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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압박과 제재 속에 감추어진 불편한 진실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에 제재와 압박을 가하면, 대화에 응해 올 것이라는 확신에 차 있다. 기회 있을 때마다 북한이 대화에 나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제재와 압박을 가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지금은 대화할 때가 아니라고 한다. 그 지금이 언제까지인지 우리는 모른다. 필자는 문 대통령이 하는 일에 대해 크게 동의하고 때론 감격할 때도 많지만, 이 생각에만은 동의하기 어렵다.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다.

첫째, 문 대통령의 논리는 「강자의 논리」다. 압박을 가하는 자체가 정당하다는 논리다. 압박과 제재는 일종의 벌이다. 벌은 잘못에 대한 대가다. 압박과 제재의 끝에 북한이 대화로 나온다면 이는 스스로 벌을 청하는 것과 같다. 약자로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다. 잘못을 인정한 뒤 이루어지게 될 대화는 어떤 모습을 띨까? 강자와 약자의 관계,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가 아니겠는가. 약자의 입은 강자의 힘 앞에서 다물어질 수밖에 없다. 강자의 말이 최종적 진리이기 때문이다.

「칼케돈」의 시민으로 아테네에서 소피스트로 활동했던 「트라시마코스」는 ‘정의를 강자의 이익’이라고 했다. 강자는 반드시 물리적 강자만이 아니다. 용서와 사랑의 휴머니즘도 어쩌면 강자의 논리이자 특권일 수 있다. 강자의 논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강자가 되는 것이다. 문대통령의 생각에 이 논리가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 강자의 논리는 우월의식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우월의식(sense of superiority)은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우수하다는 인식으로부터 생기는 자기 긍정의 감정이다. 자존심의 일단에 위치하는 감정이긴 하나, 그 속에 ‘객관성’은 내포되어 있지 않다. 인종과 인종, 민족과 민족 사이의 관계를 설명할 때 흔히 사용되는 우월의식. 이 또한 다분히 주관적인 평가가 아닌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9일 북한의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인 화성-15형 발사 직후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하고 있다. ⓒ청와대

둘째, 문 대통령은 제재와 압박이 북한의 ‘자발적 복종’을 이끌어낼 것이라 확신하고 있는 것 같다. 자발적 복종. 여기에도 지배자와 추종자의 논리가 작용되는 것은 마찬가지다. 하지만 자발적 복종에는 주체성과 자율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의 뜻이 용도폐기되는 차가운 현실만 있을 뿐이다. 자발적 복종이 자신을 위한 선택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선택이 이루어지는 순간부터 스스로 할 수 있는 힘은 사라지고 만다. 강자의 논리로 생각하고 강자가 바라는 대로 행동한 결과 얻게 되는 “인정”이 바로 ‘자발적 복종’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자발적 복종’이 종종 일어난다. 왜 그럴까? 심리학자 레온 풰스팅어(Leon Festinger)의 “인지 부조화 이론(A Theory of Cognitive Dissonance)”이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인간은 오랜 시간 동안 불행한 상태가 되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불행한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자신을 억지로 맞추려고 한다는 것이다. 우리 마음속에 양립 불가능한 생각이 대립할 때, 자신의 믿음에 맞추어 행동을 바꾸기보다는 행동에 따라 믿음을 조절하려고 한다’는 것이 “인지부조화론”이다. 북한에게 제재와 압박을 계속하면 그와 같은 불행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김정은이 대화를 결단할 것이라는 믿음이 문 대통령에게는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김정은이 자신이 불행한 상태를 느끼게 되는 것은 언제쯤이 될까? 북한 주민 모두 불행을 느끼기 전일까 아니면 그 후일까?

문 대통령은 이미 오래 전부터 북한 핵·미사일 문제의 해결과 앞으로의 남북관계를 위한 청사진(베를린 구상, 한반도신경제지도 등)을 만들어놓았다. 이는 제재와 압박, 대항과 거부의 전투(?)에서 패배한 북한을 위한 선물일지도 모른다. 분홍빛 청사진일 수 있다. 그렇다고 북한이 그 ‘꿀’ 때문에 머리를 조아릴까? 자존심하면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북한인데. 북한이 그런다면 그것은 기적일지도 모른다. 문 대통령은 그런 기적을 믿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기적일 뿐, 정치는 아니지 않는가.

혹자는 강자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질서를 들어 문 대통령의 논리를 합리화할 수도 있을 것이다. 구태여 「트라시마코스」의 논리를 빌리지 않더라도 국제질서는 “강한 자가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규율을 정한 후, 그 규율을 따르게 하는 것이 정의”라고 하니까 말이다. 그러나 국제질서에 반드시 이 논리가 지켜지는 것만은 아니다. 스파르타가 페르시아를 이긴 까닭은 자신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목숨 걸고 싸웠기 때문이다. 자유를 잃는 순간 모든 것을 잃는다고 그들은 생각했기 때문이다. 북한에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김정은이 그런 국제질서에 거침없이 대항하고 있는 것도 자신 나름의 자유를 위해서일지도 모른다. 76일 만의 북한 핵·미사일 발사 또한 그런 강자의 국제질서를 정면으로 거부하는 몸짓일 것이다.

김영윤 / (사)남북물류포럼 대표

김영윤  kimyy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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