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3일은 독일이 통일된 지 26년이 되는 날이었다. 벌써, 어느덧, 어느새, 어떤 표현이 더 어울리는지 모르겠지만 그야말로 한 세대가 훌쩍 흘러가 버렸다.

▲ 오늘날 베를린 장벽. 26년 전 동서독인들을 갈라쳤던 장벽이 지금은 그래피티(예술벽화)의 공간이자 평화의 상징이 됐다. (사진설명 = 유코리아뉴스)

필자가 2년여 공부할 기회를 얻어 독일에 도착한 것은 1992년 10월이었다. 1987년 분단시절 보았던 서독 상황과는 달리 통독에 따른 후유증이 곳곳에서 불거져 나오던 시기였다. 동독지역에서는 높은 실업과 함께, 통일이 가져다 줄 것으로 기대되었던 단시일 내의 생활수준 향상이라는 환상이 깨지고 있었다. 통일 후 동독 특수를 누리던 서독경제도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 가운데 서독주민들은 늘어나는 세금과 물가인상에 불만을 드러내고 있었다. 외국인에게도 적용되던 양육보조비 등의 사회보장혜택은 거의 철폐되었다. 청소년들의 통일소감문을 모은 책에서는 왜 우리가 통일을 해서 동독사람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가 하는 말들이 공공연히 등장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동구권의 붕괴로 일자리를 찾는 이들과, 유고내전으로 수십만의 난민이 몰려오면서 이들은 물론 기왕에 독일에서 자리를 잡고 있던 외국인들에 대한 테러가 빈발했다. 당시 돌아본 동베를린, 포츠담, 라이프치히, 드레스덴 등 동독 주요도시의 모습은 깨끗하고 구석구석이 정비된 서독의 인상에 익숙해 있던 필자에게 커다란 충격이었다. 좁고 낡은 도로, 폐허처럼 방치된 공장과 주택들, 수십 년을 뒤로 되돌린 듯한 풍경을 보며, 도대체 체제 차이 40년이 이렇게 다른 결과를 만들 수 있는가 하는 생각에 마음이 아렸다.

그 후 유로화가 도입되어 정착되어가던, 그러나 독일로서는 통일 후유증으로 어려움을 겪던 2000년대 전반에 프랑크푸르트에서 한국은행 첫 주재원 생활을 했다. 당시에는 독일의 쇠락을 이야기하는 부정적인 제목의 책들이 쏟아져 나올 때였다. 「독일: 수퍼스타의 몰락」(2004), 「대재앙, 통일」(2005), 「독일경제 어떻게 구할 수 있는가」(2005) 등이 그것이다. 독일의 거리에서는 불황의 모습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독일경제의 회복을 점치는 것이 쉽지 않았던 2005년 8월에 졸저 「독일견문록」 서문을 작성할 때, 처음에는 ‘독일 경제의 부활을 확신한다’고 썼다가 결국은 “독일이 다시 활기차고 건강한 모습으로 일어서기를 바란다”라는 기대조로 고쳐 쓴 기억이 있다. 그만큼 당시 독일경제는 어려웠다. 그 몇 달 후 어느 시사주간지에서 「독일병 심층진단: 라인강의 기적, 부활이냐 침몰이냐」를 표지로 한 특집기사를 썼을 때는 ‘안개 덮인 라인강, 그래도 희망은 흐른다’로 조금은 톤을 바꾸어 썼다.

▲ 독일 라인강 전경. 통독 후 26년, 경제 부침을 겪던 독일은 다시 경제강국으로 부상했다. 그들은 몇 번이나 '라인강의 기적'을 이뤘다. (사진설명 = 유코리아뉴스)

이후 2003년에 슈뢰더총리가 제시한 구조개혁 프로그램 ｢아젠다 2010｣ 등이 효과를 발휘하면서 독일경제는 2006년에는 높은 성장세로 돌아섰고 금융위기, 유로지역 재정위기를 이겨내고 유럽의 강자로 우뚝 서는 강한 저력을 보여주었다. 두 번째 주재원 생활 시절 현장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었고 독일경제를 말하는 표현들도 완연히 달라졌다. “유럽의 병자에서 경제 수퍼스타”로, Newsweek지의 2014. 7.17일자 표지기사 “Welcome to the German Century”나 우리나라에서 나온 「넥스트 코리아: 우리들이 꿈꾸는 나라」, 「독일 리포트: 미래 한국의 패러다임을 찾아」 등의 책은 이를 상징한다.

2015년은 독일통일 25주년을 맞는 해였고 몇 년간 이어진 ‘독일 배우기’와 맞물려 다시 한 번 독일 통일을 조망하는 계기가 되었다. 사회적 시장경제, 히든 챔피언, 재생에너지 산업 등 독일과 관련된 내용이 신문기사, 방송을 장식하고 관련서적의 출간이 줄을 이었다. 많은 곳에서 독일배우기 모임도 열렸다. 막대한 통일 부담을 이겨낸 데다, 유로지역 위기에도 불구하고 유럽의 안정판이자, 중추세력으로 재부상한 모습에서 강한 인상을 주었다.

통일된 독일이 어려움을 딛고 다시 경제 강국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우리에게도 의미가 있는 일이다. 통일에 따른 경제적 부담은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이겨낼 수 있음을 독일의 사례가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주 세미나 차 다시 동독지역에 들렀을 때는 그간의 커다란 발전을 실감할 수 있었다.

독일 정부는 의회에 보내는 「독일통일 현황에 대한 정부의 연차보고서」를 매년 통독의 날 무렵에 발표하고 있다. 이 보고서를 통해 동서독 통합에서의 주요 관점이 어떻게 변화해 왔으며 최근의 관심은 무엇인지, 동서독 지역 간 경제수렴은 어떻게 진전되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9월에 발간된 2016년 연차보고서는 동독지역의 생활수준을 서독수준으로 수렴시키는 것과 함께, 극우파 및 외국인혐오 문제를 주제로 다루었다. 1990년대 초반 극우, 외국인 혐오, 배타성이 노출되었던 상황을 설명하면서 2015년 동독에서 유사한 이유의 폭력행위가 많이 늘어난데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최근 메르켈총리 출신 주와 베를린 시에서 현 난민정책에 반대하는 당이 많은 표를 얻어 주 의회에 진출한 것을 보며 불편한 느낌을 갖게 된다.

▲ 도심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예술 작품과 조형물들. 여전히 베를린 시민들의 삶 속에는 분단과 통일의 흔적이 남아있다. (사진설명 = 유코리아뉴스)

독일은 독일통일의 날을 전후해 동서독지역을 돌아가며 통일기념 축제를 연다. 첫 해인 1990년에는 베를린에서, 다음 해에는 서독지역의 함부르크, 1992년에는 메르켈 총리의 출신 주인 동독지역 ｢메클렌부르크-포포머른｣주의 주도 슈베린에서 열렸다. 금년 축제는 드레스덴에서 10.1~3일간 열렸는데 총리, 대통령의 연설 중 난민정책에 반대하는 야유가 크게 나왔던 것으로 독일 언론들은 보도했다. 앞장서서 가장 많은 난민을 받아들인 만큼 슬기로운 극복을 바라는 마음이다. 그리고 우리도 통일이 되어 서울, 평양, 부산, 신의주에서 돌아가며 통일 축제가 열릴 날을 그려본다.

김영찬 박사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초청연구위원 / 남북물류포럼 칼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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