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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평 너른 들을 보며 북한의 회복을 꿈꾸다중국 평화발걸음 동행기(3)

8월 4일(토). 인천공항을 뜬 지 1시간만인 오후 1시경 다렌(大連)공항에 도착했다. 한국의 35도를 육박하는 날씨에 비해 다렌은 오히려 쾌적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전형적인 해양성 기후를 보이는 곳이란다. 일행들은 “피서도 이만한 피서가 없겠다”며 즐거운 표정들이다.

   
▲ 중국 다렌공항에 도착한 제4회 중국 평화발걸음 참석자들.ⓒ유코리아뉴스

곧 이어 우리를 기다리던 버스에 짐을 실었다. 이 버스는 다렌의 한인 식당으로 일행을 태우고 간 뒤 곧 이어 다렌에서 3시간 거리의 단둥(丹東)으로 안내할 예정이다.

잠시 후 조선족이 운영하는 ‘태능갈비’ 앞에 차가 멈췄다. 식당 탁자엔 한국에서 자주 보던 김치찌개가 끓고 있었다. 이번 중국 평화발걸음 단장인 허문영(평화한국 대표) 박사가 일일이 찌개를 떠줬다. 다들 말은 안하지만 무척 감동받는 눈치다.

허기를 달랜 일행은 이제 차 안에서 꼼짝없이 3시간을 앉아 있어야 한다. 일행은 진행팀에서 후식으로 산 복숭아를 건네받았다. 이 지역은 복숭아가 한국처럼 달고 맛있다는 설명과 함께. 복숭아를 한 입 깨무는 순간, 진행을 맡은 이승철 평화한국 사무국장이 “어제 북한지역 홍수로 130여명이 사망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북한을 위해 함께 기도하자”고 말했다. 일행은 복숭아를 먹다 말고 기도에 돌입했다. 잠시 후 허 대표가 마무리 기도를 했다. “주님, 180명이 넘는 북한 주민들이 홍수로 죽었….” 대표기도를 하던 허문영 박사가 잠시 멈칫 했다. 울먹였던 것이다. 살짝 들뜬 분위기였던 버스 안은 순식간에 무거워졌다. “북녘의 사랑하는 동포들을 기억해 주십시오. 저들의 고통이 더 오래가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허 대표가 힘겹게 기도를 마무리했다.

이어서 가이드를 맡은 최 선교사가 마이크를 잡았다. 최 선교사는 “이번 평화발걸음을 통해 다른 생각할 필요 없고, 우리 민족은 누구인지, 그렇다면 나는 누구인지를 집중적으로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동북아 평화발걸음은 청소년들이 꼭 와야 할 필수코스”라며 “나는 한민족인 게 너무나 자랑스럽다. 한민족은 하나님의 비밀 병기”라고 강조했다.

   
▲ 다렌에서 단동 가는 도로변의 농가와 농지는 최근 연일 내린 비로 온통 물바다였다. ⓒ유코리아뉴스

곧 이어 차 안은 자연스럽게 침묵이 지배했다. 다들 한국에서 새벽같이 나온데다가 식후인지라 차를 탄 지 얼마 안되어 대부분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단둥을 약 150㎞ 앞둔 지점. 좌우로 넓게 펼쳐진 옥수수 벌판이 온통 물바다다. 처음엔 호수인 줄 알았지만 자세히 보니 밭이며 집까지 다 물에 잠겼다. 북한과 가까운 곳이라 수해로 북한 주민 138명이 죽었다는 보도가 과장되지 않았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다들 잠을 자고 있어서 이 광경을 본 사람들은 몇 명 되지 않았다.

잠시 후 이승철 사무국장이 일행들을 깨웠다. 첫날인 만큼 빼놓을 수 없는 시간, 자기 소개. 일행 중 가장 연장자인 김수복(63) 목사에게 먼저 마이크가 넘어갔다. 김 목사는 “원래 인도 선교사를 가려고 했는데 2005년 심양을 방문하면서 북한을 품게 됐고 그때 목회하던 춘천에서 몇몇 목회자들과 매주 화요일 북한을 위한 기도모임을 갖기 시작했다”며 “지금 인도와 북한을 품고 기도중인데 하나님께서 어느 곳으로 나가길 원하는지 이번 평화발걸음을 통해 알고 싶다”고 말했다.

김유연(26·이화여대 북한학과 석사과정)씨가 말을 이었다. 김씨는 “원래 정치에 관심이 많아 현대사를 공부하게 됐고, 현대사를 공부하면서 국격(國格)을 회복하려면 남북한이 통일해야 한다는 생각을 품고 있다”고 소개했다.

북한이나 통일에 대한 관심 정도는 저마다 달랐지만 많은 이들이 “이번 평화발걸음을 통해 통일을 향한 비전을 발견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피력했다.

“1988년 영락교회에서 열린 ‘Love North Korea’에 참석했다가 북한을 품게 됐다. 어머니가 북한 북청 분인데 앞으로 주향교회에서 파송받아 북한과 통일을 위한 선교사로 사역하는 게 소원이다.”(이병철·춘천 주향교회 목사)

“저는 북한에 대해 무지한 상태에서 이번 평화발걸음에 참석했다. 그냥 관광겸 다녀가려고 했는데 허문영 박사님이 북한 동포들을 위해 울면서 기도하는 모습에 어떤 마음가짐으로 돌아가야 할지 많은 걸 느끼게 된다.”(홍혜림·대학생)

“1987년 민주화 당시 많은 사람들이 민주화가 안된다고 했지만 결국 국민들이 깨어나니까 정치인들이 따라올 수밖에 없었다. 남북 통일도 그런 면에서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지만 우리 한사람 한사람이 깨어날 때 가능하다고 본다. 이번 평화발걸음을 통해 한반도에서 내가 어느 자리에 있어야 할지 배우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이승철·평화한국 사무국장)

“1995년부터 중국 유학을 했는데 그때도 동북3성을 돈 적이 있다. 이번 평화발걸음을 통해 나를 향한 하나님의 구체적인 계획을 알고 싶다.”(최재덕·전주한옥마을 대표)

“접경지역은 장사를 많이 하는 곳이어서 그래도 발달되었지만 북한의 내륙으로 들어갈수록 훨씬 열악할 것으로 생각한다. 북한의 그런 모습까지 복음의 눈으로 잘 받아들이고 싶다.”(김옥선·평화한국 간사)

“여기 오기 직전에 평화발걸음 일정표조차 보기 싫을 정도로 북한에 대한 마음이 없었다. 여기 오면서 기도제목은 단 한 가지, ‘저를 회복시켜 주세요’였다. 현재 대학 4학년이고 신학대학원 진학도 앞두고 있는데 이대로 가면 끝이 안보이겠다는 절박한 생각으로 참여했다.”(홍의표·아세아연합신학대 학생)

“캐나다에 1년 정도 나간 적이 있는데 그때 우리 민족이 특별하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한국인인 게 너무 좋았다. 북한에 대해 아는 건 없지만 북한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갖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다.”(유혜림·할렐루야교회 청년)

“방학 때 잠깐 한국 온 사이에 평화발걸음에 참여하게 됐다. 개인적으로 중요한 시기에 올 수 있어서 감사하다. 북한을 향한 꿈과 마음을 가진 사람들과 계속 교제 나누고 싶다. 기회를 주신다면 북한에서 예술통합학교를 운영해보고 싶다.”(나하나·미국 바이올라대 학생)

“북한에 대해 선교하겠다는 마음은 아니고 북한을 향한 비전을 찾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왔다. 지난해 코스타에서 탈북자와 통일 위해 눈물로 기도하던 게 지금도 생생하다. 더 기도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이성아·전북대 학생)

“북한 주민들이 어렵게 살고 있는데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되는 삶을 살고 싶어 참석했다.”(이한일·싱가포르 HP 매니저)

“북한과 중국은 제 인생에서 아주 중요하다. 부모님이 북한에 관심 많아서 어릴 적부터 많이 들었다. 올 2월 통일비전캠프에 참여하면서 북한에 대한 소명을 깨닫게 됐다. 이번 평화발걸음 통해 하나님께서 내게 귀한 것들을 깨닫게 하실 거라고 기대하고 있다.”(임수진·통일연구원 연구원)

“나는 상담심리학과 정치학을 공부했지만 이 땅에 진정 필요한 것은 교회라고 결론 내리고 목사가 됐다. 북한을 위해 통일을 위해 목사로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기도하면서 평화발걸음에 참석했다.”(서민규·성서대학교회 목사)

“난 대단한 비전도 없고 기대감도 크지 않다. 다만 내 개인적인 삶이 북한에 깊은 관련이 있다는 걸 알았다. 예전에 멘토링 해줬던 자매가 탈북자였다.”(조민서·춘천교대 학생)

“북한에 대해 큰 관심이 없었는데 춘천 쥬빌리기도회 가면서 마음을 갖게 됐다. 1학기 동안 힘들어서 방학 때는 좀 쉬려고 했는데 간사님이 가라고 하는 바람에 참석했다. 온 김에 내 삶을 향한 비전을 발견했으면 좋겠다.”(송은지·춘천교대 학생)

“2009년에 평화발걸음을 처음 시작했다. 선교라는 게 외국 나가서 하는 것도 선교지만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켜 나가는 게 선교라고 생각한다. 접경지역 현장을 보면서, 고구려 발해의 옛터를 밟으면서 호연지기를 기르고 도전을 받았으면 좋겠다.”(허문영·평화한국 대표)

   
▲ 압록강 하류에 위치한 북한 황금평 앞에서. 북한과 중국의 국경이라는 간판이 서 있다. ⓒ유코리아뉴스

   
▲ 일행들이 황금평을 향해 손을 든 채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유코리아뉴스

단둥에 도착하기 직전, 철조망 너머 끝없는 벌판이 펼쳐진 냇가 앞에서 차는 멈췄다. 압록강 하류 황금평이다. 일행이 방문했을 때만 해도 황금평 개발은 중국 측의 보류로 언제 개발될지 아득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최근 장성택 북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의 방중(訪中)을 계기로 다시 개발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황금평은 끝없이 너른 평야지대다. 어떤 곳은 국경을 뜻하는 철조망조차 보이지 않았다. 국내 대기업도 이곳에 건물과 주유소를 두었다. 북한의 개혁, 개방을 대비해서다. 새들은 아무렇게나 철조망 위를 날고 있다. 풀들도 조선이나 중국을 구분하지 않고 어디서나 아무렇게나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마치 인간이 쳐놓은 국경을 비웃기라도 하는듯.

일행은 황금평을 바라보며 간절히 기도를 올렸다. 황금평이 개발되게 해달라고, 그래서 북한이 회복되게 해달라고. 이것을 통해 남북이 자연스럽게 통일되게 해달라고. 저녁 무렵, 북한 땅을 향해 손을 들고 기도하는 모습이 신기했는지 중국인들이 곁에 와서 구경을 하고 있다.

   
▲ 단둥과 신의주를 잇는 신압록강대교. 지난해부터 공사가 시작됐다. ⓒ유코리아뉴스

단동 시가지에 들어섰다. 생각보다 높고 화려한 건물이 많았다. 여기저기 건축중인 곳이 상당수다. 일행이 내린 곳은 신압록강대교가 바라보이는 강변. 지난해부터 중국에서 4조원을 대고 3년 완공 목표로 공사를 시작했다는 게 최 선교사의 귀띔이다. 강 건너 보이는 곳은 신의주 땅. 일단 저녁 시간이 다 되어 일행은 식당으로 향했다. 일행이 간 곳은 북한과 중국이 합작해서 건립한 고려호텔. 북한 복무원(종업원)만 100명이 넘을 정도로 최대의 식당이란다. 종업원의 가슴에 달린 뱃지를 유심히 봤더니 김일성 얼굴 대신 인공기와 구호가 적혀 있다. 식사는 남한 사람들을 겨냥해 순 북한식이었다. 김치도 평양에서 직접 가져왔다는 게 북한 복무원의 설명이다.

식후엔 잠시 압록강변을 거닐었다. 단동은 휘황찬란한 불빛인데 반해 건너편 신의주는 전기가 없는 캄캄한 밤이다. 서치라이트처럼 유일하게 하늘을 비추는 불빛, 김일성 동상을 비추는 불빛이란다. 북한의 체제가 어떠한지를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 단둥 시내에서 바라본 압록강 야경. 화려하게 장식한 압록강 철교(왼쪽)와 신의주(오른쪽). 캄캄한 신의주의 하늘을 비추는 한 줄기 빛은 김일성 동상을 비추는 서치라이트다. ⓒ유코리아뉴스 김성원

밤 10시가 가까운 시각. 북한 해주에 거주하는 방중자 가요한 씨가 숙소를 찾았다. 그를 통해 북한 실상을 좀더 자세히 알기 위해서다. 가씨는 4년 전 전도를 통해 예수를 믿게 됐다. 곧바로 일행과 가씨의 질의 응답이 이어졌다.

먼저 “왜 탈북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가씨는 “그럼 다 탈북하면 북한에 남아 있는 사람은 굶어죽으란 얘기냐”며 “배고픈 가족, 이웃, 친척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중국에 머물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는 “돈을 벌겠다는 일념으로 해주에서 왔다. 중국 말도 못하고 실정도 잘 모르지 하니까 여기(중국) 사람들 하기 싫어하는 일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근 남한 언론에서 해주지역 주민들이 집단적으로 굶어죽었다는 보도의 진위 여부를 묻자 가씨는 “사실”이라고 밝혔다. 두 가지 이유를 들었다. 가씨는 “현재 북한의 물자 99%가 중국산이라고 보면 된다”며 “그런데 중국산은 주로 국경을 통해 들어오니까 해주는 상대적으로 국경에서 멀다 보니 물가가 비싸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돈이 있어도 비싸서 못사먹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가씨는 또 “북한 쌀의 절반이 해주 같은 황해남도에서 난다. 그래서 정부에서는 쌀을 더 많이 각출해가고  주민들의 식량난은 더 심해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가씨는 “자전거를 거꾸로 메달아 바퀴를 돌려 탈곡하는데 그것마저 도둑질하는 게 다반사”라며 “이거야말로 눈물 나는 현상”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양식을 어떻게 구하냐는 질문엔 “장마당에 없는 게 없다. 쌀이나 심지어 남한의 초코파이, 라면도 있다”며 “하지만 비싸서 사 먹질 못한다. 빛 좋은 개살구”라고 꼬집었다.

김정은 체제의 북한의 미래에 대해서는 “신경을 많이 못쓴다”고 말했다. 그만큼 기대를 많이 안한다는 뜻이기도 하고 먹고 살기 바빠서 ‘신경을 못쓴다’는 뜻이기도 하다. 가씨는 “TV나 누군가가 통일이나 정치에 대해서 한마디 해도 ‘응 그렇대’라고 한마디 하고 마는 수준”이라며 “관여한다고 변화되는 것도 아니고 먹고 살기 힘들고 통제가 너무 심하다보니 한마디 잘못 하면 바로 감옥에 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김정일 위원장 사망 당시의 분위기에 대해서는 “김일성이 죽었을 때는 쓰러지거나 심장마비로 죽은 사람들도 있었다”며 “이번엔(김정일이 죽었을 때는) ‘죽었어? 왜 그리 빨리 죽었대’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가씨는 “이제는 그 전과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며 “정부에서 아무리 강성대국을 외쳐도 사람들이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다. 그만큼 바깥소식을 많이 알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남한에 대해서는 “한국이 잘 살고, 세계 몇 번째 경제 수준이란 걸 잘 안다”며 “그래서 북한에서는 남북이 통일되면 한국은 경제 왕국, 북조선은 군사 왕국이 되어서 세계 1위가 될 거라고 얘기들 한다”고 전했다.

가씨는 또 “해주 지역은 남한 방송이 잘 잡힌다. KBS 1, 2는 물론 SBS, 교육방송까지 잘 잡힌다”며 “정부가 남조선에 대해 아무리 숨기려 해도 숨길 수가 없다”고 강조했다.

해주 지역이 남한과 가까운 만큼 탈북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했다. 가씨는 “7마력 짜리 배를 빌려서 얼마든지 남한에 갈 수 있다”며 “국경 경비대 등 거쳐야 하긴 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손쉽게 남한에 갈 수 있다”고 밝혔다.

식량 위기로 인해 도둑이 급증했다는 점도 밝혔다. 가씨는 “도둑이 얼마나 많은가 하면 커다란 대문짝도 떼어갈 정도”라며 “여름엔 도둑 때문에 창문도 못열어 놓는다”고 말했다.

피곤도 잊게 하는 열띤 질의 응답 시간이었다. 일행은 밤 12시가 넘어 잠자리에 들었다.

김성원 기자  op_kim@ukore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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