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주인공 철우(류승범 분)는 어업으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이다. 그에게 배란 가족을 지키고 먹여 살리는 방주와 같다.

김기덕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류승범이 주연을 맡은 영화 <그물>(2016)은 배가 그물에 걸려 홀로 남북의 경계선을 넘게 된 북한 어부 ‘철우’가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동안 제작한 영화에서 여성 비하 요소를 강하게 풍겨왔던 김기덕 감독이라 건너뛰려 했지만, 영화 소재에 흥미를 느껴 보게 됐다.

주인공 철우는 아내와 딸을 부양하기 위해 물고기를 잡아 생계를 유지한다. 어느 날 고기를 잡으러 배에 오른 철우는 그물이 모터에 걸러 고장이 나 의도치 않게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한 해상으로 표류한다.

이 장면에서 놓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철우는 자신이 조업 중이던 지역 북한군 초소에 배가 고장 났다고 손을 흔들며 도움을 요청하지만, 북한군은 구출보단 배가 군사분계선을 넘을 경우 사살하려고 총부리를 겨눈다. 다행히 남한과의 군사적 충돌이 일어날 수 있다는 부하의 말에 초소 책임자로 보이는 병사는 망설이다가 총을 거둔다.

또 조업에 나서기 위해 초소에서 검문을 받는 철우에게 북한군은 “만약 배가 고장 나서 남쪽으로 흘러가면 배를 버릴 수 있겠냐”고 묻는다. 철우는 배는 “자신의 전 재산”이라며 말을 흐리곤 바다로 나선다.

이 두 장면을 보고 있자면 분단이라는 상황이 사람의 생존보다 더 중요한 것인지 의문이 든다. “남한으로 넘어갈 바에는 배를 버려라”, “군사분계선을 넘으면 사살하라”와 같은 말들이 그들에게는 당연할 수도 있겠지만 철우와 그의 가족들의 입장은 깡그리 무시한 처사이다.

철우는 고장 난 배를 타고 표류하며 결국 남한에 도착하게 된다. 철우가 간첩인지 아닌지 조사하기 위해 국정원으로 가는 길 그는 “나는 북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아무것도 보지 않겠다”며 눈을 감는다. 북으로 돌아간 후 행여 문제가 생길까 두려운 것이다. 국정원 직원은 “선생님 저거보세요. 한국에서 제일 높은 빌딩이에요. 완성되면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높아요”라고 권하지만 철우는 국정원에 도착할 때까지 감은 눈을 뜨지 않는다.

철우는 조업 중 남한 해상으로 표류한다. 그는 가족들이 있는 북으로 다시 돌아가려고 하지만, 국정원 직원들은 그를 전향시키기 위해 갖은 수법을 동원한다.

국정원에서 철우를 조사하는 조사관은 그를 간첩으로 낙인찍으며 강압적인 수사를 시작한다. 어떻게 남쪽으로 표류하게 됐는지를 반복적으로 쓰라고 강요하고 함정까지 파 철우를 간첩으로 몰아세우려 한다.

조사관은 “빨리 자백해 적당하게 끊어줄 테니까. 한 몇 년 살고 나와서 안보교육이나 하면서 대한민국에서 주는 돈으로 편하게 먹고살면 좋잖아. 독재국가로 돌아가 봐야 죽지 못해 사는 것 아냐”라며 철우에게 자신이 간첩임을 토로하라고 몰아세운다. 이런 조사관의 강압적인 태도에 철우는 “이렇게 몇 명이나 간첩을 만들었냐”며 자신의 결백을 주장한다.

이런 상황에서 국정원장으로 보이는 인물은 진짜 배가 고장 나 남쪽으로 넘어오게 된 것이 확실해지면 귀순으로 마음을 돌려보라고 부하에게 말한다. 그들 머릿속엔 철우를 다시 북으로 돌려보낸다는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는 듯하다. 계속된 심문에도 철우가 간첩이라는 증거가 나오지 않자 그는 전향팀으로 보내진다. 여기서 전향팀과 철우의 대화를 들어보자.

철우 : 귀순하라는 겁니까?

전향팀 : 전향하면 많은 혜택이 있어요. 집과 생활비, 직업도 주고요.

철우 : 그럼 조선에 있는 가족도 데려다 줍니까?

전향팀 : 여기서 새로 가족을 꾸밀 수 있어요. 재혼을 원하면….

철우 : 동물도 어미와 자식을 갈라놓지 않는데 어떻게 사람이 그리 잔인합니까? 조선에 와봤습니까? 와보지도 않고 내가 불행하다고 어떻게 단정합니까?

이 대화에서 철우는 자유주의니 사회주의니 하는 이념보다 가족을 중시한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전향팀에게 철우는 그저 북 정권에 세뇌당해 자유의 기쁨을 알지 못하는 불쌍한 존재일 뿐이다.

국정원은 철우의 전향을 설득하기 위해서 서울 한복판에 그를 버려둔다. 남한의 자유와 발전상을 직접 보면 마음을 바꿀거라는 판단에서다.

철우가 전향팀의 설득에도 굴하지 않자 국정원은 그를 서울 시내 한복판에 내려놓으려 한다. 남한의 발전과 자유를 보면 마음이 흔들리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국정원의 계략에 철우는 서울 시내 한복판에 홀로 남겨지게 되고 급기야 그 모습이 방송을 타기까지 한다. 방송으로 인해 북한에 있는 철우 가족들의 안위가 위협받을 수 있는 상황임에도, 모두들 그런 것은 안중에 없어 보인다.

국정원은 철우가 완강하게 전향을 거부하자 뜻을 굽히고 북으로 돌려보낸다. 북으로 돌아가는 철우는 남한에서 지급받아 입었던 옷을 다 벗어 던지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만세”를 외치고 배를 띄운다.

천신만고 끝에 북으로 돌아왔지만 철우의 험난한 여정은 끝나지 않는다. 보위부에서 그의 사상검증을 위해 심문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보위부는 철우에게 “수영을 못하느냐? 왜 배를 버리고 돌아오지 않았냐?”고 묻는다. 철우가 “그건 내 전 재산”이라고 답하자 보위부는 “너를 낳아준 조국보다 그깟 배가 좋냐”며 윽박지른다. 그리고 남한에서 있었던 일을 몽땅 다 쓰라며 국정원이 심문했던 것과 똑같이 그를 몰아세운다. 갖은 고초 끝에 철우는 남한에서 그나마 친했던 국정원 직원으로부터 받은 달러를 뇌물로 쓰고 풀려난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다. 철우의 어업허가가 정지된 것이다. 고기를 잡아 가족들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철우의 외침에도 강을 지키는 초소의 북한군은 “당의 명령이다. 다른 일을 찾아보라”며 그를 막는다.

철우는 “쏠테면 쏘라 나도 참을 만큼 참았다”며 배를 몰고 나가고, 북한군은 그런 철우를 향해 총을 쏜다. 그리고 영화는 철우의 죽음에 슬피 우는 아내와 인형을 가지고 놀고 있는 딸을 비추며 막을 내린다.

우여곡절 끝에 북으로 돌아간 철우. 가족들은 다시 만났지만 그들을 기다린 건 행복이 아니었다.

영화 <그물>은 선량한 한 가족을 파멸로 이끌고 마는 분단 체제의 부조리를 낱낱이 밝힌다. “내가 그동안 그물로 고기를 너무 많이 잡았나보다. 이제 내가 그 그물에 걸렸다”며 자책하는 철우를 보면서 관객들은 <싸움은 자기들이 해놓고 왜 피해는 고스란히 힘없는 사람들이 당해야 하는가> 울분 섞인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영화가 픽션이라고 안도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 헛웃음만 나온다. 간첩이라고 단정하며 심문을 진행하는 국정원, 당의 명령이라며 총으로 쏘는 북한군, 모두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 이 글은 <계간 통일코리아> 2016년 겨울호에도 실렸습니다.

범영수 기자  bumyungsu@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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