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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향한 여정을 시작하며평화통일연대 '평화칼럼'

2020년은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70년이 되는 해이다. 어떤 사람들에겐 그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기억조차 못할 만큼 오래된 일처럼 여겨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수백 만이 죽어갔던 전쟁의 공포와 잔학함으로 여전히 깊은 슬픔과 분노 속에 몸서리칠지도 모른다. 전쟁으로 인한 상처는 여전히 치유되지 않았고, 슬픔은 쉽게 사라지지 않고 있다. 나라는 여전히 분단되어 있고, 이산가족들은 70년이 지난 지금까지 여전히 나뉘어져 있다.

분단된 상황 속에서 형제들끼리 또 다른 전쟁의 위험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님을 우리는 알고 있다. 지금도 한반도에서 핵전쟁의 위험은 현재진행형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평화의 하나님이시며 전쟁의 하나님이 아니시다.

한반도는 오직 한 나라로 살도록 창조되었다. 하나님은 남한과 북한이라는 분단된 땅으로 한반도를 창조하지 않으셨다. 현재의 분단은 사람으로부터 비롯된 일이며, 그것은 악이다. 하나님은 한반도 전체에 치유와 하나됨을 가져오길 원하신다. 그래서 우리는 함께 평화를 향한 여정을 시작해야만 한다.

샬롬(Shalom)은 모든 창조물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디자인하신 것이다. 샬롬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그리고 서로간의 바른 관계로부터 시작된다. 평화에 대한 신약의 단어인 에이레네(eiréné)의 원어적 의미는 ‘화해’이다. 하나님과의 화해, 그리고 서로간의 화해를 말한다. 평화는 형제자매간에 연합하는 것이다. 바울은 우리가 하나됨을 만들어낼 수 없으며, 이미 하나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하나이다! 우리의 과업은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 안에서의 하나됨을 지켜가는 것이다.

이 땅에는 오직 하나의 교회만 존재한다. 만일 우리가 지역 교회의 작은 그룹들 안에서만 연합하려 하고 다른 사람들을 무시한다면, 우리는 샬롬을 누릴 수 없다. 사람들은 교회의 많은 교파 중에서 하나에만 온전히 헌신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단일교회에는 헌신하지 않으려 한다. 예수원의 대천덕 신부님이 이 문제를 잘 지적하고 계시다. “만일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한 마음을 품지 않고 각자 흩어진 길로 행한다면, 우리는 크리스천이 전혀 아니며 단지 크리스천을 연기하는 배우들일 뿐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단일교회에 속하지 않게 된다.”

우리가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비판하고, 비교하며, 판단하기 시작한다면, 우리는 이미 샬롬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걷고 있는 것이다. 만일 그리스도의 교회가 하나되지 못하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그들과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존중하지 않고, 그들이 속한 단체나 교단과 상관없이 그들을 형제자매로 부를 수 없다면, 우리는 샬롬을 누릴 수 없다. 분열된 교회는 분열된 나라를 초래한다.

왜 한반도에 평화가 없을까? 왜 우리는 개인의 삶 또는 우리의 가족들과 나라 안에서 샬롬을 누리지 못할까? 우리 모두는 그 답을 알고 있다. 바로 죄 때문이다.

대천덕 신부님이 한번은 현대 신자들의 삶 가운데 계신 성령님에 관한 강의를 부탁받으신 적이 있다. 그는 성령님의 권능에 대해 몇 가지 말씀하신 뒤에, 주제가 바뀐 것처럼 말씀을 이어가셨다. 샬롬 또는 평화가 모든 빚을 청산하게 되는 것과 같은 의미라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 안에서는 아무도 가난하게 살아서는 안 되며, 그 누구도 굶주림과 영양실조, 가난 가운데서 살게 해서는 안 된다고 하셨다.

우리는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것에 중심이 되지 않는 통일코리아의 미래에 대해 상상할 수 없다. 만일 우리가 평화의 나라에 대해 소망을 두고 있다면 우리는 평화의 왕과 우리의 관계를 점검하고, 우리의 삶을 그 분께 드려야만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나라에 속한 사람들로 하여금 화해의 사역에 헌신하게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평화를 향한 여정 가운데 동행하도록 부르신다. 우리가 샬롬 안에서 행할 때 단지 우리 개인이나 나라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그치지 않고, 더 이상 고난이 없고, 다시는 한반도에 위기나 더 큰 위험이 없도록 하실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나와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을 향해 부드럽게 말하고, 우리의 적으로 여기는 사람들, 또는 우리를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과 화해하기를 추구하는 등의 작게 여겨지는 일들부터 행해야 한다. 우리 주변의 모든 고통당하는 사람들의 슬픔에 깨어 있으면서, 그들이 말하기 전에 먼저 그들을 위로하고 돕는 것이 필요하다. 긍휼을 찾기 어려운 사회 속에서 긍휼의 사람이 되기로 선택해야 한다. 그것이 평화를 향한 여정을 결단한 사람의 품격이다.

오대원/ 한국예수전도단 설립자, 평화통일연대 고문

오대원  davidross3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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