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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언론의 위기: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동아시아재단 정책논쟁 제127호

한국 언론은 위기에 처했다. 위기의 원인은 두 가지다. 첫째, 정보와 지식 생태계의 변화다. 둘째, 언론에 대한 불신이다. 한국 언론은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비관론이 있고 낙관론이 있다. 미래는 정해지지 않았다. 한국 언론이 생태계의 변화에 적응하고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면 살아남을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결국 퇴출될 것이다. 언론이 사라진 사회는 공동체 유지에 필수적인 여론을 제대로 형성하지 못한다. 따라서 한국 언론의 위기는 대한민국 공동체 붕괴의 위기, 민주주의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대책이 필요하다. 한국 언론은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

 

한국 언론의 빛과 그림자

1945년 해방 이후 대한민국 역사의 고비에서 한국 언론은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독재 정권의 폭압성을 폭로해 시민혁명에 기여했다. 현직 대통령의 범죄를 추적해 탄핵을 끌어냈다. 1960년 3·15 부정선거로 마산에서 학생들의 규탄 시위가 벌어졌다. 실종됐던 마산상고 김주열 학생의 시신이 4월 10일 마산 앞바다에서 떠올랐다.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였다. <부산일보>에 사진이 실렸다. 사진을 본 시민들은 분노했다. 이 사건은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됐다. 1987년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서울대생 박종철 군이 물고문을 받다가 숨졌다는 사실은 <중앙일보>의 보도로 세상에 알려졌다. 정권은 사건을 축소해서 발표했다. 그러나 <동아일보>의 추적 보도로 전모가 드러났다. 1987년 6월 항쟁의 불이 붙었다. 2016년 박근혜 대통령과 측근 최순실 씨의 국정 농단 사건은 <티비조선> <한겨레> <제이티비시>의 보도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헌법재판소에 의해 파면됐다. 언론 보도가 없었다면 현직 대통령 탄핵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한국 언론은 독재 정권 및 기득권 세력과 결탁해 민주주의를 억누르기도 했다. 1974년 <동아일보>는 박정희 정권의 광고 탄압에 굴복해 기자, 피디, 아나운서 등 100명이 넘는 언론인들을 회사에서 내쫓았다. <조선일보>도 70여 명을 해직시켰다. 해직된 언론인들은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와 조선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라는 단체를 결성해 오랫동안 반독재 언론 운동을 했다. 1979년 12·12 군사반란과 1980년 쿠데타로 불법 집권한 전두환 정권은 전국 40여개 신문·방송·통신을 강제로 통폐합하고 1000여 명의 언론인을 해직시켰다. 1974년과 1980년에 해직된 기자들은 1987년 6월 항쟁 이후 국민모금 운동을 벌여 1988년 <한겨레신문>을 창간했다. 해직 당한 언론인들이 거리를 떠도는 동안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는 정치 권력과 유착했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정권에 우호적인 논조를 유지하며 야당을 억압하고 정권교체를 방해했다. 이들 신문은 1990년대에 들어서자 재벌, 대기업 등 자본 권력과 점점 더 유착했다. 기득권 세력에 편입된 것이다.

이처럼 한국 언론은 천사와 악마의 두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어느 쪽이든 언론의 영향력은 매우 컸다. 특히 이른바 ‘조중동’으로 불리는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의 힘은 막강했다. 정권보다도 힘이 세다는 평가가 있을 정도였다. <조선일보> 사주를 ‘밤의 대통령’이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한국 언론 위기에 빠지다

그러나 21세기로 넘어오면서 한국 언론은 위기에 빠졌다. 사람들은 갈수록 신문을 보지 않고 방송도 시청하지 않는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매년 실시하는 언론 수용자 의식조사 결과를 보면 2018년 종이신문 구독률은 9.5%였다. 1996년 69.3%와 비교하면 22년 만에 7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진 것이다. 연령대별로 일상생활 필수 매체를 무엇으로 인식하는지를 2017년 방송통신위원회가 조사한 결과가 있다. 텔레비전이라는 답변이 70대 이상은 93.4%, 60대는 77.4%, 50대는 52.1%였다. 그러나 40대는 28.9%, 30대는 14.1%, 20대는 9.8%, 10대는 11.6%였다. 이런 수치는 젊은 사람들이 텔레비전을 거의 안 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청률 저하는 지상파방송 광고 매출 급감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상파방송 광고 매출은 2006년 2조 5,255억 원에서 2018년 1조 3,007억 원으로 반토막이 났다. 방송사 별로 보면 <케이비에스>는 2002년 7,352억 원에서 2017년 3,666억 원으로, <엠비시>는 6,584억 원에서 2,926억 원으로, <에스비에스>는 5,888억 원에서 3,729억 원으로 줄었다. ‘추락’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을 정도다. 지상파방송은 머지않아 파산할 것이다.

과거에 신문과 방송은 정보를 취득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통로였고 여론을 형성하는 공론장이었다. 이제 포털 사이트,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유튜브 등이 신문과 방송을 밀어내고 그 기능을 대체해 가고 있다. 언론 수용자들은 신문과 방송사 기자들이 생산한 뉴스를 포털 사이트를 통해 소비하면서도 정작 신문과 방송은 보지 않는다. 심지어 사람들은 이제 포털 사이트가 아니라 유튜브와 넷플릭스를 통해 정보를 취득하고 동영상을 즐기기 시작했다. 이제 한국 언론이 설 자리는 거의 없어 보인다. 이런 현상은 도대체 왜 벌어지는 것일까?

 

위기의 원인은 무엇일까

첫째, 정보와 지식 생태계의 변화다. 20세기 말 인터넷의 출현은 혁명이었다. 모든 사람이 모든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할 수 있게 됐다. 거의 모든 지식과 정보는 인터넷에 널려 있다. 전문가의 신뢰가 추락했다. 권위도 추락했다. 사람들은 교수나 의사를 더 이상 존경하지 않는다. 하물며 언론이랴. 1980년대 중반 신문사에서 밤에 당직을 서면 “프로야구 원년 코리안 시리즈 최종전에서 만루 홈런을 친 사람이 누구냐”거나 “탤런트 000의 나이가 몇 살이냐”는 등 사실 확인을 요청하는 취객들의 전화를 많이 받았다. 지금은 전혀 아니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바로 알 수 있다. 신문사가 ‘팩트’의 창고였다는 말은 허구의 신화처럼 들린다.

정보가 문자에서 영상 중심으로 바뀐 영향도 컸다. 과거에 사람들은 문자를 읽으며 머릿속에서 영상을 떠올렸다. 문자로 정보를 취득하는 사람은 논리가 발발하고 연역적 사고에 익숙하다. 지금은 영상을 이용해 정보를 통째로 취득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영상으로 정보를 취득하면 직관력이 발달하고 귀납적 사고에 익숙하다. 이런 환경에서는 가짜 뉴스가 횡행하고 확증 편향이 강해질 수밖에 없다. 믿음과 사실이 충돌하면 과거에는 믿음을 바꿨지만 이제는 사실을 걷어차고 믿음을 유지한다. 정보와 지식 생태계의 변화로 인한 확증 편향 강화는 전세계적으로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 유권자들은 점점 더 비논리적이고 무책임한 정치적 선동에 취약해지고 있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 당선, 영국의 브렉시트는 원인이 다르지 않다.

둘째, 언론이 정치 투쟁에 뛰어들면서 불신을 자초했다. 생태계의 변화가 전세계적 현상이라면, 언론의 지나친 정치 개입은 지극히 한국적 현상이다. ‘안티 조선일보’ 운동이 벌어진 것은 노무현 정부 시절이었다. 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영삼 정부와 결탁했던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에 대한 시민들의 거부였다. <한겨레신문> <경향신문> <오마이뉴스>가 조중동의 대척점에 섰다. 조중동과 한경오의 전쟁이 벌어졌다. 조중동의 신뢰가 떨어졌다. 한경오의 신뢰도 함께 떨어졌다. <케이비에스> <엠비시> <에스비에스> 등 지상파는 구조적으로 ‘여당 편’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10년마다 정권이 교체되면서 ‘혼란’이 시작됐다. 정권에 따라 보도가 널을 뛰었다. 방송사 내부 구성원들은 무리를 지어 상대방을 몰아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 쌓은 신뢰를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몽땅 까먹었다. 이제는 회복 불능 상태에 빠진 것 같다. 이명박 정부는 조중동과 <매일경제>에 종합편성채널 방송을 허가했다. 종합편성채널은 2012년 박근혜 대통령 당선에 기여했다. 그러나 종편이 박근혜 정부의 몰락을 막아주지는 못했다. 지상파보다 사정이 좀 낫기는 하지만 종편도 머지않아 하락세에 접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 언론의 비극은 정보화 혁명이라는 전세계적 ‘쓰나미’와 정치 투쟁으로 인한 신뢰의 하락이라는 ‘삼각파도’가 거의 동시에 덮쳤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인터넷과 사회관계망서비스, 유튜브의 확산은 기존 언론에 대한 불신을 가속시켰다. 동시에 기존 언론에 대한 불신은 인터넷과 사회관계망서비스, 유튜브의 확산을 가속시켰다. 쓰나미와 삼각파도가 상승 작용을 일으켜 한국 언론을 거의 폐허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한국 언론은 2016년 겨울 촛불 정국을 계기로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은 적이 있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 국정 사유화 및 최순실 씨 국정 농단 사태를 밝혀내는 데 여러 언론사가 기여했다. 그해 한국기자협회 대상을 ‘미르·케이스포츠재단 권력형 비리 의혹’을 보도한 <티비조선>, ‘최순실 국정개입사건’을 보도한 <제이티비시>, ‘최순실 게이트’를 보도한 <한겨레신문>이 공동 수상한 것은 매우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2016년 12월 9일 국회의 탄핵소추,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 보도에서도 대부분의 언론이 균형을 잃지 않았다.

 

모든 언론에 적대감을 표출하다

그러나 2017년 5월 9일 대통령 선거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된 뒤 상황이 또다시 바뀌기 시작했다.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을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정치 보복으로 간주한 이른바 보수 성향의 신문들은 반문재인 전선을 결성해 정치 투쟁에 나섰다. 문재인 대통령이 최저임금을 인상하고 한반도 평화 정책을 추진하자 이들 신문은 문재인 정부에 공공연히 적대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왜 그랬을까? 이들 신문이 대변하는 이른바 보수의 정체성은 ‘분단 기득권 세력’인데, 문재인 대통령이 분단 기득권 세력의 정치적·경제적 이해관계를 건드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들 신문의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공격은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의 언론에 대한 반격으로 이어졌다.

조국 법무부 장관 사태로 벌어진 서초동 검찰청사 앞 촛불문화제에서 많은 사람들이 “언론 개혁” “기레기 아웃” 등의 손팻말을 들었다. 특이한 것은 이들이 <조선일보>를 비롯한 반문재인 성향의 신문들뿐만 아니라 <한겨레신문> 등 모든 기존 언론에 적대감을 표출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치 투쟁이 격화하면서 “확실하게 우리 편이 아니면 다 적이다”라는 확증 편향 강화 프레임이 작동했기 때문인 것 같다. 이런 현상은 반문재인 성향의 종교 단체와 태극기 부대, 자유한국당 등이 주최하는 서울역과 광화문 집회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른바 보수 성향의 유권자들도 신문이나 방송 등 전통 미디어보다는 유튜브 등 1인 미디어를 통해 정보를 취득하고 자기 확신을 굳히는 사례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전통 매체인 신문이나 방송은 표면적이고 단기적인 대응으로 사태를 오히려 더 악화시키고 있다. 구독자와 시청자를 확보하기 위해 점점 더 극단적이고 정파성이 강한 메시지를 내놓고 있는 것이다. 신문의 사설은 갈수록 더 자극적이고 더 천박한 표현을 제목으로 달고 있다. 방송은 시사를 예능화하고 있다. 중요한 사회적 쟁점을 음모론으로 설명하는 사람들이 종합편성채널은 물론이고 지상파 방송에까지 진출하고 있다. 언론이 이렇게 하면 단기적으로 구독자나 시청자의 관심을 끌 수 있을지는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점점 더 신뢰를 잃게 된다. 소탐대실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언론이 할 일이 있고 정부가 할 일이 있다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언론이 해야 할 일이 있고 정부가 해야 할 일이 있다. 언론은 각성해야 한다. 정보와 지식 생태계의 변화를 인정하고 받아들어야 한다. 화려했던 옛날은 잊어야 한다. 신뢰 회복 조처를 지금 즉시 시작해야 한다. 시간이 많지 않다. 보도의 방식과 태도가 가장 중요하다.

첫째, 사실 관계는 시시비비를 가려 주어야 한다. 정치적 이해를 떠나서 옳은 것은 옳고 틀린 것은 틀렸다고 말해야 한다. 팩트 체크를 강화해야 한다. 둘째, 쟁점에 대한 각 이해 관계자의 주장을 정확히 구분해 주어야 한다.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지 드러내야 한다. 그래야 논쟁을 할 수 있다. 셋째, 국민 통합을 추구해야 한다. 이 세상은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곳이다. 생각이 다르다고 상대를 부정하고 쫓아내려고 해서는 안 된다. 태극기 부대가 아무리 싫어도 그들을 민주 사회의 정당한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 열성 지지층이 아무리 미워도 그들을 대한민국 시민으로 인정해야 한다.

구동존이(求同存異) 대동소이(大同小異)라는 말이 있다. 같은 점을 먼저 찾아내고 다른 점은 일단 그대로 접어두어야 한다. 그러다 보면 같은 것은 커지고 다른 것은 작아질 것이다. 언론의 역할은 더 이상 계도(啓導)가 아니다. 국민을 가르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정보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확증 편향에 숨이 막혀가는 사람들을 구출하고, 겸손한 태도로 길을 안내하는 ‘친절한 안내자’여야 한다.

정부는 저널리즘 회복을 위한 입법과 정책을 세워서 집행해야 한다. 방송법을 개정해 공영방송을 개혁해야 한다. 정권에 따라 방송 보도가 널뛰는 관행을 끊어내야 한다. 신문 구독료 및 도서 구입비에 대한 소득공제 조처로 사람들이 뭔가를 ‘읽도록’ 유도해야 한다. 학교에서는 읽고 쓰기 교육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숙의 민주주의에는 텍스트를 읽고 깊이 있게 사고하는 유권자들이 필요하다. 숙의 민주주의의 실패는 민주주의의 실패로 이어질 수 있다. 저널리즘의 붕괴를 이대로 방치하면 안 된다. 대한민국 공동체를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이 기고문의 견해는 필자의 개인 의견이지 동아시아 재단의 공식 입장을 반영하는 것이 아님을 밝힙니다.

저자 소개

성한용은 한겨레신문 선임기자다. 1988년 한겨레신문 창간에 참여해 지금까지 31년 동안 한겨레신문 기자를 하고 있다. 2000년 평양에서 열린 김대중 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을 취재하는 등 주로 정치부 현장 취재 기자로 일했다. 사회부장, 정치부장, 편집국장을 지낸 뒤 2011년부터 다시 현장 기자로 복귀해 기사와 칼럼을 쓰고 방송을 하고 있다.

성한용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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