 이낙연 총리가 한일관계를 중시했던 아키히토 ‘천황’에 대해 감사를 전하고 레이와 시대에 한일 양국이 미래를 함께 준비하는 새로운 우호협력관계를 구축하기 바란다는 기대를 표명한 것은 좋았다.

 

새로운 시대로의 진입 장벽, 한일관계

그러나 그러한 기대 표명과는 달리 한일관계 현실은 녹록치 않다. 거의 모든 한일관계 전문가들이 현재를 1965년 국교정상화 이래 최악의 상태로 보면서, 개선의 가능성을 찾지 못한 채 더 악화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문제는 한일관계 그 자체보다도, 한일관계가 꼬일 대로 꼬여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한일관계가 새로운 시대에 진입하지 못하는데 한반도 평화가 홀로 새로운 단계로 진입하는 게 쉽지 않을 것이다. 결국 한일관계의 ‘1965년 문제’ 풀이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지속가능성을 가늠하는 기준이 되고 있다.

주지하는 바대로 1965년의 한일기본조약에서는 1910년에 이르는 대한제국과 일본 사이의 협약과 조약들이 ‘불법’으로 체결되었다는 사실을 확정하지 못했다. 따라서 ‘불법 행위에 대한 배상’을 확보하지 못하고, 재산 등 민사상의 권리에 대해서만 청구권협정으로 따로 처리했다. 다만 기본조약에서 이들 협약과 조약은 ‘이미’ 무효가 되었다는 사실만을 확인했는데, ‘이미’가 가리키는 시점을 두고 한국에서는 당초부터 무효였으며 따라서 식민지 지배가 불법이었다고 주장하는 반면, 일본에서는 과거의 협약과 조약이 양국의 합의에 따라 체결되어 식민지 지배도 합법적으로 실시되었으나 사후에 무효가 되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아, 각자 편의적으로 해석해 온 것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한·일 사이에서 과거사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등장하는 1965년 청구권협정도 이 기본조약의 한계 위에서 체결된 것이다. 청구권협정은 1조에서 일본이 한국에 대해 유무상의 경제협력을 실시하며, 2조에서 청구권 문제가 ‘완전히 최종적으로’ 해결되었음을 양국이 확인한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여기에서 1조와 2조의 관계가 문제다. 일본 정부는 서로 관계없는 내용이 병기되어 있을 뿐이라는 입장이며, 한국 정부는 1조의 행위에 따라 2조의 결과가 되었다는 해석을 취하고 있다. 즉 일본 정부는 애초에 금전을 지불할 어떠한 의무도 존재하지 않지만 일본이 한국의 독립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경제협력을 실시함으로써 한국이 더 이상 청구권을 주장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해석하고 있다. 이에 반해 한국 정부는 청구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본 정부가 경제협력을 실시했다는 해석을 취하고 있다.

일본이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에 따라 지불한 10억 엔을 법적 배상이라고 인정하지 않는 것도, 강제징용 노동자에 대한 대법원 판결을 ‘국제법 위반에 해당하는 폭거’라고 비난하는 것도 모두 ‘1965년 문제’에 기인한다. 결국 ‘1965년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는 한 한국에서 새로운 100년으로 진입하는 것도, 일본에서 레이와를 새로운 시대로 맞이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1965년 문제’의 돌파를 위하여

그러면 ‘1965년 문제’를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이에 답하기 위해서는 1965년에 이르는 역사에 더해 1965년 이후의 역사를 동시에 이해할 필요가 있다, 1990년대 탈냉전과 함께 한국에서는 시민사회가 성장하여 오래 방치되어 왔던 미완의 역사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그 첫 포문은 두말할 것도 없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였다. 위안부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한국 시민운동의 고양에 우리 정부가 일본 정부에 해결을 요구하기 시작했고, 이에 일본이 호응하면서 일본의 역사인식이 차츰 개선되는 듯 했다.

1993년의 고노담화, 1995년의 무라야마담화, 1998년의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을 거치면서 일본은 한국에 대한 식민지 지배 사실을 인정하고, 그로 인해 한국 국민에게 끼친 고통과 손해에 대해 사죄와 반성을 표명했다. 그리고 2010년 한국병합 100년을 반성하는 간 나오토 담화를 통해, 1910년 조약이 ‘한국인의 의사에 반해 체결되었다’는 사실과 강제성을 처음으로 인정했다.

이러한 역사인식의 발전에 동반해서 일본은 1965년에 미완에 그친 과제들에 대해 해결하려는 노력을 보이기 시작했다. 비록 법적 책임이 아니라 도의적 책임을 인정한 데 불과한 것이긴 하지만, 사할린 동포의 귀국사업과 한국인 피폭자에 대한 지원도 했다. 이렇게 1965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양국 정부와 시민사회가 함께 노력해 온 과정이 있었다. 이를 이해하고 그 노력들을 수용하면 한일관계를 둘러싼 비관주의도 함께 극복할 수 있다.

 

한국—북한-일본의 ‘3자 역사선언’의 제언

먼저 우리 정부가 지혜와 용기를 내야 한다. 냉엄한 국제정치 현실 속에서 정의의 원칙을 지켜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과거 정부는 늘 외교의 현실에 타협하고 말았다. 이제 이번 정부가 용기를 내야 한다. 두 방면으로 용기를 내야 한다. 일본에 대해서는 정의의 원칙을 더욱 강력히 제기하고 문제를 극복하는 데 함께 노력하자고 설득해야 한다. 동시에 우리 국민에 대해서는 냉엄한 국제정치 현실 속에서 더 나은 미래로 가기 위한 길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이해를 구해야 한다.

그리하여 일본 정부는 1910년 조약의 강제성과 불법성을 명확히 기록하고, 한국 정부는 이에 대해 더 이상의 배상을 요구하지 않는다고 명기하는 새로운 역사선언의 채택을 제안한다. 이는 한·일 양국 정부가 그 동안 쌓아온 노력을 서로 인정하는 것으로 추가 노력 없이 이를 추인할 용기가 필요할 뿐이다.

한·일 사이에 이러한 내용의 새로운 역사선언이 필요한 것은 다가올 북·일 국교정상화가 한·일 간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아베 총리는 레이와 시대가 열리자마자 북·일정상회담에 의욕을 보이고 있다. 레이와라는 새로운 시대를 상징할 정치적 업적이 아무것도 없다는 게 이유가 될 수 있다. 북·일 수교 교섭은 2002년의 북·일공동선언에 기초해서 전개될 것이다.

거기에는 북·일 국교정상화에 따라 일본이 북한에 경제협력을 실시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는 ‘1965년 문제’의 북·일관계 버전이다. 북한과 일본은 한·일의 새로운 역사선언을 징검다리로 삼아 이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 남북한과 일본은 두 양자 선언을 하나로 통합해서 식민지 문제와 관련한 한반도와 일본의 관계를 총괄하여 진정으로 새로운 시대에 진입할 수 있을 것이다.

임정 수립 100주년의 해에 새로운 100년을 맞이하는 한국과 헤이세이에서 레이와로 넘어가는 일본이 함께 새 시대로 진입하는 입구에 아직도 ‘1965년 문제’가 버티고 있다. 위안부 문제와 강제징용 노동자 문제가 제기된 지금이 이를 해결할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 한·일 양국 정부가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이라는 대의를 위해 용기를 발휘해 주길 바란다.

평화재단 평화연구원  inst1@p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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