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극장국가’라는 이 책의 제목은 양날의 칼이다. 이유가 궁금해 펼쳐보게 만들기도 하지만, 반대로 갸우뚱하면서 외면하게도 만든다.

문화인류학자인 두 저자 권헌익·정병호는 북한이 “수수께끼 같은 존재가 아니며 그랬던 적도 없다”(9쪽)고 하지만, 우리가 접할 수 있는 북한이 너무나 단편적이고 극단적이어서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나도 북한을 취재하면 할수록 북한이 도대체 어떤 사회인지 더 미스테리해졌다. 평양을 방문했을 때 평양역 앞을 가득 메운 사람들, 거리 곳곳의 평화자동차 광고판, 맥주나 핫도그를 파는 가게의 네온싸인 같은 일상적인 풍경은 뜻밖에 친근했다. 남북 공식 행사에 만난 한 북한 여성 관료가 “피아노 학원을 다니는 자녀가 대학을 갈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할 때는 이게 거짓말인지 진짜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똘이장군’이나 ‘해돌이의 모험’ 같은 반공주의 선전물을 접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던 나 같은 사람에게는 너무나 익숙해서 낯선 얘기였다.

반면 탈북자들이 전하는 북한의 일상은 오히려 반공 애니메이션이 순진하게 느껴질 정도로 비극적이었다. 굶어 죽은 부모 품을 떠난 아이들이 거리를 떠돌며 생거지가 되는 모습이나 정치범수용소의 엄혹한 이야기들은 반대로 내가 평양에서 엿보았던 시민들의 일상과는 너무나 달라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미스테리 북한’을 어떻게 볼 것인가?
북한이라는 사회는 통상의 문화인류학적인 관찰이 불가능하고 이렇게 극단적인 전언과 단편적인 관찰만 있기에 어떻게 종합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지 난감하다. 이 책은 우리보다 더 북한이 낯설고 미스테리한 서양인들에게 북한을 설명하기 위해 저자들이 영어로 먼저 쓴 책이다. 영문판은 김정은의 3세 세습이 아직 가시화되기 전인 2012년 3월에 미국에서 출간됐다.

두 저자의 ‘내재적 접근’이 이른바 송두율식 연구와 다른 점은 이 책의 제목에 나온 대로 극장국가(Theater State)라는 아이디어를 북한에 적용해 북한 내부 문제가 스스로 정체와 한계를 드러내도록 한다는 점이다. 즉 아리랑대공연이나 각종 선전선동 문건 등에서 나타난 북한의 주민 동원 논리를 풍부하게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오히려 이 때문에 북한이 스스로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는 통렬한 비판을 이끌어냈다. 북한을 최대한 이해하려는 차분한 학문적 접근을 통해 이런 비판을 해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읽어볼 만한 책이 되었다.

하지만 이 책의 전반부는 다소 실망스러웠다. 책의 3분의 2에 걸쳐 김정일이 어떻게 김일성의 카리스마를 세습해냈는가를 설명하는데, 북한 선전물이나 뉴스를 면밀히 관찰해온 이들에게는 다소 지루한데다 ‘정말 북한은 극장국가로구나’라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앞서 소개한 나의 경험처럼 북한이 워낙 단편적이고 극단적인 에피소드로만 알려져 있기 때문이지만, 아리랑 대공연이나 고난의 행군이라는 스펙터클이나 총대가문이니 김정숙 장군이니 하는 상징이 북한 사회가 작동하는 근본적인 원리인지는 의문스러웠다. 사실은 김일성에서 김정일로 이어지는 세습이 필요했고, 인민을 억압하고 동원하는 체제를 유지해야 했기 때문에 화려한 쇼가 필요했던 것 아닌가? 극장국가가 북한 권력의 작동 원리라고 하는 것은 원인과 결과가 뒤바뀐 설명이 아닐까?

탈냉전 시대 구식국가 아닌 탈식민지 과정의 응답 국가?
이 책의 3분의2를 읽기까지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은 찾기 힘들다. 다만 몇 가지 신선한 시각은 있다. 북한이라는 국가의 존재를 ‘탈냉전시대에 생존한 구식 사회주의 사회’라고 보지 않고, 탈식민지적 질문에 답하는 과정을 통해 형성된 국가(27쪽)라는 것. 국제 냉전의 종식과 소련제국의 붕괴 이후에 북한의 이런 성격은 그 전보다 더 강해졌다고 저자들은 보았다. 2명의 저자는 “냉전의 역사를 탈중심화하고 다원화하려는 노력을 통해서만 북한이 왜 전세계적인 탈사회주의적 전환의 흐름을 거부하게 되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고, 또 그런 점에서, 냉전이 왜 한반도에서는 종식되지 않았는지도 알 수 있을 것”(71쪽)이라고 지적했다.

▲ '극장국가 북한' 책표지

이 책에서는 1970년대를 남북한의 역사에서 굉장히 중요한 시기로 본다. 베트남에서 전쟁이 벌어져 남한이 대규모 군대를 파병했고, 중국은 미국과 데탕트를 이루면서 베트남 전쟁에서 손을 뗐다. 1972년의 남북공동성명과 뒤 이은 박정희 유신체제-김일성 수령체제 수립을 데탕트 시대에 대응한 남북한의 대책으로 설명하고 있다.

유신-수령 체제에서 남북한은 결정적으로 운명이 갈라지는데, 남한은 반공주의 경제발전 모델의 교과서적인 사례를 성공적으로 추진하고 뒤이어 민주주의 혁명으로 반공독재마저 바꿔냈다. 반면 북한은 아무런 저항 없이 ‘혁명독재의 조직적이고 미학적인 힘’(75쪽)을 계속해서 확대했다. 그 주인공이 바로 1972년 김일성의 후계자로 결정된 김정일이었다. 영화광이니, 가수와 배우들을 불러 밤낮 술판을 벌이니 하는 식으로 알려진 김정일의 모습은 사실 김일성의 카리스마를 안정적으로 세습하기 위해 권력을 어떻게 연출할 것인지 고민하는 기획자의 탐구과정이었던 셈이다.

유신체제와 달리 북한의 수령체제가 큰 저항 없이 안착할 수 있었던 것은, 해방 이후 남한에서는 이승만이 망명하고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키는 혼란을 겪는 동안 김일성은 한국전쟁에서 사실상 실패했는데도 반대파 숙청과 경제적 재건을 1970년까지는 당시 지구상의 어떤 신생독립국보다 성공적으로 이뤄냈기 때문이다. 이런 바탕 위에서 김일성은 항일독립운동의 비주류였던 만주빨치산의 역사를 중심으로 끌어당겼고(혁명열사능), 인민과 함께 호흡하는 현지지도로 자신의 카리스마를 한반도 북쪽 구석구석까지 뻗쳤다. 그리고 이런 카리스마를 일상적으로 유지하고 재생산하기 위해 갖가지 선전선동이 이뤄졌으며, 김정일이 사회주의국가 중 유일하게 권력세습을 이뤄낼 수 있었던 것도 이 덕분이라고 이 책은 설명한다.

언술에 불과한 ‘극장국가’
그러나 후반부에서 극장국가적인 모습이 바로 북한이 현재 겪고 있는 어려움의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비판하면서 북한이 극장국가에서 벗어나는 새로운 혁명을 이뤄내야 한다고 질타하고 있다. 다시 말해 극장국가는 북한의 작동 원리가 아니라, 김일성-김정일 세습 권력이 어떻게 유지되는지 주민들에게 설명하는 하나의 언술에 불과하며, 1990년대 북한에 대규모 식량난이 닥친 바로 그 시기에 북한 권력이 식량난에 대처하는 일보다 극장국가적 언술을 만들어내는 데 집착한 것이 북한의 가장 큰 문제라는 것이다. 책 전반부에서 끊임없이 의문을 떠올린 독자들에게 후련한 답을 준 셈이다. 결국 김정일이 기획한 ‘극장국가 북한’은 ‘긍지에 찬 유격대 국가이지만 실패한 가족국가’(260쪽)가 되어 버렸다.

한 국가체제를 극장국가로 설명한 것은 이 책이 처음이 아니고, 북한에만 적용된 개념도 아니다. 애초 인도네시아 발리의 한 부족국가를 설명하기 위해 발명된 개념인데다, 천황을 내세워 근대화를 이룬 메이지 유신 이후의 일본 사회를 극장국가로 설명한 시도도 있었다.

어떤 점에서 극장국가는 현대 민주정치체제의 한 속성이기도 하다. 박근혜 대통령의 한복 패션이나 영어 연설이 화제가 되는 것도 그런 맥락이 아닐까. 버락 오바마가 미국의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최고의 연설능력 때문이었다. 게다가 지금은 인터넷 시대, ‘좋아요’의 시대다. 권력을 더 쉽게 일상적으로 연출할 수 있고, 그 연출에 군중을 더 쉽게 동원할 수 있고 더 쉽게 동의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열렬한 영화팬도 극장에서만 살 수는 없다. 극장에는 일상이 없기 때문이다. 일상이 없이 연기(Performance)로만 이뤄지는 삶은 송강호에게도 불가능할 것이다. 3대 세습을 한 김정은 시대에 아직 극장국가적인 모습이 두드러져 보이지 않는 것이 다행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론 더욱 불안한 이유다.

김지방/ 국민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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