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대표상임의장 홍사덕)가 5․24 파고를 넘을 수 있을까.

민화협은 지난 3월 12일부터 ‘북한 비료 100만 포대 보내기 운동’을 시작했다. 20㎏ 복합비료 1만 포대를 북한에 보내겠다는 것이다. 1포대 가격은 1만2000원이다. 4월까지 120억원을 목표로 국민 1인당 1계좌 갖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지금까지 7만 6700포대를 보낼 수 있는 금액을 모금했다.

▲ 민화협이 벌이고 있는 '북한 비료 100만 포대 보내기 운동' 캠페인 ⓒ민화협 홈페이지

하지만 지난 14일 ‘북한 비료 100만 포대 보내기 운동’ 국민선포식이 행사 당일에 갑자기 취소됐다. 정부의 압력으로 취소된 것 아니냐는 관측이 지배적이었지만 민화협 측은 일을 급하게 추진하면서 생긴 절차상의 문제라고 설명했다.

민화협 측은 늦어도 다음 주 초에는 통일부에 대북 비료 지원 허가를 공식 요청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통일부는 5․24 대북제재 조치가 유효함을 들어 난색을 표하고 있다.

이번 사안이 주목받는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다. 하나는 5․24조치 이후 첫 대규모 대북 민간지원의 신호탄이 될 수 있겠냐는 것이고, 또 하나는 대북 민간지원을 이끄는 단체장이 ‘친박’의 중진인 홍 의장이라는 점 때문이다. 홍 의장은 국민선포식 취소 직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정부 측 의견을 따르면 민화협의 후배들에게 아주 나쁜 전통을 물려주게 되는 것”이라며 대북지원 소신을 굽히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친박 핵심인사의 뜻을 박근혜 대통령이 원칙대로 대응할지, 아니면 최근 연이은 ‘통일 대박’ 발언에서 보여주듯 대북 유화 조치로 이어질지 주목되는 지점인 것이다.

5․24조치는 2010년 3월 26일에 발생한 천안함 피격사건에 대해 북한의 책임있는 조치를 촉구하며 그해 5월 24일 이명박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를 통해 발표한 대북제재조치다. 주요 내용은 ∆북한 선박의 우리 해역 운항 전면 불허 ∆남북교역 중단 ∆우리 국민의 방북 불허 ∆북한에 대한 신규 투자 및 투자 확대 불허 ∆대북 지원 사업의 원칙적 불허 등이다.

통일부 대변인은 민화협의 대북 비료 지원 요청과 관련 “5․24조치가 비료나 쌀 같은 특정 품목은 안된다는 성격이 아니다”면서도 “(비료 지원은) 전반적으로 5․24조치 이후 정부 방침에 따라 영향을 받는 연장선상에 있다”고 밝히고 있다. 정부는 북한의 영유아 등 취약계층을 위한 분유, 의약품 지원 등에는 조금씩 길을 터줬지만 쌀과 밀가루 같은 식량 지원의 길은 막고 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통일 대박’ 등 이명박 정부 때와는 다른 대북 목소리를 내고 있는 만큼 5․24조치도 풀 때가 됐다는 목소리가 많다.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 시절 통일부장관을 지낸 정세현 원광대 총장은 최근 계간 <통일코리아> 창간호 대담에서 5․24조치와 관련 “비핵개방 3000과는 다르다고 선을 긋고 차별적 대북정책을 주장해온 박근혜 정부가 왜 발이 묶인 채 있는지 궁금하다”고 밝혔다. 2005년 김정일 위원장과 회담한 경험이 있고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한 열린 자세를 가진 ‘이명박 정부와는 다른’ 박 대통령이 왜 이명박 정부와 똑같은 행보를 하고 있냐는 것이다.

그러면서 정 총장은 “북한은 한반도 상황을 관리하거나 남북 관계를 안정적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데 있어서 주도적 역할을 할 처지가 못된다”며 “막혀 있는 것을 풀고 이끄는 것은 우리가 해야 한다. 한반도 긴장이 지속되는 상황을 막고 안보를 굳건히 하기 위해서라도 박 대통령의 신속한 결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실상 5․24조치의 해제를 주문하고 있는 것이다.

김성원 기자  ukorea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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