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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을 다 품은 도시 이스탄불강명구의 ‘유라시아횡단 평화마라톤’ (36)
성 소피아 성당을 건설하기 위해 비잔티움 제국의 모든 것이 동원되었다. 유스티아누스 황제는 성당이 불에 타는 것을 막기 위해 목재대신 석재를 사용하였다. 그는 이 걸작 성당을 짓기 위해서 제국의 각지에서 대리석을 옮겨오도록 명령했다. 강명구

몸 상태가 최고에 이르는 날이면 몸이 아스팔트 위를 통통 튀는 느낌을 받는다. 오늘이 그런 날이다. 어제는 그렇게 피곤이 몰려오면서 비 맞은 진흙벽돌처럼 무너져 내렸는데, 오늘은 이렇게 산뜻하고 활력이 넘칠 수 없다. 가진이네 가족이 소피아에서 진하게 끓여 공수해온 사골국을 배불리 먹었을 뿐인데 말이다. 통칭 지중해라고 부르지만 내가 지나는 길은 흑해와 에게 해를 보스포루스 해협과 이어주는 마르마라 해이다.

이렇게 육신이 최고의 움직임을 보일 때 (비록 나는 타고난 음악적 자질이나 음감은 없어도) 내 두 다리로 전해오는 율동적인 리듬 위에 내 몸을 맡긴다. 공원이나 숲길이나 강변을 달릴 때 들려오는 새소리, 바람소리, 물소리는 그리 깊은 음악적 자질을 요구하지도 않으면서 최고의 리듬감을 내게 선사한다. 지중해의 풍요로운 햇살이 나의 발길을 유혹하여 이끌고 마르마라 해의 파도소리와 갈매기 소리가 나의 발걸음 소리에 화음을 넣어주고 있다. 나는 달릴 때 언제나 박자에 맞추어 움직이고 어떤 알 수 없는 지휘자의 손끝을 예민하게 응시하게 됨을 느낀다.

‘터키 행진곡’이란 피아노곡은 모차르트가 작곡한 곡이지만 모든 군대행진곡의 원조는 오스만 튀르크 군대의 행진곡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오스만 튀르크군의 군대행진곡의 장엄하고 경쾌하고 위용 있는 행진곡이 울려 퍼지면 적들은 싸움을 하기도 전에 미리 겁먹고 도망가기 바빴다고 한다. 메흐테르 군악대는 1299년 창설된 세계 최초의 군악대로 전쟁터에서 포탄의 집중포화 속에서도 눈 하나 깜빡 않고 군인들의 사기를 북돋는 연주를 계속하는 군악대의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지금은 톱카프 궁전 앞에서 관광객을 위해 연주를 한다. 달리는 나의 머릿속에는 모든 군악대의 연주가 박물관 앞에서 관광객들과 학생들을 위해 연주되는 음표를 찍어내고 있다.

가진이네 가족이 소피아에서 진하게 끓여 공수해온 사골국을 배불리 먹고 지쳤던 내 몸이 활기를 얻었다. 강명구.

이스탄불은 과거에 대한 향수와 미래에 대한 희망이 서양과 동양이 공존하는 것처럼 독특하게 조화를 이루는 도시이다. 보스포루스 해협과 골든 혼에 햇살이 비출 때 물결의 반짝임과 하늘을 찌를 듯 높게 솟아 있는 수많은 모스크의 미나레트와 왕궁과 해안가에 빼곡히 들어선 멋진 가옥들이 동화적으로 아련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이스탄불은 확실히 동화적인 요소가 많았다. 시장에는 알라딘의 요술램프에서 나온듯한 진귀한 물건들이 값싸게 팔리고 있었고 식당에서 나오는 냄새는 입맛을 자극하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이스탄불은 황홀하고 매혹적이며 신비하고 역사적이며 용광로처럼 무엇이든 녹여내서 새로운 것을 탄생시킬 것 같다. 동서양의 대륙을 다 품은 유일한 도시는 말 그대로 동서양의 인종과 문화와 역사와 먹거리를 다 품었다. 그런 도시를 달리는 기분은 양탄자를 탄 왕자가 새로운 요술의 세계로 여행하는 기분이었다.

초겨울 아시아 쪽에서 떠오르는 해가 높은 첨탑을 물들일 때면 이슬람 전통과 현대가 하나가 되어 이스탄불을 더 이스탄불답게 만들었다. 내가 두 개의 대륙에 걸쳐있는 하나의 도시 이스탄불에서 본 것은 태양은 아시아 쪽에서 떠왔다는 것이다. 이스탄불은 인구 천오백 만의 초대형 도시에는 삼백만 명의 시리아 난민이 있고 그 중의 80만 명이 어린아이라고 한다. 글을 쓰는 지금도 아까 성소피아 성당 앞을 지나올 때 피리를 불며 구걸하던 잘 생긴 시리아 난민 어린이의 얼굴이 눈에 밟힌다. 전쟁의 참화를 겪은 마음의 상처가 평생 그 아이를 할퀴며 괴롭힐 것이기 때문이다.

이스탄불은 과거에 대한 향수와 미래에 대한 희망이 서양과 동양이 공존하는 것처럼 독특하게 조화를 이루는 도시이다. 보스포루스 해협과 골든 혼에 햇살이 비출 때 물결의 반짝임과 하늘을 찌를 듯 높게 솟아 있는 수많은 모스크의 미나레트와 왕궁과 해안가에 빼곡히 들어선 멋진 가옥들이 동화적으로 아련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강명구.

이곳은 여러 제국의 수도였다. 제국이 바뀔 때마다 이름도 바뀌었다. 비잔티움, 콘스탄티노플, 이스탄불로 바뀌었다. 그 서로 다른 문명이 켜켜이 쌓인 남다른 도시이다. 도시의 어느 곳을 파도 옛 보물이 나오고 유적이 나오는 곳이라 유네스코에서 이스탄불에는 고층건물도 짓지 못하게 한다고 한다. 이 역사적인 도시는 터키 서쪽에 있다. 발칸 반도와 아나톨리아, 흑해와 지중해 사이의 보스포루스 해협을 품고 위치한 도시이다.

로마가 게르만 민족의 이동으로 곤경에 쳐하자 콘스탄티누스 1세가 330년에 그리스의 식민 도시인 비잔티움(Byzantium)을 제2의 수도로 삼고 자기의 이름을 따서 ‘콘스탄티노플’이라 불렀다. 이곳에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장엄한 성 소피아 성당이 있다. 블루모스크가 있고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고대 전차 경기장이 있고 16세기에 건축된 쉬레이마니에 모스크가 있다. 오스만의 절대 권력자 술탄이 살았던 톱카프 궁전도 보스포루스 해협에 면하고 있다.

한때 콘스탄티노플은 1054년 동서교회 분열 때 동방교회의 중심지가 되기도 하였다. 한참 세월이 흐른 후 1453년 술탄 메흐메트 2세는 이곳을 점령하여 오스만 제국의 수도로 삼고 ‘이스탄불’(Istanbul)이라 불렀으며, 1923년 서구 세력에 와해된 제국의 마지막 술탄이 수도를 앙카라로 옮길 때까지 오스만 제국 최고 도시로서의 영화를 누렸다. 그 후로도 사람들의 마음 속 터키의 수도는 영원히 이스탄불로 남아 있을 것이다.

성 소피아 성당을 건설하기 위해 비잔티움 제국의 모든 것이 동원되었다. 유스티아누스 황제는 성당이 불에 타는 것을 막기 위해 목재대신 석재를 사용하였다. 그는 이 걸작 성당을 짓기 위해서 제국의 각지에서 대리석을 옮겨오도록 명령했다. 이때 에페스의 아르테미스 신전과 델피 신전의 대리석 기둥이 뽑혔다. 백색의 대리석은 마르마라 지역에서, 녹색의 대리석은 유베지역, 분홍색의 대리석은 신나다 지역, 노란 대리석은 아프리카에서 가져왔다.

보스푸로스 해협에서 바라 본 돌마바흐체 궁전. 강명구.

성당이 가진 또 하나의 자랑거리는 56m의 높은 돔이다. 천장은 붉은색을 띤 황금색으로 빛나고 거대한 대리석 기둥들이 받치고 있다. 내부의 벽면은 화려한 모자이크화로 장식했고, 벽이나 천장은 석고를 바른 다음 유리로 만든 금칠 조각들을 이용하여 모자이크화를 만들었다.

13세기 초 제4차 십자군 전쟁이 결과적으로 소피아 성당의 쇠락을 가져온다. 당시 십자군은 베네치아 상인들의 농간으로 예루살렘을 향하지 않고 이 성당이 있는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결국 이 사건으로 가톨릭과 동방정교가 갈라서면서 비잔틴 제국은 차츰 세력을 잃게 된다. 이후 오스만 튀르크에 의해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되자 성당에 이슬람 첨탑인 미나레트가 들어서며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로 변모하게 된다.

언제나 큰 변화는 작은 것에서 시작한다. 사골국을 배불리 먹고 바로 다음날 활기를 되찾은 나의 몸처럼 철조망을 걷어낸 한반도는 금방 활력을 되찾아 세계평화의 중심국이 될 것이다.

유코리아뉴스  ukorea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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