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이 꼭 엄청난 감격만 동반하는 건 아닌 것 같다. 구원이라는 결과로 가기 위해서는 통과해야만 하는 과정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과정은 제대로 된 신앙이라면 대부분 고난일 경우가 많다. 구원받은 사람으로서 그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거기엔 대부분 내가 손해보는 일이 많다) 그런 고난 말이다.

통일이 꼭 그렇다. 통일은 엄청난 감격이지만 그 감격을 생각하면 할수록 맥이 빠진다. 분단이란 커다란 장벽이 현실로 떡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그 방법과 시기, 비용에 있어서 남북과 남남의 이해가 첨예하게 갈리는 ‘통일’은 차치하고서라도, 남북 화해와 교류가 상시(常時)화되는 사실상의(de facto) 통일 상태까지 도달하는 것도 이렇게 힘들 정도니. 단체건 기업이건 교회건 통일을 꿈꾸고 기도하고 실천해온 이들은 지금 비슷한 절망과 한숨, 심지어 통일의 가능성 자체에 대한 회의감까지 품고 있다. 어쩌면 그러기에 통일의 과정이 더 귀한 것인지 모르겠다. 구원을 위해 좁은 길(과정)을 가야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귀하게 와닿듯 말이다.

개인인 나는 과연 통일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1990년대 중후반 북한의 식량난이 극심할 때는 돈 몇 푼 내는 걸로 ‘통일을 위해 나름대로 할 일을 했다’고 자부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북한의 식량난이 고비를 넘기고 경제가 서서히 회복되는 지금, 비로소 남북은 정상적인(한쪽이 일방적으로 돕거나 다른 한쪽을 흡수하는 방식이 아닌) 통일을 고민할 때가 됐다. 그런데 남북의 현실은 마치 추수 끝난 벌판처럼 너무나 황량하기만 하다.

원인 없는 결과 없고, 뿌리 없는 열매 없다
남북은 분명 하나였는데, 그리고 적어도 주민들의 마음은 지금도 서로를 향해 있는데 우리는 왜 서로 갈라진 채, 심지어 서로를 적으로까지 여기며 원수처럼 살고 있는가. 여기서 그 원인을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왜 분단이 됐고, 그 분단의 상태가 결국 남북 정치인들의 배만 불리는 형태로 진행·고착돼 왔다는 걸 생각하면 국민의 한 사람으로 분단을 그대로 두고보고 있다는 건 넌센스다. 결국 분단은 어리석을 뿐만 아니라 죄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래서 통일을 생각하는 사람, 분단을 고민하는 사람은 스스로 역사 공부에 뛰어들게 된다.

2년 전 여름, 필자는 압록강 하구 단둥에서부터 두만강 하구 방천까지 1주일간 여행을 갔었다. 광개토대왕 무덤이 있는 집안현에 들어서면서 우리 고토(故土)를 남의 나라 허락을 받아 방문해야 한다는 현실 앞에 못난 후손이 된 것만 같아 너무나 송구스러웠다. 백두산 정상에서는 한반도를 넘어 만주 벌판을 호령했던 선배들의 기개 앞에서 한없이 초라해졌다. ‘우리는 이렇게 만주 벌판을 호령했건만 너희 후손들은 왜 그렇게 쪼그라들어 남북이 갈라진 것도 모자라 남한에서조차 서로 싸우고들 있는 것이냐?’ 힘들게 정상을 기어올라간 일단의 후손들을 향해 백두산은 위로는커녕 호된 꾸지람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무심히 흐르는 듯 보이는 압록강, 두만강은 마치 한 많은 민족사의 눈물처럼만 여겨져 말을 못한 채 손만 담그고 있었다.

▲ 2012년 여름, 중국 집안현 광개토대왕릉 돌무더기 위에서 ⓒ유코리아뉴스DB

역사서적에서 통일을 보다
여행에서 돌아와 가장 먼저 신채호 선생의 『조선상고사』를 도서관에서 빌렸다. 거기엔 조선의 정신을 한반도 내부로 가둬버린 사대주의자 김부식에 대한 예리한 비판과 함께 우리 정신이 잊어버리고 있었던 고조선의 땅, 그 역사에 대한 찬란한 자부심이 진하게 배어 있었다. 그 책 한 권으로 분단과 민족 갈등은 우습게 보였고, 남북 화해와 통일은 당연한 귀결이 되었다. 이어서 장준하 선생의 『돌베개』를 비롯해 『역설의 변증』·『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리영희), 『한국전쟁의 기원』(브루스 커밍스), 『인간 루쉰』(린시엔즈) 등을 읽으며 분단의 원인과 그것을 고착시키는 세력들에 대한 비판의식, 그리고 그 어떤 이념이나 체제에도 구애받지 않고 합리적인 해법찾기를 시작했다. 지금도 이 작업은 계속되고 있지만 분명한 결론 하나는 남한이든 북한이든 정치권력에 주입된 편향적 관점을 버려야 한다는 것, 그리고 시민이 주체가 되어 통일의 길을 닦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엔 남북한 시민(혹은 주민)들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의 시민들이 동참해야 하고, 그럴 때 남북통일(혹은 사실상의 통일상태) 이후 동북아 평화가 가시권에 들어온다는 것이다. 역사 현장 탐방, 그리고 역사 서적과의 씨름 등 나름의 역사 공부 끝에 얻은 결론이다.

필자를 비롯한 이 글을 읽는 독자의 대부분은 아마 남한에서 태어나 남한에서 생활하고 남한에 묻히게 될 것이다. 물론 잠시잠깐 해외 경험을 할 수도 있겠지만 결국엔 자기가 태어난 곳에서 자라고 묻히는 게 대부분이다. 이들에게 분단된 반쪽 북한은 남의 나라다. 그저 남한이 전부인 사람들이다. 하지만 남북이 하나였고, 그 한반도를 넘어 만주와 중국 대륙까지 생활 무대로 삼았던 코리아(고조선, 고구려, 발해, 고려)를 발로 밟고 만지고 느낀다면 삶은 달라진다. 좁디좁은 남한에서 아등바등 산다는 게 얼마나 미련한지, 또한 올바르지 않은 일인지 몸소 깨닫게 된다. 그렇게 깨달은 사람이 분단 극복을 위해 몸부림치고 기도하고 통일을 위해 산다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그것은 바다와 강을 가로 질러 자기가 태어난 상류로 상류로 거슬러 오르는 연어의 회귀본능과 같은 일이다. 잔소리처럼 거듭 말하지만 분단된 상태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게 비정상이고, 분단된 상태를 하나로 잇기 위해 몸부림치는 게 정상이다. 그리고 38년 된 중풍병자보다 갑절이나 많은 70년간이나 남북의 허리가 끊겨 병신처럼 방치된 채 곪아 썩어 문드러진 남북, 그 하나됨은 다른 누구보다 하나님의 바람이고 열망임을 확신한다!

<그밖에 통일을 위해 개인이 할 수 있는 일>

●기도하고 신문 읽기
기도를 하되 반드시 신문을 같이 읽어야 한다. 그것은 기도한 대로 과연 통일이 진척되고 있는지 확인하는 일이다. 계간 <통일코리아>에서 깊이있는 북한·정보를 접할 수 있다. 그렇지 않은 기도는 공허한 것이고, ‘12월 전쟁설’ 같은 전혀 비현실적이고 비합리적인 주장을 ‘억지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우를 범한다.

●소모임
통일은 피부에 가닿아야 하고, 생활로 나타나야 한다. 생활 속에서 통일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얘기다. 교회나 지역마다 소모임들이 얼마나 많은가. 통일을 위해 일상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모여서 토론하고 기도하고 공부하는 일, 교회 소모임에서 얼마든지 가능하다.

●시민단체 활동
통일을 위해 전문적으로 활동하는 통일 단체들은 부지기수다. 그 단체들이 주최하는 세미나나 기도회에 참석해 강의를 들을 수도 있고, 그 단체의 후원자가 될 수도 있다. 강의 참여나 후원만 하기가 아쉬우면 통일코리아협동조합 같은 곳에 조합원으로 직접 참여할 수도 있다.

●가족여행
조·중접경지역이나 독일 같은 해외 루트가 아니어도 국내에도 얼마든지 분단·통일 현장이 많다. DMZ를 비롯해 한국전쟁을 전후한 당시 참혹한 상처를 안고 있는 제주평화공원을 탐방할 수도 있고, 탈북자들이 한데 모여살고 있는 서울 신정동, 인천 논현동을 방문할 수도 있다. 탈북자들이 모이는 교회를 탐방해서 교제를 나누는 길도 있다. 여기에 반드시 온 가족이 동반한다면 최고의 통일교육이자 가족여행이 될 수 있다.

●기타
통일은 남북한의 제도나 사람의 통합(플러스)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남북한 통합을 통한 새로운 차원의 코리아(플러스 알파)가 된다는 의미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분단 남한에서 살면서 몸에 밴 낭비, 환경오염, 이기심, 우월주의, 안전불감증 같은 못된 짓거리들은 버릴 줄 알아야 한다. 마치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면서 하나님 나라 시민으로서의 행동강령인 산상수훈이라는 높은 도덕율을 제시했던 것과 같다. 통일이 또 하나의 남한, 또 하나의 북한이 아닌 전혀 질적으로 다른 코리아로 우뚝 서는 일, 그것은 나 한 사람의 새로운 생활에서 시작된다.

*이 글은 월간 <빛과 소금> 12월호에도 게재됐습니다.

김성원 기자  ukorea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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