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6일 오후,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무참히 폭파되는 것을 보면서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던 내 마음도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몸에 기운이 빠지고 허탈감과 피로감이 몰려왔다. 이 사태를 어떻게 이해할까? 이제 어찌해야 하나? 그러면서 긴 호흡으로 그동안 남북관계 부침(浮沈)의 역사를 되새기고,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는 발상의 전환이 요구되는 시점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한반도에서 남북관계는 갈등과 대립 그리고 대화와 협력이 혼재하며 이어져 오고 있다. 정전협정 이후 대표적인 갈등과 대립의 사건들은 1968년 청와대 기습, 1976년 판문점 도끼 만행사건, 2002년 연평해전, 2008년 금강산 관광객 피격, 2009년 대청해전, 2011년 연평도 포격 사건 등이다. 다른 한편으로 남북은 서로 대화하고 협력하려는 노력도 병행해 오고 있다.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와 비핵화 공동선언, 1998년 금강산 관광 시작, 2000년 첫 남북정상회담, 2004년 개성공단 개시, 2007년 2차 남북정상회담,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과 3차 남북정상회담, 2018~9년 남북 및 북미, 남북미 정상회담이 진행되었다.

이렇게 냉탕과 온탕을 번갈아 가면서 이어져 온 남북관계는 냉온욕(冷溫浴)에 비유할 수 있겠다. 냉온욕이란 냉탕과 온탕을 교대로 오가는 목욕법이다. 냉탕에 8회, 온탕에 7회 각 1분씩 들어가는 ‘7온8냉법’이 가장 효과적이다. 냉탕에서 혈관을 수축시켰다가 온탕에서 혈관을 이완시키며 혈액순환을 촉진한다. 이로써 근육이 긴장돼 발생하는 통증을 해소하고 신진대사를 활발하게 한다. 냉온욕은 지방의 연소량을 늘려서 체중 감량에 도움이 되고, 관절염, 소화기질환, 만성피로와 스트레스 해소에도 효과가 있다. 또한 냉온욕은 피부의 숨구멍을 활성화시켜 노폐물와 체내 독소 배출을 도와 피부 건강에도 좋다.

이처럼 냉온욕이 몸의 혈액순환을 촉진하고 저항력을 높임으로써 몸의 건강을 돕듯이, 남북관계의 냉온욕이 통일을 준비하는 우리의 몸을 보다 건강하게 해주는 과정이 된다. 남북관계의 냉온욕을 거치며 결국 남는 것은 절망하거나 지친 몸이 아니라, 통일을 위하며 더욱 건강해진 몸과 한층 더 돈독해진 관계일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과정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7온8냉법을 완수하려면 익숙해진 현 온도에 적응하려는 몸의 관성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반드시 필요하다. 매 회마다 전혀 다른 온도의 탕으로 옮기려는 발걸음이 쉽게 떼어지지 않지만, 냉온욕을 끝내고 나면 확연히 새로워진 몸을 느낄 수 있다. 모세혈관들이 하나하나 깨어나고 온 몸에 생기가 도는 것을 체감할 수 있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건물이 폭파되었다고 해서 남북관계가 아예 끊어진 것은 아니다. 남북한은 통일운명 공동체라는 한 몸으로 여전히 연결되어 있으며, 오히려 이번 일을 계기로 통일 심장 박동이 거세져서 수많은 혈액들은 더 세차게 흐를 수 있다. 70년 가까운 단절과 불통이 이제 거의 막바지에 도달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분단에 기생하는 노폐물과 독소들이 소멸되지 않으려고 최후의 발악을 하고 있는 모습이 내외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는 건강한 통일, 제대로 된 평화로 가는 과정일 뿐이다.

누군가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자신을 낮춰서 그의 입장에 서보는 것이 필수다. 남북관계의 냉탕 사건에서 여실히 드러났듯이 남북은 각자 처해진 입장과 사정, 언행 방식, 소통 문화, 정책결정과정 등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이런 차이로 인해 상호 이해가 필요하고, 몸속을 순환하는 혈액처럼 나와 상대의 자리를 오가며 배려하는 열심도 필요한 것이다. 남북이 지금은 잠시 냉탕 속에 있지만 온탕으로 옮길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김태훈/ 통일교육 강사, 평화통일연대 청년위원장

김태훈  hooni032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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