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현 前 통일부장관. 1977년 국토통일원을 시작으로 박정희 정부에서 노무현 정부에 이르기까지 남북관계를 담당한 실무자이자 전문가이다. 해박한 지식과 비상한 기억력을 자랑하며 무거운 주제를 빼어난 입담으로 종횡무진 풀어내 주었다. 22일 통일맞이와 기독청년아카데미가 공동 주최한 통일인문학 아카데미에서다.

▲ 22일 저녁 서울 청파동 카페효리에서 열린 통일인문학 아카데미에서 정세현 前 통일부 장관이 '남북관계 현황과 전망'이란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유코리아뉴스

중화부흥 VS 아시아 재균형(Asia Rebalancing)

정 前 장관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사드(THAAD: 고고도 미사일 방어)문제에 대해 “간단히 말하면 중국 때문”이라고 강연의 첫머리를 열었다. “중국은 200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 60주년 기념식에서 후진타오 주석이 ‘중화부흥’을 선포했다. 아편전쟁 이후 147년 만에 중국이 다시 아편전쟁 이전의 중국의 모습을 되찾겠다는 이야기를 한 것”이라며 “중화란 하늘 아래 한 가운데 있는 국가, 즉 천하의 중심이라는 뜻으로 지리적으로 인접한 주변국뿐만 아니라 멀리 있는 나라도 조공을 바치던 시대를 재현하는 것이 중화부흥, 중국몽(中國夢)”이라고 전했다.

중화부흥은 미국 입장에서 놀라운 이야기였다. 2008년 출간된 헨리 키신저의 <온 차이나> (On China)를 보면 ‘미국은 점점 힘이 빠지기 때문에 중국을 이길 수 없다. 미국과 중국이 적당히 타협하며 공존을 생각하는 것이 현명할 것’ 이라는 경고를 하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일 것이다. “태평양은 미국과 중국이 나눠 쓸 만큼 넓다”라고 말한 시진핑 등장 이후 미국의 대외정책은 아시아 회귀(pivot to Asia), 아시아 재균형(Asia Rebalancing)으로 변모하였다. 중국의 부상이 미국의 대외정책을 수정하는 단계에 이른 것이다.

정 前 장관은 “미국은 군산복합체 국가이자 재정적자국이다. 사실상 군산복합체에서 돈을 벌어 고용을 창출하고 경제를 지탱하는 나라가 매년 500억 달러씩 국방예산을 삭감해야하는 재정 절벽상태에 놓여 있다”고 말하며 미국 내부의 모순으로 인해 일본이 다시 치고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입장에서 재정적인 어려움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시아를 중국에 내줄 수 없기 때문에 돈 있는 협조자가 필요했고, 돈을 낼 수 있는 일본과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졌다는 것이다. 일본은 경제력을 기반으로 미일방위협력지침을 개정하여 자위대가 아닌 일본군으로 활동할 수 있게 되었다. “일본은 정상국가화, 보통국가화를 가속화하며 미군 후방지원이라는 명목으로 아시아와 한반도에 개입하려 할 것이다. 이것은 예정된 수순이며, 군사적 능력을 과시하기 위해서라도 북한이 사고를 치도록 유도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한국의 2014년 무역흑자는 약 470억 달러였다. 이것은 전적으로 중국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과 수교 이후, 대중무역 흑자가 증가함에 따라 우리 경제가 건전해지고 만성적자에서 벗어낫다. 대일 무역적자가 250억 달러에 달하는데, 대미 무역흑자가 150억 달러 정도이고 중국에게서 얻은 흑자가 550억 달러이다. 정 前 장관은 “중국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자신들에게서 돈을 벌어가지고, 그 돈으로 미국 무기를 구입해서 중국을 견제・공격하는 일에 쓴다면 가만히 있겠어요?” 라고 반문하며 전경련에서 사드배치를 반대한 이유를 구체적인 수치를 들어가며 이야기했다.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우리의 역할은?

중국의 부상과 맞물려 대화와 협상으로 북핵문제를 해결하자는 입장에서 소위 ‘전략적 인내’로 미국의 북핵정책이 바뀌었다. ‘전략적 인내’는 두가지 조건을 내거는데, 첫째 북한이 확실하게 핵을 포기하겠다는 의지를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는 북한 선행동론, 둘째 북한이 행동할 수 있도록 중국이 압박하고 설득해야 한다는 중국 역할론이 그것이다. 이에 대해 정 前 장관은 “전략적 인내는 사실상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정책이라 말할 수 없다”고 일갈했다. 북한을 약속을 지키지 않고 ‘벼랑 끝 전술’ 만을 일삼는 도발국가, 호전국가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북핵문제를 협상으로 풀 수 없다는 ‘북핵협상무용론’에 발이 잡히면 북핵문제는 앞으로도 풀 수 없다” 고 주장했다.

그는 또 “94년 미북 제네바 기본합의에서 북한이 핵활동을 중지하는 대신 북미수교와 경제적 지원(원자력발전소 건설)에 합의했다. 하지만 제네바 기본합의가 지켜지지 않았던 것은 미국의 국내정치적 상황의 변화가 그 이유이다 (의회를 장악한 공화당이 제네바 기본합의를 대북 유화정책으로 비난). 어찌됐든 약속을 지키지 않은 책임은 미국에 있다”며 “2005년 6자회담에서 미국은 5:1로 북한을 압박하자는 입장이었다. 이러한 미국의 입장을 수정하고 9.19 공동성명을 이끌어낸 것은 한국이 북한에 대한 영향력이 있다는 것을 미국이 잘 알고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미국의 입장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 그것은 쌀 40만톤, 비료 30만톤 지원의 힘이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잘 알려져 있다시피 9.19 공동성명에 합의한 바로 다음날, 미 재무부에서 BDA(방코델타아시아은행)의 북한자금을 동결시켜버렸고, 북핵문제는 원점으로 되돌아왔다.

정 前 장관은 마지막으로 국제정치를 국내정치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을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이 왜 망했나? 친청파, 친일파, 친러파 등으로 나뉘어서 외세의 힘을 끌어들여 저희들끼리 세력다툼을 벌이다가 일본에 통째로 나라를 빼앗긴 것이다. 남북관계를 심화・발전시켜나가면서 개성공단과 같은 것을 북한에 여러개 만들고 북한경제가 자생력을 갖추도록 노력해야 한다.”

경제적으로 남북간의 연결관계, 상호의존성이 커진다면 사회문화공동체, 정치・군사공동체로 나아갈 강력한 추동력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최형만 기자  josephmann08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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