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10년 뒤 통일된다고 가정하고서 통일한국이 맞이할 주변 환경과 그 외교적 과제가 무엇일까를 예측해 보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주변 주요 국가들의 거시적 외교 지향성과 동북아시아 지역정치 환경의 구조적 특성을 살펴보면서, 이런 지적인 실험을 해보는 것이 불가능하지만은 않다. 동북아는 냉전 지역정치의 대립적 유산이 한반도와 양안(중국과 대만)관계 속에서 여전히 남아 있으면서, 동시에 미·중 관계를 중심으로 새롭게 형성되는 지구질서의 미래를 살펴볼 수 있는 지역이다. 미·중 관계는 동아시아와 유라시아 그리고 지구정치의 향방을 결정할 기본축이 될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미·중간 경쟁이 고조되고 양국이 힘의 균형 상태에 접근하게 되는 일정 기간 동안은 급격한 세력 변동은 없어질 것이며, 그런 상황에서는 명실상부한 중견국 통일한국과 러시아, 일본 등의 역할, 특히 이들간의 연대가 미·중 관계 못지않게 동북아 지역정치의 중대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따라서 통일한국의 등장 이후의 그 외교적 지향성 및 과제를 탐구하는 것은 한국의 기존 통일외교를 평가하고, 향후 통일외교의 지향성과 과제를 새롭게 정립하는 데 중요한 기초가 될 수 있다.

통일한국 등장과 주변 역학관계의 변동
이런 작업을 위해서 한반도가 통일된 이후 동북아 지역정치의 구도와 주요행위자들의 행태에 대한 전망이 선행될 필요가 있다. 한반도 통일 이후 동북아 세력망(network of powers) 구도와 관련하여, 현재와는 다른 모습을 보일 중요 변동으로는 다음을 예상해 볼 수 있다.

첫째,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미·중 관계 변동이다. 통일한국의 등장 이후 동북아 세력망 구도에서 지역질서의 중심축은 여전히 미·중 관계가 될 것이다. 미·중 관계를 전망하는 다양한 시나리오들이 있지만, 중국의 GDP가 2020년대 중반을 전후하여 미국을 추월하더라도, 중국이 미국의 종합적 국력을 추월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중국이 가진 빈곤, 지역격차, 민족갈등 등의 내부적 문제와 환경, 부패, 민주화 등의 새로운 도전은 중국의 미국 추월을 어렵게 만들 가능성도 적지 않다. 따라서 21세기 중반까지 미국과 중국은 견제와 협력의 이중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양국관계를 협력의 기조 속에서 타협과 공생의 구도로 끌고가거나, 아니면 갈등적 요소가 지속되지만 더 악화되지 않도록 관리해 갈 것이다. 앞으로 이 두 유형 중 하나가 우세해지거나 또는 두 유형이 반복되어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둘째, 동북아에서의 미·중 관계의 미래를 전망함에 있어서 우리가 놓치기 쉬운 중요 요소는 러시아의 아시아 외교의 향방이다. 특히 동북아에서 러시아-미국 관계가 지니는 비정형성(非定型性, atypia)은 동북아 지역질서의 중요한 변수로 남게 될 것이다. 지역 국가들이 러시와의 협력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득이 크다. 하지만 러시아가 동북아의 온전한 전략적 행위자로 수용되기 위해서는 미·러 관계가 회복되는 것이 중요하다. 러시아는 자력으로 한반도와의 관계를 강화하여 동북아 국가로서의 위상을 강화하고, 동시에 미·중 사이에서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는 전략을 취하게 될 것이다. 이런 러시아와 미국이 지역정치 수준에서의 전략적 상호작용을 회복할 경우, 미국의 대(對)중국 정책이 더 안정화되고, 동북아에서의 미국의 지경학적 영향력을 한층 높여갈 수도 있을 것이다.

셋째, 한반도 통일은 북한으로 야기되었던 동북아의 외교적 공백을 메우면서 지역정치에서 새로운 형태의 관계들을 활성화하게 될 것이다. 북한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던 관계의 공백이 사라지면서, 그 구조적 제약성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한반도를 중심으로 얽힌 다양한 이해구조의 난맥이 다양한 3각 내지 4각의 소다자적 관계를 형성하여, 미·중 관계라는 지역질서의 기본축을 보완하고 견제하는 질서가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미·중 관계가 안정적 타협이든 갈등적 균형이든 힘의 균형상태에 가까워질수록, 이런 종류의 다양한 소다자적 관계들의 역할이 가지는 중요성은 더 높아지게 될 것이다.

통일한국의 외교적 자산, 그리고 도전
이상과 같은 지역질서의 구조적 변동을 가져올 변화는 통일한국의 외교적 지향성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외교적 자산과 도전을 제공하고 있다.

우선, 한·미 동맹과 한·일 관계에서의 위상 강화이다. 이와 관련하여 미국은 한·미 동맹을 미래지향적 ‘포괄적 전략동맹’(comprehensive strategic alliance)으로 관리·발전시킴으로써 미래에도 한·미·일 3각 관계를 동북아 질서의 중요 자산으로 계속 활용해 나가려 할 것임에 틀림없다. 다만 통일 이전과 달리 적을 상정한 동맹에 머물지 않고 가치동맹, 신뢰동맹, 평화구축동맹의 성격을 강화해 지역 전략적 성격을 강화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이 같은 포괄적 전략동맹의 네트워크 구축을 위한 노력의 중요한 파트너 중의 하나로서 통일한국의 중요성은 더욱 강화될 것이다. 하지만 보통국가화를 지향하는 일본과 한국이 어떻게 협력의 틀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인지가 한·미·일 관계의 중요 변수가 될 것이다.

둘째, 한·중 관계와 한·러 관계가 미래 동북아의 중요한 변수가 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는 점이다. 통일 이후 한·중 양국은 향후 경제관계를 더 심화하게 될 것이고, 한·러 상호협력의 수준도 급속히 강화될 것이다. 하지만 러·중간 경쟁이 현실화될 압력이 높아가면서 러·중 전략협력이 다소 약화될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이 경쟁성을 관리하기 위해서 러시아와 중국이 통일한국과 함께 3각 협력틀을 형성하려는 노력을 기울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한국은 이를 잘 활용하여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미국이 러시아를 강하게 붙들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한, 러·중간 전략적 협력의 기조는 통일한국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 특히 북한 요인으로 한반도에 대한 접근성의 제약을 받아 온 중국과 특히 러시아가 통일한국과의 다양한 대형 프로젝트들을 추진하여 접경지대 및 초국경 협력을 강화함으로써 한·중·러 관계가 동북아 지역정치의 중요 전략적 자산이 될 가능성이 크다.

▲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3일 오후 청와대에서 단독정상회담을 하기 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청와대

셋째, 한·중·일 3각 관계의 희미한 전망이다. 일본이 추진하고 있는 평화헌법 개정 및 일본 재무장과 정상국가화 과정이 일정 정도 성과를 거두게 되고, 일본 경제가 상대적으로 호전되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과거사와 영토문제로 근린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에 성공적이지 못하게 된다면, 한·중·일 관계가 지역정치의 자산으로 기능하기에는 큰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 해결의 열쇠는 거의 전적으로 일본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일본의 대미 의존형 외교가 균형화될 수 있을까, 그리고 동북아에서 일·중간 주요 갈등이 잘 관리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은 향후 동북아 지역정치의 핵심적 난제와 연관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한국이 한·러·일 관계를 활성화함으로써 일본의 역내 역할과 위상을 안정화하는 데 도움을 주고, 일본의 지역협력적 외교로의 진로를 만들어 줄 수 있다면, 한국의 지역 중견국의 위상이 강화될 수 있다.

넷째, 새로운 가능성으로서 한·미·러 3각 관계는 통일한국의 주요한 외교적 시험대가 될 수 있다. 미 의회조사국의 보고서(CRS Report)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이 중국과의 거리를 좁히는 일과 한·중·러 관계가 활성화되는 것을 매우 우려하고 있다. 이에 대응하여 미국은 한·미 미래형 전략동맹을 강화하는 노력을 기울이는 한편, 러시아와 한국 그리고 미국을 경제적 프로젝트로 엮는 새로운 협력틀을 활성화하는 방안을 정책적 옵션으로 고려해 볼 수도 있다. 이는 기존 남·북·러 3각 협력의 틀에 미국의 참여를 결합하는 형태를 띨 텐데, 어쩌면 이러한 한·미·러 협력은 중국이 출해통로(出海通路) 확보를 통해 동해시대를 건설하려는 전략을 견제하는 수단으로 기능할 수도 있다. 이는 한국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미묘한 균형 외교를 펼쳐야 하는 긴장도 높은 시험대가 될 것이다. 통일 이전에 남·북·러 3각 관계 속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이를 다시 중국과 미국이 참여하는 다자 협력틀로 승화시킬 수 있다면, 이는 통일 과정을 앞당기는 효과가 있을 뿐만 아니라, 통일 이후 한국의 미·중간 균형적 입지를 안정화시키는 데 큰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섯째, 활성화될 가능성이 높지는 않지만 그 파급효과가 매우 클 것으로 예상되는 협력관계는 미·중·러 사이의 전략 3각 관계이다. 동북아 지역 수준에서 이 전략협력이 구축되어 지역 세력망 구도가 안정화될 경우, ‘강대국 협조체제’(concerto system)의 형성이 가능해 지고, 이는 점차 동북아의 포괄적 다자안보체제 및 경제협력체의 출현을 앞당기게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러시아의 자발적 노력 이외에도 미국이 적극적으로 러시아를 지원하고 또한 미·러 사이에 동북아 지역질서의 안정화를 위한 전략협력을 회복하는 것이 필요하다. 미·러 사이의 전략적 상호작용 및 협력을 회복하는 과제는 바로 통일한국의 창의적 외교를 요청하고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통일한국 건설을 위한 외교적 과제
위와 같은 지적 실험을 통하여 우리는 통일한국 건설을 위한 외교적 과제로서 다음과 같은 외교 지향성을 강화하고 실현하려는 노력이 필요함을 알 수 있다.

첫째, 대미 외교의 과제이다. 특히 한․미동맹의 유지, 발전, 조정과 관련하여, 한․미동맹을 어떤 성격의 미래형 동맹으로 가져갈 수 있을 것인가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한․미동맹을 북한이라는 위협 요인을 넘어, 중국의 부상이라는 도전을 넘어, 지역의 안정과 번영을 담보할 수 있는 미래지향적 동맹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가를 고민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한·미 양국은 새롭게 등장하는 지역 내 위험과 위협을 공동 대응하면서, 지역 번영의 담보로써의 역할을 모색하여야 한다. 그리고 통일한국이 일정 정도의 동맹 조정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는데, 이 경우 한·미·러, 한·미·일, 한·러·일 관계의 활성화를 통해, 미국의 우려를 불식시키려는 노력과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

둘째, 한·중 전략적 협력의 발전과 관련된 대중 외교의 과제이다. 특히 중국은 통일한국이 미국 동맹네트워크에 묶여 중국에게 가시와 같은 존재가 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물론 남북 대화로 남한 주도의 평화통일을 이루고 그 이후 통일한국이 한미동맹을 안보의 기본축으로 결정하게 될 경우, 중국으로서는 이에 대한 무리한 개입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북한 급변사태와 남한의 적극적 개입으로 통일이 이루어질 경우, 국경을 마주하게 될 중국은 한국 내 미군의 주둔이나 미국 경사 정책(미국에 편향된 정책-편집자 주)에 대하여 지속적 문제 제기와 압력을 행사할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한․미동맹의 미래 설계는 미국을 안심시키는 양자 차원이나, 나아가 지역 안정의 기본 조건을 확보하는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중국 및 주변국들과의 건설적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조건이 될 것이다. 따라서 한․미동맹의 새로운 설계와 조정은 통일한국이 주변국, 특히 중국과의 관계까지도 포합해 낼 수 있는 구도와 조건까지도 고려되어야 한다. 이런 고려는 중국의 우려를 불식시키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셋째, 통일한국이 중·일간 갈등 상황을 지역적 차원에서 극복해 나가는 외교를 구상하고 연습해야 한다. 한국은 양자 사이의 균형과 타협을 위한 역할이 지역 안정을 위한 중요한 조건이 될 수 있음을 중국에게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인구 8000만의 강한 군사력과 역동적 경제 성장을 구가하는 파트너가 중국과 일본은 물론 동북아 역내 안정과 번영을 위해 할 수 있는 것들을 제시함으로써 중국과 일본을 안심시킬 수 있어야 한다.

넷째, 일본과 러시아의 역내 건설적 기여와 역할을 유도해야 한다. 러시아, 일본과 협력해 중간국들의 동북아 내 입지를 강화하고, 미·중 대립축 사이에서 한·러·일 협력을 촉진하여 중간자로서의 위치권력을 강화하는 전략협력 방안을 고안하고 추진하여야 한다. 이들 중간국들의 입지 강화와 협력의 활성화는 지역의 안정과 번영을 위한 긍정적 조건으로 작용할 수 있다. 또한 미·중 사이에서 중간국들의 번영을 위한 조건과 자율성의 공간을 제공해 줄 수 있다. 그러므로 중견국 한국의 중요한 전략적 지향점으로 인식되고 준비되어야 할 것이다.

다섯째, 장기적으로 동북아 다자 안보 및 경제 협력체제를 구축하려는 노력을 지속하여야 한다. 동북아 다자 협력체제 질서의 기본축은 미·중관계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하지만 경쟁적 양자관계의 구도보다 보완적이고 안정적인 전략적 3각 협력의 다층적 구조가 다자체제 구축에 더 유리할 수 있다. 따라서 한·러 및 한·일 양자협력을 강화하는 한편, 한·중·러 및 한·러·미 및 한·일·러 및 한·미·일 등의 3각 협력을 강화하여 다자협력을 추동하는 새로운 동력을 창출하는 일은 미국과의 미래지향적 동맹 및 중국과 전략적 협력을 추구하는 일 못지않은 중요한 과제이다. 이런 거시적 대응을 위해서 한국이 제한적 역량의 한계 속에서나마 다양한 3각 협력을 활성화해 나가기 위한 장기적 고민을 한국 외교의 어젠다 속에 끌어들여 와야 한다.

결국 이같은 복합 외교의 틀 속에서 통일한국의 중견국가로서의 위상과 입지, 그리고 역할이 효과적으로 안정화 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한국이 이처럼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외교를 감당할 수 있는 외교 역량을 얼마나 발휘할 수 있는가이다. 한국의 통일과 동북아의 안정과 번영은 상당 부분 외교로 풀어가야 하는 문제라고 판단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주어진 여건 속에서 다층적 외교를 연습해 가는 것은 통일한국 외교의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 분명하다.

물론 상술한 과제 이외에도 통일을 준비하는 다양한 외교가 구상되고 준비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제 21세기 명실상부한 중견국으로서의 통일한국을 준비하기 위하여 우리는 주변 주요국들과의 관계에 대한 외교적 지향성의 논쟁을 넘어서서 그 실제적 과제들을 풀어가기 위한 실천 방안을 마련하고 실행해 나가야 할 것이다.

신범식/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

신범식  sbsrus@snu.ac.kr

<저작권자 © 유코리아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