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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실무회담 결렬의 '행간'

지난 5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북미 실무협상에서 미국은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가지고 나왔지만 북한은 ‘결렬’을 선언했다. 왜 그랬을까? 북한 김명길 협상대표는 결렬 직후 발표한 성명에서 “미국이 우리가 요구한 계산법은 하나도 들고 나오지 않고 빈손으로 나왔다”며 “미국은 구태의연한 입장과 태도를 버리지 못했다”고 협상 결렬 이유를 밝혔다.

그렇다면 미국이 들고 나온 ‘창의적인 아이디어’ 또는 ‘창의적인 제안’에 뭐가 담겼길래 북한은 ‘2주 내 실무협상 재개’라는 스웨덴의 중재안도 거부한 채 결렬을 선언한 것일까.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퍼즐을 푸는 핵심은 북한에게 큰 실망감을 안긴 미국의 ‘창의적 제안’에 있다”고 밝혔다.

홍 실장은 8일 통일연구원이 발행한 온라인 진단(북미 스톡홀름 실무협상 결렬 원인과 북한의 전략)에서 북한이 김명길 대표 성명과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안전보장’을 강조한 점을 들어 “북한 ‘계산법’의 핵심이 비핵화 대 안전보장임을 분명히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성명에서 “미국의 위협을 그대로 두고 우리가 먼저 핵 억제력을 포기해야 생존권과 발전권이 보장된다는 주장은 말 앞에 수레를 놓아야 한다는 소리와 마찬가지”라고 했었다.

북미 실무회담 북한측 대표인 김명길 외무성 순회대사가 5일(현지시간) 저녁 스웨덴 스톡홀름 외곽 북한대사관 앞에서 북미 실무협상 결렬을 알리는 성명을 발표하기 위해 걸어오고 있다. YTN 화면캡처

홍 실장은 “실무협상에서 미국이 선 비핵화 조치를 하면 생존권·발전권을 보장할 상응조치를 약속하겠다고 제시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며 “이것이 미국의 ‘창의적 아이디어’일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미국이 제시한 ‘창의적 아이디어’는 북한에 대한 직접적인 안전보장보다는 번영이나 발전 같은 경제지원 약속에 방점이 찍혀 있는 것으로 사실상 존 볼턴식 ‘선 비핵화’ 구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정세현 민주평통 부의장도 10일 KBS 라디오와 가진 인터뷰(정세현 "北끔찍한 사변? ICBM발사, 핵실험 준비할수도")에서 김명길 대표의 성명 내용을 언급하며 “(미국이) 선 비핵화 입장을 고수했기 때문에 이거는 해보나 마나다. 그러니까 그동안 미국이 견지해 왔던 선 비핵화 입장은 아직 크게 변함이 없고 그런 조건의 선 비핵화를 전제로 해서 석탄이라든가 석유 제품 한 3년 정도를 제재 해제시켜줄 것이다 하는 그런 것은 북한의 입장에서는 진짜 별로 그렇게 매력적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미국이 ‘창의적’이라고 표현한 것은 지난 2월 하노이 회담에서는 없었던 이러한 한시적 제재 해제 등을 포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북한은 제재해제가 아닌 체제보장을 미국에 요구해 왔다.

홍 실장은 “북한은 미국이 ‘비핵화 대 안전보장’이라는 교환구도, 기본 셈법 자체를 무시하고 있고 ‘선 비핵화’란 구태의연한 태도에 변화가 없기 때문에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다고 본 것”이라며 “미국이 긴 시간 ‘창의적 아이디어’를 설명했음에도 ‘아무것도 들고 나오지 않은’ ‘빈손’이란 소리를 들은 이유는 여기에 있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북한의 ‘결렬’ 선언과 회담 종료 15분 만에 나온 성명 등을 들어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한 준비된 조치’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회담 결렬의 책임을 미국에 떠넘김으로써 올 연말까지 트럼프를 더욱 압박해 협상의 우위를 점하려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홍 실장은 “북한의 성명과 담화 내용 전반에 걸쳐 일관되게 흐르고 있는 기조는 미국의 ‘창의적 아이디어’에 대한 실망감, 6월 30일 판문점 북미 정상 회동 이후 자신의 뜻을 전혀 미국이 반영하지 않았다는 좌절감”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은 자신의 제도를 위협하거나 전복하려는 모든 적대 행위를 제거하거나 철회하는 이른바 ‘대북 적대시정책의 철회’를 요구해 왔지만 미국은 한미연합훈련 재개와 종전선언 문턱 높이기, 전략자산 전개 및 무기 도입 지속, 대북제재 추가 조치로 생존권과 발전권을 위협했다는 것이 북한의 입장이라는 것이다. 북한이 문재인 정부를 연일 비판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홍 실장은 “미국은 최소한 안전보장에 대한 논리적 대응 준비와 상응조치로써 제공할 수 있는 수준과 내용을 복안을 들고 갔어야 했다”며 “협상 전술상 북한에 대한 ‘안전보장’ 내용을 가능한 수준에서 보다 풍부하게 준비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북미 협상, 더 나아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성공조건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북미 실무회담 결렬로 조심스럽게 가능성이 점쳐졌던 김정은 위원장의 다음달 25일 부산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참석은 애매해졌다. 하지만 정 부의장은 “북미 실무협상이 3, 4주 후에 열리고 그래서 빠른 시간 내에 북미정상회담이 열리면 11월 하순에 김정은 위원장이 못 움직일 이유도 없다”고 말했다. 트럼프나 김정은의 성격으로 볼 때 얼마든지 상황이 전광석화처럼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김성원 기자  ukorea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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