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성씨의 구치소 생활은 번민과 갈등, 자책의 나날이었다. 물론 신앙으로 그것들을 견디고 극복해 나갔지만 자신도 모르게 밀려오는 그것들을 막을 수는 없었다. 변호사와 협의 끝에 국정원 조사를 거부한 뒤에도 그는 자책에 휩싸였다. 국정원 얘기대로 혐의를 인정하고 몇 년 감옥 살다가 추방되어서 중국 가서 살면 되겠거니, 그러면 중앙합동신문센터에서 고생하는 동생도 쉽게 빼낼 수 있겠거니, 생각도 해보지만 도저히 짓지 않은 죄를 지었다고 할 수는 없었다.

굴종하느니 그는 싸우기로 했다. 변호사들을 믿고 신부님을 믿고 그리고 하느님을 믿고. 하지만 굴종하지 않고 싸우기 때문에 치러야 하는 대가는 컸다. 해고, 지원금 해지 고지서가 바로 날아들었다. 그는 지금도 싸우고 있다. 그에 대한 대가 또한 톡톡히 치르고 있다. 어제 전화통화에서 그는 “안녕하지 못하다”고 했다. 검찰의 추가 기소 분위기 때문이다. 간첩 혐의가 거짓 증거제시로 명분이 없어지자 사기로 우성씨를 기소하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우성씨는 이제 혼자가 아니다. 일기를 쓸 때만 해도 그는 혼자였고, 소수였지만 지금은 많은 이들이 그를 응원하고 있다. -편집자 주

2013년 3월 12일 화요일
11시. 스피커에서 국정원 조사 왔다고 수사 준비하라고 안내해줬다. 나는 너무 놀랐다. 어제 변호사님이 가르쳐준 대로 ‘거절한다’고 말했다. 단호히. 좀 있다 또 ‘정말 거절하겠냐?’고 교도관님이 물었다. 나는 다시한번 확답하였다. ‘거절합니다.’

그리고나서 나는 순간 마음의 갈등이 생겼다. 내가 잘한 것인지, 아니면 잘못한 것인지, 동생을 덜 고생시키려면 국정원(이 제시하는) 조건에 응해야 되는 것이 아니냐 등 여러 가지 생각에 머리가 터지는 듯했다.

마음속으로 주문을 외웠다. ‘잘했다. 괜찮아. 이 또한 지나가리라.’ 등등. 심장이 불규칙적으로 뛰고 있다. 무섭다. 나는 괜찮은데 혹시 동생한테 나쁜 일이 있을 것 같아 불안하다. 그러나 나는 믿는다. 하느님께서 함께하시고 나를 지켜주고 계심을.

왜냐면 어제 교도관님한테서 말을 듣고 얼마 안되어서 신부님 오셨고 나는 신부님께 이 사실을 말씀드렸다. 신부님은 나의 수호천사다. 나는 하느님을 믿는다. 그리고 또한 나 혼자서 조사받을 때 신부님께서 변호사님 선임해주시고 나를 어렵게 찾았다. 그러니 지금은 신부님을 믿어야 한다. 꼭 믿어야 한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오후 1시 운동시간이다. 독방 운동장에 도착한 나는 공 하나를 발견했다. 혼자서 공차면서 옆방 아저씨에게 같이 하자고 몇 번 불러봤으니 대답이 없었다. 혼자서 공을 차다 또 고민에 빠졌다. 내가 잘한 것인지 못한 것인지 도대체 나는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마지막에 결심했다. 중국에 강제 추방돼도 중국 가면 못사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다시 일어설 수 있으니 결코 짓지도 않은 죄를 뒤집어 쓸 수는 없다. 이것이 나의 마지막 결심이다. 그리고 또 혼자서 주문 외웠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정말 일이 나쁘게 될 경우 징역 4년에 중국 강제 출국, 벌금 2500만원. 그러면 내 운명이라고 맞아들여야지. 아니면 재판 받기 전에 홧병 걸려 먼저 죽을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 2013년 3월 17일 일요일 일기 뒤에 실린 <읽은 책들> 목록. 5권의 일기장 중 1권이 비로소 끝났다. ⓒ유코리아뉴스

2013년 3월 13일 수요일
어제 국정원 수사 거절했는데 그 역효과가 오늘 바로 나타났다. 뭐가 더 있을지도 모르겠다. 완전 칼을 뺐다는 경고장이다. 오늘 서울시청 해고 통지서를 받고 통일부 북한이탈주민지원 해지 통지서도 저녁에 받았다. 이외에도 뭐가 더 있을지 모르겠다.

나의 통장 사용금지, 임대아파트 회수 등등. 한국 국적 말소도 따를 것 같다. 나에 대한 보복이다. 자기들한테 협조 응하지 않는 대가라고 알리는 것 같다. 정말 무섭다. 할 말이 없다. 물론 예상했지만 이렇게 갑자기 이런 식으로 나한테 통보하는 걸 뭐라고 해야 할지. 변호사님 말 듣고 국정원 수사 거부했는데 그냥 만나볼 걸 그랬나? 정말 나는 바보인가 보다.

내가 변호사님 말 들은 것이 맞는 건지 틀린 건지 마음의 갈등이 너무 많이 생긴다. 머리가 찌릿찌릿 아파온다. 난 어떻게 해? 차는 이미 지나갔다. 미안하다 가려야. 이 오빠가 너의 마음을 몰라줘서 미안해. 미안해. 정말 미안하다. 오빠가 1~2년 동안만 감옥에서 고생하면 되는데 오빠 생각이 많이 짧았다. 재판한다고 해도 무조건 이긴다는 보장도 없고, 또한 여권 죄, 북한이탈주민 죄, 그리고 정착금, 이 모든 걸 다 내가 물어내야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면 너의 깊은 생각을 내가 못 알아줘서 미안하다. 그러나 나는 죄를 뒤집어쓰고 억울하게 살기는 싫다.

2013년 3월 14일 목요일
어제 하루 동안 너무 바빠서 일기를 못썼다. 참 웃기지만 여기 감옥에서도 바쁠 때가 있다. 아침에 어떻게 지냈는지는 하루밖에 안지났는데 벌써 기억이 안난다. 운동 갔다와서 티비 보다 책 좀 보고 그렇게 오전 시간 다 보냈다.

항상 아침에 일어나면 아쉬움이 많다. 왜냐면 꿈속에서 가고 싶은 데는 어디든 다 가거든, 훨훨 날아다니거든. 그래서인지 저녁에 잘 땐 재미있다. 말도 안되겠지만 꿈속에서는 여기 감옥 밖으로 내 영혼이 마음대로 나갈 수 있으니 나는 티비도 보고 사람들과 잠깐이나마 이야기도 할 수 있는데 동생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도저히 모르겠다. 제발 동생이 잘 지내길 두 손 모아 무릎 꿇고 간절히 빌고 또 빈다.

2013년 3월 17일 일요일
읽은 책들
1. 장편소설 <미주 감옥에 주권 조작>(미국 변호사가 주가조작으로 인한 범인과 진실을 밝혀내는 과정)
2. <발 큰 여자 지구는 좁다>(270만 원으로 두 달 동안 유럽여행하면서 겪은 경험담)
3. <헬렌 켈러 자서전>(안보이고 안들리지만 감각과 불후의 도전을 통하여 세상과 소통하는 이야기)
4. <청춘 불패>(이외수 작가님의 세상에 대한 평론과 용기와 에너지를 불어넣어주는 글들)
5. <인간 수업>(살면서 알아야 할 진리 및 여러 가지 사례)
6. <바람의 딸>(35세 늦은 나이지만 자기 꿈에 대한 도전)
7. <르네상스 창녀>(난쟁이와 창녀, 마녀 사이의 사랑 이야기)
8. <닉 부이지치의 허그>(팔 다리 없는 부이지치가 어려움을 극복하고 하느님의 전도사로 살아가는 이야기>
9. <사랑하기 때문에>(복수와 용서, 상처, 과거 이 모든 것을 조화롭게 연상해서 만든 짜릿하고 감동적인 소설>
10.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 ‘정호승 산문집’>(살면서 알아야 할 상식과 어려울수록 자신을 믿고 용서하고 다시 힘을 내고 살아갈 수 있는 좋은 글들. 어머님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

김성원 기자  ukorea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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