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갈등을 근세 평화사상가들의 삶과 사상을 통해 풀어보기 위한 국제학술대회가 열렸다. (사)평화한국(허문영 대표)이 주최한 ‘21세기 동아시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모색’(한중일 근현대 평화사상가를 중심으로)이 그것이다. 23일 중앙대학교에서 열린 대회엔 한중일 학자, 목회자, NGO 활동가 등이 참여해 안중근, 쑨원(孫文), 우찌무라 간조(內村鑑三)의 평화사상에 대한 활발한 발표와 토론을 벌였다. 그 중에서 발제자의 발표를 요약했다. 발표 전문과 토론문이 필요한 독자는 (사)평화한국(www.peacecorea.org·02-515-2633)으로 문의하면 된다.                              -편집자 주

안중근은 당대 세계정세가 약육강식의 시대로서, 동양은 서양 제국주의세력에 의해 침탈당하는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시기로 보았다. 그는 이러한 위기 상황을 막고 동양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한중일 3국이 일치단결하는 것이 긴요하다고 보았다. 동양 3국 한중일이 공동체를 구성하여 모범을 보이고자 한 안중근의 동양평화사상은 한중일 동양 3국을 규율하는 공동의 국제적 틀을 내세우고, 공존과 공영의 정치사상으로서 현재 유럽연합(EU)의 선행이론이요, 그 본보기라 할 수 있으며, 최근 들어 한중일이 구상중인 동북아경제협의기구의 원천이라 할 수 있다. 안중근의 동양평화사상이 100년이 넘은 21세기 오늘날에 와서 새롭게 각광받고 있는 이유는 한중일을 근간으로 하는 동북아공동체 구상과 일맥상통한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첫째, 당시 한중일 3국의 공동은행 설립과 공용화폐 발행을 제안한 것은 오늘날 EU가 유로화를 통용하고 있는 데서 확인할 수 있듯이 장차 동북아공동체 구상이 구체화된다면, 경제공동체 형성과 관련하여 공동개발은행을 설립하고 공동화폐를 발행하기 위한 모델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당시 한국과 중국은 일찍 개화에 눈을 떴던 일본에 비해서 경제수준이 현격하게 차이가 났던 상태였으므로 한국과 중국이 일본의 지도에 의한 상공업 발전전략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은 각국의 장점을 살리는 경제협력을 통해 동북아공동시장 형성이나 동북아경제공동체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를 위해서는 2000년대 들어 논의되고 있는 한중일 자유무역협정(FTA)을 적극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이와 같은 동북아지역의 시장통합으로서의 방향은 기능주의적 차원에서 북한의 변화를 촉진시키는 등 종국적으로 역내 평화와 동북아공동체로 진행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 23일 중앙대에서 열린 평화한국 주최 '21세기 동아시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모색' 국제학술대회에서 오일환 보훈교육연구원장(오른쪽)이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유코리아뉴스 최승대 기자

안중근은 옥중에서 집필한 『동양평화론』 서문에서 일제가 동양문화의 중심지인 한국과 중국을 침범하는 대륙침략을 감행하면 장차 서양 제국주의 열강에 의해 일본은 파멸되고야 말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그는 이러한 파국적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대응방안으로 일제가 한국과 중국 대륙 침략을 단념하고, 지정학적으로 중러일 3국의 대륙상충지역인 여순지역을 중립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무엇보다 안중근이 국제적 분쟁지역이던 여순을 일본이 중국에게 반환할 것과 중립화를 주장했던 것은 상호간 분쟁의 소지를 줄이고, 한중일 3국의 협력으로 서방 제국주의세력을 공동으로 막아내자는 것이었다. 이는 오늘날 한반도를 둘러싸고 동북아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패권다툼을 완화시키고 역내 평화를 도모하기 위한 한반도 중립화와 연관시킬 수 있을 것이다. 즉, 한반도를 미일중러 4대 강국에 의한 지정학적 패권 다툼의 공간이 아니라, 동북아 협력의 축으로 기능하는 공간으로 승화시키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한편, 안중근이 강조한 3국 대표의 회합에 의한 동양평화회의의 창설과 관련해서 얻을 수 있는 시사점은 기존의 6자 회담을 북핵 해결의 진전과 함께 굳건한 동북아 안보질서를 담보하는 집단안보체제 또는 다자안보체제로 발전시키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안중근이 제의한 한중일 3국 공동 군사편성 문제는 당시처럼 3국이 공동의 적을 두었을 때나 가능한 일로서 체제문제나 역사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현 상황에서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지정학적 안보위협을 해소하기 위한 차원에서 역내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집단안보 차원의 군사협력은 가능할 것이다.

한편 안중근이 활동하던 당시 교황청은 국제연맹이나 유럽연합과 같은 세계적 규모의 국제기구가 존재하지 않던 상황에서 국제적 역량이 컸으며, 이 때문에 국제평화를 위해서도 중요한 상징적 기능을 할 수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오늘날은 UN을 통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보장체제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가능하다면 동양평화는 물론 나아가 세계평화에 크게 이바지할 수 있을 것이다.

▲ 23일 중앙대학교에서 열린 평화한국 주최 '21세기 동아시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모색' 국제학술대회 모습 ⓒ유코리아뉴스 최승대 기자

안중근의 동양평화사상은 단순히 그가 생존했던 시기에만 국한되는 편협한 사상체계가 결코 아니다. 그의 동양평화에 대한 관점은 사상적·시대적 한계성을 뛰어넘어 오늘날 유동성과 불안정성으로 점철되어 있는 한반도 및 동북아의 안보정세에 바로 직접적으로 대입할 수 있는 평화전략론 내지 평화사상으로서의 의미를 충분히 가지고 있다고 분석된다. 예컨대, 주변 강국의 지역패권 추구와 냉전의 잔재가 아직도 남아 있는 동북아에서 항구적인 평화와 번영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안중근이 주창한 지역협력체제 구축방안에서 중요한 교훈을 찾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일환/ 보훈교육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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