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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갈등 속 기독교의 역할

한일 관계가 과거 어느 때보다 날카로운 파열음을 내고 있다. 8월 2일 아베 정부가 한국을 수출 관련 백색 국가 명단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하자 우리 정부 역시 동일한 대응을 검토하고 있다. 7월부터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시작한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은 지방 자치 단체 차원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2018년 11월 일제시대 강제징용공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계기가 됐지만 실은 아베 총리로 대표되는 일본 군국주의 세력의 부활 시도가 근본 원인이다. 우리 나라 뿐만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 동남아시아로 뻗쳤던 침략 전쟁을 반성하지 않고 역사를 왜곡하며 부인해온 일본. 역사 교과서 왜곡과 더불어 독도에 대한 영토권 주장, 위안부 운영과 강제징용 부정 등의 면면은 같은 전범 국가 독일과 비교할 때 전혀 다른 모습이다. 참된 부활을 꿈꾼다면 먼저 죽어야 하는 법. 아베 총리가 안간힘을 쓰고 있는 정상 국가화는 애초에 실패할 수밖에 없는 기획이다.  

지난 7월 24일부터 28일까지 동경과 요코하마에서는 열방부흥축제가 열렸다. (일본에서 열린 2019 열방부흥축제를 마무리하며” 기사 참조) 영국의 웨일즈와 한국, 이스라엘에 이어 열세 번째 집회였는데 일본 여행 불매가 한창일 때 공교롭게도 200여 명의 기독인이 일본을 향해 방문단을 꾸리게 됐다. 한국과 일본 예배팀은 물론 한국에 유학 와 있는 아프리카와 우즈베키스탄 학생 밴드, 일본에 거주하는 브라질과 필리핀 기독인 밴드 등 다양한 그룹이 함께 했다. 일본에서는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찬양 사역팀 활동이 다양하게 일어나고 있다. 자연 재앙이 불러온 원전 사고의 심각성이 청년층 일각에서 각성을 낳고 있다. 이번 행사는 한일 간의 기독인 예배 연합에 있어서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 교파와 교단, 국가와 언어를 초월하여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노래하는 공동 예배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기독교를 대표하는 덕목이라 할 수 있는 ‘사랑’이 한일 갈등을 뛰어넘어 어느 정도까지 힘을 발휘할 수 있을지 시험대가 될 법하다. 한일 연합 예배팀의 향후 활동이 기대된다.     

일본 도쿄 와세다대 근처에 위치한 NCCJ 사무실에서 만난 김성제 목사(일본기독교협의회(NCCJ) 총간사). 그는 “오늘날 일본의 보수화는 1945년 패전 이후 ‘천황제’를 청산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유코리아뉴스

열방부흥축제 기간 중 일본기독교협의회(NCCJ) 김성제 목사를 만났다. 김 목사는 2018년 3월 40회 총회에서 재일동포로서는 처음으로 총간사(총무)에 선임됐다. NCCJ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와 일찍부터 가깝게 연대해오던 터라 양국의 기독교협의회 차원에서도 어느 때보다 긴밀한 협력이 가능해졌다. 1967년 3월 일본기독교단 총회장 스즈키 마사히사 의장이 한국 교회를 찾아 전쟁 책임에 있어서 죄책 고백을 했다. 교단 차원의 공식적 사죄로 발전되지는 못했지만 이를 계기로 한일 교회 교류가 시작됐고 1970년대 한국 민주화 운동에 있어서 조력이 이어졌다. 특히 1972년 일본으로 건너가 1974년부터 1994년까지 도쿄여자대학교 교수를 역임한 지명관 교수가 당시 대표적 지성지라 할 수 있는 「세카이」에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을 ‘TK생’이라는 필명으로 기재할 수 있도록 도왔다. 이는 유신 체제 하에서의 민주화 운동 현황을 알리는 역할을 했고, 김대중 납치 사건도 이런 네트워크가 있었기에 공개될 수 있었다. 

NCCJ는 일본 사회 속에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돌봄과 소수자들에 대한 차별 반대 활동에 집중하면서 주로 과거 역사에 대한 반성과 교과서 왜곡 문제를 제기해오고 있다. 1970년대 경제 활황기에는 노동운동이 사회 개혁을 이끌었다면 1980년 호황기를 누리면서 일본 사회는 전체적으로 보수화의 길을 걸었다. 1990년대부터는 민주 개혁 성향의 정치세력 입지가 좁아졌고 정치적으로도 급속히 보수화됐다. 이런 상황에서 수적으로 열세였던 기독교는 교세를 확장시키지 못한채 더욱 위축되어 왔다. 김성제 총무는 “오늘날 일본의 보수화는 1945년 패전 이후 ‘천황제’를 청산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예측되는 상황에서 일본을 병참기지로 활용하려 했던 미국은 천황제를 유지시켜 전후 일본 민심을 달래고 안정화시키고자 했다는 것이다. 천황 스스로 자신은 신이 아니라고 천명했지만 국제 정치 역학 틈바구니에서 군국주의와 결탁되어 있는 천황제 뿌리가 살아남게 된 것이다.   

800만의 신을 섬기는 신교가 바탕이 된 천황제는 일본 군국주의 세력의 이데올로기라고도 할 수 있다. 천황제를 부활시켜 국가종교화 하려는 시도는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고 있는 현행 헌법에 배치된다. 자유민주주의의 기본 가치인 종교의 자유를 부정하는 일이기도 하다. 일본회의로 대표되는 군국주의 세력은 아베 총리 외에 다수의 내각 인사와 의원들을 포함하고 있다. 현재의 헌법 9조를 고쳐 일본을 전쟁이 가능한 국가가 되게 하려는 게 이들의 목표다. 아베는 집권 당시부터 이같은 뜻을 분명히 했고, 한국발 위안부와 강제 징용 등 과거사 문제 제기를 발목잡기로 여겼다. 일제 강점은 한반도 ‘침략이 아닌 진출’이었다는 식의 역사 왜곡에 정면으로 배치되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 당시 대법원 판결에 직접 영향을 행사한 증거가 최근 알려졌는데, 이는 명백한 내정 간섭이었다. 

지난 7월 26일(금요일) 오후 4시 문부성 앞에서 열린 조선학교 차별 반대 집회 모습.  스스로 조선학교 출신이거나 조선학교 학생을 둔 부모뿐만 아니라 일본인 활동가들이 어려운 처지의 조선학교를 돕고자 집회에 동참하고 있었다. ©유코리아뉴스

김성제 총무는 인터뷰 말미에 매주 금요일 오후 4시 문부성 앞에서 열리는 조선학교 차별 반대 집회에 참석할 것을 권했다. 2013년 아베 총리가 조선학교에 대해 정부의 보조금 지급을 삭감하자 시작된 집회이다. 방학이라 학생들은 나오지 않았고 조선학교 어머니회에서 순서를 정해 주관하고 있었다. 이미 법원에서는 연달아 패소한 상황이지만 어머니들은 아이들을 위해 끝까지 포기할 수 없다는 심경을 밝혔다. 도쿄조선학교어머니회 엄광자씨는 “아이들에게 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중요하다”며 아베 정부가 정책을 바꿀 때까지 계속 집회에 참석하겠다고 했다. 이날 집회에선 일본에 있는 67개 조선학교를 도보로 방문한 후 각 학교의 모습을 담아 책자로 펴낸 일본인 하세가와 가즈오씨가 소감을 발표했다. “일본의 교육은 실패했다. 조선학교에서 배워야 한다”며, 차별 반대는 물론 공동체 문화가 살아 있는 조선학교에서 보고 배워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조선학교 차별 반대 집회에는 20년 동안 강제징용공들에 대한 사과와 보상을 주장하는 이와타 아사코씨도 참여하고 있었다. 학교 사회 과목 선생님으로부터 일제의 침략에 대해 알게 된 아사코씨는 미쓰비시 본사 앞에서 시위하며 전단지를 통해 일본 정부의 한반도 적대 정책에 대한 비판도 해오고 있었다. 일본 정부가 역사를 반성하고 제대로 교육해왔다면 어땠을까? 이 또한 독일과 비교되는 대목이었다. 안타깝게도 현재 일본의 주류는 극우 군국주의를 포함한 보수 세력이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과 전후 일본에 대한 처리 방식이 단초를 제공했다고도 할 수 있다. 일본이 군국주의가 아닌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서 정상화되는 길은 어디에 있을까? 객관적인 역사 인식을 바탕으로 평화와 공존의 가치를 깨닫는 시민사회가 정치권을 견인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일본 교회가 일본 사회의 양심으로 굳건히 자리 잡고 시민 사회의 역량을 강화시킬 수 있는 수원지가 되길 기대해본다. 

   

윤은주 박사  ejwarrio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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