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총선과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

회고적 투표와 분리투표
20대 총선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의외의 결과를 보였다. 선거를 두 달여 남겨놓고 야당이 분열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여당인 새누리당의 압승을 예상했다. 지난 19대 총선과 달리 야당 후보단일화까지 성사되지 않아 여당의 과반수 의석 확보는 당연하고 국회선진화법을 무력화할 수 있는 180석 이상도 가능해 보였다. 그렇지만 선거 결과는 예상과 전혀 달랐다. 두 자리 수 의석에 그칠 수도 있다던 더불어민주당이 123석을 얻어 원내 제1당이 되었고, 집권당인 새누리당은 122석에 그쳐 16년 만에 여소야대 체제가 등장했다. 한편 선거를 불과 두 달여 앞두고 창당한 국민의당은 원내교섭단체 기준인 20석을 훌쩍 넘는 38석을 차지하여 20년 만에 3당 체제를 만들었다.

20대 총선의 의미는 집권당인 새누리당의 예상치 못한 완패와 3당 체제의 등장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우선은 20대 총선에서 나타난 표심을 박근혜 정부와 집권당의 경제실패와 오만함을 심판한 회고적 투표(retrospective voting)로 해석하는 시각이다. 투표행태이론에 따르면 국회의원 선거는 대체로 집권당의 성과에 대한 평가를 바탕으로 회고적 투표를 하는 반면 대통령선거는 후보자의 국정수행 능력에 대한 기대를 바탕으로 전망적 투표(prospective voting)를 하는 경향이 높다. 박근혜 정부 들어 경제침체는 지속되고 있고, 야당은 선거 기간 내내 경제실패를 선거쟁점으로 부각시켰다. 새누리당의 공천파동 또한 유권자의 마음을 돌려세웠다. 친박과 비박은 유권자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밥 그릇 싸움에 골몰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역시 공천파동을 겪었지만 유권자들은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에 더 많은 책임을 물었다.

국민의당이 거둔 의외의 성과에 대해서는 기성 정당에 대한 염증과 정치불신에 대한 반사이익으로 해석할 수 있다. 지난 수십 년간 거대 양당이 보여준 진흙탕 싸움에 지친 유권자들이 제3당에 새로운 기대를 걸었다. 지역구 투표에서는 새누리당을 심판하고 정당투표에서는 정치개혁을 할 수 있는 정당을 지지해 달라는 국민의당의 전략투표 전략이 효과를 거뒀다. 실제 253개 지역구 가운데 지역구와 비례대표 투표 정당이 다른 분리투표(split voting) 현상이 나타난 곳은 137곳이었다.


▲ 4.13 총선 선거운동 기간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국회 앞에서 선거운동을 하고 있는 모습 ⓒ국민의당

정당 재편성의 징조
20대 총선에서 나타난 민심을 집권당에 대한 회고적 투표와 야당의 분리투표 전략의 결과로만 설명하기에는 총선결과에 나타난 지각 변화는 너무 컸다. 무엇보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지속되었던 지역주의 투표행태에 뚜렷한 균열현상이 나타났다. 새누리당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자신들의 철옹성이었던 대구에서 12석 가운데 4석을 잃었고, 강남에서도 한 석을 더불어민주당에 내줬다. 새누리당은 부산에서도 18석 가운데 5석을 잃어 영남 지역기반이 전반적으로 흔들리는 양상이 나타났다. 지역주의의 균열현상은 야당의 텃밭인 호남에서 더 극적으로 나타났다. 지난 19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인 민주통합당은 호남에서 30석 가운데 25석을 차지했으나, 이번 20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은 28석 가운데 3석만 얻었고, 국민의당이 23석을 차지했다. 지난 수십 년 간 한국정치는 영남당과 호남당으로 규명할 수 있는 양당체제의 틀 속에서 움직여왔으나 이번 총선에서 그 구도에 뚜렷한 균열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정당이 특정 지역의 무조건적인 지지를 받는 지역투표 구도에 커다란 변화가 나타났다. 특히 호남 유권자들이 더불어민주당과 결별을 선언한 점에서 지난 수십 년간 유지된 지역주의 정당체제가 크게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20대 총선은 정당의 지지기반에 근본적 변화를 가져 온 중대선거(critical election)라 할 만하다.

양당체제와 지역정당체제에 균열이 생겼다는 사실은 국민의당이 명실상부한 제3당으로 자리 잡았다는 점에서 뚜렷이 드러난다.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 모두 국민의당과 연합할 때만 과반의석을 넘을 수 있어 제3당이 강력한 캐스팅 보트를 쥐게 되었다. 국민의당이 얻은 지역의석 대부분이 호남에 집중되어 또 다른 지역정당으로 머무는 듯 했다. 그렇지만 정당투표를 보면 국민의당은 서울에서 28%를 얻었을 뿐 아니라 전국적으로도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보다 높은 26.7%의 지지를 획득해 전국정당의 면모를 갖췄다. 한국 정당 역사상 국민의당만큼 고른 전국적 지지를 얻은 제3당은 없었다.

편향성의 동원과 권력의 카르텔화
20대 총선과정에서 나타난 주요 정당들의 공천파동에서 볼 수 있듯이 1987년 민주화 이후 30년이 지났지만 우리 정당과 선거의 후진성은 여전하다. 정당권력과 정당운영이 제도화되지 못하고 여전히 몇몇 지도자들에 의해 사유화되어 있다. 그러다보니 정당이 국민으로부터 외면 받아 투표율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정당에 대한 국민의 신뢰 역시 끊임없이 추락하고 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유권자들이 사유화된 정당들이 조장하는 ‘편향성의 동원’(mobilization of bias)에 갇혀 권력의 카르텔화를 허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편향성의 동원은 한 사회 내의 본질적 갈등이 배제되고 정치 엘리트들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갈등을 선택적으로 동원하는 양상을 말한다. 샤츠슈나이더(Elmer Eric Schattschneider)에 따르면 편향성의 동원은 정치엘리트에 의한 ‘갈등의 사유화’(privatization of conflict)를 만들고, 이로 인해 국민의 삶과 직결되는 본질적 갈등 혹은 공공갈등은 정치과정에 제대로 편입되지 못한다.

민주화 이후 우리 정당은 배제와 분열의 동원전략을 취해 왔다. 지역과 이념, 연령을 내세우며 상대 정당을 비방하면서 반사이익을 노리는 ‘뺄셈의 정치’가 우리 선거를 지배했다. 지역과 이념에 근거한 양당체제가 굳건히 자리 잡고 있고, 편향성의 동원이 노골적으로 행해지는 선거에서 유권자들의 선택은 절대적으로 제한될 수밖에 없다. 선거를 치를수록 편향성의 동원은 더욱 고착화되고 기존 권력은 카르텔화 되면서 국민 삶과 직결된 공공갈등을 대표하고자 하는 새로운 정치세력이 정치권으로 진입하기는 더욱 어려워진다.

20대 총선에서 나타난 제3당에 대한 지지는 편향성의 동원과 권력의 카르텔화를 타파하고자 하는 유권자들의 바람이다. 그렇지만 기존 정치세력에서 갈라져 나온 국민의당이 유권자들의 이러한 소망을 제대로 대표할 수 있을지는 아직은 의문스럽다.

정당정치의 제도화와 시민사회의 복원
20대 총선에서 나타난 각 정당의 공천파동은 한국 민주주의의 심각성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한국사회에서 가장 비민주적인 조직을 꼽으라면 주저 없이 정당을 지목할 것이다. 민주화 이후 30년이 지났지만 우리 정당은 여전히 제도화되지 못하고 몇몇 인물에 의해 사유화되어 있다. 무엇보다 대통령에 의한 여당의 사유화가 가장 심각한 문제이다. 이번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완패한 가장 직접적인 요인은 공천파동에 있었고, 많은 이들이 대통령에게 그 책임을 묻고 있다. 새누리당 공천과정에 대통령의 입김이 보이지 않는 손으로 작동하면서 ‘친박 논쟁’과 ‘유승민 파동’을 낳았고, 고정 지지층마저 등 돌리게 만들었다. 권위주의 정권 때나 있었던 수직적 당청관계가 작동하면서 여당을 대통령 아래에 예속시키고 국회를 무력화하는 ‘제왕적 대통령’(imperial president)의 폐해가 이번 총선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여당이 청와대의 압력으로부터 벗어나 입법부 본연의 역할을 수행할 때 비로소 정당정치의 제도화가 가능하다. 당내 민주주의를 확립하고자 하는 노력도 중요하다. 무엇보다 인물정치를 극복하고 시스템 정치를 확립하여야 한다. 선거 때마다 공천절차를 놓고 갈등과 분열이 생기는 것은 한국정당이 제도와 절차가 아니라 여전히 특정 인물을 중심으로 하는 계파정치(factional politics)에 의해 운영되기 때문이다.

한국 민주주의가 직면한 보다 엄중한 과제는 편향성의 동원과 카르텔 권력의 타파에 있다. 이를 위해서는 번햄(Walter Dean Burnham)이 말하는 ‘대안배제의 정치’를 극복하여야 한다. 우리 사회의 다양한 이해관계와 요구가 정치적으로 대표될 수 있는 정당체제를 확립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이다. 우리 사회의 중요한 균열요소들이 정치적 쟁점으로 이슈화되어 정당체제 내에서 대표될 수 있어야 한다. 기존 정치권이 형성하고 있는 카르텔 권력을 해체할 수 있는 새로운 정치세력이 등장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카르텔 권력에 저항할 수 있는 시민사회의 힘이 절실히 필요하다. 시민사회가 진영정치의 틀에서 벗어나 우리 삶을 다루는 풀뿌리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룰 때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를 기대할 수 있다.

---이 기고문의 견해는 필자의 개인 의견이지 동아시아 재단의 공식 입장을 반영하는 것이 아님을 밝힙니다.

윤성이(尹聖理 Seongyi Yun)는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경희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경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2000. 3 – 2005. 8), 국민대통합위원회 갈등관리포럼 위원(2013. 11–2015. 12) 등을 지냈으며, 현재 한국정치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전공분야는 한국정치 및 인터넷 정치이며, 주요 저서 및 논문으로는 『한국정치: 민주주의, 시민사회, 뉴미디어』, “Another View on the Relationship between democratization and intra-military division in South Korea” (2013), “Democracy in South Korea: Consolidated but in Deficit” (2012) 등이 있다.

윤성이 mail@keaf.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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