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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100℃] 평화를 꿈꾸는 기자의 대북 취재기 6개월
(평양 노동신문=뉴스1) = 3일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 1면[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DB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Redistribution Prohibited] rodongphoto@news1.kr


(서울=뉴스1) 최소망 기자 = "오늘은 어떤 얘기가 나올까? 1호(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가 등장했을까?"

새벽 6시. 오늘도 초조한 마음으로 '로동신문'(노동신문)이 업로드되길 기다린다.

노동신문은 1년 365일 하루도 쉬지 않고 발간된다. 북한을 취재하고 통일부를 출입하는 기자들이 매일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이유다.

노동신문 6개 면에 실리는 모든 내용은 북한 당국의 메시지다. 기사는 물론 사진까지 철저한 당국의 검열을 거친다. 김 위원장을 포함한 지도부가 대내외적으로 하고 싶은 말이 모두 담겨 있는 셈이다.

올해 초 통일부 출입으로 발령을 받고 노동신문을 접했을 땐 솔직히 '뜨악, 내가 이걸 읽어도 되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 '위대한 령(영)도자 김정일 동지'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 동지'…. 북한의 최고 지도자들을 드높이는 문구들에 흠칫했다.

일단 우리말 같은데도 잘 읽히지 않았다. 북한 주민들이 사용하는 조선말(북한말)이 우리말과 같으면서도 달라서였다. '김정은 동지의 현지지도', '료해', '총화회의', '일떠선 순천린(인)비료공장' 등 지금은 어느 정도 익숙해지긴 했지만 초반엔 적응에 애를 먹었다.

기사를 읽을수록, 기사의 숨겨진 의도를 분석할수록 조금씩 북한에 대해 호기심은 커졌다. 북한 주민들의 삶이 드러나는 듯했다. 봄 모내기철에는 비료나 물을 확보하기 위한 '모내기 전투'를 하고 신정에는 김일성 광장에서 축포를 터뜨리고 축하공연을 했다. 이런 점이 북한은 이상한 곳도 아닌, 우리가 이해 못할 곳도 아닌, 우리와 같은 민족이 살고 있는 곳이라는 점을 느끼게 해주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북한의 매력에 한참 빠져들고 있던 때인 지난 6월 4일. 노동신문에 우리 남북관계 역사에 분기점을 만들게 되는 기사가 실렸다. 김 위원장의 동생인 김여정 제1부부장의 담화였다. 대북 전단(삐라) 살포를 이유로 남측을 강하게 비난했는데, "대가를 혹독하게 치를 것"이라는 등의 과격한 표현이 들어있었다.

북한은 다음날인 5일에도 통일전선부 담화를 통해 다시 엄포를 놓았다. '남북 공동 연락사무소 결단코 철폐' 담화 내용도 내용이지만 담화가 공개된 시간은 기자로서 기사를 쓰기 참으로 아찔(?)한 시간이었다. 이른바 '불금'이 한창인 11시에 담화가 나온 것이다. 나는 하루를 마감하고 휴식을 취하려고 했던 참이었는데, 갑작스러운 이 담화에 다시 노트북을 꺼내 들고 기사를 써내려 갔다. 그날 내 기사가 송고된 시간은 해를 넘긴 6일 오전 12시 50분이었다.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폭파 현장(노동신문).[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DB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Redistribution Prohibited] rodongphoto@news1.kr


이후 열흘 사이 남북 통신연락선이 모두 끊기는 등 남북관계 위기감은 고조됐다. 남북관계가 파국의 정점을 찍은 것은 6월 16일, 개성 남북 공동연락사무소가 완파되며 역사 속으로 사라진 날이었다.

폭파가 이뤄진 때 나는 마침 개성에서 멀지 않은 남북 접경지역을 취재하고 있었다. 민간인에게 개방되지 않는 경기도 김포시 '애기봉 전망대'에서 사전 취재 승인을 받아 긴장감이 고조된 접경지 일대의 모습을 스케치하고 있었다. 정부는 북한이 연락사무소를 폭파한 시간을 19일 오후 2시 49분쯤이라고 발표했는데, 나는 같은 날 오후 2시부터 약 2시 40분까지 북녘 개풍군 마을을 바라보고 있었다. 개성과는 불과 수 km 떨어진 곳이었다.

연락사무소 폭파 사실을 접경지역에서 맞닥뜨린 나는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는 것 같았다. 북한에 대한 실망감, 남북관계의 좌절감까지 느껴졌다. 그러나 감정을 길게 느낄 시간이 없었다. 접경지역 현장에서 현장 분위기를 담는 기사를 작성해야만 했다. 마땅히 기사를 작성할 장소가 없어 30도가 넘는 더운 날 태양열을 한껏 받은 차에서 기사를 써야 했다. 그렇지만 처량한 내 처지보다도 연락사무소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사실에 대한 착잡함이 컸다.

불과 2년 전에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판문점과 평양서 만나 두 손을 맞잡았고, 그때의 뭉클함과 감동이 아직도 생생했는데 그 기억이 아득해지는 듯했다. 그땐 내가 통일부를 출입하게 된다면 "'평화'를 취재하고 싶다"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그 기대와는 다르게 악화하고 파국으로 치닫는 남북관계를 취재하는 현실이 참 씁쓸했다.

연락사무소가 폭파된 후에도 긴장감은 계속됐다. 그다음 날인 17일 오전 6시부터 2시간 만에 북한은 4개에 달하는 메시지를 쏟아냈다. 김여정 제1부부장은 남한이 특사 파견을 요청한 사실을 알리면서 '서푼짜리 광대극'이라고 비하했고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역스럽다'라고 비난했다. 북한에 대한 비판과 지적을 자제하던 정부도 '응분의 조치'와 같은 강한 어휘를 사용해 북한에게 경고를 했다.

북한의 공세와 정부의 맞대응이 수시로 쏟아지는 가운데 나를 비롯한 통일부 출입기자들의 혼란은 지속됐다. 다들 돌발 상황이 언제 어디서 발생하지 몰라 잠도 편하게 못 잤다. 숨 가쁘게 흘러간 약 20일간의 남북관계는 김 위원장이 6월 24일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예비회의에서 대남 군사행동 계획을 '보류'하면서 휴지기에 들어갔다.

북한을 취재한 지, 통일부를 출입한 지 6개월밖에 되지 않았다. 평화를 취재하고 싶어 이곳에 왔지만, 아직까지 그러한 뭉클한 감동의 현장에 다가가진 못했다.

통일부의 한 당국자는 내 명함을 받고 이렇게 말했던 적이 있다. "이름이 소망이니 통일의 소망이 될 수 있는 기사를 써주세요." 나는 그 말을 잊지 않을 것이다. 그 당국자의 말대로 앞으로 '통일', '우리 민족', '북한'의 소망이 될 수 있는 기사를 써 내려갈 수 있길 기대해 본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판문점에서 평화의집으로 이동하고 있다. 2018.4.27/뉴스1 © News1 한국공동사진기자단

 

 

 

뉴스1 <뉴스커넥트>를 통해 제공받은 컨텐츠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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