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일이나 영역에서든지 그 대상이나 주체의 입장이 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입장에 선다는 것은 그 대상이나 주체의 참여와 직결되기에 그것은 곧 그 일이나 영역의 성패를 결정하는 일이기도 하다. 통일이 특히 그렇다. 함께 참여해서 통일을 이뤄가야 할 코리안들의 입장에서, 그들의 눈높이에서, 그들의 피부에 가닿는 비전과 방법을 제시하는 일은 그래서 지금처럼 ‘통일’이 이슈가 됐지만 손에 잡히지는 않는 때일수록 더욱 중요하다.

『서울평양 메가시티』(미래의창)를 주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수두룩한 통일 관련 책 중에서도 드물게 서울-평양을 연계한 남북경제 통합이란 전문적인 내용을 너무나 쉽고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 통일서적이 술술 읽히는 경우는 드문데 『서울 평양 메가시티』는 그 드문 경우에 속한다. 물론 저자의 주 특기인 미래학을 동원한 것이고, 거기다 거대 인프라 구축이 들어가기에 대기업 위주가 되지 않을까, 북한이 과연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살짝 의문이 들긴 한다.

▲ 민경태 박사가 『서울평양 메가시티』를 들고 책이 나오기까지의 에피소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유코리아뉴스 최승대 기자

저자 민경태(45) 박사는 대기업 회사원이다. 대학에서 건축공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건축역사와 이론, 도시설계를 공부했다. 잠깐 디자인 관련 벤처기업을 창업한 적도 있다. 그러다 옥스퍼드대학교에서 MBA,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서울-평양 네트워크 경제권’이란 주제의 논문으로 북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책을 접하자마자 곧바로 저자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서울의 한 음식점에서 민 박사를 만났다. 책은 원래 8월 29일이 출판 예정일이었는데 책도 저자도 앞당겨 만난 것이다. 민 박사는 다소 피곤한 모습이었다. 이 책을 쓰느라 지난해부터 거의 매일 주경야독 상태로 보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책 이야기를 할 때는 어디서 힘이 솟는지 생생한 얼굴로 바뀌곤 했다. 궁금한 것들을 하나하나 풀어가는 데는 약 2시간 가까이 걸렸다.

다음은 저자와의 인터뷰 일문일답.

-굉장히 전문적인 내용인데 굉장히 쉽게 쓰신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박사논문을 준비하면서 느낀 건 학자들끼리만 모여서 통일 논의를 하면 안되겠다는 거였다. 박사논문 끝내고 학술지에도 발표하곤 했지만 내부에서는 공명이 되고 공감을 표하지만 정책으로 연결도 쉽지 않고 대중들은 전혀 모른다는 한계에 대해 깊이 고민했다. 전문가들 중엔 제 논문을 보고 ‘야 이거 괜찮은 아이디어다’ 이런 말도 해주셨지만 일반인들의 공감을 끌어내고 싶었다. 제 논문엔 꿈이 많이 담겨 있기에 이런 꿈들은 일반 독자층과 공유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처음엔 소설을 써볼까도 생각했다. 기왕이면 공상소설 같은 걸 쓰면 많은 사람들이 제 꿈을 공유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제 생각을 일반인들과 공유하고 싶은 소망이 강했었다. 그랬는데 소설 세계를 들여다봤더니 이 세계가 결코 내 내공으로 될 수 없는, 또 다른 내공이 필요한 세계구나 생각이 들어서 포기했다.

-실제 책 속엔 소설 기법이 약간 들어가 있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서 서울-평양이 연결된 상태를 가정한 미래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 대목이 어떻게 나오게 됐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그렇다. 원래는 논문만 들어가면 결코 재미가 없을 것 같아 챕터별로 논문에 나온 내용을 소설같이 책 앞부분에 내세우고 그 다음 논문 나오고, 또 소설 나오고 논문 나오고, 이렇게 구성되면 소설과 논문 두 개가 엮여 이미지와 논리가 보합이 되면서 사람들이 잘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두 부류의 독자층이 완전히 다르더라. SF소설 독자층과 논리적 글의 독자층이 다른데 잘못하면 이도 저도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그 아이디어를 반영한 것이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다. 책을 위해서 논문의 반 정도는 새로 썼다. 최신 내용을 넣으려고 출판사와 마지막까지 씨름을 했다. 책에다 시의성과 의미를 담으려고 7월에 발표된 북한 특구까지 찾아넣어야 했다.

▲ 민경태 박사.건축학과 MBA, 북한학을 전공한 다채로운 이력의 소유자다. ⓒ유코리아뉴스

-책 쓰는 데는 얼마나 걸렸나?
박사 논문을 책으로 풀어서 쓰는 데는 2년 정도 걸렸지만, 논문을 쓰기까지 7년이 필요했으니 모두 9년이 걸린 셈이다. 주말, 휴가, 주경야독 등 낼 수 있는 시간은 다 쏟아부었다. 어떤 때는 ‘필’받으면 5~6시간 꼼짝도 않고 새벽까지 쓰기도 했다. 이게 바로 하나님이 내게 준 미션이나 소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힘들더라도 기꺼이 해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비록 내 세대에 열매를 따먹지 못하더라도 자녀 세대를 위한 작업이 될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서울평양 메가시티』의 책 제목이 내용을 다 말해주고 있는 것 같다. 한마디로 ‘남북한 M&A를 통한 한반도 리모델링 방안’이라고 할 수 있는데 어떻게 이런 방대한 내용을 구상하고 집필까지 하게 됐나?
북한이라는 주제가 우리의 미래에 너무도 중요하지만, 점점 잊혀져가는 것이 안타까웠다. 특히 통일한국을 이끌어갈 젊은이들이 무관심하다는 것은 큰 위기라고 생각했고, 우리 세대에 통일을 이루지 못하면 영영 다시는 기회가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절박감이 바탕이 되었다. 그렇다면 왜 통일이 안되는가를 봤을 때 합리적 보수의 역할이 크다고 생각했다. 한국사회의 양 극단을 제외하고 합리적 진보가 30%, 합리적 보수층이 50% 쯤 될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합리적 보수층이 통일에 별로 관심이 없다. 이게 통일에 대한 동력 상실의 가장 큰 원인이 아닐까 생각했다. 지금의 기성세대가 다음세대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아마도 남북한의 협력을 통해 새로운 한반도의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책 내용을 보면 ‘2모작 고용창출’ ‘남북한 M&A' 등 신선한 표현들이 많이 등장한다. 어떻게 해서 나온 것들인가?
통일은 우리 세대들의 현실적인 고민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국경제는 이제 고도성장기를 지나 정체기에 접어들었다. 그 시기에 수고했던 많은 이들이 여전히 일을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남북한 경제협력은 한국의 중장년층에게 새로운 기회를 가져다 줄 것이다. 교육훈련, 컨설팅, 멘토링 등 한국경제 성장기의 소중한 경험을 북한에 전수해 줄 수 있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중장년층은 자연스럽게 2모작 고용이 가능해지고, 청년층에게는 새로운 창업과 취업의 기회가 열리게 될 것이다. ‘남북한 M&A’ 라는 표현은 필자가 벤처투자 업무 등에 종사했던 것이 영향을 준 것 같다. 경제적 효율성과 이익을 중요시하는 기업간 M&A 논리로 보았을 때 남북한의 협력은 정말 잘 맞는 궁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북한 경제협력 통한 이익을 남북이 독식하는 게 아니라 주변국과 공유한다는 발상은 통일 과정에서 주변국을 설득해야 하는 남북한에겐 꼭 필요한 아이디어라고 본다. 물론 일부 정치권에서 제기된 적도 있는 것 같은데 ‘참 착한 발상’이란 생각도 드는데 이런 발상들은 어디에서 나온 건가?
남북한 관계가 고착되어 있는 원인이 과연 무엇일까, 고민하던 과정에서 나온 대안이다. 국제관계가 원래 그런 것이기도 하겠지만, 다들 실제의 속셈은 따로 있고 명분을 가지고 서로 주장한다. 그러다보니,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제적 이익은 말로 하지 않고, 이념이나 체제, 정치적 명분을 가지고 겉도는 충돌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즉, 현재의 분단상태가 이익구조를 만들었기 때문에 이를 통해 이익을 보는 집단이나 국가는 상황이 전환되는 것을 원하지 않기에 결국 장애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는 방안은 더 큰 이익을 남북협력을 통해 창출하고, 그것을 공유할 수 있는 이익공유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제안이다. 경제적 교류협력이 국가의 영토적 경계를 넘어서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오늘날의 상황을 보면 한반도를 자연스럽게 세계경제 교류의 공간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단일한 세력이 주도하는 방식이 아니라, 개방적인, 그래서 참여 주체가 모두 이익을 나눌 수 있는 평화적인 교류협력의 공간으로서 서울-평양 메가수도권을 제안하는 것이다.

-너무 거대한 프로젝트이기에 특성상 대기업에 이익이 돌아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드는데?
본문에도 내용이 설명되어 있지만 남북한 경제협력 과정에서는 한국의 대기업과 중소기업, 그리고 북한 지역에서 새롭게 탄생할 중소·벤처기업 등이 모두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인프라 건설 등 대형프로젝트에는 대기업의 역할이 우선시 되겠지만 중소기업과의 협력을 바탕으로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책 내용 중에 제안한 대기업-중소·벤처기업 협력 모델은 남북한 협력을 위해 새롭게 추진해 볼 수 있는 발전 모델이다. 북한과의 경제협력 문이 열리면, 대기업뿐만 아니라 한국의 수많은 중소기업들이 진출하고, 북한 지역에서도 자체적으로 중소·벤처기업의 창업이 활발해질 것으로 기대한다.

▲ 민경태 박사는 SF소설이나 영화를 즐겨본다. ⓒ유코리아뉴스

-책에서도 말했듯 정치적 조건은 다 해결된 것을 전제로 했다고 했는데 지금의 남북관계도 결국 정치적 문제로 인해 민간이나 경제 교류가 막혀 있는 건데, 정치적 조건이 해결되기 위한 선결과제는 뭐라고 보나?
책에서는 정치적 접근을 유보하고 경제적 협력을 우선 시도해보자고 했으나,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낮은 수준의 정치를 탈피하여 보다 수준높은 고도의 정치를 하자는 얘기다. 개인이나 집단, 국가들 모두가 각자의 경제적 이익, 즉 밥그릇 지키기에 연연하여 해결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극복하고, 차라리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새로운 시스템으로 전환하자는 것이다. 정치가들에게도 발상의 전환과 상상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터닝 포인트(Turning Point), 점점 그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가뜩이나 체제 불안을 느끼는 북한이 과연 모험과도 같은 이 거대한 프로젝트를 흔쾌히 받아들일 수 있겠나 하는 걱정도 드는데?
어떻게 보면 북한을 설득하는 것이 가장 힘든 일이 될 수도 있다. 남한이 똘똘 뭉쳐서 북한을 설득해도 힘이 모자랄 판인데, 한국 내에서 북한 문제를 두고 국론이 분열되어 있는 것은 매우 슬픈 일이다. 이 책은 목적은 우선 한국의 과반이 넘는 '합리적 보수' 층에게 남북한 경제협력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소개하려는 것이다. 일단 우리가 먼저 생각이 바뀌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나서, 꾸준히 북한에게 평화적 경제협력을 통한 점진적 통합방안에 대한 신뢰를 쌓아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남북한 모두에게 그동안 실질적 대안이 부재하여 서로 대립과 긴장, 의심이 더욱 커지지 않았나 생각된다. 남한과 북한이 모두 윈윈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함으로서 그 신뢰 프로세스가 시작되기를 희망한다.

-책이 나온 지 며칠밖에 안되었는데 반응은 어떤가?
읽어보신 분들이 ‘쭉쭉 읽히더라’ ‘이틀 만에 다 읽었다’ 이런 얘기를 해줄 때 그게 제일 힘이 된다. 비전문가가 이 책을 읽었으면 했는데, 읽고나서 공감한다고 말해줄 때 흐믓하다. 전공이 다른 교수 친구가 있는데 얼마 전에 ‘정말 이렇게 될 것 같다. 이 비전에 함께 하고 싶다’ 이런 얘기 해줄 때 무척 기뻤다. 그게 바로 제가 의도한 거였다.

-책의 바탕이 논문이기 때문에 굉장히 전문적인 내용이어서 어려울 수 있는데 술술 읽히게 쓰셨다는 건 그만큼 감각이 있으시다는 건데?
노력을 많이 했다. 출판사를 찾을 때도 학술지 내는 출판사가 아닌 일반 경제경영책 내는 곳을 찾았다. 기획서 들고 찾아가 제안했다. 관심 갖는 출판사가 여러 군데 있었지만 요즘 출판사가 다 어렵지 않나. ‘미래의 창’의 경우 기존 프로젝트도 여러 개가 있는데 선뜻 받아줬다. 출판사 이름도 책 주제와 딱 맞지 않나? 제가 부족했던 건 일반 독자의 시각이었는데 그 일반 독자의 시각을 코칭해 줄 수 있는 분들이 필요했다. 출판사에서 제가 하자는 대로 다 하는 게 아니라 저한테 도움을 줄 수 있는 게 필요했다. 그 때문에 출판사랑 여러 차례 걸쳐서 논의하고 고치고 서로 아이디어를 내고 타협하고 하면서 만들어갔다.

-통일 관련 책이 ‘고루하다’는 느낌이 있는데 이 책은 다른 것 같다. ‘세련되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좀 다르다는 느낌이 든다.
세련되고 미래지향적인 느낌을 주고 싶었다. 젊은이들이 북한 책 대하면 고루하고 편집도 답답하고 디자인도 촌스럽다고 생각하는데 그러다보니 통일이란 이슈 자체를 촌스럽게 생각해 버리게 되는 거다. 제가 볼 때는 통일이야말로 정말 미래지향적인 거고 우리의 생존을 위한 미래학 중의 미래학이다. 그래서 제 책을 ‘북한미래학’이라 부르고 싶다. 저는 미래 사회 변화에 관심이 많아서 여러 가지 미래학 책들을 많이 봤는데 그야말로 이건 미래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창조경제‘란 얘기도 들어가 있는데 ’정부에서 얘기하는 진짜 창조경제 융합형 모델이 바로 이거다‘라고 제안하고 싶었다. 남북한 경제 융합, 이것만큼 창조경제가 나올 수 있는 게 없다. 한반도 창조경제를 정책 입안자들에게 제안하고 싶었다.

▲ 『서울평양 메가시티』 표지.

-통일에 대해서는 언제부터 관심 가졌나?
어릴 적부터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졌던 것 같다. 초등학교 때는 김일성 혹이나 탱크가 들어간 반공포스터를 그려서 상도 받고, 그러면서 ‘우리의 소원은 통일’도 힘차게 부르곤 했다. 그러다 보니 통일은 자연스럽게 의식 속에 배어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 1991년 대학 졸업작품전에 경의선 연결 복원을 가상한 작품을 제출해 입선한 적도 있다. 당시에 '다음 역은 개성입니다' 라는 신문기사를 보고 영감을 얻었다. 경의선이 복원된다면 원래 있었던 장단역이 지금은 DMZ에 위치해 있으나 다시 복구될 수 있다는 가상을 전제로 역사설계 계획안을 준비해 본 것이다. 졸업작품전이라서 보다 의미있는 주제로 접근해 보고 싶었는데, 그 출발이 23년 후에 책으로 연결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통일에 대해 본격적으로 생각하게 된 건 미래에 대한 관심에서 나온 것 같다. 신기술소싱이라든지 미래기술이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에 관심이 많았다. SF영화도 좋아하고. 그런데 그 못지않게 우리의 미래에 가장 큰 임팩트를 줄 수 있는 건 북한이다. 우리 세대, 우리 생애에, 다른 어떤 나라도 가지지 않은 미래자원이다. 북한 이슈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느냐에 따라 운명이 좌우될 만큼 우리 민족에겐 ‘북한’ 이슈가 임팩트가 있는 거다. 정말 대박이 되고 쪽박이 될 수 있는 이슈인데 이것에 대한 관심이 없는 거다. 미래에 대한 관심에서 북한을 생각하게 됐다. SF나 미래기술에 대한 관심의 연장선상에서 관심을 키워왔다. 그랬더니 북한과 미래기술, 두 개가 머지(융합)가 되더라.

-통일을 단순한 남북한 결합이 아닌 화학적 융합으로 보는 건가?
그렇다. 우리 미래를 보면 엄청나게 세상이 빨리 변하고 있다. 북한과 같이 머지(융합)가 되는 건 거기에 맞춰서 새롭게 디자인을 해야 하는데 그런 노력이 없는 거다. 우리는 그냥 북한에 대해 저임금 노동력을 동원해 경공업, 그 다음에는 중화학으로 발전시켜 가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이건 옛날 방식, 기존의 동아시아 개발도상국 발전 모델이다. 이제는 더이상 경쟁력이 없다. 남한의 역량과 북한의 장점을 결합시켜서 어떻게 상호보완적으로 글로벌 경쟁력을 단번에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이 뭘까 생각한 게 바로 ‘새로운 남북한 분업구조’다. 북한의 노동력이 저임이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안된다. 그 외에 한국이 가진 마케팅에 디자인, R&D 이런 것들을 같이 연결시키면 노동력 중심의 북한산업도 상당히 단기간에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신성장산업의 경우 남북이 같이 한번 공동 육성해보자, 그건 충분히 가능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 우리가 중국이나 인도의 SW 엔지니어들을 수입하고 있는 상황인데, 북한에 충분한 인력자원이 있기 때문에 한국기업들이 북한의 인재를 잘 육성하면 충분히 미래 신성장산업을 공동 추진하고, 북한 노동력 기반산업은 국제경쟁력을 갖추게 될 것이다. 남한에서 잘하는 산업은 북한에다 굳이 이전하지 말고 더 강화하고, 이런 식으로 가면 단기간에 모든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확보가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다.

-통일을 너무 미래학 관점에서 보면 리스크도 많을 것 같은데, 지도교수 등 전문가들을 어떻게 설득했는지 궁금하다.
북한대학원대학교의 학풍이 상당히 실증적이다. 논문 통과 과정이 쉽지 않았는데 나중엔 지도교수님이 ‘신선하다. 해볼 만하지 않겠나’라고 해서 진행됐다. 이 아이디어를 설명하기 위해 저의 모든 다양한 경험과 지식이 다 동원됐다. 미래학, 생물학, 도시설계 등 참고논문에 모든 분야가 들어가 있다. 책엔 빠져 있지만 논문엔 효모접합 사진도 들어 있다. 두 개의 효모가 떨어져 있다가 서로 접합해서 하나의 효모가 만들어진다. 세포융합이 자연계에서 일어나는 게 몇 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효모다. 효모융합 프로세스는 이렇다. 먼저 세포벽으로 둘러싸인 일부분이 녹으면서 서로 교류할 수 있는 연결선이 생기고 점점 확대되어서 기능을 공유하고 통합되다가 최종적으로 핵이 하나로 합쳐지게 된다. 이걸 비유로해서 정치적 통합은 맨 뒤에다 놓고 처음엔 교류가 시작되고 국경이 열리고, 세포간을 이어주는 연결선이 생기듯 서울-평양간 인프라 네트워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거다. 갑자기 정치적으로 통일하려고 하지 말고 효모접합 아이디어를 보면 서로 기능을 공유하고, 산업간 분업구조를 효율화하고 중복되는 걸 머지(융합)시키고 하면 최종적으로 핵이 하나가 될 수 있는 단계로까지 발전되는 것이다.

-앞으로 계획이나 구상은?
책의 주 타깃을 아까 ‘합리적 보수층’이라고 했는데 하나가 더 있다. 국제사회다. 통일은 결코 우리끼리 안된다. 한반도에서 일어나는 게 이미 다양한 주변강국들의 이익이 얽혀 있는데 어떻게 ‘우리끼리’가 가능하겠나. 주변 국가들을 설득하는 게 너무나 중요한데 새로운 대안 제시가 안되면 어떤 공동체나 국가도 변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국제사회에 ‘이런 큰 변화, 새로운 변화도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는 것, 이런 변화를 통해 파이를 키워보자고 제안하고 싶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해외 출판도 시도하고 싶다. ‘한반도를 개방적 이익 공유 시스템으로 만들자’고 제안하는 것이다. 아직은 그 노력만으로도 벅찰 것 같다.

-책이 합리적 보수층만이 아니라 젊은이들에게도 많이 보급되면 좋겠다. 아무튼 이 책이 단순히 민 박사의 개인 아이디어가 아닌 민족을 살리는 프로젝트가 되면 좋겠다. 장시간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하다.<끝>

김성원 기자  ukorea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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