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꿈은 배우들과 좋은 극장에서 좋은 작품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공동체를 생각하면 그게 안된다. 반만년 역사 생각하면 중국에 망하고 일본에 짓밟힌 역사가 그렇게 서러울 수가 없다. 이 땅에 발딛고 서서 당당하게 살고 싶다.”

배우 문성근(통일맞이 이사) 씨의 말이다. 문 씨는 15일 저녁 서울 청파동 카페효리에서 열린 통일맞이와 기독청년아카데미 공동 주최의 통일인문학 아카데미에서 ‘통일에 미친 사람들’ 제목의 강연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 15일 저녁 서울 청파동 카페효리에서 열린 통일인문학 아카데미에서 배우 문성근 씨가 '통일에 미친 사람들'이란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유코리아뉴스

“남북 관계는 결국 정치의 문제”라고 운을 뗀 문 씨는 “2017년에 정권교체가 되지 않으면 남북 관계가 계속 단절될 것이기에 정권 교체를 해내는 것이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권 교체에만 생각이 머물러 있는 것 같진 않았다. 시대와 역사, 그리고 민족에 대한 깊은 고민이 엿보였기 때문이다.

2013년 10월 2일 서울에서 열린 제45차 한미안보협의회(SCM). 이 자리에서 김관진 국방장관과 척 헤이글 미국 국방장관은 2015년 12월로 예정돼 있던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 재연기에 공감했다([전문] 제45차 한미안보협의회(SCM) 공동성명). 그리고 다음날인 2013년 10월 3일. 일본 도쿄에서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 척 헤이글 미국 국방장관, 오노데라 이쓰노리 일본 방위상, 기시다 후미오 외무상이 참석한 미일 동맹강화 2+2 회담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는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 일본의 무기수출 3대 금지 원칙 해제 합의가 있었다(미 "일본 집단적 자위권 추진 환영").

이에 대해 문 씨는 “그 소식을 듣는 순간 ‘당했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며 “그때부터 문익환 목사 평전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2012년 이명박 정부 당시 미국과 한국은 한일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GSOMIA. 이하 정보보호협정)을 추진하다가 언론 보도로 무산된 바 있다(정부, '한일군사협정' 몰래 추진 파문…야 "노골적 친일" 맹공). 따라서 2013년 10월 합의 역시 미·일이 먼저 합의하고 한·미 합의를 추진하려 했다면 여론의 거센 반발을 불러왔을 거라는 게 문 씨의 설명이다.

아버지 문익환 목사의 일대기를 그린 「문익환 평전」(실천문학사)을 다시 꺼내든 문 씨가 궁금했던 것은 왜 문 목사가 1989년에 북한에 갔을까? 하는 것이다. 이 책을 다시 읽기 전만 해도 문 씨는 문 목사가 밝혔던 대로 젊은이들이 분신하며 죽어가는 상황에서 젊은이들에게 뭔가 희망을 주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2013년 그 두 가지 협정 앞에서 꺼내든 그 책은 문 목사 방북의 다른 목적을 보여주기 시작했다는 것.

▲ 문성근 씨의 강의에 집중하고 있는 참석자들. ⓒ유코리아뉴스

“1989년은 동유럽, 소련이 흔들리던 시점이다. 조만간 사회주의권이 붕괴될 수 있는 시점이었다. 동서냉전이 흔들린다면 이때 남북이 잽싸게 손잡고 교류협력하면 가능하다, 이렇게 (문 목사는) 보신 것이다. 문 목사가 89년 평양 갔다와서 94년 1월 돌아가실 때까지 ‘통일은 됐어’ 이렇게 외치시고 다니다가 돌아가셨다. 난 ‘왜 저러지? 어떻게 평양 한번 갔다왔다고 통일이 된다는 거야?’라고 생각했는데 이제야 이해가 된다. 1995년까지 통일을 하자고 그는 왜 그렇게 주장을 했을까? 1993년 합당하면서 등장한 김영삼은 군인과 달리 민간인이기에 국민여론을 듣는다, 따라서 김영삼 정부 임기 내에 확실한 진전을 이뤄야 한다, 그렇게 봤던 것이고 그래서 그렇게 ‘통일은 왔다’고 외치고 다닌 게 아닌가 생각한다.”

세계적인 냉전 붕괴 상황을 문 목사는 남북이 하루빨리 손잡고 화해와 통일을 이룰 절호의 기회로 포착했었다는 게 문 씨의 얘기다. 그 기회는 1990년대부터 2010년까지 이어졌지만 그때마다 이명박 정부나 박근혜 정부가 기회를 날려버렸고, 지금도 날리고 있다는 것. 문 씨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전쟁은 어떻게 보면 인류 최후의 세계 대전이라고 할 수 있다”며 “이 상황에서 남북이 주도적·자주적으로 손을 잡았으면 미중 패권 어느 쪽에도 휘둘리지 않고 성장할 수 있었는데 그 기회를 날리고 있다”며 “그래서 이 사태가 대단히 심각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그것은 문씨에겐 민주진보 진영의 대선 전략이 무엇이냐는 질문과 같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해 보수 언론 등에서 일제히 주장하는 게 ‘통일’이다. 그 내용은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추진했던 통일 정책과 크게 다르지 않다. 따라서 보수 진영 중에서도 합리적인 보수를 떼어내야 한다는 게 문 씨가 보는 2017년 대선 전략이다. 문 씨는 2012년 대선 때처럼 2017년 대선도 경제·복지는 여당이나 야당이 비슷할 것이고 다만 안보·통일 분야만 차이가 날거라고 본다. 따라서 유시민의 「나의 한국현대사」(돌베개)에 나오듯 안보·통일 문제를 인간의 1, 2 단계 욕망인 안전, 식욕과 연결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통일이 되면 일자리는 늘고 병역 기간은 없어지거나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남북 관계가 개선되면 북한의 요소요소에 개성공단 같은 공단을 지을 수 있고, 아울러 북한의 막대한 인프라 구축을 위한 일자리가 대폭 늘어난다는 것. 문 씨는 “4대강 개발 안하고 북한 개발 했으면 건설경기 살고 일자리도 풍부하게 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남북관계가 개선되면 건설, 복지, 문화 등의 분야에서 일자리가 풍부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병역과 관련해서는 “지금 60만 군인은 6·25 당시의 편재”라며 “징병제가 아닌 모병제로 바꿔서 하사관 이상 뽑으면 10만 명 이내로 줄일 수 있다”고 밝혔다. 나머지 50만 명은 군대가 아닌 사회에서 더욱 생산적인 일에 종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통일’이라는 말을 쓰지 말자고도 했다. ‘통일’이라고 하면 국민들은 대체로 ‘세금’을 떠올리고 그러다 보면 ‘퍼주기’ 등 반대 여론이 많아진다는 것. 대신 그는 “교류협력을 확대해서 남북간 FTA 정도 체결해서 국가연합이 되면 실질적 통일”이라며 “그렇게 되면 남북이 골고루 발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 문성근 씨 강연 모습 ⓒ유코리아뉴스

새누리당과 정부에서 끊임없이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는 사드(고고도미사일 방어)체계 도입과 관련해서는 “난 도입 못할 거라고 본다”며 “만약 사드를 도입하게 되면 반년도 안돼 국가부도에 직면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드 자체의 효과와 비용 문제는 물론 사드로 인한 중국의 경제제재가 불보듯 뻔하다는 것이다.

아울러 사드 도입의 근거로 정부와 새누리당에서 제기하고 있는 북핵 문제에 대해서는 “북이 남한을 공격하려면 핵무기가 아닌 미사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며 “북한의 미사일 사정권 안에 있는 남한의 23개 핵발전소만 공격해도 되는데 북한은 굳이 왜 핵을 가지려 하는가?”라고 반문했다. 이에 대해 그는 “그것은 미국의 침공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일종의 자폭수단”이라며 “정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바뀌고 미국과 북한이 수교하는 날 북한은 핵을 내려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끝으로 문 씨는 “지난해와 올해 초 지지율을 보면 민주진보 진영이 48%, 보수 진영이 42%”라며 “국민들은 지금 무의식 속에서 ‘바꿔야 한다’는 걸 느끼기 시작했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다양한 시민들이 다양한 의제를 제기하고 이를 정책 결정에 반영하는 온라인 플랫폼을 준비하고 있다고도 했다. 이르면 다음달이나 7월 초에 대국민 제안을 하고 연말 쯤 본격 가동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온라인 플랫폼은 문재인 대표의 온오프라인 정당, 박원순 시장의 손안의 정당, 안철수 의원의 소셜 정당, 정청래 의원의 SNS 정당과도 일맥상통한다는 게 문 씨의 설명이다. 문 씨는 “이런 제안들이 질척거리는 이유는 시민이 참여하면 불편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라며 “문재인, 박원순, 안희정 등 유력 대권후보는 모두 찬성한다. 이걸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는 시민 참여 없이는 선거를 치룰 수 없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통일맞이와 기독청년아카데미가 공동 주최하는 통일인문학 아카데미 다음주(5월 22일) 강의는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이 맡는다.

김성원 기자  ukorea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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