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경향신문>에서 ‘내 인생의 책’이라는 제목으로 일주일간 다섯 번 써서 소개한 적이 있다. 자기 인생에 영향을 미친 책 다섯 권을 골라 간단하게 소개해 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성경>, 미국 사회학자인 라이트 밀즈의 <들어라 양키들아>, 토마스 아 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遵主聖範)>, 박경리 여사의 <토지> 그리고 단재 신채호의 <조선상고사>를 소개했다. 이 중 <들어라 양키들아>는 쿠바 혁명을 통해 미국의 실체를 이해하고 객관화해서 볼 수 있는 안목을 키워주었다. <토지>는 한국의 흙냄새나는 토박이 이웃을 이해토록 해 주었고, <조선상고사>는 내 공부와 큰 관련이 있었기 때문에 꼽았다.

올해 광복 70년을 맞어 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소개받은 책도 많고 또 읽고 싶은 것도 많지만 이제는 독서하는 것이 예전만 못하다. 그런 중에서도 최근 옆에 두고 읽는 책들이 있어서 고맙게 생각한다. 8월 들어 읽는 책은 그 읽게 된 순서를 따라 소개하면 다음 세 권이다. 한홍구 교수의 역사논설인 <역사와 책임>(한겨레출판, 2015, 271쪽)과 정용성 목사의 <닭장 교회로부터 도망가라>(홍성사, 2015, 131쪽) 그리고 김삼웅 선생의 <역사의 절망을 넘어>(꽃자리, 2015, 400쪽)이다.

▲ <역사의 절망을 넘어>, <닭장 교회로부터 도망가라>, <역사의 절망을 넘어> 책 표지

<역사와 책임>은 저자로부터 받아 읽었다. 한 교수에 대해서는 굳이 소개할 필요가 없는 학자다. 그는 한국현대사를 전공하는 학자로서, 한국의 현대사가 처했던 많은 질곡을 꿰뚫어보면서 그 연결고리들을 찾아내는 혜안을 갖고 있다. 그러기에 그는 그 수많은 사건과 자료들을 그 머리속에 넣어 두고 있다. 그는 현대사를 파헤치면서 독자들에게 진실을 들이대고 역사 앞에 책임을 지도록 이끄는 무서운 마력을 갖고 있다. 그래서 책 이름도 <역사와 책임>이라고 했을 것이다. 이 책에는 최근에 일어났던 세월호 사건을 사례로 제시하면서 이 시대를 향해 강하게 책임을 묻고 있다. 그는 한국현대사의 마디마디를 훑으면서 어제와 오늘을 맥락짓고, 반헌법적 인물들을 역사의 테이블에 올려놓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하나하나 실천해가고 있다.

<역사와 책임>을 읽으면 이 땅 대한민국 권력자들의 민낯뿐만 아니라 거기에 침묵으로 동조했던 자신들도 부끄러워 고개를 떨굴 수밖에 없다. 이 책은 독자로 하여금 자기 시대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하는 건강한 역사의식과 불의에 항거하도록 하는 용기를 붇돋아 준다.

<닭장 교회로부터 도망가라>도 저자로부터 직접 받았다. 얼마 전 대구에서 처음 인사를 나누기 전까지는 저자와 전혀 교분이 없었다. 그 날 저녁 KTX로 상경하면서 이 책의 꽤 긴 서문을 읽었다. 그때 평소 내가 고민해 왔던 문제를, 이렇게 먼저 고민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 선각자가 있다는 데 대해 큰 기쁨을 가졌다. 한국교회를 두고 20여년 전부터 고민하면서 한국교회가 나아갈 길을 모색해 보았다. 그때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가난하게 되는 것>과 <풀뿌리 작은 교회>를 지향하는 것이었다. 부하고 큰 교회를 지향하는 한국교회를 향해 그것은 예수님의 길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부자 청년에게 하신 말씀과 같이 네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고 “너는 나를 따르라”는 말씀을 한국교회가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생각을 젊은 목회자들과 나눠보기도 했지만 그들은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했고 두어 번 모이는 정도에 그쳤다. 그런데 이 책은, 저자가 유학을 마치고 중산층 교회 목회의 길이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작은 교회운동을 고민하면서 이론적으로 체계화하고 실제적인 삶으로 보여주고 있으니 큰 기쁨이 아닐 수 없었다. 이 책에 대한 공감대와 기쁨이 저녁 내내 이 책에 몰두하도록 했다.

<역사의 절망을 넘어> 또한 책상 앞에 두고 읽고 있다. 언론가요 문필가인 저자는 독립기념관장을 역임하면서 수혈받은 우리 독립운동사의 풍부한 자양분을 자기체질화하여 역사의 변곡점마다 시대를 향해 유려한 필치로 직필을 멈추지 않았다. 이 책은 저자가 그동안 발표한 수많은 산문 중에서, 광복 70주년을 맞아 70편을 골라 이 책을 엮은 것으로 보인다. 이 중에는 해방 당시의 그 감격적인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놓았는가 하면, 그렇게 감격적이던 해방이 왜 친일파의 천지가 되어 버렸는가를 분노하면서, ‘국부’ 이승만의 실체를 드러낸다. 4월 혁명, 군부 유신 체제, 6월 혁명의 과정을 눈에 보듯이 그려내면서 우리 모두에게 역사의 책임을 묻는다. 특히 최근의 정치 현실을 맹타하면서 정통성이 결여된 이 정권이 하필이면 광복 70년에 앞서 전시작전권 회수하기를 주저하는 기괴한 모습을 보였는가도 파헤친다. 작금의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저자는 희망을 잃지 않는다. 이 책을 펴내는 것도 독자들에게 목전의 절망을 뛰어넘어 희망을 바라보도록 안내하기 위함이라고 생각된다.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 전 국사편찬위원장

이만열  mahnyo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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