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과 2002년 연평도에서는 남북 해군끼리 포사격이 격렬하게 오가며 국지전이 벌어졌다. 다행히 전면전으로 확대되지 않았지만 ‘정전협정’에 기대고 있는 한반도평화가 얼마나 깨지기 쉬운 기반인지 온 국민이 경험해야 했다. 김대중 정부 하에서 발생한 터라 그나마 확전되지 않고 수습이 가능했지 않을까싶다. 남북 고위급간에 연결된 핫라인 소통과 대규모 대북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니 말이다.

연평도는 꽃게잡이로 유명한데 남과 북, 중국의 배가 경쟁하는 공해상에 있다. 남북관계가 메마를 대로 메말라 있는 상황에서는 작은 불씨라도 큰 불을 일으킬 수 있다. 북이 중국에 조업권을 넘기고 연 1억 달러 상당의 수입을 올린다는 주장이 사실이라면 오히려 다행이다. 북이 먹고 살 궁리를 하면서도 마찰을 피하기 위한 궁리를 한 것 같기 때문이다. 중국 어선만 신이 났다. 4월 이후로 하루 평균 140여 척이 불법조업에 나서고 있다 한다.

그러고 보니 6월 5일 서해 NLL 인근에서 불법 조업하던 중국 어선을 우리 어선이 나포한 것을 놓고 북측이 “유치한 날조극이자 서해열점수역의 정세 긴장 격화”라고 비난했던 맥락이 이해되기도 한다. 북측 ‘고객님’을 남측 민간 어선이 무례하게 대했으니 가만 있을 수 없지 않았을까. 블랙코미디의 한 장면 같다.

우리 정부나 해군이 아니고 민간 어선이 중국어선을 나포해 왔다. 우리 군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모를 일이다. 국민의 재산을 보호하고 안녕을 위협하는 외침(外侵)으로부터 막아낼 신성한 국가 의무를 다 하지 못한 국가. 어떻게 해야 할까. 반면 북은 최고사령부 중대보도에서 총참모부 차원의 통첩장을 발표했다. 우리 어선이 ‘서해열점수역’을 침범할 경우 조준 타격하겠다는 것이다. 그 정도 소리를 내 주어야 ‘고객님’들 볼 면목이 섰으리라.

2007년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남북관계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10.4선언)’을 상기해본다. 고질적인 서해상 충돌을 막기 위해 고안한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구상이 본격 시행되었더라면 남북은 이미 공동수역에서 맘껏 조업할 수 있고 중국어선이 함부로 휘젓고 다닐 수는 없었을 것이다. 남과 북이 서로를 인정하기 싫어하면 할수록 중국이나 또 다른 이해관계 국이 끼어들 여지가 생겨난다. 구한말 개화파와 쇄국파가 분열했던 상황과는 많이 다르지만 우리끼리 물고 뜯는 사이에 국운이 쇄하다 망하는 경로는 유사해 보인다.

20일 유정복 인천시장이 ‘남북한 어민 수산물 공동판매’를 국회와 정부에 건의했다. 10.4선언과 유사버전이다. NLL 포기와 같다고 맹공을 퍼부었던 2012년 대선전을 떠올리면 씁쓸하다. 박근혜 캠프에서 그는 선대위 직능총괄본부장을 맡았었기 때문이다. 꽃게잡이 철 서해상 남북충돌을 막기 위해서는 다른 길이 없다. 공동어로수역을 확정하고 사이좋게 조업하는 길 말이다.

이미 다 합의한 내용이다. 그게 싫으면 중국에게 계속 우스운 꼴을 보여야 한다. 해군과 해경은 간 데 없고 민간 어선이 나서는데 중국어선 위해서 북측 총참모부가 경고하는 꼴 말이다. 중국이 남북 사이에서 계속 어부지리(漁父之利)하게 할 것인가? 유정복 시장 건의를 토대로 남북관계 복원이 모색되길 기대한다.

윤은주 전문기자  ejwarrio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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