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 성자 노무라 목사의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무라 모토유키(野村基之·88) 목사. 한국어는 서툴지만 그의 한국 사랑은 여전했다. 22일 저녁 서울시내의 한 음식점에서 열린 그의 사진집 『유신의 추억』 출판기념회에서 그는 노래를 한 곡 하고 싶다며 ‘우리의 소원’을 불렀다. 이 노래는 그가 평생 마음속에 간직해 온 ‘울밑에 선 봉선화’ 등 두 개의 한국 노래 중 하나다. 40여 명의 참석자들도 그를 따라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을 합창했다.

22일 저녁 서울시내 한 음식점에서 열린 『유신의 추억』출판기념회에서 눈빛출판사 이규상 대표(오른쪽)가 노무라 모토유키 목사에게 노무라 목사의 얼굴 동상을 선물하고 있다. ⓒ유코리아뉴스

그는 “단 하루도 남한 사람들과 북한 사람들, 특히 북한 어린이들을 생각하지 않는 날이 없다”고 했다. 심지어 “아침마다 뉴스에서 일기예보에서 전해주는 한반도 지도와 일기상황을 보면서 남북한을 위해 기도한다”고 말했다. 어찌 보면 한국 사람 그 이상으로 한국을 생각하는 일본인인 셈이다.

자신이 이처럼 한국을 생각하는 이유에 대해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세 살 때부터 한국 사람을 멸시하는 일본 노래를 들으며 자랐어요. 당시 일본의 조선인 학생들은 너무 가난해서 학교에 갈 수 없었어요. 초등학교 다닐 때 한국 사람에 대한 멸시를 보고 자라서 그게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부모님 영향도 컸다. 아버지 노무라 지이치는 빈민운동의 대부로 불리던 가가와 도요히코(賀川豊彦)의 교회를 다니며 일본의 군국주의를 비판했다. 어머니 노무라 가츠코도 도요히코의 영향으로 노동자운동, 소비자 조합운동에 가담했다. 가츠코는 윤동주와 도시샤(同志社)대학 동기이기도 했다. 조선에 대한 차별의 문제점을 누구보다 심각하게 겪고 보며 자랐던 것이다.

1968년 여름, 그가 몇 년의 준비 끝에 한국을 방문하게 된 것도 일본이 저지른 식민과 식민의 영향으로 시작된 분단과 전쟁의 참상에 대한 사죄를 위해서였다. 국가적인 사죄도 필요했지만 개인적인 사죄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던 것이다. 제주도, 부산, 경주, 동인천, 서울 등지를 찾아다녔다. 사죄의 방편으로 봉사할 곳을 물색하기 위해서다. 그러다 도시산업선교회 안내로 가게 된 곳이 서울의 청계천이었다. 청계천은 그에게 한마디로 ‘충격’이었다.

“청계천에서 일본 침략, 6.25전쟁, 박정희 군사독재의 잔재를 보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당시 청계천엔 예수님이 없다고 생각할 정도로 처참한 광경이었어요. 그래서 청계천에서 봉사하기로 마음먹었죠.”

하지만 하나님이 없다고 외쳤던 그곳에서 그는 새롭게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당시 청계천에서 빈민들과 함께 살며 빈민운동을 하던 고 제정구 의원, 고 황화자(작은자복지선교회장) 같은 멋진 한국인들을 통해서다. 노무라 목사는 “나의 경박한 신앙과 삶에 대해 회개하고 새롭게 하나님을 만나는 기회가 되었다. 청계천에서 마음 따뜻한 한국인들의 넉넉한 용서를 배울 수 있었다. 청계천 빈민가야 말로 예수님이 계신 곳이라 믿게 되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멋진 한국인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최악의 인물과도 조우하게 되었다”고 했다. 목사이면서 위선적이고 이중적인 모습의 그 인물을 그는 지금도 마음속에서 용서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1973년엔 부인과 아들도 한국에 데려왔다. 이후 1985년까지 한국을 50여 차례 방문하면서 청계천 빈민들을 도왔다. 그에게 ‘청계천의 성자’란 별명이 붙은 이유다.

1973년 당시 안양교도소 가는 길. 노무라 목사는 제정구 등 빈민운동가들이 긴급조치 위반으로 수감되어 있는 교도소로 면회를 다녀왔다. 『유신의 추억』 제공.

평화시장 여성 노동자들. 1973년 . 『유신의 추억』 제공

청계천 활빈교회 중등부 학생들과 교사들이 긴급조치법 위반으로 수감됐다가 풀려난 제정구 씨(가운데)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1974년. 『유신의 추억』 제공

2006년 청계천 관련 사진 등 800여 건의 개인소장품을 서울시에 기증했고, 2013년 명예서울시민증을 받기도 했다. 이번에 낸 책은 1968년과 1973년 그가 한국 방문 때 안기부의 감시를 피해 찍었던 서울과 근교, 춘천, 충청도, 부산 등의 인물과 풍경이다. 그동안 공개하지 않았던 사진 위주로 게재했다는 게 출판사 측의 설명이다. 한국에 대한 그의 짙은 애정이 흑백사진에 그대로 묻어난다. 『유신의 추억』이란 제목이 말해주듯 군사독재 시대라는 참담한 현실 속에서도 한국 민중들의 따뜻한 인간미를 느낄 수 있다.

이태호 전 동아방송 기자는 책 후기에 “그는 한국인 특히 한국 민중들에게 애정을 갖고 봉사하기 위해 한국에 머무르면서 목회자로서 활동하고 다른 한편으로 사진을 찍었다”며 “이번 책이 한일 양국의 이해를 증진하는 다리가 되고 격동하는 한국현대사의 일부를 투영하는 거울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노무라 목사는 이번 출판기념회를 위해 20일 방한, 24일 출국했다. 그는 이번 방한이 자신의 생애에서 마지막 방한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