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교육감들에게 거는 기대

세월호 참사 직후 나는 YouTube를 통해 한 용인외고 1학년 학생의 다음과 같은 비명에 가까운 외침을 들었다. “모든 사람이 침통해하고 있는 이 사건을 나는 오늘에야 알았다. '중간고사' 기간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학교는 소위 말하는 SKY를 많이 간다. 이렇게 공부해서 외교관, 기자가 되면 뭐하겠느냐. 어른 되기가 무섭다...”

구조될 수도 있던 아이들 300여 명이 찬 바다에 빠져서 죽어 가는데, 공부 잘하고 시험 잘 봐서, 정부 고관, 정치가, 기업가, 기자가 되라는 학교. 그런데 이들 공부 잘해서 출세한 어른들이 그 참사의 원인을 제공하거나, 구조에 제대로 책임지지 않거나, 계속 거짓보도를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아이들이 알고 있다.

입시·고시 승자에 과도한 보상, 모두를 뒤틀리게

나는 80년대 초 ‘알 수 없는 이유로’ 나 정도의 ‘가방끈( )으로는 통상 가지 않는( ) 최말단 포병대대까지 ‘밀려가서’ 훈련과 작업(노동)으로 매일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냈다. 소수의 4년제 대학 재학자들과 대다수의 고졸, 전문대 출신들로 구성된 포병 중대에서 그동안 학력·학벌 사회의 기준에서는 잘난 사람으로 인정받아온 내가 거의 모든 일 처리에서 얼마나 무능하고 한심한 존재인가를 매일 참담하게 체험했다.

그런데 이 훈련과 작업에서 내가 뒤처짐의 굴욕을 맛보거나 큰 어려움이 닥쳤을 때 곧바로 도와준 전우들은 대학 출신자들이 아니었다. 세상에서는 열등감을 갖고 살았을 그들이 군대에서는 옆 사람 고통을 돌아보면서 위험에 앞장서는 고참들이었다. 4년제 대학 출신들은 자신이 욕을 덜 먹기 위해 쫄병들 못살게 구는 경향이 있었지만, 학력이 낮고 가난한 가정 출신 고참들은 겉으로는 난폭하게 행동해도 자신이 군대생활 편하게 하려고 다른 사람을 짓밟지는 않았다.

물론 나의 제한적 경험을 일반화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바닥’ 일과 ‘바닥’ 만남의 체험을 통해서 나 자신을 되돌아보았고, 우리 사회에서 시험, 입시경쟁에 더 많이 시달리면서 승자가 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를 실감했다. 서열 매기는 평가, 입시전쟁, 그리고 여기서 한 번 성공한 사람에게 평생토록 주어지는 과도한 사회적 보상은 우리 사회 전체를 뒤틀리게 만든다는 것을 알았다. 시험, 경쟁에 덜 매달렸던 사람들이 막상 집단의 위기에 처하면 오히려 더 앞장을 서고, 타인의 고통에 더 쉽게 공감한다는 것도 겪었다. 한국식의 학교, 입시제도는 인간성을 마모시킬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

유형원은 [반계수록]에서 “과거시험이 조선을 망쳤다”고 했지만, 나는 일제가 만든 이후 지금까지 유지되는 한국의 성적서열 매기기, 입시, 고시제도가 한국의 식민지제도, 군사독재, 재벌주도의 승자독식 천민자본주의를 지탱시켜온 기둥이었다고 생각한다. 고시, 입시 등 암기시험의 승자들은 강자들에게 복종해서 비상식적인 부를 챙기고도 자신이 잘나서 그렇다고 착각하면서 부끄러워할 줄 모르고, 반면 실패한 자들은 체념과 트라우마, 자살의 한계상황으로 몰아가는 제도다. 대학 진학률이 80퍼센트이지만, 중고등학교에는 배움의 즐거움이 없고, 대학에는 학문이 없다. 스스로 만들어보고, 질문하고 대화하는 학교, 자기가 원해서 책을 찾아보고, 생각을 정리하는 공부, 그런 것이 없는 나라에서 ‘많이 배운 사람들’이 더욱 반사회적이고, 이기적이 되는 것이 아닐까

강고한 이익 카르텔과 비뚤어진 자식 사랑에 맞서

이번 6.4선거에서 13개 시·도에서 ‘진보’ 교육감이 당선되어 파란이 일고 있다. 이는 교육 스트레스, 입시경쟁, 사교육 부담이라는 터널에서 성공적으로 빠져나온 승리자가 되려 하기보다는 터널이 숨막혀 죽겠다는 비명소리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교육과 학교를 경쟁과 출세의 장으로 보기보다는 즐거움 배움의 장으로 만들고 싶다는 학부모의 작은 열망이 표현된 것 같다.

그러나 학생들이 “가만 있으라”는 말에 복종하고, 입시경쟁을 내면화해야만 기성의 질서가 유지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 ‘진보’ 교육감의 당선을 ‘전교조의 승리’라고 비틀고 편 가른다.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갈 길이 험난하다. 새 교육감들은 교육관료, 교총, 사학재단, 입시학원, 보수언론, 명문고 명문대 동문들이 만든 이 거대한 이익 카르텔은 물론 한국인들의 내면화된 경쟁, 서열주의, 비뚤어진 자식 사랑과도 맞서야 할 것 같다.

우리 모두 새 교육감들에게 힘을 몰아주어 당장 학생들을 이 지옥에서 해방시켜야 하고, 뒤집어진 나라를 바로 세워야 한다.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겸 민주주의 연구소 소장

김동춘 dckim@s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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