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땅콩회항’ 사건을 계기로 다시 한 번 갑을논란이 나라를 뒤덮고 있다. 최근에는 ‘이상봉 디자이너’, ‘위메프’나 ‘조민나 베이커리’ 사건에 이어 ‘백화점 갑질녀’ 등 연이은 갑의 횡포로 사회가 매우 소란스럽다. 이러한 일련의 흐름은 그간 쌓여 있던 사회적 부조리와 관행을 바로잡겠다는 다수 국민들의 집단적 분노의 표출이라 볼 수 있다.

보통 집단적 분노는 일반인의 상식과 보편적 가치기준에 한참 벗어나 있을 때 나타난다. 이러한 현상은 보통 오랜 시간 나쁜 관행이 누적되어 나타나게 되는데 우리나라에 있어서도 사회의 커다란 변혁을 일으키는 소중한 원동력이 되었다. 과거 4·19혁명의 원인이 되었던 3·15 부정선거와 김주열 열사의 죽음 대한 분노, 5·18 민주화운동의 원인이 되었던 12·12사태 과잉진압에 대한 분노, 87 민주화의 도화선이 되었던 박종철 고문치사와 이한열 열사의 죽음에 대한 국민들의 집단적 분노는 암울했던 현대사의 진보를 가능케 했던 가장 커다란 힘이었다.

이러한 집단적 분노는 90년대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사건 이후 2000년대에 이르면 미선·효순양 사건, 광우병 파동, 세월호 참사 등 국민적 이목이 집중된 굴직한 사건마다 다양한 모습들로 분출됐다. 그런데 21세기 이후 나타난 집단적 분노는 그 의도와는 달리 국가권력으로 하여금 인권침해를 강요하였고, 커다란 사회적 비용을 치러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법원, 검찰 등 사법기관 또한 개인과 소수 인권의 수호라는 본연의 임무를 망각한 채 여론과 대세, 국민들의 법 감정에 좌우되는 모습들이 나타나기도 했다.

집단적 분노에는 분명 양면성이 있다. 과거의 악습을 뿌리 뽑는 순기능이 있는 반면, 필히 분노의 희생양을 요구하는 마녀사냥식 결과를 낳게 되는 역기능도 있다. 1996년 미국 정신과협회는 이러한 분노의 다른 표현인 우리말 ‘Hwa-Byung(화병)’을 “한국인 특유의 정신질환”이라 정의하며 새로운 문화증후군으로 설명하였다. 개인보다는 집단의 정서와 소통하고 공감하는 데 탁월한 우리 한국인은 어찌 보면 개인의 분노 또한 주변 환경과 집단에 의해 이끌리는 경향이 두드러진 것 같다.

이러한 차원에서 우리의 집단적 분노는 사회의 부조리를 바로잡는 ‘정의로운 분노’와 집단주의에 편승한 ‘대세적 분노’로 나눌 수 있겠다. 정의로운 분노는 분명 사회변혁을 일으키는 매우 중요한 기재가 된다. 반면 대세적 분노는 집단적 광기로 흘러 개인에게 심각한 희생을 요구할 위험성을 내포하게 된다. 여기에서 우리의 집단적 분노가 유의해야 할 점은 바로 ‘대세’가 아닌 ‘대의’여야 한다라는 점이다. ‘대세’는 시대의 흐름에 좌우되지만 ‘대의’는 시대를 초월하는 보편타당한 가치기준에 따른다. 대세에 따른 분노는 개인의 ‘통찰의 집합’이 아닌 ‘감정의 편승’에 따른 것임으로 자칫 폭력적 민주주의를 낳을 우려 또한 크다.

최근 나타난 이른바 ‘갑질’에 대한 국민적 분노도 사회를 바로잡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 구성원을 무작정 ‘갑 대(對) 을’로 규정짓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은 지양해야 함이 옳다. 우리 스스로가 어떤 면에선 갑이 될 수 있고, 때론 을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러한갑들이 또 다른 갑들로부터 당했던 피해의식과 해악을 다른 을들에게 전이시키는 악순환의 연쇄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 있다. 사실 애초부터 100% 갑과 을은 우리에게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은 모순적 사회구조가 만들어낸 허상일 뿐이다.

그 오랜 인류 역사상 완전한 평등이 구현되었던 적은 단 차례도 없었다. 이상향인 유토피아가 도래하지 않는 한 갑과 을은 항상 분노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숙명적 모순관계였던 것이다. 이제는 갑과 을의 문제를 한발치 멀리서 바라다볼 필요가 있다. 어느 사회학자는 이러한 한국인의 원한과 분노의 문화를 정(情)으로 풀어야 한다고 진단했다. 그렇다. 치열한 대립 가운데서도 소모적인 갈등이 빚어질 때면 우리는 늘상 미운정 고운정을 함께 나누던 추억을 상기하며 배려와 나눔의 손길을 내밀곤 했다. 한국인 특유의 정(情)문화로만 이해할 수 있던 가장 따뜻하고 인간적인 분쟁의 해결방법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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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에는 세상의 수많은 갑질에 분노하기에 앞서 나 스스로가 먼저 변화되어야 한다는 마음가짐을 갖도록 해보자. 스스로가 갑이라 생각된다면 한 걸음 더 낮은 자리로 내려 가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지금 현재의 나에게 있어 을은 누구인지 조금만 고민해본다면 갑과 을이 피터지게 싸우고도 소주잔을 기울이는 그래도 아직은 살만한 훈훈한 세상을 만날 수가 있게 될 것이다.

이장한/ 통일미래사회연구소 연구원

이장한  janghan3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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