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6월 15일은 한반도 분단 역사상 최초로 남과 북의 정상이 만나 공동선언을 한 날입니다. 6.15 공동선언은 분단 후 55년간 지속되어온 조국통일운동의 결과물인 동시에 한반도를 갈등에서 화해로, 분단에서 통일로 나아가게 하는 변화의 출발점이었습니다. 6.15 공동선언 15주년을 맞아 우리사회연구소에서는 공동선언의 역사적 의의와 공동선언 이행의 중요성을 되짚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최초의 남북정상회담
남북공동선언 서문.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염원하는 온 겨레의 숭고한 뜻에 따라 대한민국 김대중 대통령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00년 6월 13일부터 6월 15일까지 평양에서 역사적인 상봉을 하였으며 정상회담을 가졌다. 남북 정상들은 분단 역사상 처음으로 열린 이번 상봉과 회담이 서로 이해를 증진시키고 남북관계를 발전시키며 평화통일을 실현하는데 중대한 의의를 가진다고 평가하고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2000년 6월 13일부터 15일까지 평양에서 이루어진 남북정상회담과 6.15 남북공동선언은 분단 55년 만에 처음으로 남북의 정상이 만났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큰 의의를 갖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남북의 두 정상은 2박 3일 동안 단독회담을 비롯해 여러 차례 만남을 가졌고, 격의 없는 대화로 상호 입장을 교환하고 다양한 문제들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했습니다.

특히 양측 정상은 공식적인 일정 외에 함께 차량을 타고 이동하며 두 차례의 ‘리무진 회담’을 가졌습니다. 북측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 순안비행장에 도착했을 당시 직접 마중을 나오는 파격을 선보였고, 순안비행장에서 백화원 영빈관으로 향하는 리무진 승용차에서 57분 동안 환담을 나누었습니다. ‘리무진 회담’은 이틀 후 영빈관에서 순안비행장으로 가는 김대중 대통령의 환송 때도 이루어졌습니다. 이와 같은 비공식적인 회담 속에서 어쩌면 공식적인 정상회담에서보다 더 솔직한 대화가 오고갔을 수도 있습니다. 공동선언의 주요 내용들은 남북 정상의 이와 같은 교감 속에서 도출된 결과였습니다.

상호체제인정과 통일의 주체 문제 천명
남북공동선언 1항.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

남북이 상호체제를 인정하고, 통일문제의 주체가 남북한 한민족이라고 강조한 점 역시 큰 의의가 있습니다. 정상회담의 개최 자체가 상호체제를 인정한다는 가장 확실한 행동이기 때문에, 남북은 정상회담을 계기로 상대방을 실질적인 대화상대로 인정하고 통일과 관련된 현안을 풀어나가기로 합의한 것입니다. 한반도 통일문제에서 주변국들의 협조도 중요하지만, 최우선적인 과제가 민족의 화해와 협력이라는 점을 대내외에 천명하고 상시적인 남북간 대화채널을 구축한 것은 6.15 공동선언의 역사적인 합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통일의 주체 문제는 이전의 남북간 합의들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7.4 남북공동성명에서는 조국통일 3대 원칙에 대한 합의에서 ‘통일은 외세에 의존하거나 외세의 간섭을 받음이 없이 자주적으로 해결하여야 한다’고 명시해 두었습니다. 남북기본합의서에서도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조국통일 3대 원칙’을 재확인했고 ‘쌍방 사이의 관계가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는 것을 인정’하며 상호 체제를 인정했고, 통일의 주체가 민족공동체임을 다시금 강조했습니다.

6.15 공동선언은 7.4 남북공동성명과 남북기본합의서에서 강조된 상호체제 인정과 민족자주성을 바탕으로 첫 번째 항목에서 통일문제의 주인이 우리 민족임을 천명했습니다. 6.15 공동선언에서는 ‘우리민족끼리’와 ‘자주적으로’라는 표현이 상당히 강조되고 있는데, 이는 이전의 선언들에 비해서 양측 정상이 통일의 주체문제에 매우 신경을 썼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통일방안에 대한 합의
남북공동선언 2항. “2.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역대 한국 정부의 통일방안은 이승만의 ‘북진통일론’ 이래로 반공을 기초로 한 ‘흡수통일’ 노선이었습니다. 정부 차원의 통일방안이 공식화 된 것은 전두환 정권 시절이었습니다. 전두환 정권은 ‘민족화합 민주통일방안’을 내놓았고, 노태우 정권은 이를 계승하여 ‘한민족 공동체 통일방안’을 새로이 천명했습니다. 김영삼 정부는 ‘민족공동체 통일 방안’을 발표했는데, 이는 오늘날까지 남측의 공식적인 통일방안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남측의 통일방안은 기본적으로 ‘흡수통일’을 전제하고 있는 것이었기 때문에 결코 북측과 합의를 볼 수 없었습니다. 7.4 남북공동성명과 남북기본합의서에서도 통일방안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실제 양측의 공식 통일방안이 배타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6.15 공동선언은 배타적으로 인식되어왔던 남과 북의 통일방안을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함으로써 민족공동체가 지향해야 할 통일방안의 단초를 마련했다는 데 큰 의의가 있는 사건이었습니다. 김대중 정부는 이전 정권들과 달리 공식적인 통일방안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정치인 김대중은 ‘3단계 통일론’을 주장하기도 했지만, 대통령 김대중은 통일방안을 확립하는 것보다 북한과의 실질적인 관계개선이 우선이라고 보고 유연한 자세로 통일방안에 대한 논의를 진척시켜 나갔습니다.

그 결과 6.15 공동선언에서 천명한 통일방안은 분단 역사상 최초로 남북이 통일방안에 대한 합의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의 공통성을 인정하고, 공통성을 중심으로 통일을 지향해 나가기로 한 것입니다. 이전의 남북대화에서 결코 좁혀질 것 같지 않았던 통일방안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 낸 것은 6.15선언의 역사적 성과입니다.

화해협력 정책의 제도화
남북공동선언 3항. “남과 북은 올해 8.15에 즈음하여 흩어진 가족, 친척 방문단을 교환하며 비전향 장기수 문제를 해결하는 등 인도적 문제를 조속히 풀어 나가기로 하였다.”

남북공동선언 4항. “남과 북은 경제협력을 통하여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고 사회, 문화, 체육, 보건, 환경 등 제반 분야의 협력과 교류를 활성화하여 서로의 신뢰를 다져나가기로 하였다.”

남북정상회담은 경제협력을 비롯한 사회·문화·체육·보건·환경 등 다양한 분야의 남북 교류·협력이 활성화되는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특히 이산가족 상봉과 비전향 장기수의 송환 등의 인도적 문제의 해결은 민족동질성 회복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이산가족 문제의 해결은 남북간 신뢰 회복과 화해·협력의 상징과도 같은 일이었습니다. 비전향 장기수 문제는 분단의 질곡을 그대로 보여준 민감한 사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인도적 해결책을 모색함으로써 남북이 냉전의 아픔을 치유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남북 경제협력은 인도적 교류로 회복된 남북간의 신뢰를 더욱 공고하게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남북 경제협력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인적 교류는 민족동질성 회복에 크게 기여했고, 산업시설과 자본이 개성공단 등의 북한지역에 설치됨으로써 민족경제 공동체 건설의 단초가 되었습니다.

남북경제협력과 더불어 다양한 분야에서 이루어진 교류·협력 정책은 통일문제를 되돌릴 수 없는 대세로 만드는 지지기반이 되었습니다.

지속적인 화해협력의 결실
남북공동선언 5항. “남과 북은 이상과 같은 합의사항을 조속히 실천에 옮기기 위하여 빠른 시일 안에 당국 사이의 대화를 개최하기로 하였다.”

상호 체제 인정과 남북 교류를 강조한 남북 사이의 합의는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 이래로 수차례 발표되었지만, 이런 합의들은 국제 정세의 변화나 남북 내부의 정치환경의 변화로 인해 대체로 일회성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6.15 공동선언은 김대중 정부의 출범 이후 꾸준히 추진되어 온 남북화해협력정책의 결과였습니다.

6.15 공동선언은 내부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정략적으로 추진되었던 이전의 남북대화와는 달리 양측 정상의 확고한 의지를 바탕으로 정부 사이의 긴밀한 조율 하에 이루어진 정상회담의 결과물이었습니다. 최초의 남북합의였던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은 당시 3공화국의 정치적 위기가 직접적인 배경이었고,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는 재야에서 격렬하게 진행되던 민간통일운동을 봉쇄하고 통일논의의 주도권을 정부가 독점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습니다. 이전의 남북대화는 비록 그 내용이 아무리 의미심장하였더라도, 민족 공동의 이익보다는 내부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추진된 것이었기 때문에 실제로 정책에 옮겨지거나 후속 사업이 추진되지 못했습니다.

6.15 공동선언은 이전의 남북대화에서의 경험을 교훈삼아 치밀하게 준비되었고, 일정 수준까지 실천될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는 무엇보다도 남북 정상과 양측 당국의 진정성 있는 태도가 중요한 요인이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정치활동 초기부터 통일방안을 제시해 온 정치인으로서, 대통령에 당선된 후 대북포용정책인 ‘햇볕정책’을 통해 북측과 지속적으로 대화를 추진해 나갔습니다. 햇볕정책은 양측은 서로를 신뢰할 수 있는 상대라고 믿었기 때문에 ‘선언’에 그쳤던 이전의 남북대화와 달리 6.15 공동선언은 실질적인 교류·협력과 관계개선에까지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6.15 공동선언은 이행되어야 한다
이명박 정부 이래로 남북관계가 완전히 단절된 오늘날, 6.15 공동선언을 돌이켜 보는 것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6.15 공동선언의 정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말보다 실천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6.15 공동선언은 596자, 종이 한 장이면 충분한 분량의 짧은 선언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6.15 공동선언을 ‘통일의 이정표’라고 부르는 것은 선언 이후 엄청나게 변화된 남북관계의 현실을 눈으로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남북은 정부 사이의 고위급 회담을 비롯해, 경제협력을 위한 실무회담, 개성공단 및 금강산 관광을 통한 민간 교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 걸쳐 다방면의 교류 협력을 통해 통일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습니다.

6.15 공동선언은 일회성 회담에 그치지 않고 후속 정상회담을 통해 그 정신이 계승되었다는 점에서도 큰 의의를 갖습니다. 우리와 비슷한 시기에 분단된 독일의 경우에도 1970년 최초로 동서독 정상회담을 가진 이래 1990년 통일될 때까지 총 6회의 정상회담을 개최했습니다. 한반도의 정상도 2000년의 정상회담 이후 한 차례의 만남을 더 가졌습니다.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의 방북이 바로 그것입니다. 2007년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정상회담의 결과물인 10.4선언은 6.15 공동선언의 정신을 계승하는 한편 긴장완화와 평화정착을 위한 구체적 조치들을 마련했고, 다양한 교류·협력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합의를 도출했으며, 이를 위한 국제적 합의를 이끌어 내기 위해 노력할 것을 천명했습니다. 10.4선언 이래로 아직 후속 정상회담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지만, 6.15 공동선언이 마련한 남북정상회담의 경험은 쉽게 잊혀지지 않을 것입니다.

6.15 공동선언은 이전의 회담과 달리 미국의 외교채널을 통해 추진된 것이 아니라, 남북 당국사이의 직접 대화를 통해 도출된 것이었기 때문에 미국 정보 당국은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6.15 공동선언의 발표는 미국 카터 전 대통령의 중재로 추진되었던 1994년의 정상회담과 달리 제3국의 개입이나 중재 없이 남북한 당사자들의 교섭을 통해 개최되었다는 점에서도 남북의 자주적인 역량을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이준영/ 우리사회연구소 상임연구원

*이 글은 우리사회연구소 홈페이지에도 게재됐습니다.

이준영  uri-societ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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