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고위급 외교관 태영호(駐英 공사)가 귀순해서 8월 초부터 입국해 있다. 부인 오혜선(50)과 3자녀를 동반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일성의 항일 빨치산 동료이자 노동당 군사부장을 지낸 오백룡(1984년 사망)의 일가로 알려진 부인 때문에 백두혈통 다음으로 위상이 높은 빨치산혈통이 망명했다며 언론들은 대서특필했다. 러시아 주재 북한 대사관 3등서기관 김철성도 가족과 함께 귀순해서 입국한 상태로 알려졌다. 한편 통일부는 8월 31일 김용진 교육부총리가 7월에 처형됐다고 발표하면서 통일전선부장 김영철도 7월경 한 달간 혁명화 처벌을 받고 복귀했다고 밝혔다. 북한 엘리트층의 체제 이탈과 김정은의 공포정치 현황을 뒤섞어 언뜻 정권 와해가 임박한 것 같은 분위기를 띄우고 있다는 인상이 짙다.
8월 29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은 단순한 불안 요인이 아니라 우리 안보에 매우 심각한 현재의 위협이 되고 있다”며 “북핵 불용과 이를 위한 안보리 결의 이행 등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 동력을 강화하기 위해 소관 수석실과 관계 부처는 선제적이고 창의적인 사고로 준비를 해 달라”고 지시했다 한다.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 이후 나온 통일부의 북한 교육부총리 처형발표는 공교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 1월, 4차 북핵 실험 이후 국내외 대북제재정책을 강화시키다가 2월 10일 개성공단 완전 중단을 발표했고, 중국의 소극적 제재에 압박을 가하려는 듯 7월 8일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배치마저 부작용을 마다하지 않고 전격 결정했다. 성주와 김천 등 사드 포대 배치 예상지역 주민들의 거센 반발과 국제관계 전문가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밀어붙이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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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5일 오전(현지시간) 항저우 서호 국빈관에서 한-중 정상회담을 하기에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 ⓒ청와대 | ||
미국과 중국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과거 6자회담 합의내용을 환기하며 띄엄띄엄 한반도평화협정 언급을 해봤지만 철칙처럼 굳어진 ‘선 핵폐기론’만 반복하고 있는 박근혜 정부와 어떤 공조체제도 만들지 못하고 있다. 5일 중국 항저우(杭州)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서도 박 대통령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에게 "사드는 오직 북한의 핵과 미사일에 대한 대응수단으로 배치돼 사용될 것이기 때문에 제3국의 안보이익을 침해할 이유도, 침해할 필요도 없다"며 "북핵 및 미사일 문제가 해결되면 사드는 더 이상 필요가 없을 것"이라 말했다고 한다. 사드배치는 곧 미국의 미사일 방어체제(missile defence : MD체제)에 속하는 것임은 국방부 장관 빼놓고 식견 있는 지식인이라면 거의 인지하는 사실이다. 더구나 보란 듯이 성공시킨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ubmarine-launched ballistic missile, SLBM)로 북핵에 대응한다는 사드의 군사적 효용성마저도 마이너스 효과를 감수해야 할 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의 인식은 ‘북핵 및 미사일 문제 해결을 위해 사드를 배치한다’는 부끄러운 차원에 머물러 있다. 미국과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를 통한 핵억제 정책은 실패다. 미국의 ‘전략적 인내정책’은 북한 핵개발에 날개만 달아 준 무책임한 정책이었다.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는 대신 동맹국인 우리에게 사드 배치를 주문한 미국은 야속한 나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미국편에 서서, 용도 폐기된 정책을 붙들고, 한·중 정상회담에서와 같이 “낫 놓고 기억자도 모른다”는 식의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북한이 왜 핵을 개발하는지 그 배경과 목적을 꿰뚫고 있어야 해결의 실마리를 풀 수 있다. 모르면 물으면 된다. 지난 90년대부터 진행된 북한의 핵개발 역사를 돌아보면 된다. 그 답은 이미 나와 있다.
2000년 북미공동성명(북미)과 2005년 9.19공동성명(6자회담), 그리고 2007년 10.4공동선언(남북)은 한반도평화체제 수립의 청사진을 담고 있다. 본격적인 핵개발 이전의 합의들이지만 한반도 평화체제수립을 위한 기본 원칙을 내포하고 있다. 달라진 점은 거듭된 핵과 미사일 실험으로 북한이 요구할 수 있는 핵 포기 비용이 커졌다는 것뿐이다. 북한이 핵무기로 우리뿐 아니라 전 세계를 위협하며 자신의 체제를 유지하려 하지 않아도 안심하고 개혁개방에 나설 수 있도록 우리와 국제사회가 보증하고 그 대신 인권개선을 요구한다면 새로운 국면이 시작될 수 있다.
북한의 계획경제 시스템은 이미 붕괴된 지 오래다. 국외 공관에 나와 있는 고급 관료뿐만 아니라 국경을 오가는 외화벌이 일꾼들이 더 이상 국내송금문제로 쫒기지 않고 정상적인 외화벌이 사업을 전개할 수 있다면 정권으로부터 훨씬 자율적이 될 것이다. 북한을 버리고 탈출하는 관료들이 많아질수록 남아 있는 북한주민들은 더욱 옥죄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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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는 내부로부터, 아래로부터 길러진 힘으로 구축될 때 온전해진다. 우리 정부와 국제사회는 그야말로 창조적인 접근을 통해 북한 주민들의 인권을 지원해야 한다. 대북제재로는 북한인권 상황을 온전히 개선하지 못한다. 이미 오래 전부터 결론 난 정책이다. 한반도평화협정 추진은 고도의 평화운동이며 북한인권운동이 될 수 있다. ‘선제적이고 창의적인’ 대안을 주문한 대통령이 이 맥락을 이해하면 좋겠다.
윤은주/ 북한학 박사, (사)뉴코리아 대표
윤은주 전문기자 ejwarrio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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