뿔 달린 빨간 악마가 된 아이들

2001년 개봉한 곽경택 감독의 영화 <친구>의 한 장면이다.

- 선생 : “아버지 뭐하시노?”
아버지 직업을 묻는 질문에 준석(유오성 분)은 주눅들지 않고 있는 그대로 답했다.
- 준석 : “건달입니다”
준석의 대답에 반신반의하며, 자신을 놀리는 줄 알고 흥분하여 준석의 따귀를 다섯 차례나 때리고 머리를 내리치던 선생은 놀리듯 말했다.
- 선생 : “좋겠다! 느그 아버지 건달이어서!”
이 말을 듣고 정말 화가 난 준석은 쉴 새 없이 날아오는 따귀를 맞고 넘어졌다가 벌떡 일어서며 말했다.
- 준석 : “누가 좋다했습니까!”, (교실 밖으로 나가며) “가자, 동수야!”
- 선생 : (반 학생들에게) “쟈 진짜 즈그 아버지 건달이가?”
- 학생들 : “예~”

한창 예민한 사춘기 고등학생 준석에게 아버지의 직업은 친구에게도 선생에게도 당당할 수 없는 ‘건달’이었다. 아버지 직업을 묻는 난처한 질문을 받았지만 그는 피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답했다. 솔직한 대답이 곧 자랑스러움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을 텐데도, 그런 준석에게 선생은 무례하고 잔인한 말을 던졌다. 결국 준석의 감정은 폭발했고, ‘어떤 아들이 자기 아버지가 건달이라는 것을 좋아하겠느냐’는 말로 자신의 처지를 항변하며 교실 밖으로 나가버렸다.

<별친구>의 ‘별난’ 친구 삼기
지난 2014년 1월 25일과 2월 1일, KBS2TV에서 설특집 파일럿 프로그램(정규편성에 앞서 1~2편을 미리 내보내, 향후 고정적으로 방송할지를 결정하기 위해 만든 샘플 프로그램) <별친구>가 방영되었다. 남한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는 탈북학생들과 아역배우들이 만나 서로의 차이를 극복하고 친구가 된다는 콘셉트였다. 첫째 날은 탈북학생들이 다니고 있는 학교 교실에서 만나, 서로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고, 저녁에는 함께 요리 대결을 펼쳤다. 둘째 날과 셋째 날은 아역배우 낸시의 집에 다함께 놀러가서 하룻밤 묵으며 친해지는 시간을 가졌다.

얼핏 보기에 이 프로그램은 멀고 막연하게 느껴지는 ‘통일’을 실제적이고 가깝게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진 것 같았다. <별친구> 제작진은 서로 다른 성장 배경을 가진 남과 북의 청소년들이 한 자리에서 서로 어울려가는 과정을 그림으로써, 향후 남과 북이 통일되면 함께 살면서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지 보여주려 한 것 같다. 제작 의도 중 이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대성공’을 거뒀다고 볼 수 있다. 절대 이렇게 만나서는 안 된다는 나쁜 예를 제대로 보여줬기 때문이다.


▲ KBS 2TV 설특집 파일럿 프로그램 '별친구' 장면

프로그램 초반, 탈북학생들과 아역배우들이 서로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매우 어색한 분위기가 흘렀다. 그 어색한 분위기를 깨보기 위해 각자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고, 서로 궁금한 것을 물어보기 시작했다. 이어지는 장면은 남한 출신 아역배우들의 일방적인 질문 공세였다.

- 낸시 : (북한도) 전자기기 이런 거 갖고 다녀?
- 김현수 : 남한에 와서 가장 신기했던 게 뭐야?
- 남다름 : 북한에 진짜 핵폭탄 있어? 직접 봤어?
- 채상우 : 북한에서 살던 게 좋아, 아님 남한에서 사는 게 좋아?
- 낸시 : 다 탈북하는 이유가 있지 않아?
- 채상우 : 북한에 있을 때 뭐가 제일 안 좋은 추억인지 궁금해.
- 김현수 : 북한 사람들은 남한 사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 은별(탈북학생) : 그럼 남한은 북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이외에도 많은 질문이 쏟아졌지만, ‘탈북 이유’와 ‘북한에서의 안 좋은 기억’을 묻는 질문에서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은별이라는 탈북학생이 한숨을 쉬며 표정이 굳어졌고, 꾹 참으며 오가는 말들을 듣고 있다가 결국 되받아치는 날선 질문으로 자신의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은별 학생의 다소 날카로운 반응에 아역배우들은 적잖이 당황했고, 왜 짜증이 난 것이냐고 질문했다. 이에 대해 은별 학생은 명확하게 대답했다. “북한에 대해서 그런 거 있잖아. 우리는 북한에서 탈북했잖아. 그런데 그 과정이나 그런 거 물어보는 게 우리들은 좀 안 좋아.”

남한 아역배우들은 탈북 과정이나 북한에서의 안 좋은 기억을 물어보는 것이 왜 탈북친구들에게 안 좋은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심지어 은별 학생이 자신들을 좋아하지 않아서 차가운 반응을 보인 것이라고 오해까지 하고 있었다. 은별 학생만 불편해한 것은 아니었다. 입국한 지 8개월밖에 안 된 한 탈북학생은 마치 “남한에 입국하자마자 국정원의 합동심문센터에서 심문 받았던 때 같았다”고 말했다. 이날 아역배우들로부터 일방적으로 질문을 받기만 했던 상황이 그때를 떠올리게 했다는 말이었다. 질문을 주고받을 수 있는 동등한 친구로서 대화를 나누기보다, 힘을 가진 쪽이 약자인 상대에게 질문을 퍼붓고 그에 대한 답을 강요받는 느낌이었다는 거다. 또 다른 탈북학생은 “솔직히 북한이 남한보다 못살잖아요. 남한이 북한을 낮게 보는 질문을 할 때, 좀 그랬어요”라며, 불편했던 심정을 토로했다.

탈북 이유와 북한에서의 안 좋은 기억들을 질문하는 것이 왜 부적절한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역배우들뿐 아니라, 시청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시청자 게시판에 올라온 글 중, “탈북 과정을 다시 묻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지적하는 글에, “남한과 북한의 청소년들이 앞으로 겪게 될 자연스러운 문제들을 실제로 맞닥뜨리게 했는데, 뭐가 잘못되었다는 것인지 전혀 모르겠다”는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상처를 건드리면서 친구 되기?
글 초반에 거론한 영화 <친구>의 한 장면에서 선생은 아무렇지 않게 준석의 상처를 건드렸다. 준석에게 건달 아버지는 피할 수도 없고 당당할 수도 없는, 아프면서 슬픈 상처다. 준석은 다른 학생들과 함께 줄을 서서 차례대로 아버지 직업을 묻는 질문에 답해야 했는데, 자신의 차례가 올 때까지 기다리면서 아마 이미 굉장히 괴로웠을 것이다. 거짓말을 할까 솔직하게 답할까 속으로 고민했겠지만, 준석은 솔직하게 답하는 쪽으로 마음을 먹었다. 결코 자랑스러울 수 없는 아버지의 직업을 용기 내어 답했지만, 돌아온 선생의 반응은 잔인했다. “좋겠다! 느그 아버지 건달이어서!” 이 말에 준석도 참지 못하고 버럭 화를 냈다. “누가 좋다했습니까!” 피가 나고 벌어진 상처에 소금이 뿌려졌다. 준석은 참지 못하고 나가버렸다.

아역배우들은 아무렇지 않게 탈북학생들의 상처를 건드렸다. 북한에서 최소 60만 명 이상의 아사자가 속출했던 때가 1990년대 중반부터다. 이 시기에 걸쳐 출생한 탈북학생들은 굶주림을 경험해보지 못한 남한 아역배우들이 상상도 못할 궁핍하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 자랐다. 스스로 피할 수 없었던 현실이었고, 쉽게 떠벌리고 싶지 않은 슬픈 기억이었다. 이들은 가까운 친구와 가족이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것을 눈앞에서 지켜봐야만 했을지도 모른다. 가난 때문에 엄마와 이모와 언니가 팔려가는 것을 무기력하게 지켜봐야만 했던 기억이 있을지도 모른다. 병이 들어도 약을 구할 수 없었고, 영양실조에 걸려도 먹을 것을 구할 수 없어 결국 고향을 등지고 탈북했는데, 오늘 처음 만난 낯선 사람들이 그 아픈 이야기를 묻는다. 두만강을 건너 중국에서 숨어 다니며 짐승처럼 살았던 기억, 몽골이나 베트남, 라오스, 태국으로 오는 길에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던 기억, 떠올리기만 해도 몸서리쳐지는 이 아픈 기억들이 처음 만난 ‘남한’ 아이들에 의해 까발려지고 있다.

<별친구>에 출연한 탈북학생들은 아직 본격적인 사회생활을 시작하지 않았다. 이들이 다니고 있는 한겨레중고등학교는 탈북학생들만의 교육을 위해 만들어진 특성화학교이기 때문에, 또래 남한 학생들을 만날 기회가 매우 적다. TV에 출연하게 되면 자신이 북한 출신임을 온 세상에 다 알리게 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 학생들은 (아마도 이 학교 교사들의 설득이 있었겠지만) 출연을 결심했다. 자신의 결단이 향후 통일 문화 확산에 기여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에 어려운 결정을 내렸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용기 내어 자신의 출신 배경을 밝힌 이 아이들에게 던져진 것은 무지하다 못해 무례한 질문들이었다. 은별 학생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은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탈북 동기나 탈북 과정, 북한에서의 안 좋은 추억을 묻는 질문이 왜 무례한지는 쉽게 설명이 가능하다. 고아원을 방문했을 때, 부모로부터 버려진 아이들을 처음 만난 자리에서 ‘너는 왜 고아가 되었니?’라고 묻는 사람은 없다(아이가 울음을 터뜨리길 바란다면 몰라도). 이혼의 아픔을 가진 사람을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너는 왜 이혼했니?’라고 질문하는 사람은 없다. 궁금함을 참고 민감한 질문을 삼가는 배려는 예의이고 상식이다.

<별친구> 제작진에게
이 시점에서 <별친구> 제작진의 잘못이 무엇인지 하나하나 따져보지 않을 수 없다.
첫째, 제작진들은 의도적인 편집을 통해 은별 학생의 심기 변화를 사춘기 여학생의 예민함과 까칠함으로 매도해버렸다. 개인 인터뷰에서 은별 학생이 “제가 지금 사춘기 나이잖아요. 그러니까 지금 여러 생각이 나고 예민하잖아요. 모든 게 다 예민하고 그러니까 그랬던 것 같아요”라고 말한 부분을 내보냈다. 분명 이 문장들 사이에, 탈북 이유와 북한에서의 안 좋은 기억에 대한 질문에 왜 은별 학생이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는지 자세한 설명이 있었을 텐데, 편집 과정에서 그 이야기들을 삭제해버렸고, 저 문장들만 남았다. 은별 학생은 별 거 아닌 질문에 유난히 과민한 반응을 보인 성격 나쁜 북한 여자애가 돼버렸다. 2월 1일에 방송된 2편에서도, ‘오해’를 딛고 서로 친해졌다는 내레이션만 나올 뿐, 오해의 장면인 은별 학생의 감정 표현에 대해 그 근본적인 이유를 전혀 설명해주고 있지 않다.


▲ 원은별 학생

둘째, 네 명의 아역배우들(김현수, 채상우, 낸시, 남다름)과 선생님들(문희준, 윤손하, 고주원)에게 사전 교육이 필요했다. 녹화에 들어가기 이전에 탈북학생들의 성장 배경이나 탈북현상을 이해하기 위한 교육을 제공하거나, 최소한 출연진들 스스로 미리 알아보고 오도록 했더라면, 이 같은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아역배우들이 던진 질문들이 탈북학생들에게 아픔과 상처를 줄지 ‘미처 몰랐다’고 말하는 것은 전혀 변명이 될 수 없다. 상식도 없었고, 예의도 없었다. 남한 출신 출연진들이 이런 평가를 듣게 만든 것은 제작진의 불찰이다.

셋째, 남한 아역배우들과 탈북학생들이 서로를 알아가는 방법이 만나자마자 질문을 던지는 것밖에 없었을까? 프로그램의 진행 순서가 잘못되었다. 제작진들은 이들을 교실에 앉혀 놓고 질문을 던지게 하기보다(아역배우들이 질문을 던지는 모습은 사전에 제작진들이 질문리스트를 주고 자연스럽게 질문하도록 유도한 모양새였다), 먼저 어울려 노는 시간을 마련하여 격의 없이 친해지도록 유도해야 했다. 이후에 함께 요리 대결을 펼치는 과정이나 함께 디스코 팡팡을 타러 가서 노는 장면, 눈싸움, 콩트, 잠자리에서의 수다 등을 통해, 남북의 학생들은 서로 즐겁게 충분히 친해질 수 있었다. 이런 기회를 제일 첫 순서로 배치했어야 옳다.

만약 이러한 프로그램 구성이 탈북학생에 대한 철저한 무지함에 따른 결과라면, 기획 단계에서 충분히 준비하지 않은 제작진의 허술함과 무지함을 탓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탈북학생들의 껄끄러운 심경 변화를 일부러 유도해 극적인 요소를 더하려고 치밀한 계산 하에 구성된 것이라면,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탈북학생들의 상처와 아픔을 자신들을 위해 이용해먹은 제작진의 잔인함을 크게 비난하지 않을 수 없다. 제작 지원으로 참여한 통일부는 도대체 무슨 역할을 한 것인지 모르겠다. 직접 제작을 지원한 프로그램의 내용을 검토조차 하지 않고 진행한 것인지, 그 추진 절차와 판단 기준이 의심스럽다.

남한 통일교육의 문제점
KBS2TV에서 <별친구> 프로그램을 어설프게 혹은 잔인하게 기획한 제작진도 문제이지만, 현재 우리나라 통일교육의 문제 역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학교 통일교육의 문제점들과 사회 통일교육의 부재가 어떤 결과를 낳는지, 이번 계기를 통해 여실히 드러났다. ‘북한 다 죽일 놈들’ 위주의 통일교육은 결국 한없이 부정적인 인식을 만들어냈고, 이미 함께 살아가고 있는 탈북민조차 이질적이고 두려운 대상으로 여기게 만들었다. 탈북민도 이러한데, 앞으로 통일이 되면 북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가당키나 할지 의문이다. 38선의 철조망이 무너지고 북한 동포들이 내려온다고 해도, 두 팔 벌려 환영하거나 함께 얼싸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릴 젊은 세대는 거의 없을 것이다. 뛰어오는 북한 사람들을 보며 경악하고 도망가지나 않으면 다행일 것이다.

쏟아지는 질문 공세에 까칠해졌지만, 이러한 자신을 오히려 무서워하는 남한 아역배우들에게, 은별 학생은 명확히 얘기했다. “탈북한 게 좋은 건 아니잖아. 그런 얘기가 싫어서 그랬던 거야. 네가 싫어서 그런 게 아니야.” 이렇게 허심탄회하게 서로의 이야기를 털어놓았을 때, 아이들은 비로소 오해를 풀 수 있었다. 아직 우리 사회의 소수자로 살고 있는 탈북민들을 비추는 미디어가 남북 어느 누구도 왜곡하지 않고, 진정한 소통의 장으로서의 역할을 해줄 수 있기를 바란다. 남북이 서로 체제경쟁을 하던 옛 시절, 북한 사람들을 빨간 뿔 달린 악마로 그렸던 프레임을 그대로 가져와, 자극적인 표현과 이야기로 사람들을 선동하려는 유혹을 떨쳐버리고 말이다.

김성옥 jade4nk@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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