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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제국주의와 한국 기독교(1)평화통일연대 '평화칼럼'

어린 시절, 나는 목사 아버지의 집안 자랑을 자장가로 들으며 잠들었고, 항일 조선의 아들로 성장했다. 아버지는 아버지의 아버지, 그러니까 나의 할아버지 이야기와 아버지의 어머니, 즉 나의 할머니 이야기를 여러 번 하셨다. 나의 할아버지는 조선조 말기 을사능욕 이후 조선 군대가 해체되고 무장해제 되던 때, 함흥지방 무관으로 근무하셨다고 한다. 조선 군대가 일제에 의해 해체되자, 할아버지는 의병을 소집하고 의병대장으로 일본군과 싸웠다는 ‘무용담’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해 주셨다.

“너희 할아버지는 의병대장이셨는데, 칼을 잘 쓰셨단다. 말 타고 달리면서 단 한칼에 일본 군인 목을 다섯 개나 떨어뜨렸단다...” 이 무용담을 들으면서 우리 형제들은 “와 대단하시다” 하며 환성을 질렀다. 그러나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단 한칼에 일본 군인 5명의 목을 떨어뜨릴 수 있었을까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버지는 이어서 할머니 이야기도 들려 주셨다. 의병대장이던 할아버지가 일본군에게 체포되어 함흥 감옥에서 사형된다는 소식을 듣고는 “애비 없는 새끼들, 나라 없는 백성으로 살아갈 가치가 없다”는 조선 의병대장 장군의 아내답게 자결할 결심을 하고, 아버지 형들을 차례로 독약을 먹이고 자신도 자결하셨다는 것이다.

그런데, 두 살이 좀 넘은 아기까지 죽일 수가 없어서 혼자 살아남게 하셨다는 것이다. 하루아침에 천애고아가 돼 버린 우리 아버지는 동네 아주머니들에게 발견돼서, 평안북도 산골에 사시는 고모 할머니 댁에 보내졌다는 것이다. 우리 고아 아버지는 평안북도 두메산골에서 자라면서 험한 산 속에서 염소와 양을 치는 목동으로 무료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단다. 하루는 어떤 아주머니가 나타나 목동 소년인 우리 아버지에게 접근했다는 것이다. 그 아주머니는 주머니에서 얇은 책 한권을 꺼내 들고 “너 언문(한글) 읽을 줄 아니? 글 읽는 것 내가 가르쳐 줄까?” 하는 것이었다. 그 아주머니는 우리말로 번역된 마가복음 한 권을 인쇄해서 ‘쪽복음’이라고 부르고, 그 작은 책자를 들고 다니며 팔기도 하고 그냥 무료로 보급하기도 했던 것이다. 이렇게 자원해서 ‘쪽복음’을 들고 다니는 전도인들을 ‘판서원’이라고 불렀다.

호기심에 파고들기 시작한 쪽복음으로 한글을 뗀 양치기 소년 아버지에 놀란 판서원 아주머니는 아버지를 그 동네 근처에 있는 강계라는 소도시에 데리고 가서 미국 선교사가 세운 영실학교에 입학하게 하였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거기서 미국 선교사 감부열에게 세례를 받고 학교를 졸업하고는 평양신학교로 진학하셨다. 고학생 아버지는 학비를 감당할 수 없어 평양신학교를 졸업하지 못하고 압록강 근처 시골 동네를 전전하면서 개척교회를 세웠다.

내가 소학교에 입학한 해인 1937년, 일본 군대가 중국 청도에 쳐들어가던 해부터인가, 아버지 교회 동네 경찰들이 아버지 교회에 찾아와서는 동네 뒷산의 일본 군대 귀신을 모신 일본 신사에 가서 절하고 참배하라고 명령을 하고 가곤 했다. 그러더니 조선 사람은 모두 이름을 일본식 이름으로 ‘창씨개명’ 하라는 것이었다.

소학교에서도 모든 과목을 일본말로 가르치고 배워야 한다는 명령이 떨어졌다. “내선일체”라는 구호를 외쳤다. 일본 사람이나 조선 사람은 모두 한 몸이라는 것이다. 우리 조선 사람도 일본 황제의 귀여운 아들, 딸들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학교에 등교하면, 일본 국기게양대 앞에 서서, “우리는 일본 황국의 백성입니다”라는 ‘황국신민의 선서’를 소리 높여 서약하고 동쪽을 향해 돌아서서 90도 허리를 굽히는 절을 해야 했다. 일본 ‘천황’이 사는 일본 수도 동경을 향해 아침 인사를 드린다는 것이었다.

학교 안에 들어서면서부터 학교를 나오기까지 하루종일 그 서툰 일본말로 공부하고 일본말을 ‘국어’라고 배워야만 했고, 산수도 과학 과목도 조선인 선생님이 그 서툰 일본말로 땀을 흘리며 가르치셨다. 학교 안에서 우리말을 하다 들키면 일본인 교감선생의 무서운 벌을 받아야만 했다. 때로는 일본인 교장이 차고 있던 일본도를 뽑아 들고 위협하기도 하고, 칼등으로 등이나 허리를 치면서 협박하기도 했다.

교회 전도사 아버지는 신사참배를 거절했다는 이유로 경찰서로 끌려가 고문을 당하면서 살아야 했다. “당신은 당신이 믿는 야훼 하나님 하고 우리 일본 천황 하고 누가 더 높다고 교회서 가르치시오?” 하는 질문에 우리 전도사 아버지는 큰소리로 외쳤다. “그게 무슨 질문이요? 당신들의 천황이란 사람은 한 인간에 불과하고,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만물 위에 계시는 유일한 최고의 신이요.” 대답이 떨어지자마자, 일본 경찰 앞잡이 조선인 경찰의 몽둥이 세례를 받고 아버지는 피투성이가 되어 교인들의 부축을 받으며 귀가하시곤 했다.

조선인 경찰관이 아버지 교회 뒷좌석에 들어와 앉아 아버지 설교를 ‘검열’하고 있는데도, 전도사 아버지는 해방자 모세의 이야기를 신명나게 하시면서, 조선도 이제 곧 모세 같은 인물이 나와서 해방될 것이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일본은 망할 것이라고, 그것이 성경의 가르침이고 묵시록의 예언이라고 힘있게 설교를 하시는 것이었다. 그런 주일이 지나 월요일에는 아버지는 경찰서로 끌려가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조선인 경찰들에게 매를 맞고 피투성이가 되어 귀가하시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계속)

서광선/ 이화여대 명예교수, 평화통일연대 고문

서광선  dkssuh3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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