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평균 생산력을 보여주는 1인당 GDP나 PPP(구매력 평가지수) 잣대로 OECD 주요국과 한국을 비교해보면, 한국 특유의 노동시장의 이중구조와 경쟁 및 갈등구조가 어디서 연유하는지 알 수 있다. 한국은 해외(수출대기업) 부문과 공공부문 및 국가의 진입 규제 등으로 보호하는 부문이 너무 많은 파이를 가져간다. 전자의 수혜자는 재벌대기업 및 제조업과 울산, 거제, 포항, 창원 등 수출•대기업 도시다. 후자의 수혜자는 공무원, 교사, 공기업뿐만 아니라 국가가 수량과 업역을 정하는 변호사 등 ‘사’자 직업과 철저한 규제 산업인 금융, 방송, 통신, 의료 산업 등이다. 공공부문과 과보호(규제) 부문으로 들어가는 통로는 학위•시험 사다리 외에는 없기에 그 아래서 살인적 경쟁이 벌어진다. 과잉 고학력화, 사교육 광풍, 입시비리는 필연이다.

한국은 제조업과 수출대기업의 산업적 위상에 비하여 고용 비중이 너무 낮다. 그만큼 노동시간도 길고, 종사자들의 평균적 처우는 높다. 이들의 경제적 위상은 점점 높아지지만, 고용비중은 점점 낮아지고, 평균적 처우는 노동의 양, 질이 아니라 기업 수익성과 노조 교섭력과 연공서열에 따라 점점 올라간다. 이곳을 나와서는 비슷한 근로조건을 보장해 주는 곳을 찾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는 비굴한 직장 노예가 된다. 기업 범죄의 하수인이 된다. ‘해고는 살인’으로 되기에, 채용은 살인을 예비하는 것이 된다. 시장의 변덕에 의해 요동치는 민간 기업은 아무리 잘 나가는 기업이라 하더라도 국내 투자와 채용을 겁내지 않을 수 없다. 일자리 부족, 불안, 불만이 점점 심화된다.

▲ 한국 특유의 양극화 구조 ⓒ김대호

한국 특유의 노동시장의 이중화, 경제사회적 양극화, 일자리 등 3불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기본적으로 격차(1차 분배구조), 사다리, 매트리스(2차 분배구조)를 바로잡는 것이다. 그 동안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를 부르짖는 분들에 의해 매트리스=사회안전망 관련 정책 대안은 비교적 많이 나왔다고 보아야 한다. 조세재정을 통한 격차 완화 관련 대안(근로장려세제, 기초연금제도 등)도, 각종 불공정거래를 억제, 엄단하는 대안도 마찬가지다. 경제민주화는 재벌대기업에 의해 저질러지는 불공정거래(일명 갑질)와 재벌대기업 지배주주에 의한 부당행위(전횡, 배임 등)나 기업범죄(횡령 등) 억제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런데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촉진하는 메커니즘에 비추어 보면, 이는 여전히 중요한 요인을 놓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첫째, 모든 경제사회적 현안들도 마찬가지이겠지만, 노동시장의 이중화, 경제사회적 양극화 역시 통섭적 연구와 논의가 필요하다. 특히 노동시장 연구자들, 노동운동가들, 시장•산업•기업 연구자들, 금융시스템 연구자들, 공공(정치, 행정, 공기업 등) 연구자들의 교류와 협력 연구가 절실하다.

둘째, 1인당 GDP를 기준으로 산업, 기업, 직능의 처우를 재 보았을 때, 한국의 고용임금 구조가 상위 20%의 권리, 이익만 우뚝 솟은 맥주컵(인수봉)구조이고, 대부분의 선진국은 접시(남산)구조가 맞다면,[1] 또 한국은 위치=소속=지불능력에 따라 처우가 크게 차이가 나는 소속(직장) 계급 사회적 양상을 띠는 것이 맞다면 그 해결책의 기조는 간명하다. 몇 십 년이 걸리더라도 직장 계급 사회를 완화하는 것이다. 인수봉을 눌러서 펑퍼짐한 남산으로 만드는 것이다. 고용유연성 격차, 임금 격차를 최대한 합리화하고, 가능한 줄이는 것이다. 이 원칙도 그리 새로운 것이 아니다. 연대성과 공평성이다. 연대성은 과거 직장 내에서 실행하던 하후상박 원칙을 산업과 사회 전반에 적용하는 것이다. 공평성은 많은 것을 국제비교하고, 또 시장원리를 적용하면 되는 것이다.

문제는 한국 특유의 인수봉 구조 혹은 직장계급 사회를 만든 요인은 생산성 격차와 더불어, 독과점적이고 기득권 편향의 시장 구조와 공평성•연대성과 담쌓은 공공과 노조운동의 소산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생산성 격차를 줄이는 것과 노조운동의 오랜 경향성을 바꾸는 것은 엄청나게 어려운 난제이다. 하지만 독과점적이고 기득권 편향의 시장 구조를 바꾸고, 양극화를 완화하기는커녕 더욱 악화시키는 공공(정치, 행정, 공기업 등)을 바꾸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다고 보아야 한다.

셋째, 독과점적이고 기득권 편향의 시장 구조를 바꾸는 것은 인수봉을 위에서 까 나가는 것이 아니라 아래를 까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과점 구조의 맥주 시장에 진입장벽을 낮추어 다수의 경쟁자를 집어넣었던 것처럼, 시장구조를 조사하여 경쟁(신규 진입자)을 막는 요인을 제거해야 한다. 동시에 이들에게 신용을 공급할 금융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

넷째, 공공은 정치, 행정(규제), 사법(감독), 정부조달, 공기업, 변칙적 민간기업 인사 개입 등을 의미하기에, 업역과 규제 및 이를 생산하고 감독하는 시스템과 처우(근로조건) 전반을 손 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처우는 투명성을 강화하고, 국제비교를 통해서 여론의 감시와 압력을 형성하고, 처우 기준을 100인 이상 민간기업의 평균이 아니라, 중위임금으로 바꾸는 작업 등을 통해 어느 정도 합리화할 수 있다. 업역을 개혁하는 것도 공기업 전체를 민영화하는 것으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가치생산사슬을 분해하여, 공공영역에 남겨둘 것은 확실히 남겨두고, 나머지는 시장으로 가져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규제 역시 규제라고 생각하지도 않는 규제를 원점에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교육, 금융, 지방행정(자치) 등의 영역이 그것이다. 그리고 공기업은 소비자에 의한 규율도, 금융시장에 의한 규율도, 공기업 경영자에 의한 규율도 작동하지 않기에—자율 책임 원칙 자체가 작동하지 않기에-- 규율 메커니즘 자체를 근원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노사 자율 교섭 운운하는 것은 거대한 사기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공무원을 규율하듯이 공기업의 인사와 처우를 규율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 자율책임 원칙이 작동한다면, 자율을 많이 줘야 마땅하지만, 그것이 아니라면 달리 생각해야 마땅하다.

다섯째, 정규직을 정상, 비정규직을 비정상으로 간주하는 고용노동 패러다임 자체를 바꿔야 한다. 이 둘 다를 비정상으로 간주하고, 이른바 중규직을 정상으로 간주해야 한다. 적어도 현재의 정규직을 예외로 보아야 한다. 그런데 이는 너무나 오래된 고정관념이기에, 우선 공공부문에서라도 2년, 3년, 5년 등 계약직을 늘리고, 엄격한 성과평가에 입각한 재계약 형태로 계약을 연장해가는 것을 확산해야 한다. 비정규직을 최대한 제한하는 것을 기조로 한 현행 비정규직 법을 개정하고, 지식노동의 경우 계약직을 보편화하는 법을 제정해야 한다. 미래의 고용노동 패러다임(비전)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현재의 패러다임으로 현재의 미래가 있을지 캐 물어야 한다.

여섯째, 노조운동의 철학, 가치, 행태, 조직 대상, 조직 형태 등을 근원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아니 대전환이 필요하다. 진짜 사회적 약자들의 연대와 담합을 활성화하되, 근로조건의 표준을 정하여 사용자 단체와 계약하는, 고전적인 형태의 노조운동을 개발하고, 활성화해야 한다.

한국 노조운동이 살려면, 또 서구처럼 정치적으로 높은 위상을 차지하려면 ‘선망의 직장’ 혹은 ‘신의 직장’ 임직원들이 누리는 ‘부’와 ‘권리’는 어떻게 생긴 것인지? 이것이 지속가능한지=재생산 가능한지, 자신이 생산한 가치와 누리는 처우가 서로 조응하는지 물어야 한다. 그리고 노동조합은 도대체 뭐 하는 존재인지? 그 사명(소임)을 다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치열하게 물어야 한다. 지난 30년 동안 “단결하면 힘 생기고 투쟁하면 쟁취한다”는 신념으로, 갑-을-병-정 가치 생태계 개념도, 미래 세대의 기회(일자리 나누기) 개념도, 우리의 생산력 수준 개념도 완전히 접어두고, 그저 수익성과 교섭력이 허락하는 한 올리고, 따내는 일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한, 오래지 않아 대가 끊기거나, 사회적 고립으로 인해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고용임금 사상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선진국의 정신과 방법을 제대로 배워야 한다.

일곱째, 공공정책 담론 생산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이는 정치와 정당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해서 그런 측면이 있지만 어쨌든 관료의 영향력이 너무나 크다. 노조와 재벌은 태생적 한계 때문에 공공정책담론 생산에 한계가 있다. 관료적 한계로 인해 양극화 등 다양한 요소들이 연계되어 있는 복잡한 문제를 통섭적으로 파헤치려는 시도가 부족하다. 한국 사회의 제반 문제는 세계적 보편성(선진국적 시간대)과 한국적 특수성(한국사적 시간대)이라는 두 개의 시각으로 분석해야 마땅한데, 대체로 세계적 보편성의 시각(선진국 이론 틀)으로만 분석하는 경향이 강했다. 고용노동 문제 역시 (비교적 동질적인) 노동과 자본의 역관계 프레임(노동소득 분배율과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 등)으로 주로 분석하고, 모든 면에서 쏠림(편중)이 심한 나라를 (국제적) 평균 지표에 의거하여 분석을 하다 보니 한국 특유의 모순부조리 구조를 제대로 인식할 수가 없다.

여덟째, 정치가 제 역할을 하도록 만드는 선거/정당제도 개혁이 긴요하다. 정치가 제 역할을 하면 왜곡된 시장, 공공, 금융, 부동산, 사법 시스템과 지방발전의 관건인 지방자치 시스템을 몽땅 바로 잡을 수 있다. 사회전반에 투명성을 강화하고, 시장원리를 흘려 과잉보호 부문에는 벽을 허물고, 과소 보호 부문에는 안전망을 갖추는 일을 할 수 있다. 불공정 거래가 횡행하는 곳에는 공정헬기를 띄워 항상적으로 감시할 수 있다. 공공부문 종사자가 대부분인 학위, 시험 사다리의 승자들이 누리는 과도한 권리, 이익도 적정화할 수도 있다. 복지국가는 세금 위에 건설되는 것이 아니라, 적정한 격차, 사다리, 매트리스 위에, 정직과 투명과 공평이라는 인프라 위에 건설된다.<끝>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

*본 기사는 5월 21일 전국은행연합회관에서 열린 한국노동연구원 주최의 정책토론회 중에서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의 발제문만을 추출한 것입니다.

김대호  itspolitic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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