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분단 70주년인 올해, 분단의 아픔은 한반도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지난 19일 서울의 한 교회에서 임엘리야 선교사, 임사라 사모를 만났다. GP선교회 소속 임엘리야 선교사는 한국국적, 임 사모는 중국국적의 조선족으로 일본 내 조선적(무국적 재일동포)과 일본인들을 대상으로 사역하고 있다. 자녀들은 일본에서 조선학교를 다니고 있다. 범상치 않은 배경을 접하고 한번 놀라고, 직접 대화를 나누고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연달아 놀랐다.

임 선교사는 20세 때 일본 선교를 위해 헌신하여 49세가 된 지금까지 한결같이 달려왔다. 현재 사역하는 곳은 지바현 지바시다. 관동대지진이 났을 때 이곳의 나라시노수용소로 조선인들이 피난을 많이 왔다고 한다. 그런데 당시 일본인 군인・경찰 출신들이 ‘자경단’이라는 조직을 만들어 조선인을 사냥했다. 지금도 영문도 모른 채 학살당하고 죽임당한 무덤들을 만날 수 있을 정도로 아픔과 상처가 곳곳에 배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지바는 1991년 사상 최초로 남북이 단일팀을 이루어 세계탁구선수권에서 우승을 차지했던 곳이기도 하다. 남과 북의 에이스 현정화와 리분희가 복식조를 이루어 세계 최강 중국을 꺾고 우승했을 때, 그 작은 통일의 기적이 한반도기와 함께 우리의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곳이다.

▲ 임엘리야 선교사와 임사라 사모 ⓒ유코리아뉴스 최형만 기자

조선적, 국적 없이 살아가는 그들

그런데 대화를 나눌수록 임선교사와 사모님 안에 있는 복음과 고민은 일반적인 생각에서 한발 더 나아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총련 동포 중에서 ‘조선적’이라는 국적 없이 사는 동포 5만 명에 대한 마음이었다.

“일본도 전체 인구의 0.2%만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교회에 출석하는 미전도 종족인데, 그 일본 안에 또 한층 더 고립되어 있는 남한 출신의 1세대들, 동포들이 있는 것을 아무도 모르고 있습니다. 그분들한테는 전혀 복음이 전달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분들이 국적없이 사는 이유는 단 하나, 통일이 되어야만 자기들이 돌아갈 조국이 있다는 것입니다. 5세대에 걸쳐서 한이 맺힌 5만여 명의 조선적을 알리고, 이분들을 복음으로 품고 가야만 통일의 문도 열리고, 일본선교의 문도 열리고, 동북아 평화에도 기여할 수 있습니다. 민감한 부분이지만 이 부분을 언제까지 계속 묻어두고 갈 수는 없기 때문에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  임엘리야 선교사 ⓒ유코리아뉴스 최형만 기자

그의 사역은 일본인 사역이 중심이지만, 그에 버금가는 것이 재일동포 사역이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05년에 자녀를 일본의 한 보육원에 보내게 됐다. 보육원에서 하루는 한국 이름을 가진 아이를 만나 궁금해서 물었다. ‘무국적 재일동포’라는 것을 그때 처음 알게 됐다. 이후 하나님의 인도로 조선학교를 알게 되었고, 알면 알수록 그분들의 차별대우, 억압적인 상황들을 풀어가야만 일본선교도, 통일도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시대적인 큰 흐름을 보면 IS 문제도 결국 서방의 교회가 무슬림, 이슬람을 적대시하고 그들을 문전박대했기 때문에 이런 증오의 악순환을 만들어 냈습니다. 우리도 역사적 상처를 가지고 일본을 도외시하고, 또한 일본 안에 고립되어 있는 총련에 관계되어 있다고 무시해버리면 역사의 또다른 아픔을 재생산하는 것이 된다고 생각했죠. 통일이 되어야만 이들에 대한 선교도 가능하겠다고 그때부터 생각하게 됐습니다.”

조선학교, 그 축복의 통로

그래도 자녀들을 조선학교에 보내기 쉽지 않았을텐데 말이다.

“고민을 정말 많이 했습니다. 조사를 많이 해보고 특히 납치문제, 주체사상을 가르치지는 않는지 등에 대해서 직접 교장선생님을 만나 면담도 해서 물어보았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말렸지만 사람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무모한 짓을 했습니다.”

마침 자녀를 조선학교에 보낼 무렵은 2007년, 일본에서 메구미 사건이 한창 이슈가 되고 있을 때였다. 북한에 납치된 일본인 여성 문제는 동포들 사이에서도 북한에 대한 실망으로 번졌다. 

“자녀가 학교에 들어갈 때가 2007년이었는데 일본에서 메구미 사건이라고 북한에서 납치를 인정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일본 안에서도, 재일동포 안에서도 북한에 많이 실망해서 재일동포들이 많이 떠나고, 일본 국적이나 한국 국적을 취득했습니다. 보내면서도 불안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입니다. 그런데 3개월이 지나면서 불안이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갈등이나 불안보다 더 가치있는 것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아무도 다가갈 수 없었던 조선적들에게 다가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총련 조직안에 있는 학교, 동포에게는 다가갈 수 없었는데 학교를 통해 만나고 다가갈 수 있었습니다.”

▲  임사라 사모 ⓒ유코리아뉴스 최형만 기자

이들 조선적, 그리고 조선학교가 당하는 차별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일본의 초・중・고 학교 학생들은 모두 무상으로 다닌다. 하지만 조선학교는 그저 사설 학원 수준의 취급을 받는다. 그렇다 보니 학비를 전부 학부모가 감당해야 한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자녀의 학비만 한달에 35~40만원 정도라고 한다. 임 선교사는 모두 3명의 자녀가 조선학교에 다니고 있다. 일본 선교에서 가장 힘든 점도 바로 이 경제적인 부담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녀들을 굳이 조선학교에 보내는 이유가 뭘까?

"첫번째는 민족교육 때문입니다. 주변 선교사들의 자녀들을 보면 거의 일본화되거나 동화되었습니다. 하지만 조선학교에 다니는 자녀들이 민족의 뿌리를 지켜가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뿌듯한지 모릅니다. 두번째는 선교 때문입니다. 조선학교를 통해서 비로서 일본 안에 고립되어 있는 학부모와 학생들 그리고 동포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분들을 접할 기회와 창구가 학교이기 때문입니다. 저희 애들이 학교에 다니고 있었기에 9년이 넘는 세월을 지하수처럼 조금씩 동포사회로 스며들 수 있었습니다. "

임 선교사는 "자녀들이 한국, 일본, 조총련, 민족학교 등을 다 경험했기 때문에 앞으로 통일이 되었을 때, 엄청난 진통이 있을 정서와 문화적인 차이와 다름을 극복하는 통로로 쓰임 받았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통일을 이미 살고 있는 아이들이 주인공이 된 세상을 그려보니 도화지가 작게 느껴졌다.

특히 분단 때문에 겪는 아픔은 이들 조선적들에게 훨씬 크고 더 직접적이다. 

"예를 들어 연평도 포격 사건 같은 게 나면 한국에서는 그냥 얼마 후에 지나가고 나면 그만이지만 일본에서는 조선학교를 억누르는 빌미가 됩니다. 그 동안 지방자치에서 조금 나오던 학교보조금마저 중단시키는 계기로 삼습니다. 북한 핵 실험문제도 이를 문제 삼아 결국은 조선동포들을 억압하게 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어서 빨리 남북이 화해하고 하나 되어야 합니다." 

임 선교사 부부의 얘기를 들으며 알게 된 것은 5만여명의 조선적들이 모두 총련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물론 북한을 지지하는 이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우리 민족으로 살고 싶은 것이지 총련을 지지하는 사람으로 남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렇다고 한국국적을 취득한 사람들도 많은데, 이들이 한국을 지지하는 것도 아니다. 이들에게 국적은 큰 의미가 없고 그저 통일 조국을 바란다는 점을 임 선교사는 강조했다.

▲ 임엘리야 선교사의 가정교회인 갈릴리교회 예배 모습 ⓒ임엘리야 선교사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임 선교사 부부는 지바에서 갈릴리교회를 통해 조선학교의 학부모들과 아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다. 일본인들을 만나서는 과거 재일동포들이 어떻게 해서 일본에 왔고, 지금 어떻게 차별대우를 받으며 일본에서 살아가고 있는지 설명하고 있다. 그러면 일본인들은 "정말 미안하다"며 후원에 동참한다. 매주 금요일엔 일본인과 한국인이 모여 평화통일기도회도 갖는다. 아직 건물이 없어 집에서 기도와 예배를 드린다. 남과 북이 함께하고, 나아가 동북아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센터 건립, 이것이 그의 이번 방한 목적이기도 하다. 실제 통일의 현장을 보고 경험함으로써 남북 통일과 동북아 평화와 화해에 기여하겠다는 것이다.

현재 국내에서는 '평화와 통일을 위한 기독인연대'(평통기연)이 수년째 지바의 조선학교를 찾고 있다. 처음엔 의심하던 조선적들이 "살아 생전에 남조선 사람들이 학교를 찾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며 감격해하고 있다. 센터를 통해 긴장과 대립의 남북, 동북아를 넘어 이해와 화해, 사죄와 용서, 평화와 통일의 역사를 힘있게 벌여나가겠다는 게 임 선교사 부부의 각오이자 사명이다. 

최형만 기자  josephmann08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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