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은 거대한 국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생명평화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는 한반도 미래구상이어야 되어야 한다. 사람들의 마음의 평화, 생태적 평화, 사회적 평화를 통일의 비전으로 삼아 한반도 생명평화공동체를 이룩해야 한다.”

▲ 계간 <불교평론> 겨울호

<불교 평론> 최신호(겨울호)에 실린 ‘생태적 패러다임으로 상상하는 한반도의 미래’ 주제의 유정길 지혜공유협동조합 이사장 글이다. 민족적 통일·사회적 통합이라는 기존 남북통일론에서 한발 더 나아가 생태적 통일을 주창한 것이다.

유 이사장은 “이제껏 통일논의는 식민지적 과제 해소를 통해 남한과 북한이 통합되어 커다란 강성대국의 국민국가가 되는 것을 꿈꾸어왔다”며 “하지만 현재의 발전, 성장, 진보는 미래를 지속가능한 유토피아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위기와 절멸로 가는 디스토피아의 ‘지속불(不)가능한 발전’의 길”이라고 지적했다.

남북 통일이 지속가능한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경제 중심적 발전이 아니라 사회적·생태적 지속가능성을 통합적으로 고려한 발전방식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 통일 과정에서 북한을 무분별하게 개발한다든지, 오염원과 혐오시설을 북한에 이전하거나 남한의 그릇된 문화를 북한에 이식하는 형태의 통일은 지양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 이사장은 이를 위해 △지역분권과 자치를 기반으로 한 다연방 네트워크 국가 △협동경제를 기반으로 한 남북 호혜사회 △자연환경과 생명을 소중히 하는 미래세대의 사회를 통일코리아의 방향으로 제시했다.

우선 지역분권과 자치를 기반으로 한 다연방 네트워크 국가와 관련해서는 “남한과 북한만의 2개의 연방이 아니라 지방자치라는 세계적 흐름에 맞게 분권화를 토대로 한 10여 개 또는 20여 개 이상의 연방 지역정부를 기조로 한 국가모델이 더욱 민주주의적이고 녹색적인 모델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고려연방제, 남북연합, 남북공동체 등 그동안 남북이 제시해온 통일방안이 대체로 중앙집중형 국민국가의 통일모델로써, 이제는 새로운 시대적 과제에 걸맞은 진화된 비전으로서의 제3의 모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유 이사장은 26개 연방주를 통해 직접민주주의를 구현하고 있는 스위스, 16개 작은 나라들의 구성체라고 할 수 있는 분권화된 독일 사회를 예로 들며 “한반도의 통일은 이러한 발전된 민주주의를 고려하여 설계되어야 할 것”이라며 “이를 위해 기존의 논의를 훌쩍 뛰어넘어 분권화를 토대로 한 ‘다연방 통일국가’ 또는 ‘다연방 네트워크 국가’를 구상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협동경제를 기반으로 한 남북 호혜사회와 관련해서는 남한식 자본주의, 북한식 사회주의도 뛰어넘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나친 자본 주도의 경제와 부의 집중, 그리고 지나친 국가주도의 경제와 권력집중도 제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국유화·사기업·생활경제 등 혼합경제 형태를 제안했다. 유 이사장은 “중요산업과 복지는 국가주도의 국유화로, 중화학공업 영역은 사적 소유에 기초한 사기업 영역으로, 농업이나 생필품 등 민초들의 생활에 직접 영향이 있는 것은 협동적 소유나 공동체적 소유에 기초한 혼합경제가 되어야 한다”며 “이들 협동경제에 기초한 사회적 경제 등 민간자율경제의 비중을 3분의 1로 높이면서 사적 소유, 국가적 소유 등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혼합경제 형태를 구상해 볼 수 있다”고 밝혔다.

▲ 남북한의 생태적 통일을 고려하는 풀뿌리 차원의 제3의 통일논의가 필요하다. ⓒ구글어스

자연환경과 생명을 소중히 하는 미래세대의 사회와 관련해서는 “환경에 대한 준비 없이 정치·경제적 이해관계에 따라 통일이 진행된다면 생각지도 못한 부작용이 발생할 수도 있다”며 구체적으로 유폐성 폐기물의 유입, GMO 농작물 시험재배 등 선진국가 자본들의 신제품 개발 시험장화, 일회용 소비생활문화와 생활양식으로 폐기물 문제 심각성 등을 제기했다.

유 이사장은 “생태학적 자립기반이 무너진 상황에서 이룬 경제성장은 이후 큰 대가를 반드시 치르게 된다”며 “초기에는 남북 주민들의 생존과 생계를 효과적으로 해결할 방안을 찾되, 생태적 조건을 고려한 지속가능한 방향으로 경제와 생태를 종합적으로 아우르면서 협력을 통해 자립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한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남북한 생태계와 환경오염에 대한 공동조사와 협력적 관리방안 모색, 기상정보 공유 등 기후변화 공동 대응, 각종 생태학적 질병에 대한 공동 대응, DMZ 등 생태학적 자원보존지역의 공동 관리, 국립공원 관리, 생태적 서식 관리, 어족자원·멸종위기종·생물 다양성 관리 등을 공동으로 전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 이사장은 “지구촌의 단절과 한반도의 단절은 다르지 않으며, 인류의 단절과 한민족의 단절도 서로 별개의 것이 아니다”며 “통일은 이렇게 끊어지고 갈라진 단절을 잇고 봉합하고 교류하고 연결하는 관계 맺기 작업이 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유 이사장은 “따라서 통일국가를 만드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통일문명도 함께 만들어 가야 한다”며 “이러한 통일은 하나 되는 것이 아니라 화일(和一)이거나 전일(全一)이다. 다중 주체의 새로운 통일이다”고 강조했다.

김성원 기자  ukorea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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