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겁도 많고, 부끄럼도 많다. 하지만 아이들을 모두 구할 수 있었는데… 아이들을 구하지 않은 정부의 안일한 대응을 보며 분노했다. 그 분노가 부끄럼 많은 나를 가만히 있지 못하게 만들었다. 내가 아는 하나님은 생명을 사랑하라 했고, 소중히 여기라 했다. 그래서 난 이 자리에 설 수밖에 없었다.”

지난 21일 한신대 신학생 이동빈군은 빡빡 깎은 머리가 어색한지 잠시 쭈뼛대다 마이크를 잡았다. 이군은 배짱이 두둑한 것도 아니고, 투쟁이 천성도 아니란다. 그런 그의 떨리는 목소리가 점점 울분으로 변했다. 오후 8시경 청계광장 소라탑 앞 5명의 신학생들의 삭발식이 있었다. 앵앵대는 바리깡 소리와 함께 일렬로 앉은 그들의 얼굴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서툰 바리깡질과 함께 흐르는 어색한 침묵을 거부하고, 힘찬 노래가 메들리로 울려 퍼졌다. 지켜보던 한 여학생은 노랠 따라 부르며 조용히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삭발 대열 중 또 다른 한 명인 한신대 신학생 김형우군은 교회 중고등부 전도사다. 예배당에 아이들 없는 모습은 상상할 수 없다는 김군은 '가만히 있으라'는 아버지의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고 했다. “교회에서 중고등부를 담당하고 있다. 천하보다 귀한 한 생명인데, 무고한 생명 300명이 희생됐다. 하루는 예배당에 들어가 아이들 없는 주일을 상상하니, 나도 모르게 큰 외로움이 몰려왔다. 세월호 사건이 터진 후 아버지로부터 두 통의 전화가 왔다. ‘총회가 나서기 전엔 넌 가만히 있어라’ 왜 우리가 가만히 있어야 되는가. 우리가 신학생이라면 행동하고, 분노하고, 사랑해야 되지 않겠는가. 내가 이곳까지 온 이유는 간단하다. 한 생명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긴 그분의 말씀에 따랐을 뿐이다.”

▲ 21일 삭발식을 마친 5명의 한신대 신학생들. ⓒ유코리아뉴스 최승대 기자

삭발 내내 눈물을 흘리고 있는 이민일 한신대 신학대학원 학생회장 ⓒ유코리아뉴스 최승대 기자

지난 15일 한신대 민중신학회 소속 신학생 3명이 시작한 삭발 단식농성은 7일차로 마감했다. 이날 5명의 신학생은 신학생 시국단식농성단을 결성하고, 농성을 계속해서 이어갈 것을 결의했다. 한신대 민중신학회 김준모 학회장은 지난 7일간의 단식농성에 대한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일주일 동안 배고픔도, 힘듦도 느끼지 못했다. 그 시간 동안 이곳을 찾아준 선후배들, 시민들이 물도 주고, 배고플까봐 단식하는 이들에게 빵, 우유, 김밥까지 주기도 했다(웃음). 너무 많은 사랑 덕분에 배고픈 줄 몰랐다. 사람은 빵으로만 사는 게 아니라 연대로 먹고 산다. 결국 우리끼리 더 연대하고, 뭉치고, 토론하고, 기도하고, 함께하는 것밖에 없다.”

격려차 방문한 김광수 목사는 젊은 신학자들의 행동에 박수를 보냈다. “불의한 시대에 신학생들이 외치는 것이 대견하다. 8명의 학생들이 용기있게 이 시대를 고발했다. 세월호 사건 문제의 본질은 무책임하고 부도덕하지 않으면 참을 수 없는 시스템의 문제다. 이들이 단식 농성을 계속 이어가겠다는 건 이 문제의 본질을 꿰뚫고 있다는 증거다.”

중간에 충돌이 일어날 뻔했다. 시국농성단 측이 봉고차로 짐을 실어 내리려는 걸 경찰병력이 급하게 차단한 것이다. 그 자리에 참여한 신학생들이 맞서면서 자칫 '대결'로도 이어질 상황이었다. 이는 지난 19일 김 학회장이 밝힌 파라솔을 설치하는 걸 막기 위해 경찰병력 100명을 동원했다는 사실과 맥락을 같이 했다. 결국 총회 소속 목회자들로 추정되는 이들이 중간에서 중재해 위기상황을 넘겼다.

그러나 경찰병력은 계속해서 충원돼 거리를 메웠고, 시위농성장을 고립시키는 형국이었다.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신학교 신입생들의 자유분방한 발언은 분위기를 누그러뜨렸다. 한신대 새내기 윤하늘양과 김우중군은 앞으로 나와 당당하게 마이크를 잡았다. “이런 자리 처음이에요. 경찰은 국민을 위해 일해야지, 정부를 위해 일해선 안 됩니다.” “지난주 목요일부터 참여하면서, 좋아하는 형 누나들 모습을 보며 자부심을 느꼈어요. 절 대신해서 싸워주세요.” 김군의 엉뚱한 발언에 농성장에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시국농성단 결성 이후, 다양한 지지와 격려방문이 이어지고 있다. 신학생 시국단식농성단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한신대 교수진과 개교회 목회자들의 방문 인증 사진이 계속해서 올라오고 있다. 지난 24일에는 세월호 참사 유가족이 방문해 손을 부여잡고 말없이 울다가기도 했다.

▲ 지난 21일 청계광장 소라탑에서 5명의 한신대신학생은 농성을 계속해서 이어갈 것을 결의하며 삭발식을 진행했다. ⓒ유코리아뉴스 최승대 기자

▲ 신학생 시국단식농성단 집회 참가자 모습. ⓒ유코리아뉴스 최승대 기자

한편, 농성장에는 신학생들의 문화공연과 길거리 특강이 열리고 있고, 한신대 신학대학원 학생회 주최로 매일 기도회가 진행되고 있다. 지난 23일에는 김용민 국민TV PD가 거리강연에 나섰고, 한신대 신학생들이 마임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오는 28일 오후 8시 한상균 전 쌍용자동차노조지부장이 길거리 특강에 나선다. 다음은 지난 21일 신학생 시국단식농성단이 발표한 기자회견문 전문.

성상현 기자  jacksung8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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