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이 진정 법치주의를 존중한다면 페어플레이를 하라. 이제 그만 여동생을 놓아주기를 부탁드린다.” 27일 오전 9시 서울 서초동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회의실에서 열린 ‘국가정보원 탈북화교남매 간첩조작사건’ 여동생 긴급기자회견에서 사회를 맡은 장경욱 변호사는 간절히 호소했다. 눈자위도 젖어 있었다.

이어서 여동생이 말문을 열었다. 여동생은 마음을 진정하려는 듯 깊은 숨을 들이마시더니 “제가 국정원(중앙합동신문센터를 지칭)에서 진술한 것은 사실이 아니고 다 거짓말입니다”고 말했다. 폭로였다. 지금까지 두 차례의 법정 진술에서 여동생은 거의 울기만 하면서 국정원 수사를 바탕으로 한 검찰의 공소사실을 정면 반박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 27일 오전 9시 서울 서초동 민변 회의실에서 열린 ‘국가정보원 탈북화교남매 간첩조작사건’ 여동생 긴급기자회견에서 피고 유씨의 여동생(오른쪽 두번째)이 자신이 합동신문센터에서 했던 진술이 협박, 회유에 의한 것이었음을 폭로하고 있다. 장경욱 김용민 변호사, 여동생, 양승봉 변호사(왼쪽부터). ⓒ유코리아뉴스

합신센터에서 허위 진술을 하게 된 이유에 대해 여동생은 “조사를 받는 동안 오빠가 간첩이라고 해서 내가 부인하니까 수사관들이 오빠의 진술서를 보여주면서 ‘오빠가 다 이야기했다. 오빠는 간첩이다’고 하면서 ‘이런 식(수사관이 들이민 소위 ’오빠의 진술내용)으로 진술하면 오빠와 같이 살게 해주겠다’고 해서 그렇게 진술하게 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변호인 측에 따르면 피고 유씨는 한번도 자신이 간첩이라는 걸 시인한 적이 없다. 따라서 여동생이 말한, 국정원 수사관이 제시했다는 오빠의 간첩 진술서는 허위가 명백하다는 게 변호인 측 설명이다.

여동생은 전날 민변 변호사들과 함께한 자리에서는 “국정원에서 나를 체포하러 오지 않겠느냐”며 극도의 공포와 불안한 심리 상태를 보이기도 했지만 이날 기자들 앞에서는 비교적 차분하고 조리있게 발언을 이어갔다. 중국에 살고 있는 아버지와 친척들과의 전화통화를 통해 진실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게 됐고 용기를 낼 수 있었다고 기자회견에 동석한 김용민 변호사가 설명했다. 김 변호사는 “특히 어젯밤 신뢰 관계에 있는 중국 지인을 만나 밤새 통곡하면서 얘기를 나눴고 그동안 국정원의 폭행, 회유, 협박 사실을 모두 고백하게 됐다”고 말했다.

다음은 여동생과의 일문일답(중간중간 여동생을 대신해 변호사들이 배경설명을 위해 답변을 했다).

=여동생: 중앙합동신문센터(이하 ‘합신센터’)에 들어가 조사받으면서...(심호흡).. 제가 국정원(‘합신센터’를 지칭)에서 진술한 것은 사실이 아니고 다 거짓말이다. 조사받으면서 수사관들이 오빠가 간첩이라고 하니까 내가 아니라고 계속 부인했는데 오빠의 진술서를 보이면서 ‘오빠가 다 이야기했다. 오빠는 간첩이다’고 하면서 ‘그런 식(오빠의 진술서대로)으로 진술하면 마지막에 좋게 해주겠다. 오빠와 같이 살게 해주겠다’고 해서... 오빠한테 너무 미안하다. 친척들에게, 가족들에게 너무 미안하다. 합신센터에 있으면서 (일부 수사관들이)이것저것 챙겨주고 잘해주고 하니까 그 선생들을 믿었다. 사실이 아닌데, (어제 법정에서 나온 이후)아버지와 친척들, 큰삼촌과 통화하면서 어떤 게 사실인지 명백하게 알았다. 오빠한테 너무 미안하다. 내가 잘못했다. (고개를 떨구고 흐느낌)

합신센터에는 작년 10월 30일 입국하자마자 들어갔다. 조사를 받았는데 처음엔 제가 화교신분을 숨기고 탈북자라고 진술했다. 수사관들이 ‘너 탈북자 아닌데 왜 속였냐’고 했다. 처음엔 화교가 아니고 탈북자라고 계속 부인했는데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했다. 끝까지 내가 ‘아니다’고 하니까 내 등에 ‘화교 유OO'이라고 쓰고 합신센터에 머무는 모든 사람들(탈북자들)이 와서 보게 하고 ‘이렇게 거짓말을 해서 여기에 들어왔다’며 사람들 앞에 내세웠다.

-기자: 합신센터에서 자살을 하려고 했다는데 왜 자살 시도했나?
=여동생: 조사받으면서 오빠가 간첩행위 했다고 해서 처음엔 내가 ‘우리 오빠 그런 사람 아니다’고 했는데 수사관이 ‘오빠는 간첩이다’고 해서 믿어지지 않아서 계속 부인했다. 그러니까 수사관들이 오빠의 진술서를 보여주면서 ‘오빠가 다 인정했고 네가 인정하면 일이 잘 된다’고 했다. ‘오빠가 1~2년간만 (감옥에서) 작게 살고 (그 이후엔) 너랑 같이 살게 할 수 있다’고 했다. 그게 좋은 길이라고 얘기해서 그걸 믿었는데... 오빠가 간첩이라는 얘기 들으니까 앞이 캄캄했다. 겁도 나고 너무 머리가 복잡해서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살고 싶지 않았다. 계속 ‘죽는 게 마음 편하다, 힘들지도 않고 가족들도 덜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합신센터 내 숙소)에는 사람들이 자살할까봐 유리나 바늘이 일체 없다. 자살해서 죽자고 결심했는데 죽을 물건이 없어서 화장실 거울도 깨보려고 했지만 거기는 방에 카메라가 있어서 24시간 보고 있는데 방에서 이상한 짓을 하면 밑에서 올라온다. 유리를 깨려고 했는데 안깨져서 (탁상)시계 유리를 깨서 그 유리 뽑아서 편하게 죽자는 생각으로 했는데 그걸 알고 선생이 올라와서 오히려 달래줬다.

-기자: 합신센터에서 화교인 게 밝혀졌으면 국정원에서는 어떤 이유로 뭐라고 하면서 데리고 있었나?
=여동생: 제가 신분이 밝혀진 것은 10월 말에 들어와서 10~15일 내다. 그게 밝혀진 다음부터 오빠가 북한에 왔다갔다 한 것에 대해 자꾸 물어봤다. 엄마 돌아가셨을 때 한번밖에 북한에 간 적이 없다고 했는데 (수사관들이) ‘(북한에 여러번) 자꾸 들어갔다왔다’고 해서 저도 믿어지지 않았는데, 그게 다 오빠 잘 되는 길이라고 해서 그 유도에 따라갔던 것이다.

-기자: 오빠가 간첩이었다는 걸 보여줬다고 하는데 수사관들이 뭘 보여줬나?
-여동생: 진술서다. 오빠가 언제 갔다왔다 한 것에 대해 저한테 보여주면서 ‘오빠가 다 이야기했다’고 했다. 진술서는 오빠 필체가 아닌 컴퓨터 글씨였다.

-기자: 언제 어떤 식으로 조사받았나?
=양승봉 변호사: 처음 두 달간은 새벽 2시까지 조사했다. 하지만 진술서가 되어 있는 최초 조사는 2013년 1월이다. 그 전 60일간 엄청난 조사를 한 것이다. 그 기간에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는 전혀 안나와 있다.

-기자: 합신센터에서 회유 협박 폭행도 있었나?
=여동생: 조사받는 동안 화교 신분이 밝혀지면서 내가 아니라고 계속 부인하니까 그 선생님이 화가 나서 때리긴 때렸다. 손으로 머리 때리고 발로 차고 그랬다.

-기자: 어떤 식으로 조사받았나? 진술이 구체적이던데 답변은 본인이 구체적으로 설명한 것인가, 아니면 단답형으로 답변한 것인가?
=여동생: 사실이 아닌데 자꾸 오빠가 왔다갔다고 반복해서 유도하고 주입주고 자꾸 그래서 처음엔 사실이 아니어서 부인했는데 오빠 진술 보며 다 맞다고 해서 (그렇게 답변한 것이다). 물어보게 되면 ‘예’ 그러면서 따라한 부분이 많았다. 내가 쓴 것도 있지만 그쪽에서 정리해서 작성한 것을 내가 다시 필체로 옮겼다.

-기자: 왜 화교가 아닌 탈북자라고 하고 국내에 들어왔나?
=김용민 변호사: 이분들(유씨와 여동생)들은 북한에서 태어나 생활했던 분들이다. 물론 부모님은 한족인데 고향이 북한이다. 북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화교이지만 북한 사람이란 생각이 강했다. 실제 이런 재북 화교들 중에도 탈북자로 인정받아 살고 있는 사람이 남한에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여동생: 저는 어릴 적 엄마를 잃어서 오빠를 의지해서 살아왔다. 그래서 오빠는 저를 잘 챙겨주고 잘 해줬다. 엄마 없어서 불쌍하다고. 오빠를 의지해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고 오빠랑 같이 살고 싶었다. 남한에 들어와서 오빠랑 같이 살고 싶었다.

-기자: 앞으로 신변은 어떻게 되나?
=장경욱 변호사: 본인 의사에 달려 있다. 한국에 살고 있는 중국인 지인이 용기를 내서 어젯밤 둘이 만나서 통곡하면서 얘기를 많이 나눴다. 여동생이 지금은 심리적 안정을 많이 취한 상태다. 어제 법정에서는 목소리를 못내고 계속 울기만 했다.
=김용민 변호사: 천주교 쪽이나 종교단체 쪽에서 나서주실 예정인 걸로 안다.

-기자: 어제 재판정에서 판사가 ‘신변은 여동생 본인 의사에 달려 있다’고 했는데도 1시간 넘게 고민한 이유는 뭔가?
=여동생: 여태까지 거짓진술에 대해 재판에서 재판받고 다음에 또 재판받는다고 (수사관들한테) 얘기 들었다. ‘재판 끝나게 되면 일이 잘 되고 하니까 마지막까지 그렇게 쭉 가게 되면 오빠는 작게 1~2년 (감옥에) 갔다와서 너와 같이 살 수 있게 해주겠다’고 한 말을 믿었다. 그래서 국정원(‘합신센터’를 지칭)에 다시 들어가려고 했었다.
=양승봉 변호사: 여동생 진술에 의해 오빠 형량이 줄어든다는 얘기다. 여동생은 거기 들어가면 오빠가 짧게 살 수 있다고 믿었다. 오빠한테 계속 ‘지켜줄게’라고 했다. 자신이 합신센터에 들어가야만 지켜줄 수 있는 걸로 알고 있었다.

-기자: 4시간 정도만 재우고 조사했다고 했는데 내부 생활은 어떤가?
=여동생: 제 방 모서리 창문 쪽에 카메라가 있었다. 화교 신분 밝혀지기 전에는 처음엔 카메라 없는 방에 들어갔는데 (화교) 신분 밝혀지면서 카메라 있는 방으로 옮겼다. 방안에 화장실도 다 있다. 문도 바깥에서 카드를 대고 들어와야만 문을 열고 나갈 수 있었다. 바깥에 나갈 때도 항상 보호자가 대동한 상태에서 나갔다. 운동장에 운동하러 갈 때도 마음대로 못가고 사람이 대동한 상태에서 나갔다. 방안 화장실은 희미한 종이로 붙여놔서 가려져 있다.

한편 이날 기자회견에 동석한 민변 소속 양승봉 변호사는 “솔직하게 고백하면 저도 이 사건을 맡으면서 ‘왜 여동생이 이렇게 (진술) 했을까. 모든 피의자의 말을 다 믿을 수는 없는 것이기에 여동생을 만나지 못해 무척 답답했다. 하지만 중국 현지도 방문하고 지인들을 통해 하나하나 진실이 밝혀졌다”고 말했다.

▲ 기자회견에서 양승봉 변호사가 검찰의 공소사실을 반박하는 결정적 증거 중 하나인 지난해 설 하루 전에 찍었던 유씨 가족 사진을 공개하고 있다. 중국 연길의 유씨 아버지 집에서 가져왔다는 사진엔 "2012. 1. 22"라는 날짜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유코리아뉴스

양 변호사는 그러면서 검찰의 공소사실을 반박하는 결정적 자료 하나를 공개했다. 바로 지난해 설에 여동생과 오빠 유씨, 그리고 아버지가 함께 찍은 사진이다. 양 변호사는 “공소사실엔 ‘아버지는 설인데도 북한에서 프로돈 사업(남한 탈북자와 북한 가족, 친척의 전화, 송금 등을 대행해주는 사업)을 하고 있었고, 오빠는 아버지한테 다녀오겠다고 했다”며 “그 과정에 북한의 회령 보위부에 핸드폰 등 편의를 제공하고 임무를 받아서 온 것으로 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설 전날 가족들과 사진을 찍었고(사진관에서 찍은 사진을 보여줌) 그 다음날에도 노래방에서 가족들이 즐겁게 시간을 보낸 사진을 갖고 있다. 아버지와 오빠가 결코 방북을 할 수 없는 물리적인 시간”이라고 밝혔다. 양 변호사는 그러면서 “검찰의 공소사실을 완전 반박할 수 있는 증거가 절반 정도 확보하고 있었는데 이제 그 객관적 사실이나 증거가 필요없을 만큼 뭐가 진실인지 왜 그렇게밖에 진술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여동생의 폭로를 통해 밝혀졌다”고 말했다.

이날 기자회견엔 주말 오전임에도 불구하고 방송 3사와 일간지, 잡지사, 외신 기자들까지 참석하는 등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김성원 기자  op_kim@ukore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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