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19일부터 23일까지 4박 5일간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기 유적지를 답사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사업회가 매년 ‘독립정신 답사단’을 조직, 답사에 임하는데 올해는 학생 50명을 포함하여 답사단 60여명이 상하이(上海), 자싱(嘉興), 해염(海鹽), 항저우(杭州), 전장(鎭江) 그리고 난징(南京)을 다녀왔다. 몇 번씩 방문한 곳도 있지만, 해염과 난징은 처음이었다.

1919년 3.1운동에서 독립을 선언한 한국인은 4월 10일 상해 프랑스 조계지에서 각도 대표 29명으로 구성된 임시의정원을 조직하고 11일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정하고 임시정부를 구성, 13일에 이를 공포했다. 대한민국 임시의정원과 임시정부가 성립되었다. 임시대통령 이승만의 위임통치청원 등이 한 계기가 되어 임정은 분열상태에 빠지게 되었고, 1923년 국민대표회의를 소집, 이를 극복하고자 했으나 오히려 분열이 가중되었다.

1923년 무렵부터 거의 힘을 잃었던 임정은 그 취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특단의 조치를 취하게 되었다. 임정의 허락을 받아 김구는 특무조직인 한인애국단을 조직하고 의열투쟁을 벌이게 되었다. 그는 우선 의열투쟁을 벌이기로 하고 그 목표를 동경의 ‘천황’, 서울의 조선 총독, 만주의 관동군 총재와 관동청 총재 그리고 상하이에 침략한 일본군으로 정했다. 동경에는 이봉창, 서울에는 이덕주와 유진식, 만주에는 유상근과 최흥식 그리고 상하이에는 윤봉길을 파견, 거사를 계획했으나 이봉창과 윤봉길 외에는 미수에 그치고 말았다.

1932년 4월 29일 상하이 홍구 공원에서 윤봉길 의사의 의거로 당시 상하이 침략군 사령관 시라카와 요시노리(白川義則)를 비롯하여 일본군 고관들에게 심대한 피해를 끼쳤다. 일본이 상하이를 침략했을 때 장개석은 중국군 정예 30만으로 이를 막으려 했으나 실패했다. 윤봉길의 의거 후 장개석이 “중국군 30만 명이 하지 못한 것을 한국인 청년이 해 냈다”고 한 것은 바로 이런 상황과 관련이 있다. 이 사건으로 지금까지 한국의 독립운동에 대해 무관심했던 중국 정부가 한국 독립운동을 지원하게 되었다. 한국 청년들에게 자기들의 군관학교에서 군사교육을 받게 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윤봉길 의거가 일어나자 일제는 이 사건이 임시정부와 김구의 소행인 것으로 파악하고 김구에게 막대한 현상금을 걸고 체포하려고 했다. 프랑스 조계에 있던 임시정부와 함께 김구도 피난길에 나서게 되었다. 임시정부를 처음 옮긴 곳은 항저우였다. 그러나 김구와 일부 임정 요인들은 항저우로 바로 가지는 않았다. 그들 대부분은 먼저 자싱으로 가서 그곳에서 피신했다. 그곳에는 한국 독립운동을 도와준 저보성(褚輔成)과 그의 자녀들의 생활의 근거지가 있었다. 김구와 임정요인들은 그곳의 남호(南湖) 가에 임시거처를 정하고 일제의 수색에 대비했다. 김구는 일제의 수색을 피해 한 때 선상(船上) 생활도 했다. 일제의 수색망이 조여왔을 때 김구는 저보성의 며느리 주가예(朱佳蕊)의 인도를 받아 그의 친정인 해염으로 한 때 피난하기도 했다.

1932년 5월 상하이에서 항저우로 옮긴 임정은 이곳에서 국무위원을 다시 보강하고 1934년10월까지 머물렀다. 항저우는 옛 남송(南宋)의 수도로서 시인 이태백(李太白)과 소동파(蘇東坡)가 시를 짓던 서호(西湖)를 포함하여 매우 아름다운 유적이 있는 곳이다. 남송이 북쪽 금(金)나라의 침략을 받았을 때 이를 물리치며 혁혁한 공을 세웠으나 간신 진회(秦檜)의 모함으로 비운에 간 충신 악비(岳飛)의 묘가 있다. 이곳에는 고려 대각국사 의천(義天)이 다녀간 것을 기념하여 뒷날 고려사(高麗寺)를 세워놓기도 했다.

항저우에도 일제의 마수가 뻗치고 있어서 다시 옮기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중국의 도움을 받고 있던 임정은 중국의 수도 난징으로 옮기려고 했으나 여의치 않아 가까운 전장(鎭江)으로 옮기고 임정 요인들은 주로 난징에서 활동했다. 1937년 7월 노구교 사건을 계기로 중일전쟁을 벌인 일제는 상하이를 점령하고 난징을 향해 공격해 들어왔다. 1934년 11월부터 1937년 11월까지 전장에 있던 임정은 다시 피난길에 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창사(長沙)로 옮겨 1938년 3월까지 머물렀고, 그 뒤 광저우(廣州, 1938.7～1938.10), 류저우(柳州, 1938.11～1939.4)를 거쳐 1939년 5월부터 1945년 11월까지는 치장(綦江), 충칭(重慶)에서 활동하게 되었다.

답사단은 상하이에서 자싱 해염 항저우 전장 난징으로 옮아가며 독립운동에 매진했던 선열들의 그 고난의 길을 밟아 갔다. 오늘날 같은 교통수단이 없었던 시기에 중국 같은 넓은 곳을 떠다니며 피난생활을 했다는 것은 바로 고통스런 삶 그 자체였다. 자싱이나 항저우 등지에 복원해 놓은 그들의 거처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풍찬노숙(風餐露宿)을 마다하지 않고 사서 고생을 한 것은 오로지 조국의 독립 때문이었다. 불가능을 가능케 할 수 있다는 독립정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대한민국이 존재하게 되었고 고난을 겪은 그런 정신적 토대 위에서 한국의 민주화와 산업화가 이뤄졌다. 비록 후손이지만, 우리는 그들에게 크게 빚진 자들이다. 그러기에 역사에 무임승차해서는 안된다는 각오를 새삼 다짐하게 된다.

이만열/ 전 역사편찬위원장, 숙명여대 명예교수

이만열  mahnyo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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