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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재일동포 사회에서도 분단선은 존재한다[통일맘이 간다] 가깝고도 먼 사람들, 일본 속 재일동포들

재일 동포 사회의 두 갈래

일본에 거주하는 재일본조선총연합회(조총련) 사회의 깊숙한 속내가 세간의 주목을 받는 데에는 아무래도 김명준 감독의 다큐 영화 ‘우리 학교’의 영향이 컸다. 2006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첫 선을 보였던 이 영화는 3년 5개월 동안 ‘혹가이도 조선초중고급학교(조선학교)’에서 동고동락하며 담은 김 감독의 관찰 기록이다.

대형 한반도기를 내건 운동장에서 운동회가 열렸다. (뉴코리아 제공)

해방 직후 일본에 거주하던 조선인들은 자녀들에게 우리말과 글을 가르치기 위해 일본 전역에 500개가 넘는 ‘국어강습소’를 설치했고 1946년부터 학교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이후 말과 글뿐만 아니라 일본의 공교육에 영향을 받지 않고 한민족 역사를 가르쳐 왔는데 북의 지원을 받게 되면서 남북 분단의 현실이 고스란히 담기게 됐다.

재일 동포 사회 속의 분단은 ‘조총련’과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 조직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조총련이 친북단체라면 민단은 친남단체이다. 그러니 이 두 조직의 관계란 남북관계의 영향을 가장 민감하게 받을 수밖에 없다. 냉전시대 재일 동포 사회 속에는 또 다른 분단선이 존재했던 것이다. 남북 관계 해빙기를 맞아 민단에 속한 동포들도 조선학교에 자녀들을 보내기 시작했다. 모국어와 한민족 풍습을 제대로 교육하려는 동포들의 필요가 학생 수를 확보해야 하는 학교 측 사정과 맞물렸기 때문이다. 냉전이 끝나고 난 이후 사상 교육이 흐려진 것도 한 몫을 했다.

재일 동포 정체성에 있어서는 더욱 복잡한 경우도 생겼다. 축구 선수 정대세 사례가 대표적이다. 그는 아버지를 따라 남한 국적을 취득했지만 동경에 있는 조선대학을 졸업했고, 북한의 국가대표로서 2010년 FIFA 월드컵에 출전했다. 한편 프로축구팀 수원 삼성에서 2013년에서 2015년까지 선수생활을 했다. 월드컵 당시 브라질 전에서 북한 국기를 가슴에 단 정대세는 국가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아마도 일본 땅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조국 분단의 현실마저 온몸으로 겪어야 했던 정체성 혼란이 복받쳐왔기 때문 아니었을까.

“우리나라 이겨라” 한반도기를 가슴에 단 선수를 응원하는 포스터. (뉴코리아 제공)

일본 선교하는 남한 출신, 중국 출신 선교사 부부

필자의 일본 방문이 정례화 됐던 배경에는 조선학교를 통한 동포 사회와의 만남이 있었다. 자녀들을 조선학교에 보내던 한 선교사 가정과 알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기회가 생겼다. 초등학생 세 자녀의 한글 교육을 위해 수소문 하던 중 조총련계 학교의 존재를 알게 된 선교사 부부는 처음엔 경계심만 높았다고 한다. 무상 교육이 가능한 일본인 학교와 달리 학비 부담이 컸겠지만, 또 다른 재일동포 사회에 대한 심적 부담감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수업 참관을 하면서 공동체와 덕성 교육을 우선하고 민족 문화를 접할 수 있도록 구성된 교과 과정을 보고 입학을 결정했다고 한다.

(사)뉴코리아(필자가 속한 단체)는 2010년 처음으로 선교사 부부의 자녀들을 보러 학교에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놀랍게도 재일동포 4~5세인 아이들이 한글을 또박 또박 읽는 모습을 목격했다. 미국 유학 중 매주 한글학교 교사로 봉사해본 경험이 있는 필자로서는 깜짝 놀랄 일이었다. 힘겨운 타국 살이에 여러 사정으로 부모의 모국어를 자녀들이 읽고, 쓰고, 말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언어 장벽 때문에 콤플렉스가 있는 이민 1세대는 자녀들이 현지어를 능숙하게 하도록 가르치는 일이 우선인 경우가 많다. 보다 나은 발음을 위해 혀 성형수술을 시켰다는 말까지 들어 본 적이 있다. 자연히 2~3세대가 되면 언어는 단절되기 마련이고 말과 함께 문화 역시도 자연 전수되지 못한다.

민속 무용을 익힌 학생들의 공연. (뉴코리아 제공)

2010년에는 동일본 지진이 발생했던 때이다. 원전사고가 잇따랐고 방사능 피해에 대한 우려로 일본 방문을 꺼리던 상황이었다. 후쿠시마로부터 멀지 않은 지바 현 ‘지바조선초중급학교’에서 선교사 부부 주선으로 어머니회에 참석하게 됐다. 학교 특별활동의 일환으로 당시 남한에서 유행하던 호떡 재료를 가져가서 학생들과 함께 만들어 먹는 시간도 가졌다. 처음 어머니들과의 만남에서는 서먹해하며 서로 호기심 반 경계심 반으로 뭐라 말하는지 들어나 보자는 심경이었던 것 같다.

다큐 영화 ‘우리학교’는 일본 조선학교의 존재방식에 대한 이해를 돕는 좋은 길잡이였다. “이국땅에서 우리말과 문화를 가르치며 아이들을 훌륭하게 키워 오신 여러분들이 참 자랑스럽습니다! 여러분들이 힘겨운 타향살이 속에서도 조선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려고 애써왔던 역사를 저희가 잘 알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이제부터라도 함께 하겠습니다!” 빠듯한 직장 생활 중에 시간을 내서 참석한 어머니들과 잠깐 동안의 만남이었지만 후일 우리 팀이 약속을 지키려 노력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학교 어머니들의 이야기도 이어졌었다. ‘우리학교’ 영향인지 많은 단체들이 다녀갔는데 오시는 분들마다 다음에 꼭 다시 온다고 해놓고 약속을 못 지키는 경우가 있었다고. 몇 번 반복되다 보니 으레 하는 인사말이겠거니 하게 되는데 은근히 상처가 된다고 했다. 충분히 이해가 됐다. 유행처럼 번졌다가 금방 사라지는 관심이야 널려 있지 않은가. 우리 일행은 선교사님 부부가 강한 연결고리가 됐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방문할 수 있었다. 같은 학부모로서 신뢰를 쌓아 온 선교사 부부 덕분에 어머니회에 이어 아버지회와도 함께 만날 수 있었다.

(사)뉴코리아 방문단을 위해 어머니회에서 점심을 준비해줬다. (뉴코리아 제공)

코리아 탁구팀과 박열

지바는 1991년 세계탁구선수권대회가 열렸던 곳이다. 남북단일팀이 코리아 팀으로 출전했고 여자 단체전에서 중국을 제치고 금메달을 땄다. 하지원(현정화 분)과 배두나(리분희 분)가 열연한 영화 ‘코리아’에서 자세한 내용이 소개되었다. 지바 조선학교 학부모들과 만남이 몇 차례 이어지면서 당시 대회 자원봉사자로 활동했던 경험담을 들을 수 있었다. 교포 사회가 얼마나 뜨겁게 단일팀을 응원했는지 짐작이 되고도 남았다. 당시에는 금방이라도 조국이 하나가 될 줄 알았다며 씁쓸해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2012년 영화에 출연했던 배우들이 날아가서 현지 개봉도 했다.

최근 상영했던 영화 ‘박열’은 일본 거주 조선인들의 또 다른 삶의 단면을 보여 준다. 열등 신민 취급을 받으며 궂은일을 도맡아 했던 조선인들. 관동대지진 발생 이후 흉흉한 민심을 달래기 위해 조선인들에 대한 거짓 선동을 일삼고 수 천 명의 생명을 앗아가고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던 일본 관료들. 실제 아나키스트 박열은 황태자 살해를 모의했다는 죄목으로 22년 형을 살다 나온 후 초대 민단장이 됐다고 한다. 문경에서 태어나 3.1운동 가담 이후 일본으로 도피, 장기간의 옥살이 끝에 해방과 더불어 귀국한 뒤에는 한국전쟁 통에 납북되어 평양에 묻혔다. 1990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에 추서되기도 했다. 독립운동가에서 무정부주의자, 남북과 좌우를 넘나들었던 그의 행적은 단순한 이분법적 사고로는 잘 이해되지 않는다. 아나키스트에 딱 어울리는 그런 삶이었다.

지바 시 인근에도 관동대지진 당시 억울하게 희생당한 조선인들을 기리는 추모탑이 세워져 있다. 공동묘지 한 편에 자리한 탑은 일본 방문 때마다 들러 서럽고 억울한 죽음을 기억하며 추도하는 장소이다. 한일 간에는 아직도 해소되지 않은 감정의 응어리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독도 영토권 문제, 그리고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조선학교 정부 보조금 문제 등. 복음의 능력은 용서와 화해임을 알지만 현실적인 길을 찾아 나서는 일은 간단하지 않다. 방문할 때마가 기도한다. 우리 민족과 일본 모두 과거로부터 해방되어 참된 자유의 새 날을 맞게 되길!

관동대지진희생자를 추모하는 위령비 앞. (사)뉴코리아 방문단. (뉴코리아 제공)

무상 교육에서 배제된 조선학교

지바조선초중급학교 김유섭 교장선생님은 ‘혹가이도 조선초중고급학교’ 교감선생님으로 ‘우리학교’에도 출연했었는데 2014년 전근해 오셨다. 4남매를 둔 김 교장선생님은 부모님이 계신 고향을 떠나 타지로 발령받아 왔다.

지난 4월에는 미술 전시회에서 위안부 합의를 비판하는 그림을 걸었다는 이유로 지방 정부의 보조금 지급이 중단됐다. 중앙정부 지원금 배제에 이어 심적인 압박감이 여간 크지 않은 상황이었다. 남북의 하나 됨 못지않게 일본 지역 사회와 교류하고 협력하고자 했던 교장선생님의 노력을 알기에 더욱 안타깝게 생각됐다. 40대의 젊은 교장선생님은 기울어져가는 학교 사정 속에서도 꿋꿋하게 우리 민족의 글과 문화를 바탕으로 교육열을 발휘하고 있다.

김유섭 교장선생님으로부터 학교 사정을 전해 듣는 (사)뉴코리아 방문단. (뉴코리아 제공)

2013년 1월 오사카를 시작으로 도쿄, 히로시마, 규슈, 나고야 등 10곳의 조선학교는 일본정부를 상대로 고교 수업료 무상화 배제에 항의하는 소송을 시작했다. 2005년 북한의 일본인 납치 인정에 이어 2012년 연평도 포격 사건이 발생한 이후 재일 동포들의 입장이 무척 난처하게 됐다. 더구나 집권 2기에 들어선 아베 정부는 북한뿐만 아니라 조총련에 대해서도 불편한 심기를 노골화했다. 2010년 민주당 정권 당시 비 공립학교까지 무상 교육을 확장시키려던 원래 목적을 조선학교 ‘배제’로 악용하고 있는 것이다.

3~4년에 걸친 장기 소송 끝에 지난 7월 19일 히로시마 지방재판소는 원고인 히로시마조선학원과 졸업생에 대해 원고 패소 판결을 냈다. 반면 28일 오사카지방재판소는 정치적 이유로 교육받을 권리를 침해했다고 봐서 조선학교의 고교 수업료 무상화 배제가 위법하다는 첫 판결을 내렸다. 중화학교와 브라질인학교 등 40여 개 외국인학교의 무상화 신청이 받아들여진 것에 비해 형평성 문제가 있고, 정부가 내세우는 보조금 전용 문제(북한 정권 지원에 쓰인다는 주장)도 현실에 맞지 않다는 이유이다.

19일 판결에 대해서는 <아사히신문>도 “교육의 기회를 공평하게 보장한다는 제도의 이념으로 되돌아가 판단해야만 하는데 너무나도 조잡한 논리에서 도출된 판결”이라는 평을 내린 바 있다.

우리가 먼저 손 내밀어 잡아야 할 동포들

남북 관계와 북한의 국제 사회 입지에 따라 곧바로 영향을 받는 재일 동포들의 고단한 삶. 우연한 기회에 가까이 지켜보게 되었지만 한민족 평화통일의 분깃에 디아스포라 한인들이 함께 참여해야 한다는 점은 더욱 분명해 보인다. 2015년 말 기준 재일 동포 가운데 한국 국적은 45만 7700여명이고 조선 국적은 3만 3900여명이다. 인구 수 만으로도 확연히 열세인 조총련 소속 동포들의 목소리가 날로 적어질 수밖에 없는 현실은 역설적으로 우리가 그네들에게 더욱 다가서야 함을 일깨운다.

90% 이상이 남쪽에 고향을 두었으나 북한을 자기 조국으로 삼아야 했던 재일 동포들이다. 그들은 이젠 남과 북 두 조국의 화합을 위해 징검다리가 될 수 있다. 지금이야말로 남한 정부는 조선학교에 대한 교류 협력을 고려해볼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민간단체의 교류가 정부 차원의 해법을 끌어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윤은주  ejwarrio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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