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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청년 강디모데 “돈 바라지 않는 신앙에 도전하고 있습니다”감옥 드나든 횟수만 15번, 수차례 북한으로 다시 들어가 ‘전도’


27세의 나이에 책을 준비 중인 탈북자 강디모데(가명, 건국대2)씨를 만났다. 젊은 나이에 책을 쓴다는 사실도 흥미로웠지만, 책에 담길 내용이 더 궁금해 출판되기도 전에 강 씨를 만났다. 지난 5일 건국대 부근 패스트푸드점에서 만난 그는 예상을 뛰어 넘는 이야기들을 털어놨다. 탈북자들의 사연이 대부분 그렇지만, 강 씨의 경험은 조금 더 특별난 데가 있었다.


중국에서의 10년, 수차례 북한으로 다시 들어가 ‘전도’

10살이 조금 넘었을 때부터 강 씨는 중국에서 생활했다. 남한으로 오기까지 중국에서 10년의 세월을 보냈다. 청도, 심양, 연길 등을 떠돌며 농사일도 하고,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다. 가족들과 흩어져 외로이 힘든 일도 많았지만, 그의 운명을 바꿔놓은 만남이 있었다. 바로 중국 현지의 선교사님이었다.
“선교사님을 만나서 인생이 새롭게 시작되었죠. 매일 성경공부도 하고 기도를 하면서, 북한에 가서 복음을 전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강 씨는 어떤 힘에 이끌리어 다시 북한으로 향했다. 북한에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마음에 따라서다. 그러나 두려운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북한 땅을 밟자마자 절로 기도가 나왔다. 북한은 복음을 전했다는 이유로 죽을 수도 있는 곳이었다. 어린 나이에 압박감을 이기지 못할 만도 했지만 “그랬기에 더 성령의 이끌림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고 회상하는 강 씨다.

그러다 어느 마을에 닿았고, 한 아주머니에게 복음을 전할 기회가 왔다. 처음부터 하나님 이야기를 하면 안 되기 때문에 조지뮬러, 무디와 같은 사람들을 언급하며 대화를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어떤 충동이 일어 “나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였고, 복음을 전하고야 말았다. 이야기를 듣던 아주머니는 조용히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1분이 한 시간처럼 느껴졌다. ‘보위부에 신고하러 가셨나?’ 여기선 도망칠 곳도 없었다. 하나님께 살고 싶다고 기도하였다. 다음 날 아침, 여전히 불안 가운데에 떨고 있을 때 아주머니가 들어왔다. 그리고 말했다.

“나도 네가 믿는 하나님 믿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되니?”

강 씨는 이때 복음은 내가 전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전하는 것이라는 걸 절실히 깨달았단다. 이어 그는 아주머니와 함께 영접기도를 하고, 성경말씀, 주기도문, 사도신경 등을 가르쳐 주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 성경공부를 마치고 작별인사를 하는데 아주머니께서 우시더란다. 그런데 또 그 우는 모습 속에 웃는 모습도 있었단다.
“아주머니의 우는 모습 속에 또 웃는 모습이 보이더라고요. 저는 그게 예수의 얼굴이라고 느꼈어요. 저는 그 전까지만 해도 북한이 저주받은 땅이라고 생각했어요. 하나님으로부터도 버림받은 땅이구나,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아주머니의 표정 속 예수의 얼굴을 본 순간 ‘내가 북한을 정말 사랑한다’라는 음성이 들리는 것 같았죠.”

강 씨의 이런 전도여행은 접경지역을 넘어서 북한 깊숙한 내륙까지 이어졌다. 북한을 사랑하는 마음의 깊이가 그의 발걸음을 재촉한 것이다. 그래서 감옥에도 많이 붙잡혔다. 통행증, 여행증명서, 차표 등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게 없으니 잡히고 도망치고의 삶을 반복했다. 구류장, 집결소, 오로(노동이 심해서 죽어서 나온다는, 북한 사람들만 아는 감옥) 등에 갇힌 것만 15번이 넘는다.

그래서 정치범수용소를 보는 강 씨의 통찰은 남다르다. 그곳에 믿음의 사람들이 복음의 씨를 뿌리고 있다는 것이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은 곳이 정치범수용소예요. 그곳의 문을 열어서 뜻을 이루시려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인 것 같아요. 그 문을 여는 일에 제가 앞장서고 싶어요. 아직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요.”

   
▲ 오른 쪽 강디모데 씨(27. 건국대), 사역을 위해 얼굴을 가리고 가명을 썼다. ⓒ유코리아뉴스 이범진기자



“돈 바라지 않는 신앙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10년 간 중국에서의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온 게 5년 전이다. 5년 간 한국에서 자유를 누리고, 기회를 갖게 된 것에 감사하단다. 그러나 여기에 와서 생긴 한 가지 고민은 ‘신앙’이다.
“탈북자는 정말 신앙이 없으면 힘들어요. 저도 그렇지만 가족들 없이 홀로 사는 탈북자들이 많은데 술과 게임에 빠져서 살아요. 말은 잘하고 똑똑할지 몰라도, 밤이 되면 허무해져요. 그럴 때 교회가 힘이 되어주면 좋은데, 돈 받기 위해서 가는 곳으로만 생각한다.”

탈북자들의 신앙공동체가 필요한 것 같아 시도했지만 쉽지 않았다. 다른 모임은 다 돈을 주는데 여기는 왜 주지 않느냐는 게 모임이 지속될 수 없었던 이유였다. 강 씨는 “교회에서 돈을 주게 되면 아무리 신앙이 깊던 사람도 혼란스러워진다. 머리로는 신앙생활을 좇지만, 마음으로는 돈을 추구하게 되는 분열을 겪는다. 그 과정에서 온전한 신앙성장이 있을 수 없다”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

강 씨는 포기하지 않았고, 돈 없이도 ‘운영’되는 신앙공동체를 만들었다. 3년 정도 된 이 공동체의 이름은 ‘통일의 씨앗’이다. 처음에는 30명 정도 모였는데, 지금은 10명이 안 된다. 먼 곳에서 오는데 차비도 주지 못하는 형편이라 그렇다. 그나마 지금의 모임이 유지되는 것도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자비량으로 모임을 이끌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모임을 하나님께서 사랑하신다면 채워주시겠지 하는 마음으로 버텼는데 여전히 통장잔고는 0원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아이들에게 이제 모임을 그만하겠다고 말했죠.”

그런데 구성원들의 반응이 의외였다. 돈 때문이라면 자신들이 조금씩 마련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모임에 필요한 밥값과 간식 값은 스스로 지불하겠다는 것이다. 강 씨는 감동을 받았다. 같은 시간에 다른 모임에 가면 맛있는 것도 공짜로 먹을 수 있고, 돈도 받을 수 있는데, 자신들의 시간과 돈을 투자하며 모임을 만들어가는 그 마음씨가 너무 귀하다는 것이다. 알곡과 쭉정이가 구분되듯, 지금은 꽤 밀도 있는 모임을 만들어가고 있다.

돈 바라지 않는 신앙생활에 자신감을 얻은 강 씨는 한 달 전 교회를 옮겼다. 매달 20만원씩 장학금을 주던 큰 교회에서 개척교회로 옮겼다. 아내와 함께 옮긴 터라 40만원을 포기한 셈이다. 큰 교회에 대한 회의감, 소외감을 느끼면서도 돈 때문에 다니는 것은 아닐까, 치열한 묵상을 통해 내린 결단이었다. 한 달을 생활한 강 씨는 “그 돈 없이 살려니까 너무 힘들다”며 혀를 내둘렀다. 그러나 ‘통일의 씨앗’이 되기 위해서는, 앞으로 북한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도전이라는 게 강 씨의 고집이다. 아내 역시, 이것이 큰 어려움인 걸 알면서도 ‘필요에 따라 채워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했기에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주고 있다.


연어의 꿈, 엄마의 꿈

책 제목으로 생각해 둔 것 중 하나가 ‘연어의 꿈’이다. 알을 낳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가는 연어의 삶이, 황폐화된 곳에 씨앗을 뿌리고자 하는 자신의 꿈을 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특별히 강 씨는 북한의 고아들에게 기술과 신학을 가르치고 싶단다. 북한 땅의 영적인 회복을 위해서다. 무엇보다 강 씨가 북한의 고아들에게 열정과 관심을 쏟는 이유는 자신이 그 아픔을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가족들과 흩어진 강 씨는 중국에 있을 때 단 하룻밤만을 어머니와 함께 보냈다. 도망자 신세로 몸과 마음이 지쳐있던 어머니는, 또 언제 붙잡힐지 몰라 이옷 저옷을 껴입은 상태였다. 붙잡히게 되면 그 옷이라도 팔 생각이었던 것이다. 강 씨는 그때의 어머니 모습을 ‘촌스러웠다’고 기억하는 자신을 촌스러워했다. 어쨌든 평생에 단 한번으로 남았을 어머니와의 밤 이었고, 그날 복음을 전했다.

“예수를 믿기만 하면 천국을 간다고 복음을 전했어요. 어머니는 ‘우리 아들 말 잘하네’하면서 뿌듯해하셨어요. 그리고 ‘아들이 믿는 거라면 나도 하나님 믿을게’라고 말씀하셨어요. 밤새 그 이야기만 했어요.”

그게 어머니와의 마지막 밤이었다. 어머니는 여전히 도망자 신세였다. 나중에 강 씨가 감옥에 갇혔을 때, 담당 경찰이 말해주었다. 어머니가 두 발에는 동상이 걸리었고, 병원에도 가지 못한 채 눈을 감으셨다고 말이다. 강 씨는 “그날 밤 영접기도를 해드렸어야 하는데, 전도사님, 목사님만 하는 건줄 알고 하지 못한 게 마음에 걸린다”고 말했다.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고 계실 걸 알면서도, 아들의 마음엔 어쩔 수 없이 아쉬움이 남는다.

“가끔 모든 사람들이 내 편이 아니라고 느낄 때가 있어요. 가진 것도 없고, 잘난 것도 없으니까 말이죠. 그때 엄마 생각이 많이 나요. 그래도 우리 엄마는 아들 잘났네, 하면서 내 편에 서줬을 테니까요.”

그래서 강 씨는 북한의 고아들에게 가고 싶다. 그들의 편에 서주며, 그들의 ‘엄마’가 되어주고 싶은 것이다.

 

※ 강 씨의 책에는 북한, 중국, 감옥, 한국에서의 이야기로 채워졌다. 곧 출판될 예정이다.
 

이범진 기자  poemgene@ukore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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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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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혜연 2017-10-14 17:10:42

    방금 원코리아연합기도회가 열린 선한목자교회 다녀왔는데 강디모데 전도사님 간증 잘들었습니다~!!!!! 앞으로도 힘내세요~!!!! 화이팅~!!!! *^^******   삭제

    • 유코 팬 2012-11-15 00:32:26

      귀한 신앙훈련을 하고 있네요. 돈을 뛰어넘으면 가장 어려운 경지는 넘겼다고도 볼 수 있으니,
      디모데형제의 앞으로가 기대됩니다. 다만 함께 잘 이끌어주는 멘토도 있으면 좋겠는데, 아마 있겠죠?^^
      반드시 통일이후 가교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는 지도자가 되리라 믿습니다. 디모데형제님 축복합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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