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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모르는 우리 속 탈북여성에 대한 편견들[기획취재] 탈북여성에 대한 편견에 답하다②

‘잘못되고 완고한 일반화에 기반한 반감.’ 심리학자 고돈 올포트는 <편견의 본질>(1954)에서 ‘편견’을 이같이 정의했다. 올포트는 이 책에서 작은 편견의 방치가 어떻게 사회 전체에 구조화된 증오로 발전하는가를 설명하고 있다. 해결책은 이렇다. “편견은 다수와 소수가 공동의 목표를 추구하면서 동등한 지위에서 접촉할 때 감소할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 편견의 대상이 되는 대표적 집단 중 하나가 탈북민(법률상 용어는 ‘북한이탈주민’)이다. 그 중에서도 탈북여성은 ‘탈북민’과 ‘여성’이라는 이중 편견의 피해자인 셈이다. 2019년까지 남한에 입국한 탈북민은 3만 3,523명, 여성은 72%를 차지한다(남북하나재단 ‘2019년 북한이탈주민 정착실태조사’).

경북 봉화 봉화읍 지역에 내걸린 한 결혼정보업체의 광고 현수막. 탈북여성을 ‘참한’ 북한여성으로 표현하고 있다. ⓒ유코리아뉴스

유코리아뉴스는 전국에 흩어져 있는 탈북여성, 탈북 남성, 남한 남성 등을 만나 탈북여성에 대한 이러한 편견에 대한 솔직한 얘기를 들어봤다.

“가장 많이 듣는 게 공산주의, 빨갱이 이런 말이에요. 공연하는데 어떤 어르신들이 왜 빨갱이들이 여기 와서 공연하냐고 하고, 어떤 사람들은 ‘너희, 목숨 걸고 한국 왔다고 이야기하지 마. 목숨 걸고 북한 체제를 엎었어야지. 우리는 피흘리면서 민주주의를 만들었는데 너희는 이 땅에 와서 뭐 했니? 가만히 있어’ 그래요.”(악단에서 활동하는 탈북여성 윤OO 씨)

“(유튜브 댓글에) 시끄럽게 떠들지 말고 돌아가라는 악플이 많이 달려요. 처음에는 지껄여라 하고 가만뒀는데, 점점 많아져서 지금은 차단해요. 다른 사람들도 보잖아요. 다른 유튜브 하는 사람 중에는 그래서 댓글창을 닫은 사람들도 있어요.”(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탈북여성 조OO 씨)

“식당일을 하려고 찾아가 보면 중국 조선족인지 물어요. “아닌데요. 저 북한에서 왔어요” 하니까 사람들이 막 아래위로 훑어보기도 하고.. 외국인 취급하는 것 같았어요. 근데 4년 정도 지나니까 달라지더라고요.”(남한 생활 13년 차 탈북여성 진OO 씨)

“대구 여자 시집왔듯이 함경북도에서 시집온 사람인데, 왜 굳이 어디에서 태어났냐고 그러는 건지 진짜 잘 모르겠어요. 시누이는 귀순 병사와 같은 일이 뉴스에서 나오면 제가 옆에서 듣고 있는데 왜 자꾸 남한에 오냐고 뭐라 하거든요. 가족임에도 불구하고.”(남한 남성과 결혼한 탈북여성 한유진 씨)

“처음엔 돈의 개념을 잘 몰라서 45,000원이 비었던 적이 있어요. 얼른 가서 50,000원을 뽑아다가 45,000원을 냈죠.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는 거 아니겠어요. 근데 8개월 지났을 때예요. 저 없을 때, 마감하면서 돈이 모자라니까 저보다 6개월 뒤에 들어온 직원이 제가 잘 못 세서 준 거 아니냐고 했대요. 속으로 그런 생각할 순 있어요. 근데 점장님이 카운터에 있는데 진짜 자기가 본 것처럼 큰 소리로 말을 했다는 거예요.”(북한 군인 출신 탈북여성 한OO 씨)

이처럼 대부분의 탈북여성들은 정착 초기 자신들에게 퍼부어지는 편견들을 고스란히 감내하고 있었다. 이번 취재는 그런 편견들을 재확인하는 과정이었던 것이다. 탈북여성 중에는 편견과 트라우마를 툴툴 털고 우뚝 선 사람도 있지만 10년, 20년이 지난 지금도 상처로 남은 이들도 있다. 그것은 그 탈북여성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그만큼 쉽게 벗어지지 않는 남한 사회의 편견의 두터움을 말해주고 있다 하겠다.

2007년 남한에 온 탈북여성 조OO 씨는 현재 유튜버로 활동 중이다. ⓒ유코리아뉴스

 

탈북여성의 또 다른 고민 ‘두고온 가족’

탈북여성들에겐 남한 사람들이 잘 이해하지 못하는 또 하나의 고민거리가 있다. 바로 북한에 두고온 가족들이다. 북한인권정보센터에 따르면 2019년 말 기준, 탈북민 431명 가운데 61.3%(264명)가 북한에 있는 가족에게 송금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북한 국경경비대 초소장 출신 탈북민 홍강철 씨는 탈북여성들이 남자를 쉽게 만난다고 오해하는 이유 중 하나도 바로 ‘가족 문제’ 때문이라고 했다. 이들을 데려오거나 지원하는 문제가 남한에서의 결혼생활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탈북 여성들이 많은 경우 중국에 애가 있잖아요. 북쪽에도 애가 있는 여성들도 있거든요. 그리고 남한에도 있잖아요. 그럼 3국에 다 있는 거예요. 그래도 다 자기 새끼잖아요. 자기 새끼니까 데려오고 싶고, 보고 싶고. 근데 여기서 만난 남편들은 애 만나러 가겠다고 하면 안 보내는 거예요. 그러니까 자꾸 싸우고, 헤어지고 이러는 거죠. 풍기 문란해서 그런 거는 아니에요. 북쪽 여성들도 다 자기 자존심 지킬 줄 알고 그런단 말이에요.”

북한군 출신인 한OO 씨는 2014년 탈북 후 남한에 왔다. 당시 북한에는 이제 갓 20대가 된 아들과 10대인 딸이 남아 있었다. 한 씨는 초창기 힘들었던 심경을 이렇게 표현했다. “밥을 먹는데 국그릇 안에 아들 얼굴이 보였어요.” 결국 2년 뒤 한 씨는 탈북 브로커를 통해 자녀들을 남한에 데려오는 데 성공했다. 자녀들이 북한에서 빠져나와 한국으로 들어오는 데 꼬박 3개월이 걸렸다. 호텔에서 일하면서도 전화기에만 온통 신경을 집중했다. 브로커로부터 언제 전화가 걸려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아침 스텐바이인데 (브로커가) 아침 9시쯤에 전화하겠다, 그러는 거예요. 근데 누구 대신 세워줄 사람이 없잖아요. 그래서 주방에 있는 주방장한테 꽌시(일종의 뇌물-편집자 주) 하나 넣고 옆에서 전화했어요. 엉엉 울면서.”

2008년 중국을 거쳐 남한으로 온 진OO 씨는 남한 정착 초기에는 힘든 육아와 직장에서의 편견 등으로 힘든 시절을 보냈지만, 특유의 밝고 적극적인 성향으로 난관을 헤쳐 갔다. ⓒ유코리아뉴스

아버지가 북한 고위 간부였던 김OO 씨는 탈북 후 중국에서 8년을 살았다. 강제 북송 위협이 늘 있었지만, 부모, 형제를 다신 못 만날 것 같아 남한에 올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동생의 긴 설득 끝에 김 씨는 한국행을 선택했다. 그런 그도 북한에 있는 가족들에게 송금하는 일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 했다.

“우리가 쓰고 남은 돈을 주는 줄 알아요. 내 동생이 우리 엄마한테 2천만 원을 보냈잖아요. 5개월 만에 다 썼다고 왔어요. 북한 사람들이 이 돈에 대한 인식이 없으니까, 너무 생각 없이 손을 내밀어요. 여기서 돈이 나가면 그게 하늘에서 떨어진 공짜 돈인 줄 알아요.”

그럼에도 상당수 탈북민은 오늘도 북한에 있는 가족에게 돈을 보낸다. 부모 재산, 자식 재산을 구분하지 않고, 형제간에 서로 돕는 게 당연한 문화에서 살아 왔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러한 경제적 부담은 탈북여성을 성매매로 끌어들이기도 한다(무엇이 탈북여성에 대한 편견을 낳는가?).

2002년 남한에 온 박예영 통일코리아협동조합 이사장은 탈북민이 남한 생활에 정착하기 어려운 이유가 바로 이런 ‘특수성’ 때문이라고 했다. “북한이나 중국에 있는 가족이 갑자기 아프다거나, 어렵다고 연락이 올 때가 있어요. 그러면 한 달에 정해진 돈이 들어오는 직장보다 지금 당장 돈을 벌 수 있는 걸 하려고 일을 그만두거나 마음이 힘들어져서 일을 그만두는 경우가 있어요. 그리고 사람이 긴장하면 질병이 잘 안 나타나다가 마음이 풀어지면 질병이 나타나잖아요. 한국에 와서 몸이 신체적으로 갑자기 안 좋아지는 사람들도 많아요.”

장애가 있는 10대 아들을 키우는 조OO 씨는 정착 초기, 북한에 있는 가족과 육아에 대한 이중 부담으로 힘들었던 시기를 이렇게 회상했다.

“(돈을) 보내고 또 보냈어요. 그러다가 몇 년 전에 아이가 막 아팠을 때는, 동생한테 나도 내 새끼 살리고 싶다고 했어요. 너네는 그래도 형제가 있어서 서로 돕지만 나는 여기 혼자밖에 없는데, 누가 와서 내 새끼를 돌보냐고. 그렇게 하고 전화를 끊었는데 한 달이 가질 못했어요, 마음이.”

탈북여성들의 연령은 20~40대가 대부분이다. 그 중 자녀가 있는 경우는 88.9%에 이른다. 조 씨의 ‘이중부담’은 탈북여성 일부가 겪는 어려움이 아닌 것이다. 육아를 도와줄 가족이나 친지가 없어 취업을 포기하면, 그 다음 따라오는 것은 경제적 어려움이다. 설상가상 한부모 가정인 경우는 더욱 쉽게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지난해 서울 관악구에서 발생한 탈북 모자 사망사건이 그런 경우다.

2008년 남한에 온 진 씨는 한눈에 봐도 밝고 적극적인 성향이 보이는 탈북여성이다. 주중엔 아파트 청소, 주말엔 마트 판매일을 하고, 비정기적으로 통일교육 강사로 활동하면서, 남한 출신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다. 하지만 그도 정착 초기엔 탈북여성의 이중고를 피해 가기 어려웠다고 한다.

“애기를 키우니까 알바를 짧게, 그것도 아는 사람이 있는 데서 했어요. 4살짜리 딸은 집구석에서 기다리고. 애기는 어리고, 낯선 곳에서 아는 사람은 없고, 처음엔 그런 게 너무 힘들어서 인사하다가 갑자기 설움이 받쳐 눈물을 뚝뚝 흘린 적도 있어요.”

지난 8월 12일 국회에서 열린 ‘탈북 빈곤 한부모 실태 및 정부 대책 평가와 전망’ 토론회에서, 장명선 이화여대 젠더법학연구소 교수는 “통일부가 성별영향평가를 실시하고 북한이탈주민 지원사업에 젠더 관점을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남과 북은 다르다’는 것에서부터

기본적으로 북한과 남한은 체제와 문화가 다르다. 중요한 것은 ‘다름’이 편견을 위해 강조될 것이 아니라, 조화를 위해 강조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오랫동안 탈북민 지원사업을 해온 부산중앙교회 최현범 목사는 “북한이 싫어서 넘어왔지만, 자기 안에 굳어져 있는 것들을 바꾸기 힘들다”며, 노동과 자본에 대한 태도를 그 예로 들었다.

“탈북민들을 게으르다고 하는데, 오랫동안 공산주의 사회에서 살았던 영향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거예요. 거기선 자기네들이 물건을 더 만들 필요도 없고, 만들어도 자기한테 오는 혜택이 없으니까, 시간만 때우면 됐으니까.”

물질적 인센티브가 없는 북한의 노동 환경 속에서 길러진 태도가, 경쟁사회인 남한에 와서 쉽게 바뀌진 않는다는 의미다.

“북한에서는 출근해서 가만히 앉아만 있다 와도 배급 주고, 월급 줬어요. 그래도 출근한 거야. 근데 대한민국은 할당량을 다 하고, 그것도 진짜 제대로 해야만 사장이 ‘괜찮다’고 말하잖아요. 회사에 나가서 얼굴만 보인다고 출근이 아니에요. 근데 탈북민들은 아직 그런 마인드가 있는 거예요. 북한에서는 그렇게 살아왔으니까. 모든 일을 내 일처럼 책임적으로 안 해요.”(탈북여성 조OO 씨)

이뿐 아니다. 언어적 차이 때문에 직장생활이 힘든 경우도 잦다. 일례로, 상사나 동료들에게 잘못한 부분을 지적하거나 직설적으로 말하면서 직장 내 갈등을 겪는다.

“남한분들은 웬만하면 기분이 상하니깐 지적을 잘 하지 않으려고 하고, 그보다는 칭찬하려고 하잖아요. 그런데 우리(탈북민) 사람들은 지적질을 하지 않으면 오히려 욕을 먹어야 했어요. ‘생활총화(자아비판과 상호 비판으로 이루어진 북한 특유의 회의 방식)’를 하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한 사람을 발딱 세워놓고 직설적으로 막 욕을 하는 것이 습관이 된 겁니다.”(탈북여성 윤OO 씨)

직설적인 탈북민의 말에 상처받는 남한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남한 사람들이 가볍게 던진 말에 탈북민들이 상처받는 경우도 있다. 가령, 인터뷰 중에 만난 여러 탈북여성들이 남한 사람들은 흔히 하는 ‘밥 한번 먹자’라는 말 때문에 당황한 적이 있다고 했다. 남한 사람은 인사치레로 한 말인데 그걸 곧이곧대로 믿고 전화기 앞에서 기다리다가 연락이 없이 실망한 경험을 공통적으로 갖고 있었던 것이다.

탈북민인 마이제이디 나눔기업 이임순 대표가 견학 온 탈북여성들에게 자신의 정착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유코리아뉴스DB
경기도 고양시 백석동에 자리한 한 카페에서 탈북민 출신의 주인이 남한 정착 과정에 대해 탈북민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유코리아뉴스DB

 

“좋은 씨앗도 토양이 좋지 않으면 열매 맺기 어려워”

광주에서 탈북민 정착 지원 NK비전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박우철 대표는 “그렇기에 더 자주 만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대표는 “나도 북한 사람 만나본 적 있다’, ‘북한 사람 써 봤다’는 사람들 중 편견을 갖는 사람이 많다”며, “그들이 북한 사람들은 어떻다고 딱 정의를 내리고 다른 사람에게 선입견을 심어주는 게 굉장히 무서운 일”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박 대표는 “아무리 좋은 씨앗이어도 받아들여지는 토양이 좋지 않으면 열매를 맺을 수 없다”며, “한국 사회가 탈북민을 배척하고 쉽게 편견을 갖는 분위기에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가 하면, 2004년 한국에 와 현재 국회에서 일하고 있는 조경일 씨(32)는 이렇게 말했다. “제가 모임에 가면 자주 듣는 얘기가 있어요. ‘전혀 북에서 온 것 같지 않아 보인다’는 겁니다. 이게 사실 저한테는 칭찬이지만 사실은 그게 편견이거든요. 사람들이 탈북민에 대한 어떤 정형화된 이미지를 갖고 있는 것이죠. 탈북민 하면 뭔가 지위가 낮고, 촌스럽고, 억세야 하는데 그게 아니니까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이죠.”

탈북민 스스로를 ‘조선족’이라 속여야 하는 현실도 꼬집었다. “많은 탈북민들이 자신들이 북한 출신이라는 걸 들키기 싫어서 조선족이라고 얘기하는 경우가 많아요. 탈북민들은 한국사회에서 통일의 파트너이고 함께 살아가야 할 이웃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그렇게 생각지도 않고 오히려 조선족보다 낮은 지위로 여기는 것이죠. 이 정형화된 이미지를 깨는 데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 같아요. 당연히 탈북민들이 스스로 감당해야 할 몫도 있는 거고요.”

박예영 이사장은 탈북민 지원 정책이나 제도를 수립할 때 탈북민이 소외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남한 사람의 입장이 아닌 남한 행정 시스템에 낯선 탈북민의 입장에 서서 시스템을 살펴보고 수정하고 업그레드해 가야 한다는 것이다. 박 이사장은 또 “북한에서 태어난 것은 죄가 아니고, 어깨가 처져야 할 이유도 아니다”라며, “탈북민이라는 것에 당당해질 필요가 있다”고 했다.

비단 박 이사장만이 아니라 인터뷰에서 만난 모든 탈북여성들이 한결같이 이 말을 강조했다. “당당해야 한다!”고. 

취재: 김성원·정지연 기자

녹취: 박선영, 이정화, 전혜미

*본 기획물은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정지연 기자  ukorea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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