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이 꿈꾸는 나라’란 제목이 붙은 이 책은 제목에 ‘코리아’가 있지만 내용은 독일에 관한 책이다. 저자는 독일과 우리나라의 유사한 점을 8가지로 정리하고 있다.

첫째, 2차 세계대전 이후 분단된 나라라는 점, 둘째 ‘라인 강의 기적’과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경제성장을 이뤄냈다는 점, 셋째 독일 8200만 명, 통일한국 8100만명(남한 5000만 + 북한 2400만 + 재외동포 700만)인 인구 규모, 넷째 영토의 크기, 다섯째 천연자원보다는 인적자원에 의존한다는 점, 여섯째 제조업이 강하다는 점, 일곱째 나라의 흥망이 수출에 달려 있다는 점, 여덟째 집단문화적 성격과 사회적 평등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높다는 점 등이다.

독일과 한국의 유사성뿐 아니라 양국간 특별한 인연도 적고 있다. 한국의 고속도로 건설, 자동차·석유·조선산업의 중요성을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조언해 준 이가 독일의 에르하르트(Erhard) 총리였고, 1963년부터 1976년까지 약 1만 명의 간호인력과 8000명의 광부들이 독일로 파견되었으며, 1997년 외환위기 시에 독일이 알리안츠 은행을 통해 장기저리 융자를 지원해 주기도 했다. 또 독일은 한국의 민주화 인사들을 지원하기도 했다.

이러한 유사성과 특별한 인연이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국가발전시스템을 고민하고 있는 한국에 독일은 좋은 모델이 될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이 생각을 뒷받침하기 위해 저자는 독일사회의 특성에 대해 풍성한 사례를 들어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다. 저자 김택환은 독일 본(Bonn) 대학에서 정치학, 사회학, 언론학을 두루 공부했으며 30년 넘게 독일을 연구해 온 전문가다. 한때 기자이기도 했기 때문에 무엇을 전달해야 하는지, 어떻게 전달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사실 저자는 요즈음 우리나라에서 가장 바쁜 사람 중의 한 명이다. 최근 독일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독일 관련 세미나·토론회가 자주 열리는데 저자는 단골 초청인사이다. 국가발전방향을 모색하는 다양한 모임에도 독일모델에 이해가 깊은 저자는 자주 나타난다. 한 방송사의 독일 관련 다큐멘터리에도 출연하기도 했다.

독일 부흥의 배경
현재 독일은 프랑스, 미국 등 선진국에 비해 청년실업률이 절반에도 미치지 않고, 경제상황에 대한 만족도가 73%에 이른다고 한다. 독일은 미국 다음으로 제3세계에 많은 지출을 하고 있기도 하다. 독일은 또 사실상 유럽연합(EU)을 주도하고 있다. 27개의 EU 회원국 중 가장 많은 예산을 부담하고 있기도 하다. 독일은 유럽경제위기 상황에서도 전혀 요동이 없었다.

▲ 책 '넥스트 코리아' 표지

독일의 이러한 부흥의 배경이 무엇인가. 저자는 촘촘한 복지시스템을 가장 먼저 꼽는다. 의료·실업·재해·연금·간병보험 등이 가장 잘 짜여진 나라라고 독일을 평가한다. 그래서 “아파도 겁낼 필요가 없고, 실업으로 거리에 나앉을 염려도 없고, 노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라고 적고 있다. 이러한 사회보장제도가 사회안정의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4무(無)’의 교육시스템을 들고 있다. 독일에는 대학입시 전쟁, 대학 등록금, 사교육 과외, 학교폭력이 없다고 한다. 대학에 가고 싶은 마음이 있으면 간다. 돈이 없어 배우지 못하는 일이 없다. 학교에서 음악·미술 등도 책임진다. 또 폭력을 일으킨 학생에겐 100Km 이상 떨어진 곳으로 강제전학을 시킬 정도로 엄한 대응을 하기 때문에 학교폭력 문제가 사회문제로까지 부상하지 못한다고 한다.

저자가 중요하게 꼽는 것 중의 하나는 바로 노사공동경영 문화의 정착이다. 경영진과 노동조합간에 사회적 파트너라는 인식이 형성되어 있다. 1972년 제정된 노사공동결정법은 500인 이상 기업에서는 회사경영의 주요 사항을 노사가 공동으로 결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는 노사간 분쟁을 줄이고 협력을 통해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기능을 해왔다.

이와 함께 독일의 힘은 독일기업의 99%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에서 나온다고 보고 있다. 독일의 유명 자동차 회사들이 떠올려지기는 하지만 독일경제의 중심은 우리처럼 대기업이 아니라 중소기업, 즉 ‘미텔슈탄트’(Mittelstand)이다. 고품질 하이엔드 시장을 장악하는 중소기업을 ‘히든 챔피언’이라고 하는데 전세계에서 독일이 차지하는 비율이 75%를 넘는다고 한다. 책에는 이를 가능하게 하는 배경으로 청소년들이 장인, 즉 마이스터를 꿈꾸고 기독교의 영향으로 소명의식을 갖고 일을 하는 분위기도 강조하고 있다. 우리의 대학 진학률은 75% 정도 되는데 독일 학생의 대학진학률은 35%선에 불과하다.

무엇보다 가장 부러운 것은 정치영역이다. 현재 독일 총리는 앙겔라 메르켈이다. 보수정당인 기민당 소속이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다른 정당과 연정을 하고 있는데 연정그룹에 사민당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사민당은 진보정당이다. 우리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그래서 현재 독일의 이른바 흑적(黑赤) 연정은 연방 하원 631석 중 79.8%를 점유하고 있다. 안정적 국정운영이 가능할 뿐 아니라 불필요한 정쟁이 있을 리 없다. 내부에서 끊임없이 토론하고 타협해 정책을 결정하고 추진하는 것이다.

독일정치, 한국정치가 가야 할 길
이러한 독일 정치의 타협과 협력문화는 한국정치도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고 본다. 정치가 정치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것이라면 못할 게 아니라고 본다. 한국정치는 갈등을 해소하기보다는 오히려 갈등의 진원지 역할을 하고 있다. 사회의 통합은 정치로 인해 더 요원해 보이기까지 하다. 단순히 다수결로 해결하려는 낮은 수준의 민주주의에 만족함으로써 일상적 갈등과 대립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 독일의 좋은 것을 수용해야 하는 것에 순서를 매긴다면 첫째가 바로 정치문화여야 할 것이다.

『넥스트 코리아』는 독일을 통해 한국의 다음 모델을 고민하게 하는 책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불가피하게 받아들였던 신자유주의가 사회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중산층을 몰락시키고 공동체를 파괴해 왔다. 새로운 국가발전시스템을 모색해야 하는 시점임은 모두가 동의하고 있다. 저자가 소개하고 있는 독일 모델은 우리를 돌아보게 하고 더 나은 세계, 또 다른 삶이 있을 수 있다고 우리에게 속삭이고 있다.

윤희웅/ 민정치컨설팅 여론분석센터장 

윤희웅  waymaker@liv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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