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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민주화와 한국의 민주주의: 촛불 이후 3년의 자화상동아시아재단 정책논쟁 제143호

한국 민주주의의 현주소와 쟁점들

한국의 민주주의는 세계적으로도 모범적인 사례로 칭찬받아 왔다. 1987년 한국의 민주이행은 평화적이고 점진적으로 이루어졌고, 현재 한국은 민주공고화 과정 중에 있다. 그 과정에서 한국 역사의 동태성과 한국 민주주의의 탄력성이 극적으로 표출된 바 있다. 2020년 6월 10일 한국은, 1987년 민주이행을 이끌어 낸 6월 민주항쟁이 일어난 지 33년째를 맞았다. 많은 민주투사들이 죽거나 고문받았던 건물 앞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감동적인 연설을 하였다. “...민주주의는 제도를 넘어 우리의 삶 속으로 스며들어야 합니다...일상에서 민주주의를 체험하고 반복할 때 민주주의는 끊임없이 전진할 것입니다...” 한국 민주주의의 가야 할 방향을 진단한 점에서 충분히 호속력 있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민주공고화의 길은 순탄치 않고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없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민주주의의 위대한 진전에도 불구하고, 민주적 사고로는 상상하기 힘든 현상과 사건들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러한 현실이 쉽게 개선되지 않고 지속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완전한 민주공고화를 위하여 한국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이와 같은 질문들에 답하기 위하여 몇 가지 쟁점들이 비판적으로 재검토될 필요가 있다.

1)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하여 무엇이 변해야 하는가? 제도인가, 문화인가, 아니면 개별 인간들인가? 한국은 제도개혁과 문화개혁을 모두 추구한다. 하지만, 한국 사회와 민주주의 가치에 커다란 충격을 안겨준 세월호 사건이 과연, 기술적 하드웨어나 제도적 소프트웨어가 미비했기 때문이었을까? 당시 대통령부터 선장에 이르기까지 개인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최소한의 인간적 책임만 했어도 희생은 크게 줄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작동이 멈추어 버린 개인들의 휴먼웨어가 문제의 핵심이 아니었을까?

2) 민주주의의 질이라는 측면에서 한국의 민주주의는 얼마나 발전되었는가? 국내외에서 다양한 평가가 있고 긍정적인 평가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한국이 질적으로 높은 수준에 있다고 자평하기에는 주저스러운 점이 많다. 정치인들의 책임성 측면에서나, 국제적 규범에 어울리는 제도적 문화적 포용성 측면에서 한국이 가야 할 길은 멀다. 장기간의 여야대치가 일상화되어 유권자에 대한 책임을 저버린 국회 마비는 민주주의의 한계를 보여주는 증거가 되었다. 한편, 한국은 2015년 유엔난민보호기구(UNHCR)가 발표한 난민보호수용력은 189개국 중 119에 머무르고 있다.

3) 한국의 민주주의가 지속가능하기 위하여 필수 불가결한 사회적 신뢰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특히 1997년 경제위기나 2020년 코로나 위기 시에 나타난 사회적 자본의 비밀은 어디에 있을까? 국제적으로 비교하면 한국의 사회적 신뢰수준은 매우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미국의 인종차별 반대 시위에서 자주 애창되는 미국의 싱어송 라이터 빌 위더스(Bill Withers)가 1972년에 발표한 노래 ‘나에게 기대세요(Lean on Me)’는 취약한 그룹과 소외된 개인을 위로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도움이 필요할 때 당신이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라는 설문으로 사회적 신뢰 수준을 국제적으로 비교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더 좋은 생활지수(Better Life Index)’에 의하면, 한국은 78%로 OECD 전체 국가(평균은 89%) 중 최하위를 기록하였다. 반면, COVID-19 위기 속에서 한국 국민들이 보여준 모습은 높은 사회적 신뢰와 풍부한 사회적 자본을 보여주는 데 손색이 없었다. 숨어 있는 사회적 자본을 어떻게 모든 분야에서 일상화되도록 할 것인지는 한국의 민주공고화를 진전시키는 데 중요한 열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민주주의에서 일어나고 있는 비민주적 유산: 콜로세움 정치 신드롬

민주주의를 회복시킨 촛불과 광장정치의 감동은 아직도 생생하다. 3년이 지난 현재에도 그때의 시대정신은 지속되고 있다. 하지만, 과연 촛불을 거친 한국 민주주의는 제대로 공고화되고 있는 것일까? 혹시 한국사회가 결별하고자 했던 모습이 다시 우리의 마음과 행태 속에서 재현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코로나 발생으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실시되기 직전까지 지난 약 3년간은 극심한 사회 갈등과 정치적 대립의 연속이었다. 거의 매일 집회가 열렸고, 광화문광장과 청와대 주위는 조용한 날이 없었다. 정치, 노동과 복지, 그리고 각종 개인적 민원 사항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위가 폭발하였다. 유튜브 등을 통한 가짜뉴스는 탈진실(post-truth) 시대를 실감하게 해 주었고, 그 행태는 극한적으로 비이성적인 경우가 많았으며, 법치는 무시되었고 리더십은 실종되었었다. 건전한 상식을 갖춘 일반시민들은 피로감을 호소하는 나날이 지속되었다. 문재인 대통령을 극성적으로 지지하는 일부 세력들은 자신들이 지지하는 정치인을 비판하는 개인에 대하여 SNS를 통하여 무차별 공격을 반복하였고, 이에 대비되어 박근혜 탄핵을 부정하는 소위 태극기부대는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혐오 발언을 지속하였다. 역사적 사건이나 사회적 현상에 대한 국회의원들과 엘리트들의 막말도 끊이질 않았다. 한국 정치는 촛불에서 경험한 광장정치를 국회 내의 제도정치로 통합하고 복원하는 데 다시 실패하였던 것이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여야를 막론하고, 콜로세움 정치로 퇴화되는 우려를 보여주었다. 로마 원형경기장에서 전투에서 진 검투사를 죽이라는 군중의 함성과 그 폭력에 열광하는 군중의 심리는 이성적이지 않고 민주적이지도 않은 정치의 극단을 보여주는 게 아니었던가. 어쨌든 민주주의가 복원된 사회에서 기대할 수 있는 평화로운 일상은 찾아볼 수 없었다.

‘조국사태’로 불리는 논쟁은 검찰개혁 이슈와 결합되면서 한국을 제2의 촛불 시위 물결로 몰아넣었다. 3년 전 촛불이 하나의 목적을 위한 시위였다면, ‘조국사태’의 촛불은 대립되는 목적을 가진 두 세력간의 시위 경쟁이었다. 문재인 정부의 민정수석과 법무부장관을 지낸 조국의 자격에 대한 찬반과 가족 관련 의혹들은 한국 사회의 엘리트들이 갖는 도덕적 이중성에 대한 고발로 연결되었다. 권위주의적 구시대를 비판하면서 민주적 개혁을 주장하였던 한 지식인이자 고위 공무원이 민주적 가치와 자격 논쟁에 휩싸이게 된 것이다. 이는 단순히 개인적인 사건이 아니고 한국의 민주주의가 공고화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현상이라는 점에서, 한국의 민주주의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의 하나로 기록될 것이다.

 

사회적 민주화: 한국의 성공적인 민주공고화를 위한 다음 과제

한국은 1987년 정치민주화를 성공적으로 이루어냈고,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일련의 개혁을 통해 경제민주화가 많이 진전되었다. 4.15 총선과 코로나 발발 직전까지 한국사회에 몇 가지 논쟁적 주장들이 회자되었다. “386이 물러나야 한다” “노조가 기득권이다” 그리고 “적폐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교체되고 있다” 등이 그것이다. 1987년 민주화를 이끌었던 세력들의 행태는 이제는 정치적 자산이 아니라 부채가 되었다는 비판이 제기되었고, 노동계에서 혜택을 독점한 일부 노조들이 보여주는 탐욕과 이기주의에 대한 고발이 이어졌다. 촛불시위와 박근혜 탄핵에도 불구하고 해소되지 않는 상대적 박탈감이 급기야, 현 집권세력을 새로운 적폐와 기득권으로 비판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코로나 위기 속에서 치러진 4.15 총선의 결과와는 무관하게 이러한 사회적 문제 제기는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것은 단지 정치적 반대나 경제적 어려움에 대한 불만에서만 초래된 것이 아니다. 이는 변화된 사회 현실과 시대정신에 뒤처진 일부 엘리트들이 갖는 인식과 행태에 대한 비판이자 분노라 할 수 있다. 즉, 이는 정치민주화와 경제민주화의 결과로 한국 사회에 많이 정착된 민주적 절차나 투명성 수준에, 일부 사회세력과 엘리트들이 뒤처짐으로써 발생한 현상들이다. 이들은, 정치권력과 연계되고 개인적 이익에 매몰될수록, 한국사회의 평균적인 민주적 가치와 상식으로부터 더 멀리 벗어나는 것 같다.

최근 종군 위안부 출신의 국제적 인권운동가 이용수가 ‘정대협’ 등 관련 시민단체에 대하여 제기한 문제들과, 이에 대하여 보여준 사회 일부의 행태는 사회민주화의 필요성을 다시 상기시켜주었다. 피해자 중의 한 명인 이용수는 관련 단체의 운동 방향과 회계투명성, 그리고 대표였던 윤미향 의원의 정계 진출에 대한 비판을 제기하였다. 이 기자회견은 일제의 국가폭력에 희생되었던 피해자들이 현재까지 한국정부와 사회에서도 제대로 보호받지 못했음을 반증하고 있다. 관련 시민단체에게 이용당하고 배신당하였다는 피해자의 주장은, 법적 사실 규명과 무관하게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을 던져주었다.

이 과정에서 노출된 일부 한국 사회의 반응은 더 실망스러웠다. 386 출신의 일부 정치가들은 이용수의 기자회견을 친일세력의 반격이나 그녀의 개인적인 정치적 욕심으로 치부하였고, 촛불 시위에서 활약하였던 어느 방송인은 이용수의 기자회견을 음모론으로 왜곡하였다. 정치적 민주화에 공헌했던 일부 엘리트들의 이 같은 반응은 시대에 뒤쳐진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일부 사회세력은 SNS를 통하여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그녀를 매도하고 소외시키려는 반민주적인 공격을 서슴지 않았다. 민주주의의 가장 핵심 가치인 보편적 인권과 개인의 존엄성을 짓밟힌 희생자들의 절규에 대하여 비민주적인 정치 논리를 동원한 것이다. 이런 발언들은 한국의 민주주의 수준을 의심케 하는 정치공학이었고, 권위주의와 싸우면서 닮아버린 부정적 유산이자 격세유전의 모습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말한 “깨어 있는 시민의 힘”이 왜곡되어 표출된 것은 아닌지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10여 년 전부터 여러 번의 유사한 기자회견과 고발이 있었지만, 이제야 사회적 관심이 일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역설적이게도, 한국이 그만큼 사회적으로 민주화되었기 때문이다. 이용수 등 당사자들의 역량이 성장하였고 이들이 축적해온 운동의 정당성이 커졌으며, 아울러 높아진 사회적 민주화 수준이 그동안 가려지거나 뒤처져 있던 관행에 대하여 개혁을 촉구하기 시작하였기 때문이다. 이 사례는 사회민주화가 많이 진전되었음을 보여줌과 동시에 미래를 위해 필요한 과제를 압축적으로 웅변해 주고 있다.

 

사회적 신뢰 증진과 지속가능한 한국의 민주주의를 위하여

향후 사회의 신뢰를 어떻게 증진시킬 것인가? 그리고 지속가능한 민주주의를 위하여 무엇이 필요한가? 한국의 시민단체는 민주화 이행과정에서 커다란 공헌을 했지만, 보편적 기준에 의할 때 여전히 성숙되지 못한 측면이 있다. 재정적으로 독립하지 못하여 정부나 기업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고, 내부의 활동가를 기르기 위한 전문적인 교육 프로그램이 제대로 갖추어진 사례가 드물며, 전문화된 이슈에 집중하지 못하고 많은 시민단체가 중앙정부 수준의 정치이슈에 몰입하는 경우가 많다. 이 같은 특징들은 한국의 상당수 시민단체들이 갖고 있는 한계들이다. 특히 일부 리더들이 정치권력에 주기적으로 충원됨으로써 NGO로서의 정체성과 중립성에 대한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와 주요 정부기구에 대거 참여한 참여연대는 전형적인 사례의 하나이다. 한국 사회의 일부는 민주화 이행을 위한 기동전에는 성공했지만, 민주공고화를 위한 진지전이나 자기규율에는 실패하고 있는지 모른다.

‘착한 사마리아인’의 자발적 행동과, 이를 정치논리로 공격하지 않은 것이 성숙된 민주적 사회의 모습이 아닐까? 착한 사마리아인의 행동이 민주주의의 보편적 가치에 더 충실한 것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아시아 경제위기 시 금 모으기 운동이나 최근 코로나 위기에서 활약한 의료진과 소방수 등 무명용사들에게서 우리는 수많은 착한 사마리아인들을 보았고, 한국의 높은 사회적 신뢰를 경험하였다. 그럼, 이러한 신뢰를 어떻게 지속가능하게 만들 수 있을까?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이자 하버드대학교의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들이 주장한 공적 미덕(Public Virtue)은 정치논리나 개인 이익을 넘어서는 개념으로서 한국의 사회민주화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 코로나 위기 속에서 치러진 2020년 4월 국회의원 총선에서 투표율이 66.2%로 28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였고, 2017년 치러진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의 투표율은 77%로 OECD의 평균 68%에 비하여 매우 높았다. 이 같은 수치들은 한국에서의 시민적 참여가 높아졌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 하지만, 이처럼 높은 정치적 참여가 활발한 사회적 봉사 등으로는 연결되지는 않았다. 국제노동기구(ILO)의 자료에 의하면, 2019년 한국의 자원봉사활동 참여율은 16.1%로, 멕시코(1.2%)에 비하면 높으나, 미국(24.9%), 독일(28.6%), 캐나다 (82%)에 비하면 상당히 저조한 편이다.

그리고, 공적 미덕을 함양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공헌과 책임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한국은 개인들의 세금 면제율이 주요 국가들 중 가장 높은 국가에 해당한다. 2015년 기준, 한국의 소득세 면제자 비율은 46.8%로, 미국(35%), 일본(15.8%)에 비하여도 월등히 높다. 즉, 한국의 경우 일하는 사람의 절반 가까이가 근로소득세를 한 푼 내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복지국가이면서 면세율을 22.6%로 유지하여 경제적 책임 및 공헌과 복지를 조화시킨 캐나다의 사례가 한국에 주는 시사점이 크다. 역대 정부들이 정치적 논리와 선거를 의식하여 면세 항목을 늘려온 결과이다. 사회적 공헌과 경제적 책임 없는 정치적 참여가 어떻게 공적 미덕을 증진하고 민주주의를 지속가능하게 할 수 있을 것인가?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뉴노멀과 경제적 위기는 한국 민주주의에도 많은 도전을 던져주고 있고, 더 높은 사회민주화를 요구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재정지출이 확대되고 있고 정부의 역할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다. 재정적 역량이 한계에 이르고 공공부문의 창의성이 유지되지 못할 때, 계층, 세대, 젠더, 직업, 이념 등 사회 내 각 분야에서 폭발하게 될 집단행동의 딜레마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는 이미 한국 민주주의가 직면한 현실이 되었다. 재정적 지불 여력이 고갈되고 정부 역할이 한계에 부딪힐 때, 사회 각 분야의 공동체에 정착된 자발적 책임과 절제된 참여, 그리고 공적 규범 등은 한국의 민주주의를 지탱할 사회적 자산이 될 것이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콜로세움 정치를 반복하지 않고 공적 미덕과 사회적 신뢰를 키워나가기 위하여 구성원 모두의 각성과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 기고문의 견해는 필자의 개인 의견이지 동아시아 재단의 공식 입장을 반영하는 것이 아님을 밝힙니다.

 

필자 소개

류상영은 현재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교수이고 <동아시아정책논쟁>의 editor를 맡고 있다. 연세대 대학원에서 정치경제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1995-2001)을 지낸 바 있으며, 일본 게이오대학 방문연구원,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대학교와 토론토대학교의 방문교수 등을 지냈다. 연세대 김대중도서관 관장(2004-2009)을 역임하면서 <김대중 구술사>를 구축하는 등 사료 수집과 연구에 힘썼다. 그는 박정희와 김대중의 역사와 정치경제에 관해서 많은 연구결과를 출간하였다. 최근에는 한국의 정치사와 정치경제를 민족주의로 분석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류상영  syrhyu@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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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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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혜연 2020-07-23 11:07:05

    따지고보면 전체주의국가들내지 민주주의와 권위주의의 경계선인 나라들이 많더군요?   삭제

    • 박혜연 2020-07-23 11:06:28

      우리나라는 그래도 2020년 현재 아시아권에서는 가장 민주주의지수가 높은나라입니다~!!!!! 과거 이른바 냉전시절에는 일본이 당시로서는 아시아권에서 민주주의지수가 높았지만 2012년 아베2기집권이후로는 민주주의가 후퇴되어 우경화가 되었죠~!!!!! 현재 아시아권국가들중 민주주의국가인 나라는 이렇습니다. 대한민국, 대만, 인도, 이스라엘, 레바논, 부탄, 카타르, 일본, 홍콩등등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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