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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티스가 권한 한 권의 책

10월 초에 매티스 미 국방장관이 한 연설의 말미에 1962년에 출판된 페렌바하(T. R. Fehrenbach)의 「이런 종류의 전쟁(This Kind of War : ‘한국전쟁’으로 1976년 번역 출판)」을 청중들에게 “읽어보라”로 말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많은 기자들이 “한국에 대한 군사옵션이 무엇이냐”는 질문이 쏟아지자 이에 대한 매티스 장관의 우회적 답변이었습니다. 한국전쟁사의 명저로 알려진 이 저작은 국회도서관에 딱 한 권의 번역본이 있었습니다. 대체 매티스가 왜 그 말을 했는지 궁금해서 읽어보았습니다. 빽빽하고 작은 글씨로 700쪽에 이르는 분량부터가 만만치 않았습니다. 아무런 희망도 없었고, 승리하지도 못했으며, 너무나 비참해서 미국에서조차 말하기를 꺼려하는 전쟁, 그래서 쉽게 잊혀버린 한국전쟁에 대한 아주 고통스러운 기록입니다. 그래서인지 어떤 의무감으로 읽게 됩니다. 전쟁 후에도 미국은 한 동안 전쟁으로 인정하기조차 꺼려졌는지 ‘한국동란’으로 불리어졌다는 사실에서 드러났듯이 미국인들이 한국 전쟁을 말하는 것은 냉전 시기에 불편한 일이었나 봅니다.

여러 전투에서 패배한 미국 정부와 군대의 순진함과 어리석음까지 상세히 기록했다는 점에서 이 저작은 대담한 시도가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미국인의 관점이라는 한계가 있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1950년 6월의 전쟁 초기에는 전쟁이라는 사실조차도 인정하기를 거부하면서 단지 ‘경찰 행동’을 하는 것이라 자위하면서 전투를 벌이다가 패주하는 장면이 연이어집니다. 낙동강 전선까지 밀린 미군을 보충하는 본토에서 소집된 병사들은 자신이 일본으로 가는 줄 알고 수송기를 탔다가 내려 보니 한국의 전투현장이었으며, 아무런 훈련도 받지 못했고 산악전투에 대한 기본 상식도 없이 전투에 투입되고서야 싸우는 방법을 터득해 갑니다. 인천상륙작전 이후 6개 군단의 중국군이 이미 압록강을 넘어 청천강 근처에 와 있었는데도 맥아더 유엔군사령관은 투르먼 대통령에게 천연덕스럽게 “중국군은 개입하지 못한다”고 호언장담하는 장면이 세밀하게 묘사됩니다. 그런 허세가 얼마나 큰 비극으로 이어지는지, 전율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투르먼 대통령이 중국과 전면전을 보류하고 한반도 내에서만 제한전으로 전쟁을 국한하려는 동안에 맥아더의 극동군사령부가 중국 본토를 위협하는 강경한 성명을 발표합니다. 그 결과 서방 진영에서 맥아더가 3차 대전을 초래할 중국보다 위험한 인물로 부각되기에 이르는 대혼란의 과정.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는 와중에 미국은 이 전쟁을 왜 하는 것인가, 어디까지 해야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합니다.

1951년 후반기에 미국은 이미 한반도에서의 전쟁에 승리하겠다는 목표가 사라졌고, 단지 “지지만 말라”며 8군사령부에 제한전쟁을 지시합니다. 그러나 전쟁에서 제한전은 없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 주장입니다. 일단 적대행위가 지속되는 구조가 존재한다면 현장의 전투 논리에 따라 군대는 전투를 하게 되어있으며, 여기에 제한이란 없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전선이 교착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군과 중국군은 엄청난 사상자를 발생시키는 아주 이상한 양상으로 전쟁이 흘러갑니다. 군대의 위신을 세우기 위해 아무런 가치도 없는 둥근 산봉우리를 점령하기 위해 쌍방이 ‘고지전’에 집착하면서 피의 능선, 단장의 능선, 포크 찹 고지 전투 등, 그야말로 살육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리는 현상이 일반화되는 것입니다. 전쟁 기간 중 4만 명에 달하는 미군 사망자 중 절반 이상이 전선이 교착된 1951년 이후에 발생했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해주고 있습니다.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지지 않기 위해서 특별한 전략적 목표도 없이 전투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아버립니다.탈출이 불가능한 비극의 질곡에서 죽을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사람들의 운명, 그들은 마치 죽기 위해 사는 것 같았습니다. 이 대목에서 저는 울컥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마도 한국 전쟁에 대한 이보다 더 비극적인 묘사는 없을 것입니다. 매티스가 왜 책을 권했는지 짐작이 갑니다. 함부로 한반도에서 전쟁을 말하지 말라는 것 아니겠습니까? 전쟁의 비참함을 모르고 평화를 주장하는 것보다 무의미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 아직도 우리가 그 전쟁의 잔상에서 벗어나 있지 못함을 깨닫게 됩니다.

김종대/ 정의당 국회의원

*이 글은 김종대 의원의 페이스북에도 게재됐습니다.

김종대  jdkim201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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