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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대통령의 북진통일론은 틀렸다!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공적을 새롭게 조명한다는 명분으로 제작된 ‘건국전쟁’이 개봉되어 상영중이다.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서는 이미 정치·사회적 평가가 내려진 지 오래인데, 50년도 더 넘어 다시 소환하는 배경은 무엇일까?

이 대통령의 공과(功過)에 관한 논의가 분분하지만, 무력 불사를 내세운 북진통일론은 민족상잔의 전쟁으로까지 비화했다. 무능하고 무책임한 신성모 국방부 장관은 “대한민국 국군은 대통령으로부터 명령을 기다리고 있으며, 명령만 있으면 하루 안에 평양이나 원산을 완전히 점령할 수 있다”고 주장했으나, 막상 북한이 침공해오자 군사적 오판으로 3일 만에 한강 철교와 대교를 폭파했다. 후방 교란 목적의 북한군 탱크 몇 대를 보고 지레 겁먹은 국방부 장관이 이승만 대통령에게 피난을 권했고, 기습적인 한강 철교와 대교 폭발로 800여 민간인과 군인이 사망했다. 서울에 남았던 시민은 우리 정부의 안심하라는 방송만 믿고 있다가 고립됐고, 군인들은 군사 작전에 애를 먹었다. 실전 경험이 없는 초대 국방부 장관의 좌충우돌 모습이었다.

영화 '건국전쟁' 한 장면.

치밀한 작전 없이 말로만 전쟁을 떠벌렸던 국방부 장관. 미국의 군사, 경제원조에만 기대려 했던 이승만 대통령. 우리의 무력 불사, 북진통일론은 정치적 구호에 불과했음에 비해, 북한은 내부 개혁으로 민심을 장악한 뒤 소련과 중국을 설득하며 전쟁 준비를 치밀하게 했다. 북한에서는 토지개혁과 적산 재산 몰수로 친일파와 지주, 상인 세력이 척결되고 농민과 노동자 중심의 새로운 사회구성체가 형성되고 있었다. 기득권 세력이 일소되고 비교적 동질적인 사회로 재편된 것이다. 서북지방에서는 중국과 상거래 하며 개신교를 받아들였던 신흥 세력이 토지개혁 당시 신의주 학생운동과 같은 저항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공권력에 밀린 북한 주민들은 월남행을 택했고, 전쟁 후에는 김일성을 적대시하며 반공주의 이념을 맹종하게 됐다.

해방 당시 북한지역 개신교인 수는 약 20만 명 정도였는데 그 사분지 일인 5만 명 가까이 남하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훗날 대한민국 개신교계의 교권 중심부를 장악하게 된다. 이승만 대통령의 북진통일론은 북한의 민주기지론, 국토완정론(國土完征)에 정면으로 충돌하는 제로섬 방식의 통일론이었다. 반공주의로 무장하고 고토회복(古土回復)을 열망했던 개신교 세력은 북진통일론을 주장하는 이승만 대통령의 견고한 지지층이 되었고, 오늘날까지도 같은 통일론을 신봉하고 있다. 김구 선생이나 임시정부 출신 인사들은 해방 후 민족분단을 예견하여 남북협상을 시도했지만, 이승만 대통령은 전쟁 이전부터 반공주의를 표방했다. 미국의 이해를 간파했던 이승만 대통령에게 반공주의는 독보적인 정치적 자산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입장에 따라 갈릴 수 있다. 그러나 반공 이념을 근거로 수십만의 민간인을 살해했던 과오(過誤)는 쉽게 지울 수 없을 것이다. 제주 4.3사건, 여수순천 사건은 전쟁 전에 발생했었는데 민간인 3만 명 이상이 희생됐다. 보도연맹 사건은 너무나 안타깝다. 수도 서울을 버리고 야반도주하듯 빠져나간 대통령의 후안무치는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다고 해도, 공산 치하에서 버티던 국민 20만 이상을 학살한 대통령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대전 형무소를 시작으로 청주, 대구, 부산, 진주, 마산, 김천, 안동 형무소에서는 1만 명 이상이 형기와 관련 없이 적에게 이로울 수 있다는 이유로 처형됐다.

이승만 대통령을 칭송하는 이들은 그가 우리나라를 공산주의로부터 보호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지킨 영웅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3선 개헌 시도 실패로 물러난 이 대통령을 과연 자유민주주의의 수호자로만 기억할 수 있을까? 억울하게 학살당한 민간인의 자유와 생명권은 어떻게 보상할 수 있나? 미국 CIA 문서가 비밀 해제되면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이 대통령의 인성은 실망스럽다. 미국에서의 행적이 밝혀졌고 각종 스캔들에 대해서도 속속 알려졌다. 미국 정부가 휴전을 반대하는 이 대통령을 제거하려 했던 데에는 그의 인성에 대한 평가도 한몫했을 수 있다. 외교 능력이 탁월했다던 이 대통령은 정치적 이해타산에 확실했을 뿐이다.

이승만 대통령의 북진통일론은 외부 조력에만 기댄 채 상대를 쉽게 굴복시킬 수 있다는 오판에서 나왔다. 국제 정세의 흐름을 읽고 편승하려 했던 전략이었지만 내부 역량은 한없이 초라했다. 북한 사회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 민족통일을 국토통일로만 여기는 북진통일론은 성공할 수 없다. 현실 적합성을 고려하지 않은 우기기 통일론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소련과 직접 대결을 피하는 상황에서 아무 준비도 없이 말로만 외치는 통일을 지지할 리가 없었다. 오히려 북한을 침공할까 우려해서 군사 지원을 꺼렸다고 한다. 그런데 이 대통령은 왜 북진통일론을 크게 외쳤던 것일까? ‘정치적 소구력’ 딱 하나가 떠오른다. 남한에서만 아니라 한반도 전체에서 대통령이 되고 싶다는 욕망과 결합된 정치적 동기 말이다.

윤은주/ 북한학 박사, (사)뉴코리아 대표

윤은주  ejwarrio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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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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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시온 2024-03-19 18:39:52

    쳐들어온 북한을 욕해야지 지킨 이승만을 욕하네? 분단의 원흉은 스탈린과 그 괴뢰 김일성이다. 역사 제대로 배운거 맞니? 교수를 아무나 할 수 없을텐데 어디 교수님이세요?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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