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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제국주의와 한국 기독교(2)평화통일연대 '평화칼럼'

일본의 신사참배를 거부한 항일 전도사 아버지는 일본 경찰의 폭행에 목숨을 부지하기 어렵다고 생각하신 나머지, 온 가족을 이끌고 압록강을 건너 만주로 망명하기로 결심하셨다. 조선에서 땅을 뺏기고 일본 경찰에 쫓기어 만주로 피난 온 농민들을 위한 개척교회를 세우는 일을 아버지는 시작하셨다.

1941년은 일본 제국주의가 미국 하와이 섬을 공략하면서 태평양 전쟁을 시작한 해였다. 만주에서 시작한 아버지의 작은 교회에는 조선에서 도망친 농군들이 모여들었다. 우리 집에는 이화여전 등에서 공부하다가 일본 정신대로 끌려가지 않으려고 만주로 망명해 온, 올 데 갈 데 없는 여학생들이 모여들기도 했다. 그 중 한 학생은 내가 다니던 조선인 소학교 선생으로 부임해서 나의 학년 담임선생으로 가르치기도 했다.

일본은 우리 조선인 학생들을 강제로 일본 사람으로 세뇌하고 강제로 일본 이름을 가지게 하고 일본말을 우리말처럼 하게 하려고 했지만, 아버지는 교회에서 성경책으로 한글을 읽게 하고 집에서는 우리말로 된 동화책을 읽게 하셨다. 그리고 중학교에 들어가서부터는 김동인의 역사소설, 이광수의 소설, 박계주, 이태준 등 농촌운동 소설들을 읽게 하셨다. 교회 젊은이들은 여름방학이나 겨울방학을 이용해서 농촌지역에 찾아가 한글 야학을 했다.

한국과 만주에서 기독교회는 3.1 독립운동 이전이나 이후 항일자주독립운동의 중심이었고 전진기지였다. 교회는 신사참배를 거부했고, 동방요배라는 우상숭배를 거절했고, 일본말 성경을 거절하고 조선말 순한글 성경을 봉독하고 우리말로 설교했다. 일본 정부는 교회에서 성경의 일부는 봉독하거나 설교하지 못하도록 명령했다. 가령 출애굽기와 다니엘서 같은 항일운동을 시사하고 선동한다고 판단한 책들은 읽는 것과 설교하는 것까지 감시하고 금지했다.

조선을 침략한 일본 총독은 미국 선교사들을 불러 모아놓고 조선 청년들-전 동학군, 전 의병들-이 모여들어 조선 독립을 논하고 독립운동하는 등 정치운동을 하지 못하게 금지하면서 미국식 ‘정교분리 원칙’을 강조했다. 미국 선교사들은 그로부터 한국교회 안에서 정치 이야기는 못하도록 금지하면서 조선의 기독교를 ‘비정치화’하는 데 전력을 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한국 기독교의 역사에는 1910년의 105인 사건으로 한국YMCA 지도자들을 비롯해서 애국 지성인들이 수난을 당한 일이 있을 뿐만 아니라, 한국의 기독교가 주도한 3.1 독립항쟁이 있었다. 한국의 기독교는 항일투쟁의 역사가 있고, 따라서 친일을 말할 수 없는 확고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한국의 기독교는 항일자주독립을 위해 투쟁한 ‘민족교회’의 역사가 있다.

만주에서 일본 군수공장을 운영해야 하는 일본인 기술자와 노동자들 가족을 위한 일본인 중학교에, 나는 높은 경쟁률을 뚫고 입학했다. 우리 가족이 살던 고장에는 한국인 중학교가 없었기 때문에 부득이 일본 중학교에 어렵사리 입학했지만, 항일 전도사 아버지는 내가 일본말은 일본 아이들보다 더 잘하고 일본 아이들보다 일본을 더 잘 알아야 하고, 일본 아이들보다 공부를 더 잘한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한다는 논리로 나를 일본 중학교에 밀어 넣다시피 하셨다. 1945년 8.15 해방되는 해에 나는 중학교 3학년이었다.

1980년과 90년대 나는 일본의 교회 목사님들과 일본YMCA와 크리스챤아카데미의 초청으로 일본의 교회와 대학 등에서 설교도 하고 일제 강점기의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 정책과 아시아 침략전쟁에 대해서 강연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설교나 강연할 때마다, 일본 주최측에서는 영어로 하면 일본 말 통역을 붙이겠다고 했지만, 나는 꼭 일본말을 고집했다. “당신네 조상들이 어떻게 한국인들에게 일본어를 강요했는지, 일본제국주의 식민정책이 얼마나 야만적이었고, 한국 민족 말살정책이었는지 직접 보여주고 싶다”고 하면서 일본말을 고집했다.

나를 대하는 일본인 목사나 신학자 학생들은 모두 선량한 사람들이었다. 진심으로 내 손을 꼭 잡고 일본 정부의 죄과를 뉘우치면서 용서를 구하는 교수들과 목사들과 젊은 학생들이 많았다. 일본인 한 사람 한 사람에게서 나는 진심으로 사죄하고 뉘우치는 진정성을 느끼고 신뢰했고 지금도 신뢰하고 있다.

미국 신학자 라인홀드 니버가 말했던가. 그의 초기 작품 제목 ‘도덕적 인간과 부도덕한 사회’ 생각이 떠오른다. “도덕적 일본인, 제국주의 침략과 조선 식민지 탄압과 착취 정책을 사죄하는 일본인이 있는가 하면, 부도덕한 일본 정부, 일본인 집단 지성과 정치인들”이 있다.

제2차 대전이 일본의 패전으로 끝난 지 70년이 지나가는 이때에, 일본 제국은 다시 ‘대동아공영권(Asian Commonwealth)’의 야욕을 버리지 않고 모처럼의 평화헌법을 개정해서 ‘전쟁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려 하고 있다.

다시 우리는 아시아 침략을 꿈꾸는 일본의 반동 정권과 집단지성을 경계하게 되었다. 평화를 사랑하고 남북분단과 갈등과 대립을 극복하고 핵 없는 한반도, 아시아의 평화를 만들고 지켜야 하는 한국 기독교가 일본 제국주의 망령과 싸우기 위해서, 1919년 3.1 혁명정신으로 다시 일어나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아시아의 평화를 위해서 기도하는 양심적인 일본의 그리스도인들과 연대하고 협력하여,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고, 과거의 잘못을 회개하고 사죄하고 용서하고 화해하는 새로운 역사를 위해 일해야 할 때가 왔다. “회개하라. 하늘나라가 가까워 왔다”는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선포에 응답해야 할 때인 것이다.

서광선/ 이화여대 명예교수, 평화통일여대 고문

서광선  dkssuh3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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