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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평화통일, 그 날이 오려면?

나는 드라마를 보다가 눈물 흘릴 때가 많다. 드라마는 현실이 아닌 가상공간이지만 스토리에 매몰되다 보면 감정이입이 되어 가족들 앞에서 주르륵 주르륵 눈물을 훔치게 된다. 현실과 가상을 분리하지 못한 것이 부끄러워 눈물이 아닌 것처럼 위장하느라 애쓸 때도 많다.

그런데 드라마의 시작을 놓치면, 다시 말해 스토리 전개를 놓치면 연기자가 아무리 슬픈 연기를 해도 감정이입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드라마를 재미있게 감상하려면 처음 시작을 놓치면 안 된다. 역사에 대한 인식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역사에 대한 통전적 인식이 훈련되지 않고서는 역사의식을 갖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심훈은 1901년에 태어나 1936년에 요절한 사람이다. 경술국치가 발생한 1910년, 심훈은 불과 열 살이었으니 나라 빼앗긴 치욕과 설움을 온몸으로 체휼하지는 못하였으리라! 그는 어렸을 때부터 총명했고 가족의 큰 기대를 한몸에 받으면서 현 경기고 전신인 경성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다. 출세와 안일이 목표였다면 그는 어려움이 없는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민족적 양심은 일제의 폭압을 지나칠 수 없었다.

1919년 그가 경성고 4학년 때 3·1운동(혁명)에 적극 참여했고, 그로 인해 8개월 동안이나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그가 감옥에서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다. “마음을 합치는 것보다 큰일은 없습니다. 뭉쳐 행동을 같이 하는 것처럼 무서운 것은 없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그 큰 힘을 믿고 있습니다. 생사를 같이 할 것을 누구나 맹세하고 있으니까요 … 아아! 육체의 고통을 뛰어넘는 정신의 맑음이여!”

이 편지를 받은 어머니의 심정이 얼마나 아프셨을까? 어떻게 견디셨을까?

옥고를 치르고 나온 심훈은 곧 중국으로 건너가 여러 독립운동가들과 조우한다. 특히 우당 이회영 선생 집에서 두 달 동안 머문 것은 심훈의 인생 여정에 결정적인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1921년 항조우 지강대학 국문과에서 2년간 수학한 후 돌아온 그는 동아일보에 입사하여 기자로, 영화인으로, 문학인으로 조국의 독립을 위해 혼신의 정열을 바친다. 그는 1930년경에 ‘그 날이 오면’이라는 시를, 1935년 동아일보에 ‘상록수’를 발표한다. 그 외에도 많은 작품을 남겼으나 애석하게도 1936년 장티푸스에 걸려 사망하고 만다.

심훈이 살았던 그 시대의 나라 잃은 통사(痛史)를 알지 못하고서야 어찌 그의 영혼의 통곡 ‘그 날이 오면’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날이 와서 오오 그날이 와서

육조 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딩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 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쳐 메고는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거꾸러져도 눈을 감겠소.(‘그 날이 오면’ 제2연)

 

한반도의 전쟁위기는 언제나 상존한다. 북미관계가 악화되어 미국이 합당한 명분으로 북한을 선제 공격하고 북한은 곧 인천공항에 장사포를 날려 인천공항이 쑥대밭이 되었다 해보자. 그 사건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일까? 코로나19의 영향력과 비교나 되겠는가?

미국이 이런저런 명분으로 북한을 선제 공격하면 북한은 틀림없이 핵 사용을 하기 전 먼저 한국의 주요 기간시설을 공격할 것이다. 미국의 선제 공격을 통해 북한을 일주일 내로 초토화시킬 수 있다는 것은 허황된 꿈이요, 거짓이라는 것은 미국의 이라크 공격을 통해 이미 입증되었다.

전면전이 일어나기 전 소위 말하는 중간전이 일어난다는 것은 명약관화한 예측이다. 미국의 선제 공격 → 북한 주요 시설 파괴 → 북한의 남한 기간산업 공격 → 중국군 개입 → 중미간의 신속한 휴전협정 → 북한과 남한의 정권교체?

이런 순으로 전쟁은 진행될 것이다. 북미가 핵을 사용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지만 그렇게 될 수도 있다는 최악의 가능성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어찌하든 한반도에 전쟁이 발발하면 승자는 없다! 북·중·일 모두 피해가 깊겠지만 남북과 비교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러한 지정학적 운명에 처해 있는 남과 북 8000만 겨레는 무슨 대가를 치르더라도 전쟁만은 막아야 한다.

직접 체험이든 간접 체험이든 체험하지 못한 일은 관념의 영역에 머물기 십상이다. 오늘 우리는 코로나19라는 역대 미문의 사회적 고통을 체험하고 있다. 사스, 메르스 등 유사 바이러스에 대한 체험을 했지만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생소한 이름 때문에 교회는 그야말로 2000년 교회사에서 경험해 보지 못한 ‘주일예배 금지’라는 초유의 아픔을 경험하고 있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이미 경험했던 것도 세월이 가면 까맣게 잊는 것이 모든 인간의 관행이다. 그래서 역사는 늘 기억하라고 명한다. 역사의 key는 기억이다. 기억이란 잊지 않는 것이다. 잊지 않을 뿐 아니라 기억은 승화시켜야 한다.

예컨대 6·25에 대한 기억을 잊지 않는다는 것은 그 날의 억울하고 원통한 감정을 계속 되살린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전쟁의 고통을 기억하고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평화를 만들어 가는 노력이 바로 6·25에 대한 기억의 핵심이다. 코로나19 전염 기간이 앞으로 한 달 이상 지속되고 감염자가 1만 명을 넘어서면 그때 우리 사회는 어떻게 될 것인가? 그때 우리는 과연 사회적 패닉상태를 극복할 수 있을까? 이런 의구심이 우리의 상상력을 마비시킨다. 하물며 이 땅에 다시 전쟁이 발발하면 우리는 어찌될 것인가?

오늘날 통일을 위한 남북 갈등, 남남 갈등은 골이 너무나 깊고 깊다. 그러나 이 갈등을 극복하는 것은 포기할 수 없는 길이요, 포기해서는 안 되는 길이다. 한걸음 한걸음, 당당히 나아가야 한다.

평통연대는 이 거룩한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첫째, 평화담론의 확산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다.

둘째, 남북이 상생할 수 있는 길을 찾아 나설 것이다.

셋째, 한반도 평화가 남북한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각성하고 북한과 남한, 일본과 중국의 청년들의 만남과 교육의 터전을 제공하는 긴 역사적 호흡을 계속해 갈 것이다.

이런 일을 위해 평통연대와 함께할 300여 실행위원교회와 단체를 모집하고 10만 통일 일꾼들을 모집해 갈 것이다. 지난 10년 동안 소걸음으로 걸어왔지만 꿈을 잃지 않았다는 소망을 위로 삼아 새로운 10년을 시작할 것이다.

평화통일은 물론 평통연대 만의 일은 아니다. 8000만 겨레가 다 함께 나서야 한다. 평통연대의 우산 아래 통일 일꾼 10만이 모이면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소임을 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강경민/ 평화통일연대 상임대표  

 

평화통일연대 300 실행교회 참여방법(월 10만원)

①계좌이체

국민은행 822401-04-117668(사단법인 평화와통일을위한연대)

②CMS

‘QR코드’ 앱 깔기 → 오른쪽 QR 스캔 → 연결되는 링크 오픈 → 회원가입 서식 작성 →‘후원단체 지정’에서 ‘평화와통일을위한연대’ 선택 → 완료

강경민  nilsan@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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