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을 향한 작은 몸짓이 되어

2011년 7월, 지금으로부터 약 3년 전 나는 CCC(한국대학생선교회) 단기선교팀으로 중국 접경지역을 다녀왔다. 당시 내 나이는 21살이었고, 마음에 품어왔던 북한 땅을 직접 보게 된다는 것이 마냥 신기하고 떨렸다. 우리 팀은 첫 주에는 중국 연변대학교에서 한족 친구들을 만나 복음을 전했고, 나머지 한 주는 압록강과 두만강 근처 도시를 다니며 북한 내부 소식을 은밀히 전해 듣게 되었다. 정말이지 꿈 같은 시간들을 보내며, 그 매순간 순간을 눈으로 귀로 또 내 마음으로 담았다.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 마지막 날, 우리는 북한에서 빵 공장을 운영하시는 한 선교사님 댁을 방문했다. 접경지역의 한 도시 빌딩 옥상에서 그분의 사역에 대해 듣게 되었다. 처음 선교사님께서 빌딩 꼭대기로 올라가자고 할 때 나는 굉장히 의아했다. 약 20명의 팀원들이 들어갈 만한 곳이 없어 옥상으로 가자고 하시는 건가?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옥상 문을 여는 순간 그 의문이 바로 해소됐다.


▲ 건물 옥상에 올라 압록강철교와 신의주를 바라보며 ⓒ손다은

내 눈 앞에 북한 땅 신의주가 활짝 펼쳐져 보였기 때문이다. 잠시 동안 넋을 놓고 그 땅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내가 서 있는 중국 단동과 북한의 신의주, 그리고 끊어진 압록강 철교를 보니 6·25의 아픈 흔적이 그때 그대로 멈춰 서 있는 듯 했고, 끊어진 남과 북의 모습과도 많이 닮아있어 마음이 참 아팠다. 중국 사람들은 새로 세워진 조·중우의교를 통해 이렇게 자유로이 왕래하는데, 우리는 북한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년이면 남북이 분단된 지 70년이 된다. 하염없이 흘러가는 시간을 잡을 방법이 없다.

북녘 땅은 고요하며 잠잠했다. 곧 부서져 내릴 것 같은 건물들이 힘없이 버티고 있었다. 고요한 그 적막이 북한의 현재를 말해주는 것 같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순간, 내 마음속에는 좌절감이 아닌 기대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 땅을 향한 내 마음속 깊은 기도가 올라왔고, 도저히 숨어져 보이지 않았던 통일된 남과 북의 모습을 갈망함으로 선포했다. 그 누구도 아닌 내가 먼저 끊어진 남과 북을 잇는 통일의 씨앗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눈에 보이진 않았지만 내 마음속 통일은 그때 시작되었다. 정말이지 큰 꿈을 보았다.

그날 밤, 우리 팀은 세상에서 단 한 번뿐인 시 낭송회 ‘詩 마려운 밤에’를 열었다. 주제는 ‘북한을 향한 나의 마음’이다. 처음 시 낭송회 일정이 잡혔을 때, 시에 대해 문외한인 나를 포함하여 많은 팀원들이 어려움을 토로했다. 누구 하나 예외 없이 강제로 ‘시인’이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 부담감으로 인해 우리는 하루 종일 펜을 잡았다 놓길 반복하며 시를 써내려갔다.

저녁이 되고 우리만의 조촐한 시 낭송회가 시작되자 잔잔한 배경음악과 함께 낭송자를 위한 작은 무대가 준비되었다. 객석의 응원어린 눈빛이 무대를 꽉 메웠다. 이윽고 각자의 마음을 고스란히 녹여낸 시를 차분히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그 밤을 새기며, 2주에 걸친 우리의 여정은 이토록 아련하게 끝이 났다. 한국으로 되돌아오는 날, 우리는 인천으로 가기 위해 중국 대련에서 큰 배를 탔다. 처음 중국으로 출발하는 배를 탔을 때 나는 도착하는 그 순간까지 들떠 있었다. 하는 것마다 새로운 경험이니 가만히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돌아오는 배 안에서의 내 마음은 많이 달라졌다.

사실 처음 단기선교를 떠날 때 마치 나는 계주선수 같았다. 우승에 대한 염원을 본능적으로 지닌 계주선수. 2주의 시간 동안 통일을 위해 적어도 내가 어떤 일을 성취하고 돌아와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기선교 기간을 통해 깨닫게 된 것이 있다. 통일을 위해 내가 해야 하는 것은 바로 ‘북한을 향한 작지만, 큰마음’을 갖는 것이었다. 사실 꿈을 향해 준비하는 20대인 우리는 실제적으로 통일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이 완전 뒤바뀐 것이다. 우리가 씨를 심고 물을 주면 시간이 지나 싹이 나고 열매가 맺듯이, 우리의 작은 마음을 계속 키워나간다면 이후의 삶 속에서 반드시 통일을 살아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내가 ‘작지만 큰 꿈’이라고 말한 이유다.


▲ 백두산 자락에서 팀원들과 함께 ⓒ손다은

2002년 월드컵, 대한민국의 첫 승리를 위한 염원, ‘꿈은 이루어진다’. 국민들의 응원과 염원이 모여져 월드컵 4강 진출 신화를 보게 된 것처럼, 통일에 대한 거창한 꿈도 작은 바람과 염원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나는 믿는다. 각자의 자리에서 통일을 꿈꾸고, 그 보이지 않는 꿈들을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행동하고 나누는 것. 이것이 곧 분단이 시퍼렇게 살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통일을 꿈꾸는 것이고 마침내 통일을 살아가는 길 아닐까.

손다은/ 부경대 신문방송학 4년

다음은 그때 낭송했던 팀원들의 시 일부다. -필자 주

<이제껏 몰랐습니다>
최아란

내가 심어야 하는 곳인 줄
나의 눈물이 떨어져야 하는 곳인 줄

그 땅을 향한 당신의 통곡에
내 눈과 귀가 닫혀있었습니다

주님, 이제는 심겠습니다.

몸소 그 몸으로 나의 막힌 담을 허무셨던 것처럼
오늘 이제껏 나에게 보여준 그 땅의 막힌 담
당신의 가슴으로 이제 제가 허물겠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땅을 위하여

<너는 더 이상 광대가 아니다>
손다은

너는 우리에게서 멀어졌다
너는 홀로 갇혀 있다
너는 모두의 슬픈 광대가 되어버렸다

주인 앞에서 흘린 수많은 은혜의 눈물은
굶주림의 아픔이 되어 가슴을 적신다.

주인을 향한 북받치는 분노가
아련한 노랫소리로 승화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