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따라 내꺼인 듯 내꺼 아닌 내꺼 같은 너. 니꺼인 듯 니꺼 아닌 니꺼 같은 나”

최근 유행했던 대중가요 ‘썸’의 가사 일부분이다. ‘썸’은 국어사전엔 없다. 영어 ‘Something'의 줄임말로 ’타다‘란 말과 합쳐져 이성끼리 호감을 주고받지만 사귀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사귀지 않는 것도 아닌 '같기도' 같은 애매한 관계를 의미하는 신조어다.

지금 우리에게 남북한 관계가 딱 ‘썸’을 타고 있는 듯하다. 한때는 원수 같다가도 어떤 때는 금방 통일이라도 할 것처럼 친해졌다가, 한 민족인 것 같지만 전혀 다른 나라인 것도 같고, 같은 언어를 쓰지만 동떨어진 다른 세계에 사는 것 같다. 이 애매한 관계를 60년 넘게 유지하고 있다. 남한 사람들은 이런 남북한이 서로 어떤 관계인지, 심지어 상대방인 북한이 누구인지조차 잘 모르는 경우가 태반일 것이다. 통일에 대한 이슈는 반짝 타올랐다가 쉽게 사그라든다. ‘통일’이란 단어는 너무 멀고, 거대해서 지금 나와는 딴 세상 같게만 들린다.

남과 북의 관계도 '썸'인지 ‘그린 라이트(Green light, 청신호)’인지 여부를 알려면, 일단 서로의 입장을 파악하고 어떤 식으로든 관계를 맺는 다각도의 노력이 필요하다. 이번에 통일코리아협동조합이 발간한 계간 <통일코리아> 여름호도 그런 노력의 일환으로 보인다. ‘통일’이라는 거대담론 내지 뜬 구름 잡을 것 같은 주제들을 책 한 권으로 잡힐 수 있게 엮었다.

수필, 소설, 시, 비평, 보고서, 서평 등 글의 형식도 다양하다. 그래서인지 혹자는 계간 <통일코리아>를 ‘통일미학개론서’라 부른다. 창간호를 접한 독자들, 혹은 통일에 관심이 있거나 궁금한 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따끈따끈한 계간 <통일코리아>의 속살을 잠시 보여주려 한다.

▲ 계간 <통일코리아> 여름호.

▲ 계간 <통일코리아> 여름호 목차

조중접경지역 여행기 ‘압록강 그 굽이굽이 푸른 물결을 거슬러가며’는 이번호에 무려 30여 페이지에 걸쳐 실렸다. 단둥에서 시작해 압록강변을 따라, 백두산 줄기를 올랐던 5박 6일간의 여행 이야기다. 필자만의 세밀하고 섬세한 필치로 그려낸 조중접경지역의 풍경은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생생하게 우리 앞에 펼쳐진다.

“어이~”
그때 어디선가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는 순간 멈칫했다. 아직 차에 오르지 않았던 이가 소리가 나는 쪽으로 재빨리 뛰어갔다. 그는 다시 “동무”하고 외쳤고, 이내 다시 소리가 들려왔다. “어이~”
가슴이 떨려왔다. 누군가의 목소리에 이토록 가슴 시린 적이 있었던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우리는 조선에서 들려오는, 우리에게 반응해주는 이의 소리를 그렇게 들었다.
(도화영, 압록강 그 굽이굽이 푸른 물결을 거슬러가며, 36~37쪽)

압록강변에서 팀원 한 명이 강건너 북한 땅에서 물질하는 이에게 ‘동무’를 외치고, ‘조선의 평화를!’이란 말을 던진다. 그리고 뒤늦게 저 북한 땅에서 돌아온 한 마디 ‘어이’는 필자의 가슴을 떨리게 하고, 그 떨림은 독자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통일을 굳이 해야 하는 건지 물음표를 마구잡이로 던지는 이들에겐 그 어떤 이론적 설명보다 탁월한 느낌표를 선사하고 있다 하겠다.

수필을 지나 책장을 조금 더 넘기다보면, 청년토크 ‘고난의 행군은 빡세게 걷는 건가요?’란 꼭지가 등장한다. 통일을 준비(?)하는 대안학교에 다니는 학생들과 탈북청년 박요셉 씨가 주고받는 소소한 대화는 깨알 같은 재미를 제공한다. 여기서 ‘고난의 행군’이란 단어를 놓고 벌어지는 해프닝은 남한과 북한 사람들 사이에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는 오해들을 상징적으로 잘 보여준다.

학생 1 : 삼촌도 고난의 행군 했어요?
박요셉 : 응.
학생 1 : 헐(놀람), 뭐했어요?
박요셉 : 고난의 행군 때?
학생 1 : 걸었겠지.
학생 2 : 물집 많이 잡혔겠네.
박요셉 : 돈 벌었지.
학생 1 : 아... 돈 줘요?
박요셉 : 뭔 소리야?
학생 1 : 아.. 안하셨다고.
학생 2 : 아 뭔 소리야, 걸었다고~
선생님 : 애들이 고난의 행군이 뭔지 잘 모르는 것 같아요?
박요셉 : 고난의 행군 빨리 설명해 봐. 아는 사람?
학생 2 : 오빠, 알고 있는 거 아니었어?
학생 3 : 몰라.
학생 4 : 나도 모르는데.
학생 1 : 걷는 거 아니야? 나도 걷는 거라고 알고 있었는데….
학생 5 : 되게 가난하고 어려웠던 시기 아니야?
박요셉 : 맞아.
(박요셉‧엄지은, 고난의 행군은 빡세게 걷는 건가요?, 139쪽)

대화는 호기심 많은 학생들의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쉴 새 없이 이어진다. 그들의 대화 속에 잠시 빠져 있다 보면, 남한과 북한 간에 무엇이 다르고, 어떻게 다른지 머릿속이 환해진다. 통일을 준비하는 대안학교의 역할에 대한 고민, 통일에 무관심한 학생들의 현실적인 문제들도 이 꼭지를 통해 엿볼 수 있다.

남북 청년이 함께 일하는 사회적 기업 ‘에덴 그리닝’ 이야기도 눈에 띈다. 이 회사는 ‘일상 속에 초대하는 자연’이라는 컨셉을 가지고 옥상녹화 시공, 관련 교육사업 등을 펼쳐나가고 있다. 그러나 사업 내용보다 남북 청년이 함께 일하는 과정에 중점을 두고 통일을 준비하고자 한 그들의 어려움과 깨달음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가 이 글의 주를 이룬다.

“개성공단도 있고, 그런 거대담론들도 있지만, 이런 밑에서부터의 작은 움직임이 꼭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보면, 이게 바로 ‘이미 온 통일’의 파일럿 테스트 아닐까요? 남북청년들이 함께 협업하는 성공모델이 많지 않은데, 앞으로 자연스런 협업이 가능해지기 위해서도 우리가 대안적인 모델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김정태‧권판석, 윗동네×아랫동네 청년이 함께 일하는 기업, ‘에덴그리닝’을 찾아서, 158쪽)

에덴그리닝뿐 아니라 영상 분야의 오영필 감독, 농업 분야의 안부섭 대표, 언론 분야의 김지방 국민일보 기자, 종교 분야의 박예영 선교사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펼쳐놓는 가슴 뛰거나 혹은 가슴 아픈 통일 혹은 분단 이야기들은 저절로 귀를 쫑긋 세우게 한다.

▲ 계간 <통일코리아> 여름호.

‘통일’에 대해 다양한 시각으로 고민할 수 있도록 돕는 꼭지들도 계간 <통일코리아> 여름호는 담고 있다. 먼저, 이번 호 특집 ‘통일코리아의 주역, 지방’이 있다. 특집의 첫 번째 꼭지 ‘통일의 삼두마차와 지방정부’에서는 통일운동에 있어 지방정부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남북 지방간 결연을 구체적인 방안과 함께 제시하고 있다. 세 번째 꼭지 ‘통일 대비 지자체 관련 법제도 개선방향’에서는 지방정부가 통일준비를 감당하기 위해 마련돼야 할 법 제도에 대해, 마지막 꼭지 ‘통일에서 지방정부의 역할 : 독일의 사례’에서는 지자체 교류가 활발했던 독일의 사례를 통해 우리나라의 상황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에 대해 실천적인 지침들을 제시하고 있다. 여러 사람들이 "당장 '통일코리아의 주역, 지방'을 주제로 세미나를 열자"고 할 정도로 이번 특집은 예사롭지 않다.

각 지역에서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 통일운동의 현장을 볼 수 있는 꼭지도 있다. ‘지역 통일운동, 어떻게 할 것인가?’란 주제의 좌담. 서울, 수원, 광주, 대구 등 각 지역에서 통일을 준비하는 전문가들이 한 자리에 모여 주고받은 대화를 보면, 각 지역별로 어떤 통일운동이 실제적으로 진행되고 있는지 한눈에 볼 수 있다. 좌담 말미를 보면, 현장 사역자들이 공통적으로 당부하는 말은 통일 준비는 ‘바로’, ‘지금’, ‘당장’ 시작하라는 것이다.

“통일에 대해서 뭔가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당장 시작하라고 말하고 싶다. 하면 된다. 이건 저의 경험이기도 하다. 거창하게 뭔가 해야겠다면서 엄두도 내지 못했는데, 시작해보고 도전해보니 길이 열리는 걸 보았다. 따라서 하면 된다는 거다. 통일에 대해서 작은 마음이라도 있다면, 당장 시작하라고 말하고 싶다.“
(김병락‧김정수‧양영창‧이관우, 좌담 지역별 통일준비, 어떻게 할 것인가?, 185쪽)

지역별 통일운동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 디아스포라까지 확장된다. 그래서 광주‧전남, 제주지역의 통일운동을 다룬 꼭지와 함께 호주, 미국, 일본, 폴란드 등 세계 곳곳의 한인사회에서 진행되는 통일운동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통일 베트남’의 이야기를 다룬 꼭지도 주목할 만하다. 그동안 통일의 모델로 주로 ‘독일’을 다뤄온 데 반해, 이 글에서 필자는 한국인에게 편향적인 인식이 강한 ‘베트남’을 내세웠다. 베트남 현지에서 살고 있는 필자는 ‘통일 베트남’의 현재 모습을 보여줌을 통해 베트남에 대해 한국인이 가진 고정관념을 넘어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고 있다.

“베트남 민족에게 통일은 분명 대박이 되고 있다. 베트남의 개혁개방 이후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정치적 안정, 경제 성장, 사회 통합, 외교 정책, 보트피플에 대한 포용 정책, 문화 교류 정책 등 수치적‧내용적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윤한열, 통일 베트남은 지금(1), 150쪽)

▲ 계간 <통일코리아> 여름호에 실린 윤은주 박사와 임동원 전 통일부장관 대담 꼭지.

지난해 재가동돼 현재까지 활발하게 운영 중인 ‘개성공단’에 대해 자세하게 분석한 ‘개성공단에 대한 몇 가지 오해’도 흥미롭다. 이 글에서는 올해로 11년째를 맞은 개성공단의 과거와 현재, 개성공단이 가지는 특징적인 면을 분석적으로 제시한다. 그 다음, 개성공단에 대해 가질 수 있는 몇 가지 오해를 차례차례 풀어나가고, 개성공단이 가지는 경제적 가치와 남북관계에 미치는 영향력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한다.

첫 번째 오해 : 개성공단은 퍼주기다?
두 번째 오해 : 개성공단은 북측 정권의 ‘돈줄’이다?
세 번째 오해 : 근로자 임금을 국가가 가져간다?
네 번째 오해 : 근로자들은 훈련받은 엘리트들만 온다?
다섯 번째 오해 : 개성공단은 2013년 4월에 비정상화되었다?
(김진향, 개성공단에 대한 몇 가지 오해, 282쪽)

이 글은 개성공단에 대한 의문점을 해소하고, 남북경협의 중요성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틀거리를 제공할 것이라 본다. 바로 이어지는 꼭지 ‘5‧24조치 해제냐 지속이냐’는 5‧24조치 이후 지난 4년간 남북교류 및 경협 중단이 가져온 피해 사례와 문제점에 대해 꼼꼼하게 분석했고, 이를 바탕으로 ‘5‧24조치’ 해제의 필요성을 설득력있게 제시하고 있다.

이외에도 계간 <통일코리아> 여름 호에는 통일 관련 시, 소설, 그림, 사진, 보고서 등이 담겨 있고, ‘통일헌법’에 관한 논문 비평, 통일 관련 책에 대한 서평 등 풍성한 통일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다.

성상현 기자  jacksung8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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