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꼭 식당 가서 밥먹자요”

새로운 학기가 시작이 되고 이제 2주차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매달 2~300명의 북한 노동자들이 유입되고 있다는 말이 빈말이 아니라는 것을 캠퍼스에서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중국어반 학생들이 한국인들이고, 각 반마다 2~3명의 북한 학생들과 서양 학생이 1~2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학기에 제가 속한 반의 경우에 북한 학생들이 3배로 늘어났습니다. 고급반은 3분의 2가 북한 학생이고, 나머지는 한국 및 외국인으로 구성된다고 합니다.

분명 중국어에 처음 입문할 때에는 서로 비슷한 수준에서 시작하는데, 방학만 한번 지나고 나면 실력차이가 혁혁하게 납니다. 북한 학생들의 대부분은 방학 동안에 집에 가는 것이 아니라, 하루 종일 수업을 하는 스파르타식 학원에 다닙니다. 한국인 원장이 운영하는 학원에서 특수훈련을 받고 와서인지 저마다 얼굴에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정말이지 목적이 분명하니 진짜 열심히, 치열하게 공부하고 있음을 매일 느끼게 됩니다. 소위 부모를 잘 만나서 이런 특권도 누릴 수 있는 20대 초반의 북한 유학생들을 향해서 ‘너희들은 분명 통일된 조국에서 살다가 죽게 될 것인데, 이 순간 남북이 함께 어울려 공부하는 것에 대한 각별한 의미를 꼭 간직했으면 좋겠다.’ 라는 바람을 늘 가지게 됩니다.

이미 안면이 있는 아이들과는 자연스럽게 방학 동안의 안부를 묻고 중국어 실력이 향상된 것을 한껏 칭찬해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옆에 있는 아이들에 대한 소개를 부탁하니, 아직은 경계하고 긴장하는 눈빛이 역력합니다. 지난 학기 마지막 수업시간에 커피숍에 둘러 앉아 서로 나누었던 대화를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한명씩 중국말 단어로 표현해주기를 제안하고 “당신은 이런 사람입니다.”라는 식의 말을 이어가는데, 평소 결석이 잦았던 북한 남학생이 저를 향해 “선생님은 공부보다도 반 전체 분위기를 더 먼저 생각하고, 관계를 중요시하는 분인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순간 저마다 자기 공부에 빠져 있는 것 같지만, 서로에 대해서 다 파악하고 있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비록 첫 만남은 다소 어색하게 시작했지만, 신입 학생들과도 한 학기 동안 같이 수업을 하고 나면 분명 서로의 마음이 통할 수 있는 시간이 있으리라고 기대합니다.

중국에서 춘절(구정설)의 마지막 피날레는 정월대보름 폭죽놀이로 끝이 납니다. 대보름 하루 전날에 버스를 타고 귀가를 하는데 제 앞에 선 북한 여학생 두 명의 대화가 얼마나 정겹게 들렸는지 모릅니다. 그녀들의 귀엽고 예쁜 특유의 사투리 억양 그대로 전달하지 못해 아쉽지만 기억나는 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습니다.

“3월인데도 너무 춥다, 그지?”
“누가 아니래.”
“아까 수업 시간에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서 혼났어.”
“너도 그랬니? 나도 옆에 사람들이 들을까봐 더 크게 책을 읽었지 뭐야.”
“내일 대보름인데 우리 뭐 먹지?”
“…식당에서 파는 면 먹고 싶은데.”
“나는 면 못 먹잖아!”
“거기 다른 것도 많아.”
“우리 내일 꼭 식당 가서 밥 먹자요!”

마지막 한마디가 유난히 귀에 번쩍 뜨였습니다. “먹자요!” 분명 한국의 젊은 아이들의 언어습관에서 나오는 말입니다. 이 아이들도 어김없이 중국 사이트에서 한국 영화와 드라마를 즐겨 보고 있음을 눈치 챌 수 있었습니다. 이윽고 저녁이 되니 6시 정도부터 밤이 깊기까지 온 동네가 떠나갈 정도로 여기저기에서 펑펑 소리와 함께 온갖 폭죽이 터졌습니다. 그 소리에 놀란 차량의 도난방지음까지 합세해서 정신없이 소란한 중에 ‘이토록 휘영청 밝은 불빛들을 보면서 강 건너편의 사람들은 무엇을 느끼고 동그란 보름달을 보면서는 또 어떤 소원을 빌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곳에서 살면 살수록 마음속에 자리 잡게 되는 서글픈 생각 한 가지가 있습니다. 북한과 중국 사람들에게 해 줄 수 있는 일들이 너무 없다는 것입니다. 한족 자매 하나가 본격적으로 예수님을 믿기 시작하면서 예전부터 정서적으로 불안정하고 불면증과 강박증에 시달려 온 증세에 대해서 도움을 요청해 왔습니다. 몇 마디의 위로의 말들로는 부족함을 느꼈지만 딱히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북한 학생의 말처럼 반 분위기가 좋아야 공부가 되는 사람이기에, 이번 학기에도 순간순간 우스갯소리와 간식으로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것 말고는 특별히 해 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그래도 가랑비에 옷 젖듯 한층 더 가까워지고 마음이 전달될 수 있는 기회들이 많이 생겨나기를 소망합니다.


▲ 세계중학생 중국어경연대회에 참가한 북한 학생들

남과 북이 함께 모여 앉아 공부하고 있는 강의실의 한국 학생들이 삶에서 모범을 보일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자칫 지나친 관심을 가지거나 북한 학생들을 무시하는 말과 행동을 하기 보다는 성숙한 인격에서 나오는 친절함으로 다가갈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그래서 중국 땅에서 남과 북의 다음세대들이 중국어 공부를 매개로 해서 미리 통일을 경험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중국과 북한과의 관계에 대해서 여러 가지 말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북중 관계가 장성택 처형 이후에 예전과는 달리 냉랭해졌다고도 하고, 북중 정상회담이 곧 있을 것이란 말도 있습니다. 중국은 자국의 필요와 이익을 위해 북한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 분명한데, 막연한 북한 붕괴론을 앞세워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소극적인 실수를 저지르지 않도록 한국과 미국의 정책결정자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제공: 바나바 선교사(PN4N 파송선교사)

북한과 열방을 위한 중보기도네트워크(www.pn4n.org) 제공

바나바 @pn4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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